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율리우스 왕자의 통 큰 하사품에 봄의 축제가 다시금 조용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기사나 마법사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기사의 무구나 마법사들의 아티팩트는 곧 또 하나의 목숨이었으니까.
없는 지식에 최대한 그럴듯한 말이라도 덧붙여서 뭔가 논리를 만들어보려 들겠지.
그리고 관료들에게는 미스릴 자체가 영지 재정에 큰 이점을 가져올 수 있었다.
저만한 양이면 최소 어지간한 영지의 일 개월 수입은 될 테니까.
“왕자님도 꽤나 통 크게 나오셨네. 저만한 양을 하사품으로 내릴 생각을 하다니.”
‘부자는 좋겠어.’라며 혼잣말을 하는 살라딘이었다.
“율리우스 왕자님 입장에서도 승부수를 띄운 거지. 혹시라도 검가 쪽 파벌이 승리하면 체면도 구기고 괜한 미스릴만 뺏길 테니까.”
즉, 이런 거다.
나는 이미 왕자와 토론의 주제를 어느 정도 정해둔 상태였다.
신성제국의 야욕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상황이었으니, 이 상황에서 ‘구국’이라는 주제로 나보다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
즉, 올리비아를 하사하기 전에 율리우스 왕자 나름대로의 호의를 베푼 것이라 봐야 했다.
‘주시는 호의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왕자님.’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으니까.
이런 내막을 모르는 살라딘은 조금씩 꿈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야, 그만한 미스릴이면 미미와 네네 팔 하나 정도는 아예 통째로 만들 수도 있겠는데? 크으, 열심히 해야겠구만! 구국이라…. 음, 흉년이었고 하니 역시 식량을 주제로 짜는 게 제일이겠네.”
그래, 대부분의 귀족들이 그럴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으로 주제를 풀어가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서야 경합에서 이기기는 힘들지.’
최근에 있‘었’다는 것은 과거형이다. 즉, 이미 종료된 상황이라는 뜻. 그보다 가까운 시기에 ‘해결’을 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야 강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다.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해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살라딘이 정한 주제로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래도 친구니까.’
잠깐 귀띔이나 해줘볼까.
“야, 살라딘….”
“응? 뭐야, 이 자식. 그 주제는 내가 이미 골랐다고. 따라 한다고 엄한 짓 하지 말고 저리 가, 저리. 쉭쉭.”
사람을 무슨 밥 달라고 쫓아오는 똥강아지 취급하는 살라딘.
“…….”
나는 살라딘을 향해 뻗어가던 손을 조용히 반대 방향으로 회수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저 자식은 챙겨주려고 해도 왜 저렇게 매번 삽질을 하는 걸까.
* * *
율리우스 왕자가 공표한 토론의 장 마지막 날. 그 말은 곧 봄의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연회장에서는 한 귀족이 온 힘을 다해 연설하고 있었다.
“하멜 영지의 크롬웰입니다. 모름지기 구국이라 함은, 식량을 튼튼히 하여 예상치 못한 기근이 들이닥친다 하여도 배를 곯는 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크롬웰이라 불린 이의 웅변에도 귀족들의 표정은 시들하기만 했다.
나는 크롬웰의 웅변을 들으며 살라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 또 너랑 같은 얘기 한다.”
“…조용히 해….”
내 옆에는 살라딘이 음울하게 고개를 숙인 채 굴을 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크롬웰이 말하고 있는 안은 살라딘을 포함해 벌써 다섯 번째 나온 이야기였으니까.
문장이나 소소한 포인트에서는 조금 달랐지만, 결국 그게 그거였다.
“서부 내셔 영지의 가드너입니다. 구국이라 함은 무역을 통하여 국고를 채우고 영지를 살찌워 강국을 만드는 것으로….”
아니면, 저렇게 뻔하디뻔한 이야기를 하든가.
나라를 구한다는 안이 너무 거창한 주제인 만큼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국가는커녕 영지도 경영하지 않는 애송이들의 시야니 뻔할 수밖에.
“흠, 이 정도면 더 들어볼 만한 참신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군.”
토론을 쭉 듣던 율리우스 왕자는 미간을 누르며 슬슬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총명한 그이니, 저런 안들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좌중을 스윽 둘러본 율리우스 왕자가 자연스럽게 한곳을 바라보았다.
“빅토르 대공자,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오?”
얌전히 있던 빅토르는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오자 눈매를 찌푸렸다.
“왕국을 ‘지키는’ 기둥 중 하나인 검가의 후계자 아니오. 당연히 그 의견을 들어보고 싶네만.”
율리우스 왕자의 어조에는 뼈가 있었다. 사냥 경합에서 나와 있었던 일에 대해 따지는 나름의 표현.
그 의미를 빅토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어째 조금 불안한데.’
빅토르 성격상 저런 도발을 넘기지 못할 테니까.
“…구국. 말 그대로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빅토르가 율리우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라를 구할 ‘힘’이 있는 자격이 있는 자를 중심에 세우는 것이겠죠. 허울뿐인 자가 아닌.”
“……!!”
‘아이고.’
역시나. 저럴 줄 알았다.
빅토르가 냉소적으로 뱉은 말에 연회장의 분위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빅토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 연회장에 있는 이들 중 이해하지 못할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근래의 검가와 왕가의 미묘한 관계.
빅토르의 발언은, 힘이 약해지고 있는 왕가가 아닌 검가가 중심에 서는 것이 곧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대놓고 조롱하는 것이었다.
“빅토르 대공자. 지금, 그 발언… 어떤 의미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가 지키는 것은 이 나라의 영토와 왕국민들. 그렇다면 영토와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길이, 바로 ‘구국’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째, 내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냐.’
빚을 지워서 당분간 조용할 것이라 여겼던 빅토르는.
바로 며칠이 지난 오늘, 다음 세대의 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이 자리에서.
왕가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이건 막아야겠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설마 빅토르가 저렇게 갑작스럽게 왕가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 줄은 몰랐다.
율리우스가 딱히 내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특별한 의견이 없었다면 가장 마지막에는 내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부탁했던 사안에 대해 힘을 실어줄 수 있었을 테니까.
한데 빅토르의 돌발적인 발언으로 인해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이렇게 되면, 내가 먼저….’
지금이라도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꾸려 하던 그 순간.
동부 귀족들, 즉 왕가의 파벌 귀족들의 뒤쪽에서 작은 손이 하나 올라왔다.
“저…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만.”
“?”
“?”
율리우스 왕자가 나와 빅토르를 제외한 모든 귀족에게 말을 걸었다 여겼건만.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목소리에 일순 모두의 고개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아, 저. 심각한 분위기에 죄송합니다만. 아니, 음. 저는 해서웨이가의 드웨인이라고 합니다.”
켈튼 영지의 해서웨이 앤 드웨인.
지금껏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옅은 이였지만, 그의 이름은 이 연회장에 있는 귀족들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물론 그가 유명한 것은 그의 능력이 엄청나다거나, 가문이 대단해서가 아니었다.
대대로 왕가 행정을 뒷받침하던 동부 귀족, 해서웨이 남작의 아들.
딱 그 정도의 심심한 존재감을 가진 이였지만, 그가 이 자리에서 유명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오줌싸개?’
‘오줌 쌌던….’
바로 얼마 전, 사냥 경합이 끝난 후 돌아왔을 때 노랗게 물들(?)었던 바지 때문이었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해서웨이 앤 드웨인을 보며 빅토르가 차갑게 말했다.
“왕자님과 토론 중이건만, 별게 다 끼어드는군. 고작 너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다.”
“그, 그치만… 이 토론의 장이라는 건 모든 귀족들의 발언권이 동일한데… 서, 설마 검가의 대공자께서 그런 사실을 모르시지는….”
“…뭐라?”
“아, 아니… 왕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아무리 검가라도 주제넘지 않나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할 말은 다 하는 드웨인의 모습에 빅토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재밌군. 어디, 내가 왕가를 어떻게 무시했는지 분명하게 말해보아라. 만약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네놈이야말로 감히 우리 가문을 무시한 죄로 처벌할 것이다.”
드웨인은 어디까지나 빅토르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빅토르의 입장에서는 그가 무시당한 것이 곧 검가가 무시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아, 아. 음. 죄송합니다. 목이 잠겨서 그만.”
빅토르의 위협에도 전혀 겁먹지 않은 드웨인은 테이블 위의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빅토르 공자께서는 이케니아 왕가가 허울뿐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 이 왕국은 천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이어져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국가.”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왕국에 대한 자부심이 고양되어서인지 드웨인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런 왕가가 ‘허울’뿐이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지요? 오히려, 대공자가 말한 대로라면 구국이 아닌 망국으로 향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드웨인의 발언에 서부 귀족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동부 하급 귀족의 자제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가의 후계자를 능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진짜 재밌네.”
어느새 빅토르의 관심은 율리우스에서 드웨인에게로 옮겨졌다.
“좋아, 좋아. 마음에 들었어. 드웨인이라고 했나? 그럼 네가 한번 구국이 뭔지 이야기해봐.”
살벌한 빅토르의 기세가 드웨인을 덮쳤으나, 드웨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호오?’
나는 그런 드웨인의 모습에 집중했다.
오줌싸개라더니, 생각보다 강단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어렵지 않죠. 여러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국(救國)의 기초입니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빅토르는 드웨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귀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저기 제롬 공자 뒤에 있는 살라딘 공자와 같은 분들.”
“응? 나?”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든지 말든지 우울하게 칠면조 다리를 뜯던 살라딘은 갑작스럽게 자신이 호명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종의 힘을 가진 흑사자들 중에 의로운 이들. 그런 이들을 모아 나라의 국방을 튼튼히 하여야 합니다.”
아까보다 더 얼굴이 더 붉어진 드웨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대륙 연맹은 지금 이상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북쪽의 신성제국은 역대 최강의 초인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넘쳐나는데, 정작 연맹은 그에 못지않은 강자들인 흑사자들을 외면하기만 합니다.”
“…….”
드웨인의 의견을 듣고 있는 이들이 조금씩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 살라딘의 일도 있었으니 더더욱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였으니까.
아니 그 전에, 드웨인 저 오줌싸개의 말에는 사람을 주목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미친 거죠. 온 나라, 온 대륙이 힘을 모아 싸워도 신성제국을 이길까 말까 한 이 판국에! 후방에서 나라를 좀먹고 있는 해적 무리조차 어느 누구도 토벌을 명하지 않아요.”
‘이것 봐라?’
나 역시 오줌싸개, 드웨인의 의견에 상당히 흥미가 갔다.
지금 드웨인은, 내가 하려던 말을 정확히 똑같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 나라는, 아까 내가 얘기했던 기초도 못 지키고 있잖아요. 끄윽. 인재를 적재적소에 쓴다고? 풉! 파벌 논리에 다들 한자리 해먹을 생각에 가득 차 있는 주제에 무슨.”
흥분한 건지 드웨인의 말이 점점 짧아졌다.
“왕자님께서, 왜 구국을 논제로 내건 건지!! 아무도 이해를 못 하고 있어!! 멍청이들 같으니… 흐어억.”
목소리를 점차 높이던 드웨인이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풀썩, 하고 쓰러졌다.
파벌 어쩌고 하는 순간부터 열이 받은 빅토르가 더 이상 참지 않고 드웨인에게 기세를 흘렸으니까.
고블린 한 마리도 못 잡을 것 같은 드웨인이 빅토르의 기세를 버텨낼 리 만무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렇게 순식간에 까무러치다니.
“…….”
“…….”
기세를 쏘아낸 빅토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까무러친 드웨인을 지켜보다가, 잠시 후 기세를 거두었다.
“…하. 내가 뭘 하는 건지.”
그러고는 율리우스 왕자를 바라보았다.
“왕자님, 오늘의 일은 제가 과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를.”
짧게 고개를 숙인 빅토르는 율리우스의 대답도 채 듣지 않고 연회장을 떠났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서부와 남부 7개 영지의 귀족들 역시 율리우스에게 인사를 한 후 허겁지겁 연회장을 떠나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토론의 장을 평가하는 건 내일 축제의 마무리에 해야 할 것 같군. 경들 모두에게 사과하는 바이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율리우스 역시 빅토르의 선전포고에 생각이 많아진 듯, 토론의 장을 계속해서 이어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연회장에 남은 것은 나와 살라딘, 그리고.
“커어…. 푸우….”
실신했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든 채 테이블에 엎드려 코를 고는 드웨인뿐이었다.
“…….”
그 작태를 바라보던 살라딘의 입에서 결국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어처구니가 없네.”
그러게.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