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348)
제348화
신성제국의 수도, 바티칸.
황궁 비잔티움 내부.
사락, 사락!
가장 존귀한, 오로지 이 대륙 아래 단 한 사람에게만 내려진 자리에 앉은 이바렐라가 각 지역에서 올라온 정보를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대륙은 드넓고, 전장은 하루, 아니 실시간으로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그 모습을 바꾼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세작들의 정보 덕분에, 이바렐라는 황궁 안에서도 연맹과의 전선을 마치 손바닥 위처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고, 서부 전선에서는 반텐의 초대형 마법을 리비아가 막아냈다라…. 반텐의 거북이들이 제법 준비를 많이 했구나.”
메테오 스트라이크라니.
리비아를 함께 보냈으니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본격적인 전쟁을 개시하기도 전에 엄청난 피해를 안고 시작할 뻔하지 않았나.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 그 어느 전선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 때문이라도 서부 전선에 조금 더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상징성을 부수기 위해서 무려 옥좌에 오른 이들을 셋이나 파견한 것이 아니던가.
“아디르 공작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겠지. 곧 동부 전선도 격화되겠네. 리비아가 서부로 갔으니, 상황을 좀 보다가 십이대주교 몇을 동부로 좀 더 파견해야….”
사락! 멈칫!
계속해서 서류를 넘기던 이바렐라의 손이 어느 순간, 정지한 것처럼 멈춘다.
그녀의 눈에, 하나의 문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중부 전선, 대패(大敗).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가 나와 놀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결과가, 그녀의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기에 의외라고 여겼을 뿐.
-…전쟁이 시작한 직후에는 세 귀신과 두 후작이 분전한 끝에, 파울로 미네르바를 비롯한 연맹의 강자들을 몰아붙일 수 있었음.
하지만 숲의 여왕, 파울로 미네르바가 숨겨두었던 한 수를 꺼내자…(중략)… 때문에, 세 귀신은 숨을 거두었고. 보르도 후작은 엘프의 정예들과 싸우다 전사.
룩크 후작은 마지막까지 파울로 미네르바의 발목을 붙잡은 끝에 사망.
(중략)…사령관이 모두 전사하였기에, 중부 전선의 아군은 더 이상의 전쟁을 이어갈 수 없으리라 판단.
파데론이 지키던 연합의 요새로 후퇴하여 농성을 시작.
서류의 결과에 따르면, 결국 새로이 얻어냈던 영토 대부분을 소실하고 파데론 공작이 지키던 요새까지 물러섰다는 내용이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전황이었지만, 이바렐라의 시선은 유독 하나의 문장에 고정되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룩크 후작의 목숨을 건 일격에, 파울로 미네르바 역시 큰 상처를 입은 것인지 추격에 참여하지 않음.
향후 전장으로의 복귀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됨. 이에, 아군의 다른 강자를 파견할 경우….
뒤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던 결과는 모두 얻었으니까.
“계획대로야. 역시 룩크 후작. 내 뜻을 정확히 읽어냈네?”
우직하고 뇌까지 근육으로 덮인 것같이 단순한 보르도 후작이라면 몰라도, 첫째 오라버니가 가장 믿을 만큼 유능한 룩크 후작이라면 분명 자신의 진의를 읽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제노스가 만들어낸 여섯 마리의 괴물, 육귀.
평범한 마스터들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여섯 괴물들 가운데, 수준이 떨어지는 열화종 셋만을 중부 전선에 투입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제노스의 실험 결과가, 과연 옥좌에 오른 이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힘을 보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했던 것뿐이다.
전황이 밀렸음에도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육귀의 하위 셋으로도 옥좌에 오른 이가 진짜 힘을 드러내지 않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상위 셋은 열화종과 달리 진짜 괴물이지. 이건 그쪽에서 충분히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기특하게도 자신의 진의를 깨닫고 마지막까지 노력해준 룩크 후작.
그의 분전으로 인해 파울로 미네르바가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다.
이바렐라가 판단하였을 때, 옥좌에 오른 무인들 가운데 가장 상대하기 성가신 적은 바쿠스나 브라움 같은 왕국의 강자들이 아니었다.
그녀가 고른 대상은 바로 대륙 제일의 신궁(神弓)으로 손꼽히는 활의 명수, 파울로 미네르바였다.
일대일의 정면 승부라면 모를까, 전장이라는 환경에서 그녀의 활만큼 귀찮은 요소는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혀 물러서게 한 공적은, 5국 연합의 작은 땅덩어리 조금 잃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공적이었다.
“흐으음….”
잠시 서류에서 눈을 뗀 이바렐라가 옥좌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기울였다.
항복한 개 치고는 제 몫을 충분히 해낸 룩크 후작.
후작이 그토록 최선을 다해 산화한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에게, 부디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리라.
이바렐라는 능력이 있는 이에게 보상을 아낄 만큼 박하지 않았다.
무엇을 먹이로 던져줘야, 죽은 개가 만족할 만한 보상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밖에 누구 있나?”
이바렐라의 나직한 말에,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잘 차려입은 관료 하나가 어전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황도에 있는 룩크 후작가의 가솔들을 모두 풀어줘. 룩크 후작이 스스로의 목숨을 바치며 얻어낸 성과이니만큼, 먹고살 만한 재화는 충분히 손에 들려서. 아, 다만 작위는 박탈하고.”
권력에서 밀려난 가문이다. 당연히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줄 수는 없는 일.
비록 귀족으로서의 명예는 가져가지 못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까지 포함해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면, 전장에서 어떻게든 승리했어야지.
가솔들의 목숨을 포함하여 생을 유지할 만한 먹이까지 던져 주었으니, 죽은 룩크 후작의 공에 대한 값은 충분히 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폐하. 하면, 보르도 후작의 가솔들 역시 똑같이 조치하면 되겠사옵니까?”
“응? 무슨 소리지?”
관료의 질문에 이바렐라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모조리 처분해. 제 역할도 하지 못한 개새끼한테까지 베풀 자비는 없으니까.”
세작이 보내온 서류에 따르면, 보르도 후작은 고작해야 젊은 엘프 둘을 상대로 고전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 엘프들이 얼마나 대단한 엘프건,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건.
룩크와 달리 자신의 의중조차 읽지 못한 천치다.
그런 머저리한테까지 먹이를 던져줄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명을 받드옵니다.”
고개를 숙이는 관료.
이로써, 바티칸에 구류 아닌 구류를 당하고 있던 두 후작가 가솔들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바렐라는 관료에게 조치를 내림과 동시에 두 후작의 가솔들에 대한 내용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팔락!
다시금 서류를 넘기기 시작한 이바렐라.
“흐음?”
하지만 이번에도 서류는 쉬이 넘어가지 못했다. 다음 사안 역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올리비아 내부. 제롬 폰 카르비어트 남작과 그 외 주 전력들의 모습이 영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음. 현재 계속해서 확인 중.
제롬 폰 카르비어트.
이바렐라는 그의 정보를 동부나 서부 전선과 동급으로 놓고 행적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제롬은 파울로처럼 단순히 전장에서 성가신 적이 아니라.
예상하던 전황을 뒤엎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일생일대의 적이었으니까.
사락, 사락!
양 전선에 관련된 서류들을 다시 한번 훑는다.
‘현재 동부 전선, 그리고 서부 전선 그 어디에도 제롬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
올리비아에서 전황을 파악하며 불리한 전선을 지원하려 대기하고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자리를 비웠다라? 그것도 영지의 주 전력까지 전부?’
톡, 톡!
이바렐라가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을 이어간다.
‘…만약 내가 제롬이었다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몰입해보자.
나는 제롬 폰 카르비어트.
온갖 파격적인 수를 가리지 않고 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노력한다.
제국의 폭군인 이바렐라는 온 국력을 동원해 연맹을 밀어붙이고 있다.
제롬이라는 남자는, 파격적인 행보를 거듭해 왔지만 생각보다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상황을 정리해왔다.
현재 전력은 쉬이 결판을 낼 수 없는 수준.
이런 상황에서, 가장 피를 적게 보며 전황을 급격히 흔들 수 있는 최적의 한 수는 무엇일까.
…툭!
긴 시간 팔걸이를 두들기던 손가락이 마침내 멈춘다.
“…하, 하하하! 제롬 폰 카르비어트! 너란 남자는, 정말이지 나를 재밌게 해주는구나!”
어전에 홀로 앉아 있는 이바렐라가 미친 듯이 웃음을 흘렸다.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때.
중부 전선의 룩크 후작과 통신을 하며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만약, 바티칸에 연맹의 쥐새끼들이 기습해 온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당시 자신은, 얼마든지 올 테면 오라고 답변을 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한 가능성은 조금도 열어두지 않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곳은 신성제국이었으니까.
대륙이 이 세상에 생겨난 이래, 만세불멸하는 최강의 국가였으니까.
역사상 그 누구도 흙발을 디디지 못했던 제국의 심장부에, 직접 공격을 하러 찾아온다라.
머리 한구석이 고장 나지 않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이바렐라는 제롬의 행보가 자신의 추측과 정확히 일치하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롬은 반드시 바티칸으로 찾아올 것이다.
자신 역시, 제롬과 같이 미쳐 있었으니까.
“쿡쿡쿡쿡쿡! 과연 어떤 대안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거야.”
기습은 예상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그 효용이 드러나는 법.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간파된 이상 기습은 안 하느니만 못한 전략이었다.
“어서어서 오도록 해.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놈만큼은 절대로 죽이지 않을 거니까. 이 대륙 정벌이 끝나는 바로 그때. 에디르네의 광장 한가운데서 내가 직접 네 머리를 베어줄 테니.”
스르릉!
이바렐라가 자신의 곡도를 꺼내 들며 눈을 빛냈다.
샴쉬르의 날에 비친 그녀의 눈빛은, 분명히 어딘가 미쳐 있었다.
* * *
제국과 대륙 연맹의 동부 전선.
전쟁 초기, 오시리스 왕국이 주축이 된 연맹 측은 흑사자들이 놀라운 활약을 보인 덕에 제국의 병사들을 상대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개전 직후였을 뿐.
연맹의 주요 전력을 파악한 아디르 공작이 제국의 본대를 움직인 순간부터, 제국군과 연맹군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쿠우우웅!
신성제국의 병사들을 밀알 털듯이 휘젓던 헤리마의 우악스러운 손을, 그에 못지않은 거구를 가진 기사가 맞잡는다.
사람과 사람이 손을 맞댄 것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충격파에 주변 대지가 들썩인다.
“이야…! 이 자식, 힘…깨나, 쓰는데?”
부들, 부들!
덜덜 떨리는 두 팔을 맞잡은 채 헤리마와 대치하던 상대방 역시 입을 열었다.
“…네놈도, 제법. 이구나. 이교도, 주제에.”
율란 공작가가 자랑하는 최정예 부대, 공성대. 그들을 이끄는 대주인 헤리마와 정면으로 힘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기사가 결코 평범한 이일 수가 없었다.
가헤리스.
신성제국의 제10성기사단을 책임지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하하핫! 드디어… 제법, 손을 섞을 만한 적수를. 만나서! 더할 나위 없이 신이 나는구나!”
뻐어어어어억!
손깍지를 푼 헤리마의 주먹이 가헤리스의 옆구리를 강타하고, 이에 질세라 가헤리스가 허리춤에 장비했던 모닝스타를 꺼내 들어 헤리마의 어깨를 찍어 누른다.
콰아아앙! 콰아앙!
두 거구가 싸우는 전장의 기파가 뿜어내는 진한 향기가, 적수를 찾는 다른 전장의 강자들을 자극한다.
“쯧쯧, 가헤리스 녀석… 또, 또 안 좋은 병이 도졌군.”
힘으로 상대할 만한 적을 만난 순간부터, 뒤의 상황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부딪치는 얼간이.
저러니 저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머저리 취급을 받는 거겠지.
“…뭐, 보아하니 상대방도 똑같은 족속인 것 같지만.”
푸화아아아악!
혀를 차던 말상의 남자가 소지하고 있던 장창으로 자신을 향해 날름거리는 불꽃을 꿰뚫는다.
제9성기사단장, 라모락.
불꽃을 희롱하는 화려한 창술은 흡사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우습게 보인 모양이야.”
화르르르르르르르!
세 개의 얼굴.
여섯 개의 팔.
등 뒤로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는 아수라를 띄운 세트가 라모락을 향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하, 이런. 실례했군.”
불꽃을 털어낸 라모락이 세트에게 가볍게 사과했다.
그러고는 세트의 아수라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실로 흉측하지 않은가. 그것이, 네놈들이 가진 신화 속의 신이라지?”
후웅!
창대를 재차 움켜쥔 라모락이 입술을 핥았다.
“아주 좋아. 그 징그럽게 생긴 이교의 괴물, 내 창의 제물로 바치기에 아주 알맞은 대상이군.”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그 전에, 어디 징그럽게 생긴 이교의 괴물 맛 좀 봐라!”
콰아아아앙!
이 외에도 곳곳에서 제 적수를 찾은 성기사들과 흑사자들이 맞붙으며, 전장이 점점 격하게 타올랐다.
그 수많은 전투 가운데, 동부 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의 현장을 고르라면.
아마, 제국과 연맹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똑같이 선택했을 것이다.
신의 짐승과, 짐승의 왕.
인간의 격을 넘어선, 규격 외의 두 짐승이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전장일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