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42)
제342화
올리비아의 드넓은 해안가를 가득 채운 배들.
그 많은 배에 물건들을 채우는데, 결코 금방 끝날 리가 없었다.
올리비아의 수많은 인부들이 투입되었음에도 선적은 다음 날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처억!
마지막 짐이, 마지막 배에 실리는 그 순간까지도.
제롬은 승선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서 있었다.
“…….”
“남작님, 이제는 가셔야 합니다.”
가뜩이나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시점이다.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는 게 유리함에도 제롬이 출항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드웨인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남작님, 반텐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기 위해선 저도….”
그러나 드웨인은 다시 한번 재촉한다.
그 또한, 그가 가야 할 전장이 있었으니까.
“…그래. 어쩔 수 없지.”
마침내 팔짱을 푼 제롬이 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는, 정말 가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터억!
몸을 돌린 제롬의 어깨에 팔 하나가 척 걸쳐진다.
“뭐야? 누구 마음대로 출항이야? 아직 내가 오지도 않았는데. 거, 너무하는구만?”
장난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
“…살라딘? 왜 온 거야?”
잘되었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던 반가운 목소리에 반문한다.
“지금까지 네놈 자식이랑 개고생한 게 얼만데. 제일 멋있는 장면에서 어딜 쏙 빼먹고 튀려고. 안 그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살라딘.
“…이번 작전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
“어이구, 이제 와 새삼? 언제는 안 그랬나? 알고 있는데?”
“에드윈 자작님, 네 동생… 세이라 공주님도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제롬이 다시 한번 살라딘에게 권유했다.
이미 자신과 함께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친우였다.
이제는 편안한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이 결코 없지 않았다.
“그럴 일 없도록 네가 잘 이끌 거잖아.”
“…….”
“…….”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수많은 대화가 오간다.
긴 한숨을 내쉰 제롬이 먼저 침묵을 깨며 말했다.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걸 내놓으라고 결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으면 땡전 한 푼도 없으니 그리 알아.”
“어이구, 악덕 사장 놈 인성 좀 보소. 내가 억울해서라도 절대 안 뒈진다. 바퀴벌레처럼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청구서 내밀 테니까, 나중에 가서 비싸다고 딴소리나 하지 마라.”
제롬도, 살라딘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남작님! 살라딘 공자! 출항 준비 전부 끝났습니다! 어서 타십시오!”
저 멀리, 먼저 승선한 베스킨이 둘을 바라보며 외친다.
베스킨이 승선한 배의 뒤편으로 수많은 배들이 일제히 돛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껏 실은 짐과, 배 위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인원들.
“가자. 드웨인, 우리가 없는 동안 반텐을 잘 부탁한다.”
드웨인 역시 율리우스 왕자의 차출을 받아 서부 전선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
이 순간이 지나면, 다음에 다시 보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가 되리라.
“뭐, 올리비아는 제레미아 양이 어련히 알아서 잘 꾸릴 테니. 저도 오랜만에 제가 할 일에 오롯이 집중해 보겠습니다. 애초에 저도 현장 타입이라, 후방에서 살림 챙기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씨익!
웃으며 답하는 드웨인이 자신의 가슴팍을 툭 쳤다.
내가 반텐을 위해 준비한 물건을 전하겠다는 드웨인의 표현이었다.
드웨인과 동시에 입이 열린다.
“부디, 무운을.”
* * *
올리비아의 영주성.
에드윈 자작은 응접실의 탁 트인 창문을 통해 해안가에 정박해 있던 배들이 저 멀리 떠나가는 그 순간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아버님, 정말 괜찮을까요?”
멀어져 가는 함대를 바라보던 에드윈 자작에게 샤를로가 물었다.
“제롬 남작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의 작전이라면… 절대로 평범한 작전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정말로 형님이 목숨을….”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샤를로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껏 제롬은 무수히 많은 위기와 격렬한 전장 속에서도 언제나 살아 돌아온, 진짜 영웅이다.
채 몇 년도 되지 않는 단기간에 말도 안 되는 무훈을 쌓아 올린 제롬이 이리 진지하게 말할 정도라면, 모르긴 몰라도 생환 확률은 채 1할도 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작전일 터.
그렇기에, 아버지와 자신에게 살라딘과 만날 자리를 강권한 것이 아니던가.
지금 이 순간, 샤를로는 어떤 면에서 제롬과 아버지가 참으로 미웠다.
왜 하필 자신의 형을 사지로 데려가야만 하는 건지.
왜 하필 자신의 형이 이런 위험을 감내해야만 하는 건지.
그리고 왜 아버지는, 가겠다 말한 형을 붙잡지 않고 순순히 보내준 것인지.
물론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임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혈육이었기에.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네 형은 어릴 때, 참으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
뜬금없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샤를로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으르렁대는 모습에 두려워 울음을 터뜨리고, 목검에 머리 한 대 맞았다고 그대로 목검을 버리고 도망가는 겁 많은 아이였지.”
갑작스러운 옛이야기였지만, 샤를로는 아버지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참으로 늠름하게 자라났구나.”
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가문을 든든하게 받쳐주길 바라는 마음에.
유약하고 여린 아들을 세상 밖으로 내쳤었다.
실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쩌면 비명횡사하지는 않을까.
어쩌면 잘못된 길을 걷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자신의 아들은 너무나 멋지게 자라주었다.
아들과의 지나간 대화가 떠오른다.
-저는… 떠나겠습니다.
-어째서냐?
-여기서 뒤로 물러난다면, 그동안 극복해왔던 것들이 모조리 한 줌 신기루처럼 사라질 테니까요.
-네 삶이 끝날 수도 있는 일이다. 도망가는 것이 반드시 비겁한 선택은 아니야. 어쩌면….
-저는.
자신의 설득을 끊으며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말하던 아들의 대답이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유약하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 당당한 대답 앞에, 과연 어떤 부모가 말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겠지.’
“돌아가자, 샤를로. 반텐을 포함한 북부 영지들에 물자를 보내려면 한시가 급하다.”
후방에 위치한 마노 영지라 하여 전쟁에서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전방의 왕국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이, 후방에서는 막대한 양의 보급품과 지원병들을 보내야만 한다.
떠나간 살라딘이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으며.
에드윈과 샤를로는, 그들의 전쟁터로 나아가기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 * *
겨울이 막 들어서던 때. 펑펑 내려오던 눈을 치우며 투덜댔던 반텐의 병사들은, 지금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기름은? 화살은 충분해?”
“준비 완료입니다!”
“마법사님들께서 드실 포션 전부 꺼내와! 탈진하시는 한이 있더라도 쥐어짜내야 하니까!”
드르륵! 드륵! 드륵!
수많은 물자들이 수레에 실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지금.
만일 눈이 어설프게 녹아 길이 아직까지 얼어 있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지 정말 아찔했다.
물론 눈을 잘 치워 두었다고, 지금 상황이 여유로운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병사들의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도 반텐의 주인,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는 성벽 위에서 굳건하게 평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꾸물, 꾸물!
하얀색으로 점철되어 있는 물결이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은, 평범한 이들의 시야에는 흡사 흰개미 떼가 밀려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가오는 저 하얀 물결은, 결코 흰개미 떼 따위가 아니었다.
“…카밀 공작이랑 이바렐라 황제가, 이번에는 정말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우르크 평야에 파견했던 척후병들이 돌아와 보고하였기에 이미 제국군이 남하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발리스타뿐만이 아니라 파티마 방면에서도 밀려오는 제국군의 규모는, 그야말로 국가의 전력을 다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끝을 모르는 제국군의 규모에, 항상 여유를 잃지 않던 아란달 역시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
선대로부터 가문을 이어받고, 이 반텐의 국경을 굳건하게 지켜온 지 어언 수십 년.
그 오랜 세월을 지켜온 바쿠스로서도, 이런 대규모의 군세가 남하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거대한 방패를 바닥에 세운 채, 방패의 위에 손을 올려둔 바쿠스의 모습은 그 어떤 위기에도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았지만.
스윽!
내려다본 자신의 손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흥건하게 맺혀 있었다.
‘…긴장한 건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멀리,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제국군 사이.
비록 육안으로는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눈보다 더욱 정확한 그의 감각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저 군세의 안에.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강자가 섞여 있다고 말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대치하는 사이, 이제는 친숙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카밀의 기운.
그리고 거대한 산악을 마주한 것처럼 단단한 기운.
비록 실제로 마주한 것은 처음이나, 이자가 누군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 이 기운의 주인은 바로 태산(太山) 카이저 공작이겠지.
환하고 아름다운 빛(光輝), 그리고 그 빛 아래 하늘을 꿰뚫을 듯이 우뚝 선 거대한 산(太山)이 있으며.
그 빛과 산 사이를 노니는 짐승(神獸)이 있으니.
주의 은총을 받은 조화로운 기운이 함께하는 한, 위대한 신성제국의 광영은 영원토록 이어지리라.
대륙과 신성제국에 널리 알려진, 3공작을 뜻하는 문구였다.
그만큼 신성제국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 가운데, 무려 두 명이 이곳 반텐을 향해 친히 참전한 것이다.
“쉽지 않겠군. 쉽지 않겠어.”
꽈아악!
방패를 쥔 바쿠스의 손아귀가 단단하게 쥐어진다.
게다가 두 공작만이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미증유의 낯선 기운.
무인의 정련된 무구와 같은 날카로운 기운이 아닌, 다소 이질적이며 생소한 기운.
이런 느낌을 주는 이는 대륙 위에 오직 하나뿐이리라.
대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옥좌의 한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해왔던 교황.
교황마저 이 자리에 찾아온 것이다.
병사들의 사기를 위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바쿠스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절대적으로 열세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실을 아란달도 느낀 것일까.
“이거 이거, 어쩌면 명년 오늘이 저희 전원의 제삿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란달이 가볍게 말해보아도, 분위기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달튼 왕국에는 연락해 보았나?”
“예. 현재 소식을 들은 브라움 공작 각하께서 달튼의 원군과 함께 최선을 다해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어느 정도나 걸릴 것 같나?”
“…아시다시피 저희 영지는 마법진이 없습니다. 그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릴 겁니다.”
“일주일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
중부 전선의 검노야 파데론 공작이 지키던 요새가 고작 하루 만에 함락된 것을 생각하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흡사 영겁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었다.
“파울로 역시 샤론 왕국으로 갔다던가?”
“맞습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사위인 피터 국왕 전하의 위기니까요. 자신의 딸을 미망인으로 만들 생각은 없겠지요.”
신성제국이 중부 전선을 가장 먼저 공략한 것은 결코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흡사 정밀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철저하게 계산된 한 수였다.
중부 전선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륙 연맹은 반드시 곳곳으로 전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틈새를 노려, 신성제국은 일거에 전력을 모아 연맹의 옥좌들을 하나하나 각개격파 한다.
제국의 공격으로부터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마법진을 설치하지 않은 반텐이라면, 원군이 오기 전에 그 단단한 방패를 부술 수 있으리라.
이유가 있던 방비가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당했군. 이바렐라 황제, 보통내기가 아니야.”
황좌의 자리에서 가장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오라비들과 아비마저 고꾸라뜨리고 그 자리를 찬탈한 철의 여인.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래도 버텨낸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뿐이야.”
“…물론입니다.”
열세의 상황에서도 바쿠스와 아란달이 전의를 다지고 있던 그때.
“뭐야, 여기 계셨어요?”
어느새 갑옷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메르시가 뒤늦게 성벽에 올라 두 사람을 찾았다.
“메르시, 뭐 하다가 이제야 나타난 것이더냐. 진즉에 올라와서 적들의 동태를 살폈어도 모자랄 것을.”
바쿠스가 메르시를 가볍게 타박했지만, 그녀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반문했다.
“무슨 소리예요? 올리비아에서 드웨인 공자가 찾아왔어요. 아버님께 긴히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고 하시네요.”
“…내게 말이냐?”
드웨인이라면 제롬과 함께 올리비아로 떠난 후 생활하는 아이가 아닌가.
그 아이가 이 상황에 자신에게 할 말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