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일반적으로 마계화가 이루어지면 최소한 수십만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중간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에너지로 삼아 증식을 거듭하는 마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동식물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마나까지도 잡아먹으며 증식을 거듭하니 어지간한 전염병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마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마나나 오러로 대변되는 힘을 깨우친 사람들뿐이고, 저항력이 없는 일반인들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진행되어 버리니 그 피해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마계화는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피해가 적었다.
여기에는 아렌의 대처가 컸다.
마계화의 축이 되는 악마를 잡아두고, 심상으로 마계화 자체를 억제하며 시간을 끈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반인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아는 마르틴은 최소한 마기로부터 자기 방어가 될 수 있는 인물들만을 골랐고, 그렇게 최정예가 몰아붙여서 마계화를 저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마계화에서 이루어지는 희생은 대부분은 일반인인데, 일단 소환 자체가 인적이 드문 영지 외곽이었고, 마르틴의 철저한 인선이 여타의 마계화에 비해 피해를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는 분명한 마르틴의 업적이라고 할 만 했다.
실제로 영지에서는 마르틴과 메카니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소식을 들은 제국의 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정중한 감탄사를 담은 서신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적아를 가리지 않았으니, 마계화를 막아낸 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한껏 올라간 어깨를 흔들며 오만하게 자기 자랑을 하고 있었겠지만, 마르틴은 그러지 않았다.
피해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제 아무리 큰 싸움은 아렌이 맡았다고 하지만 엄연히 마기는 중간계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엄선된 정예를 동원했지만, 적대적인 환경과 마물들의 무서움은 어디가지 않았고, 최대한 쥐어짜낸 신관들의 도움에도 수많은 기사가 쓰러져 나갔다.
메카니의 혈족들은 언제나 전장의 가장 앞에서 싸우는 자들이었고, 그러한 자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으니 자연히 휘하의 기사들도 적을 향해 돌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거기에 이번의 전투는 제국의 강역을 넓히는 전쟁이 아닌 영지를 수호하는 전투였기에 더욱 그러했고, 자연히 희생도 컸던 것이다.
메카니에 봉직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대를 이어 오거나 방계의 혈족들이다.
실질적으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죽어 나간 것이니 마르틴은 주변의 칭송에도 기뻐하기는커녕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 대상이 명확해졌다.
“헬리오스에서 이단심문관을 데려왔지. 옆에서 똑똑히 지켜봤는데 속이 다 풀리더군.”
잔인한 말을 내뱉는 마르틴의 표정이 밝았다.
“이단심문관이 자백을 받아내고 기록했으니 조잡한 증거도 필요 없어.”
이단심문관의 악명은 대륙 전체에서 악명이 높지만, 그만큼 공정하다고 평가 된다.
신이 존재하고 신으로부터 신성력을 받아 이 땅에 그 의지를 전하는 존재가 신관이니만큼 신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각각의 교리에 따라서 때로는 상대방을 속이거나 일탈이 용인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만신전의 신들에게도 악마는 공통의 적이었으니 이단심문관들이 일제히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벌써 헬리오스에 연락을 넣었다고 하더군. 교황이 움직일 거야.”
비릿하게 웃는 마르틴의 모습에 아렌도 마주 웃었다.
황제와 제도는 어떤 생가인지 모르겠지만, 아렌과 그라인드는 이미 황제를 적으로 규정했다.
목숨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퇴위라도 시키는 것이 그라인드의 의지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메카니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우는 아이를 한 대 때린 격이 아닌가.
“황제는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군.”
“…… 무슨 말이지?”
마르틴의 반문에 아렌이 입을 열었다.
“어떠한 일을 벌여도 수습할 수 있고,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렌이 찻잔을 들어올렸다.
“제 아무리 강대한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는 없는데 말이지.”
나직한 말에 마르틴의 마음 한 구석이 뜨끔거렸다.
오만하기 그지없고 그 누구보다도 귀족적인 메카니 역시 전횡을 일삼았던 적이 제법 있었고, 이번 일과 대입해보니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자인 황제의 폭정에 견디다 못해 메카니와 그라인드를 비롯한 여러 귀족들이 움직이려는 모습은 마냥 남일 같지 않았고, 어쩌면 메카니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어쨌든 황제는 선을 넘었어.”
생각에 잠긴 마르틴의 귓가에 아렌의 목소리가 울렸다.
“앞으로 바빠지겠군.”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렌의 모습을 본 마르틴이 미소 지었다.
“그래.”
* * *
메카니 공작가에서 일어난 역대급의 마계화 현상에 전 대륙이 기함했고, 그러한 마계화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낸 저력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제국 내분에서는 역시 8대 귀족이라며 치켜세웠고, 제국 외부에서는 그 강대한 저력에 경계심을 바짝 세웠다.
그 와중에 악마를 단신으로 상대했다고 전해지는 아렌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경악했고,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초인의 위계에 올랐을 것이 확실시 되는 아렌이었지만, 그래도 상대는 악마가 아닌가.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야 아렌을 칭송하기에 바빴지만, 힘에 눈을 뜨고 악마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잘 아는 자들은 헛소문으로 일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소식에 모두들 눈을 부릅떴다.
루안 주교의 추천으로 아렌의 성인 추존이 헬리오스에 진행 된 것이다.
종교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아렌이었지만, 단신으로 귀족급 악마를 패퇴시킨 아렌의 업적은 중간계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성인의 위에 올라도 무리가 없었으니, 그 장엄한 전투를 직접 본 루안 주교가 입에 거품을 물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신성을 획득한 아렌을 어떻게든 만신전과 연관시키기 위한 속셈이 있었지만, 모두들 소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침 메카니에 와 있던 이단심문관들도 아렌을 만나본 뒤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러한 소식까지 더해져 아렌의 위상은 끝도 모르게 상승했다.
그라인드의 모두가 입에 미소를 지었고, 소식을 들은 아렌은 질 나쁜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헬리오스에서는 성인 추존을 위한 심사가 열렸으니 실로 오랜만에 교황을 위시한 고위 성직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메카니와 만신전이 공동으로 발표한 내용이 다시 한번 제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악마소환의 주체.
메카니와 만신전은 악마소환의 주체를 황제와 공안으로 확정짓고 맹비난을 시작한 것이다.
거동이 수상한 인물들을 생포했고, 이단심문관의 손에 의해 밝혀진 정체가 공안이었으며, 그 공안이 주체가 되어서 악마를 소환시켰다는 자백이 온 대륙을 강타했다.
당연히 황제와 공안은 근거 없는 모략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는 메카니와 만신전은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갑작스런 반전에 제국의 전 국경에서 전투가 멈췄다.
변경백들이 일제히 군대를 물려 성 안으로 틀어박혔고, 왕국들도 군대를 물렸다.
제국의 내부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내전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일반적인 내전이라면 모략을 사용하든 기습을 하든 어떻게든 이득을 취했겠지만, 상황이 상황 아닌가.
일반적인 권력다툼이 아닌 악마 소환에 관련된 상황이니 이런 때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들이닥칠지 아무도 몰랐다.
만신전.
세속의 권력도 없고, 헬리오스라는 도시 하나 정도의 규모를 가진 세력이었지만 대륙에 만신전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간계를 수호하는 신들의 첨병이 만신전인데, 그런 이들이 들고 일어난 상황에서 소소한 이권을 위해서 전쟁을 지속한다면 적대 세력에 의한 반란에 직면할 수도 있었으니, 각 왕국은 납작 엎드린 것이다.
거기에 헬리오스의 행보가 결정적이었다.
교황의 이름으로 황제와 제도에 대한 사찰을 요구한 것이다.
지금껏 황제가 어떠한 일을 벌인다고 해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만신전의 이런 움직임은 귀족들과 시민들에게 확신을 더해 주었고, 이때다 싶은 귀족들이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 거렸다.
피해의 주체인 메카니가 가장 먼저 일어서 군대를 소집하니 순식간에 모인 숫자가 10만을 넘어섰다.
제 아무리 풍요로운 남부의 대영주라지만 10만이라는 숫자에 모두가 경악했고, 심지어 지금도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었으니 그 최종적인 병력이 얼마가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거기에 남부의 맹주에게 호응한 영주들이 병력을 보태니 어지간한 왕국이라도 단번에 밀어 버릴 수 있을 군단이 소집되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국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음에 가슴을 쓸었다.
메카니와 혼인으로 묶인 그라인드가 호응했다.
5만의 군대가 진격 준비를 갖췄다.
메카니의 숫자에 비하면 반도 안 되는 병력이지만 일개 백작가가 동원했다고 하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병력이었으니 역시 황금의 그라인드라고 귀족들은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라인드 병력들의 정확한 상황이 알려지자 모든 귀족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렸다.
그라인드가 황금을 풀어 전 병력을 중무장 시킨 것이다.
일전 다렌이 제도로 향하는 길에 보여준 그라인드 기사들의 무장 수준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초임 기사에 버금가는 무장이 병사 개개인에게 주어졌고, 이것은 제국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반병들 사이에서 무구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그런데 그러한 병력이 무려 5만에 달하니, 제국의 그 어떠한 군대도 감히 그라인드를 향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또한 붉은가지와 푸른늑대를 위시한 유수의 용병단들이 가세해서 허리를 받치니 그라인드의 군대는 순식간에 제국 제일의 군단으로 변신해 버렸다.
거기다 그라인드의 준동은 단순히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제국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그라인드가 한번 몸을 일으키니 제국의 물류가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무제한적으로 풀려나오는 황금은 끝을 모르는 것처럼 물자를 끌어당겼고, 산처럼 쌓이는 전쟁물자는 하나의 경이가 되어서 헤르메스의 시민들에게 새로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상인은 이익을 쫓아가는 자들이다.
웃돈을 주고서 물자를 끌어당기는 그라인드에게 물건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남아 있는 것은 황금밖에 없었다.
그 행동이 어찌나 신속하고 과감했는지 제도로 들어가던 물류의 행렬이 끊겨 버렸고, 제도의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올 정도.
이대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장 보급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제도의 관료들은 허둥지둥 대책마련에 골몰했다.
당연히 황제는 대노했고, 제국 각지에 퍼져 있는 군대를 소집했지만 이미 명분을 잃은 상황에서 각 군단을 맡고 있는 군단장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피렌사가 황제의 짓으로 의심되는 혈족들의 실종을 밝히며 그라인드에 공식적으로 합류하니 이제 제국의 정국은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