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신중한 표정의 마법사가 복잡한 수인과 함께 주문을 완성시키자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마석의 도움을 받은 막대한 마나가 움직이고, 형상을 갖추어 나가더니만 이내 커다란 마법의 문을 형성시켰다.
“연결 확인.”
“안정화 확인!”
각자 방위를 잡고 주문을 보조하던 마법사들이 큰 소리로 외쳤고, 동시에 마법의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발을 디뎠다.
묵직하기 그지없는 전신 갑옷을 빈틈없이 걸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고,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몸놀림은 이 기사가 보통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상 없습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확인한 기사가 마법의 문 너머로 말을 건넸고, 그 말과 함께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인이 나타났다.
눈 밑에 거뭇한 다크서클과 왠지 의욕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전신에 서려 있는 위엄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메카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백작님.”
“음.”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과 집사가 경의를 듬뿍 담아 허리를 숙였고, 알코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곳이 메카니로군요.”
알코르의 뒤를 이어서 나타난 로렌이 차분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동마법진이 있는 장소마저도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것이 과연 오만의 메카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로렌은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헤르메스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다.
* * *
메카니와 그라인드가 군대를 일으키고, 휘하의 영주들이 호응하여 일제히 거병한지도 벌써 이 주일이 흘렀다.
황제와 제도에서는 연일 두 가문을 비방하며 귀족의 의무를 다하라고 윽박지르는 한편, 사신을 보내와서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눈이 돌아버린 메카니와 그라인드는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
제국의 모든 물자가 그라인드로 빨려 들어갔고, 메카니의 군대는 그 수를 더욱 더 늘려 나가 15만을 돌파했으며, 남부와 남동부의 영주들까지 합세하니 그 위세는 상상을 초월한 지경이 되었다.
막말로 이대로 독립하는 것도 가능해진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제국의 대귀족들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와 제도의 관료들은 제국의 각지에 있는 귀족들을 향해서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고, 동시에 어떻게든 물자를 잡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애초에 경제 전쟁에서는 그라인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제도가 있는 중앙지역은 애초 자급자족이 가능한 것을 전제로 조성된 지역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타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헬리오스의 교황이 연일 황제를 비방하고 있었고, 마르틴의 사신이 제국의 각지로 날아가 거품을 물어대니 어느덧 제도에 위치한 원로원에서는 귀족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가 없게 되었다.
수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관료 귀족들이 아닌 지방 귀족들이 전원 자신들의 영지로 철수해 버린 것이고, 이것은 가뜩이나 불안한 정국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모양이 되었다.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은 중부 지역 전체를 강타했고, 황제를 신앙에 가깝게 맹신하는 제도 주변의 지역들만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마르틴은 과감한 수를 던졌다.
메카니에서 귀족 회의의 개최를 선언해 버린 것이다.
* * *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왕가가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가문이 메카니 공작가다.
그런 만큼 역사가 깊었고, 공작가가 자리하고 있는 본성은 왕성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시설들이 착실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사용하지 않는 시설들은 임시로 폐쇄시키거나 하겠지만, 오만하기 그지없는 메카니는 그러한 시설들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유지해 왔고, 마르틴은 선조들의 혜안이 오늘에서야 빛을 보는 것 같아서 감개무량한 표정이 되었다.
본성에 장치된 수많은 이동 시설에서 쉴 새 없이 방문자들을 뱉어 내고 있었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영빈관은 실로 오랜만에 손님을 맞아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제도의 그것과도 비견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시설에 감탄하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르틴의 어깨가 한껏 올라간 것은 당연했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복잡 미묘한 마음을 품고 있던 마르틴에게 집사가 공손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마르틴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려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복장은 마치 소국의 왕을 보는 것 같았고, 자연스레 풍기는 위엄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당당한 귀족의 모습이었으니 가신들은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들뜬 마음을 그대로 안고 발을 내민 마르틴이 방 밖으로 나왔고, 그 순간 수백 쌍의 시선이 그를 강타했다.
‘이거지!’
하나같이 강력하고 위엄이 담긴 시선들의 집중에 주눅이 들만도 하건만 마르틴은 거꾸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제국에서, 어쩌면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강렬함이 마르틴의 정신을 고양시켰다.
환하게 미소 지은 마르틴이 당당한 걸음으로 회의장의 중앙으로 향하니, 그 모습을 보고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들 잘 왔소.”
화려하고 넓은 회의장이었지만, 마나를 듬뿍 실은 마르틴의 목소리는 구석구석까지 전달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념비적인 자리이니 원래의 마르틴이라면 한껏 미사여구로 자신을 치장했겠지만, 불행히도 사안이 급했다.
속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마르틴이 힘을 실어 입을 열었다.
“귀족 회의를 시작하겠소.”
마르틴의 한 마디가 묵직한 추가 되어서 모두의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 * *
“자격은 있는 거냐?”
중앙 단상에 선 마르틴이 말과 함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박혀들었다.
늙은 것이 분명함에도 힘을 잃지 않은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고, 신경질적인 인상을 한 노인의 모습을 본 몇몇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란체스 공작이구려.”
“그래. 케르베 드 란체스다.”
자부심이 가득한 노인의 목소리에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강철의 란체스.
제국 북서부에 자리 잡고 있는 8대 귀족의 일인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북서부는 원래 광물 자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제철 실력을 바탕으로 한 란체스 가문은 대륙 전체에서 가장 양질의 강철을 뽑아내기로 유명했고, 이들이 만드는 무구는 드워프와 비견 될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보기 힘든 분이 오셨군.”
“흥!”
마르틴의 말에 케르베가 코웃음 쳤다.
어지간하면 자신들의 영지를 벗어나지 않고, 오로지 무구 제작에 전념하는 란체스 공작가는 8대 귀족 중에서도 가장 외부 출입을 하지 않는 자들인데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니 마르틴이 놀랄 만도 했다.
“물음에 답해. 자격은 있는 거냐?”
노인의 고집이 잔뜩 실려 있는 목소리가 다시금 회의장을 울렸고, 모두가 흥미진진한 눈빛을 띄웠다.
케르베는 이 자리를 주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지만, 귀족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이미 제국의 상황은 엉망이었고, 황제가 경천동지할 능력을 보여서 어떻게든 봉합한다고 하더라도 과거로 돌아가기는 틀려 버렸다.
오늘 이후로 맞이하게 될 제국의 모습이 어제와 같지 않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미래의 지분을 생각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메카니가 한발 먼저 나서 귀족회의를 천명했으니, 거대한 흐름을 느낀 귀족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래 뭐든 선점하는 자가 한발 앞서게 되는 법.
지금 마르틴의 위세는 여타의 귀족들을 앞서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이대로라면 별 탈 없이 이 자리는 물론 앞으로의 주체자가 메카니가 될 것이 뻔했다.
헌데 대답 여하에 따라서 마르틴을 내려앉히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니 모두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마르틴 역시 그러한 점을 모르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늙은이가!’
귀족들끼리야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겠지만, 어떻게 해도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도 하니, 메카니와 란체스가 그랬다.
성향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다.
오만한 메카니와 우직하고 외골수인 란체스는 그야말로 상극.
그렇다고 싸움을 하자니 서로가 가진 힘이 만만치 않았다.
괜히 같은 8대 귀족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두 가문은 서로를 경원시하며 아예 안 보고 살아왔는데, 이런 자리에서 마주쳐 버렸으니 마르틴이 잘난척하는 모습에 배알이 꼴린 케르베가 질러 버린 것이다.
‘흥! 거들먹거리기는.’
살짝 굳은 마르틴의 표정을 본 케르베가 코웃음 쳤다.
배알이 꼴리기도 했지만, 다분히 감정적으로만 말한 것은 아니다.
사이가 나쁜 것을 떠나서 메카니에서 일어난 일은 케르베를 비롯한 란체스에게도 커다란 경각심을 일으켰다.
거기에 황제와 공안을 성토하는 만신전의 발표에 케르베는 뭔가 커다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고, 그렇게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린 것이다.
사이가 좋지 않기에 상대를 더욱 정확히 평가하는 법.
거들먹거리는 마르틴의 모습이 꼴도 보기 싫었지만, 마르틴의 능력 자체는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단순히 능력만 가지고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곳까지 와 버린 상황.
수십만에 달하는 군대를 일으켜 버렸으니 이제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그렇게 앞으로 나서서 총대를 맺으니 모두가 마르틴의 주도권을 인정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르틴의 능력이 이 속 시커먼 귀족들을 모두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능력이 안 된다면 일찌감치 끌어내리는 것이 앞으로의 정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감정을 듬뿍 담아 의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해도 작금의 상황은 황제를 향한 반역을 모의하는 자리였으니까.
그런 케로베의 생각과 모두의 음흉한 속내가 합쳐진 시선이 마르틴을 주시하고 있던 그때.
“자격은 있지.”
나직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파고들었다.
* * *
저절로 시선이 돌아가 한 명의 귀공자가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 화려한 외모와 위엄에 감탄했지만 이내 귀족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저런 자가 이 자리에 있었는데 아무도 주시하지 않았다고?!’
당대 그라인드 백작인 알코르의 좌우에 앉아 있었으니, 중요한 인물들이 분명했고 그렇다면 당연히 시선을 받아야 하는데, 정작 사람들이 주목하고 기억하는 것은 로렌뿐이었다.
마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존재감을 드러낸 아렌의 모습에 모두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경지에 오른 자들일수록 더욱 그랬다.
말년에 마스터에 도달해 예민하기 짝이 없는 감각을 가진 케로베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회의장에 있는 수십 명의 마스터와 그에 비견되는 자들마저도 그러했으니, 모두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자네는 누군가?”
모두들 경악과 감탄의 시선을 보내는 와중에 케로베가 얼굴을 굳히며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짐작하는 이름이 있지만 본인이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으니 케로베의 성격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아렌 드 그라인드다.”
느릿한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스며들었고,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강렬한 존재감이 가슴속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