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75)
제75화
“아까의 화살도 그렇고, 지금의 오러 애로우도 그렇고. 파울로, 지금 정상이 아니구려.”
바쿠스가 미네르바의 상태를 평했지만, 과연 이 자리에서 몇이나 저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까.
‘…그 화살이 정상이 아닌 자가 쏜 거라고?’
한 발 한 발에 지반이 무너지고, 이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해지는 충격파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지경인데.
하지만 파울로 미네르바 역시 자신의 경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네놈을 상대하는 데 화살로 승부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쾌애애액!
재차 바쿠스의 목숨을 탐하는 레이피어.
레이피어로 무수한 검격을 휘두르며 미네르바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이 나의 제물이 되어 주어야겠어. 애송이.”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 뛰어오른 미네르바가 레이피어를 든 채 온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키이이이잉!
그녀 자체가, 하나의 유성이 된 것처럼 말이다.
콰아아아앙!
바쿠스는 거대한 방패를 들고 회전하는 미네르바의 몸을 굳건히 막아냈다.
“…제법, 묵직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소.”
천패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바쿠스의 몸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두 초인을 상대로 한 지면은 그렇지 못했다.
콰르륵!
“!”
화살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지반에 미네르바의 공격이 가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지반이 재차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잡았다.”
바쿠스의 자세가 잠시 무너진 그 짧은 순간을 미네르바가 놓치지 않고 짓쳐들었다.
중간계의 바깥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카르디아 대륙의 속담으로,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더 넓은 세상이 있으니 항상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의 속담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 속담에 동의할 수 없었다.
굳이 중간계의 바깥까지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졌던 대결을 떠올려보면.
이 대결 자체가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띄워준 기분이었으니까.
불과 조금 전만 해도, 아버지의 위기라 생각했다.
지반이 붕괴되어 자세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실제로 미네르바는 그 빈틈을 정확히 잡아냈다.
하지만 ‘천패’는 겨우 그 정도로 무너뜨릴 수 있는 요새가 아니었다.
등 뒤의 방패를 번개같이 고쳐 잡은 아버지는 방패를 든 손으로 미네르바를 퉁겨낸 후 번개같이 역공을 가했다.
“네놈이, 약했었어!”
엘프들의 여왕이 악을 쓰며 외쳤다.
“아니, 너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어! 그런 존재들이었다! 한데!”
“…….”
악다구니를 쓰며 레이피어를 휘두르는 미네르바의 검격을, 아버지는 묵묵히 막아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우직하게 전진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미네르바를 더욱 자극한 것일까.
미네르바의 눈이 충혈되며 레이피어에 담긴 오러가 더더욱 거세졌다.
콰콰콰콰콰!
검격 한 획, 한 획에 담긴 일격에 주변의 대지가 갈라졌다.
“너희 인간들은! 어째서!!”
자신과는 달랐다. 일평생을 일족을 돌보고 지켜온 고귀했던 시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인간들은 한낱 땅덩어리를 위해서.
그리고 타 종족, 아니 자신들의 동족마저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추한 탐욕이 가득한 일그러진 이들이 아닌가.
그런 인간들이었건만.
“그렇게 탐욕스러움에도!! 어떻게 이같이 고결한 경지를 밟을 수 있단 말이냐!”
일평생을 고결하게 살아온, 엘프의 정점이 인간의 정점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처럼 고귀한 경지가 너희에게 허락된 것인지.
수백 년 동안 강성해진 인간들은 점점 일족에게 마수를 뻗어왔고.
마침내, 그녀의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까지 손을 대지 않았나.
“대답해라!”
미네르바는 피눈물이 흐를 것 같은 표정으로 절박한 심정을 담아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는 그런 파울로 미네르바를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시끄럽소, 파울로.”
“……!!”
“내가 이 먼 엘룬하임까지, 겨우 당신의 한탄이나 듣고자 온 줄 아시오?”
파울로 미네르바의 거센 검격을 버티며 연어처럼 거슬러 나아간 아버지는, 어느새 미네르바의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콰아아앙!
아버지의 무거운 일격이 파울로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인간들이 단순히 탐욕으로만 움직이는 종족으로 보이시오? 천만에.”
콰아앙!
“커헉!”
뒤이어 다가오는 제2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파울로의 몸이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크윽….”
무너진 지반의 한가운데, 피투성이가 된 미네르바가 처박혔다.
“빌, 어먹을…!!”
1합조차 버거워하던 약하디약했던 인간의 검은, 어느새 검격을 받아내는 것이 힘든 수준이 되었다.
“…인간의 수명은 짧지.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도 당신은 지금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하나, 그렇기에. 인간은 더더욱 자신이 정한 가치를 위해 올곧게 달려갈 수 있는 것이오.”
“으아아아아!!”
미네르바는 바닥에 버렸던 대궁을 집어 들었다.
대궁에서 피어난 무수히 많은 오러 애로우들이 아버지의 머리, 심장, 간 등의 주요 장기들을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쏘아졌다.
“누군가는 당신의 말대로 탐욕일 수 있겠지. 그러나.”
머리를 노리던 화살을 부드럽게 흘렸다.
“누군가는, 자신이 따르는 이의 영광을 위해.”
간을 노리던 화살이 아버지의 왼손에 잡혀 그 힘을 잃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당신처럼 거대한 힘에 대항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심장을 노리던 화살이 아버지의 검격에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뒤편의 나무와 바위를 때린다.
“서로의 가치를 관철하기 위해서, 서로의 생명에 검을 겨누며 싸우고, 싸워가오.”
쩡!
오러 애로우를 갈랐음에도, 단 하나의 흠집조차 생기지 않은 검을 정확히 겨누며.
“당신은, 그런 각오를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왔던가?”
대륙을 떨어 울리는 강자가, 또 다른 강자에게 물었다.
끼리리리….
당겨진 대궁의 장력(張力)이, 점차 그 소리를 잃는다.
신체 내부의 모든 오러를 쏟아부었는지, 미네르바의 대궁이 그 힘을 잃어갔다.
“쯧.”
입에 고인 피를 가볍게 뱉어낸 아버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겨우 이 정도요? 겨우 이 정도 실력으로, 나 바쿠스 폰 카르비어트를 희생양으로 만든다는 말이었소, 파울로?”
“…….”
미네르바는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대궁의 시위를 당기며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표정이 점점 서늘해져갔다.
“개죽음당할지도 모를 아들이 걱정되어 왔지만, 과거 나의 스승이나 다름없던 자가 이처럼 타락하는 꼴은 정말이지 못 보겠군.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왕국 최강의 무인 중 한 명의 검이 점차로 높게 치켜들어진다.
“차라리 여기까지 하지. 옛정을 생각해, 더 이상의 추태는 막아 드리겠소.”
‘이런!’
안 된다.
아무리 파울로가 망가지고 오크들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여도, 그녀는 여전히 많은 엘프들의 존경을 받는 여왕.
그런 그녀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은 반드시 수많은 문제를 동반한다.
내가 다급히 뛰쳐나가려 하자, 나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 자가 있었다.
아니,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그만! 그만하세요, 제발!”
눈물을 흘리며 두 팔을 벌린 채 상처투성이인 파울로의 앞을 막은 밀리아.
“더 이상은… 움직이지 마시지요. 아무리, 위대한 무인이라 하더라도 이 거리에서 쏘는 화살을 피할 수는 없을 터.”
그리고 아버지의 열 걸음 뒤에서 아버지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레나였다.
“너희들의 여왕이 이토록 망가진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그녀를 지키려 드는 것이냐?”
아버지는 엘프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러난 파울로 미네르바의 초라한 모습을 언급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들의 여왕님이십니다. 인간인 당신이 우리의 여왕을 처벌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레나가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우리들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왕님의 과오는.”
끼리리리릭.
레나가 당긴 활시위가 더더욱 뒤로 당겨진다.
“우리가, 스스로 평가해야 할 문제입니다.”
결심이 선 레나의 두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
레나의 눈을 잠시 바라본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밀리아에게 되물었다.
“너 역시, 같은 생각인가?”
“…어머니는, 그저 조금 지치신 것뿐이에요. 충분히 쉴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다시금 예전의 자애로운 여왕님으로, 올바른 길을 걸으실 수 있을 거예요.”
밀리아는 레나와 달리 무(武)에는 인연이 없는 몸.
그런 연약한 몸으로 아버지의 기세에 노출되자 온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절대자 중 하나인 아버지의 눈을 직시한 채 당당히 마주했다.
“…….”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본 아버지는.
스르릉!
엘프들의 여왕을 처단하고자 꺼냈던 검을 회수했다.
“그만두지. 애초에,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들의 뜻을 따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온 것이니까. 나 도 너무 흥분한 모양이야.”
거기까지 말하신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하는지 물어보시는 것이리라.
“일단은, 돌아가시지요. 엘프들에게도 수습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버지께서는 내 말에 더 이상 다른 이야기 없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셨다.
“그런데 병신 동생아. 저 돼지는 어떡하냐? 조져?”
메르시가 아버지와 미네르바가 대결을 시작한 이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뻘쭘하게 있는 하탄과 오크들을 언급했다.
그랬다.
하도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서 잠시 상황을 잊어버렸었다.
나는 하탄과 막고라 중이었다.
“…됐어요. 이런 전투를 봤는데, 이제 와서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가는 것도 웃긴 일이죠.”
보아하니, 하탄 역시 방금 전의 전투를 보며 몸이 식은 모양이었다.
나는 메르시에게 대답한 후, 하탄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탄!”
“취이익. 뭔가?”
하탄의 가라앉은 답변으로 볼 때, 내 추측대로 그 또한 흥이 식었다.
오크들의 왕이 되어 기세 좋게 엘프들을 정벌하러 왔건만, 파울로 미네르바와 숨길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탄도 알고 있을 터였다.
아버지가 개입하여 미네르바를 막지 않았었다면, 오크들은 반드시 절멸했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서 오는 무력감에 휩싸인 것이겠지.
우습게도, 나 역시 그런 하탄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경지면 아버지를 거의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착각이었어.’
3단계의 끝자락에 올랐던 과거, 나는 아버지의 생전 경지를 거의 따라잡았다 생각했었다.
그럴 수밖에. 이종의 힘 3단계를 완성할 정도면, 어지간한 마스터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마스터(Master).
오러를 내 것처럼 자유로이 운용할 수 있는 경지.
하지만 내 오산이었다.
옥좌에 오른 이들은, 단순히 마스터라 칭하기에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간극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오크들 중에서는 오직 하탄만이 알고 있겠지.
이렇게 맥없이 아무런 미래도 기약하지 않은 채 돌아간다면, 녀석도 일족에게 많은 곤란을 겪을 것이다.
‘아까 던져준 도끼에 대한 보답은 해야겠지.’
생각을 정리한 내가 외쳤다.
“어차피, 네 목적은 엘프들의 절멸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취이익?”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한 이 오크에게, 과거에 그랬듯, 다시금 제안을 하고자 외쳤다.
“4년!”
손가락 4개를 펴며 말이다.
“취이익?”
“앞으로 딱 4년 후. 다시금 막고라를 재개하도록 하자.”
“취이익. 4년 말인가?”
“그래. 이런 멋진 전투를 보고, 수준 낮은 막고라를 벌일 수는 없는 일이잖아?”
하탄에게 한 제안은 나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올리비아로 가기 전, 내 계획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수련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탄 역시 산맥의 북쪽까지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싸움을 해나가야 했다. 그 전에, 내부가 흔들려서는 놈도 곤란할 터.
목표가 있다면.
더욱 확실한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겠는가.
“멍청한 동생아. 저 오크가 그런 제안을 받아줄 것 같아? 저 싸움이라면 환장하는 괴물들이….”
“취이익, 좋다.”
“엥?”
내 제안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핀잔을 주던 메르시가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 된다.
“취익, 뭘 놀라나, 인간 여자. 그런 전투를 본 이후다.”
하탄이 도끼를 등에 둘러매며 다이어 울프 위에 올라탄다.
“…취익. 왕이라 불렸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끝이 없군. 다시, 다시 시작하겠다.”
하탄은 아버지와 파울로의 전투에서 깨달은 바가 많은 것 같았다.
그렇겠지.
나 역시 벽을 느꼈으니까.
다이어 울프에 올라탄 하탄을 향해 몇몇 엘프들이 막으려 했으나.
“취이익, 비켜라. 귀쟁이들. 내가 물러가는 것은 저 굉장한 인간과 너희들의 여왕을 존중해서이니.”
아버지와 파울로 미네르바의 전투 앞에서나 초라해지는 하탄의 무력이었지, 그 위압감은 보통 엘프들이 감당할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짧은 소요가 있은 후 하탄과 오크들은 떠나갔다.
어느새 파울로의 부축을 끝낸 밀리아가 내 곁에 다가와 살짝 말을 걸었다.
“제롬 공자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교역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실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당연히 정신이 있을 리가 없지. 오늘 하루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물론이에요, 밀리아. 시간을 조금 두고 천천히 다시 찾아오도록 하죠.”
나는 밀리아에게 인사를 한 후, 살라딘 일행을 찾아 아버지의 옆에서 함께 반텐으로 복귀를 준비했다.
온갖 사건이 복합적으로 뒤죽박죽 섞였던 오크와 엘프들의 전쟁이 마침내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