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2
002화
······ 그렇기에 무武라는 것은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못한 인간이 짐승에 대항하여 짐승의 모습을 흉내 내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 이윽고 세상의 힘을 체내에 받아들인 인간은 짐승을 뛰어넘게 되었고, 발달에 가속이 붙은 무는 더욱 더 높은 경지를 갈망하게 되었으니, 저 지고한 온 세상 생물의 정점을 향하게 되었다.
* * *
흑백으로 느껴지던 세상에 색이 입혀지고 그와 함께 세계와의 감응이 시작됐다.
작은 체구에 허약한 몸, 아마도 독이라고 생각되는 몸 안의 이물감까지.
아렌이라고 불리는 이 몸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상황이다.
‘상관없지.’
한 줄기 호흡을 이끌어 신체의 내부로 인도했다.
세상의 힘을 몸 안에 담고 정련하여 인간을 초월하는 첫 걸음.
본래는 올바른 자세와 올바른 시간에 송곳같이 가다듬은 정신으로 끝없는 시간을 용맹정진勇猛征塵해야만 비로소 시작의 끝자락을 간신히 거머쥐고 입문이 가능하지만.
툭.
단전 안쪽에서 울리는 희미한 소리와 함께 하단전이 생성됨을 느꼈다.
‘이미 가본 길이니 과정은 얼마든지 생략이 가능하지.’
무의 끝자락에 거의 도달했노라고 어렴풋이 느꼈던 나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두근!
미약해서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심장이 강하게 맥동하기 시작했고, 신선한 혈액을 온 몸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후.
다시 한 번 이끌어낸 호흡이 혈액과 함께 온 몸을 달리며 활력을 불어넣는다.
‘뭐가 좋을까.’
동시에 머릿속에 수많은 심공心功이 떠올랐다가 사그러 들었다.
아렌이 되기 전에 성명절기姓名絶技로 삼았던 심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붓는 것이 이치에 맞는 법.
특히나 이 몸의 허약한 체질을 고려한다면 강경한 무공은 피하고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효능이 있는 무공이 좋다.
‘부룡기공赴龍奇功.’
내가 외우고 있는 이천팔백다섯 개의 심공 중에서 골라낸 하나.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용龍에 가깝게 변하고 대성이후 계기만 주어진다면 용으로 변해 승천이 가능하다는 절세의 기공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기 때문에 연구만 했을 뿐, 익히지는 않은 무공이지만.
‘용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도 모르게 지어진 희미한 미소와 함께 호흡을 이끌어 용에 다다르는 길을 몸에 새겨 넣었다.
툭. 투득.
앙상한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골격의 가동범위가 조금씩 넓어지며 변화가 시작됐다.
비록 한 줌 밖에 안 되는 진기이지만 물건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효용이 달라지는 법.
순식간에 몸을 헤집은 진기는 몸 안 곳곳에 있는 독까지 잡아먹으며 그 세를 불렸다.
“······ 도련님?”
나를 품에 안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충직한 늙은 하인이 제일 먼저 변화를 알아차렸다.
‘냄새가 조금 나는군.’
어린놈의 몸뚱이가 뭐 이렇게 찌들었는지.
몸 곳곳에 쌓인 독의 일부분만 해독했을 뿐인데 악취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그때.
“미안하다! 벡스터!”
“최소한 고통은 없게 해 주마.”
“큭!”
부룡기공을 안착시킨 그 짧은 시간 동안 벡스터와 기사들의 교전이 시작됐다.
* * *
차차창!
가슴과 팔을 노리고 베어오는 검을 튕겨낸 뒤 벡스터는 허리춤에 걸어놓은 둔기를 빼어들고 신중하게 양 손을 늘어뜨렸다.
한손에는 검, 한손에는 둔기.
차라리 방패를 준비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면서 벡스터는 입맛을 다셨다.
기사의 전투력은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빠른 이동을 고려했기 때문에 가벼운 장비를 위주로 준비한 것이 벡스터 본인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나.’
또다시 짓쳐들어오는 검격을 처내면서 벡스터는 이를 악 물었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큭!”
제 아무리 벡스터가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상대하는 자들 역시 기사단에 입단을 허락받을 정도의 강자들.
자잘한 상처들이 벡스터의 몸에 누적되어 갔고, 체력 역시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좁은 공간과 지켜야 할 일행이 있다는 점에서 한없이 불리한데 상대는 정규전 교육을 받은 기사들이니 만큼 파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써억!
피륙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솟아올랐다.
“큭!”
오른팔과 왼쪽 허벅지를 가르고 지나간 검격이 꽤나 큰 자상을 남겼고, 비틀거리던 벡스터가 이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젠장!”
둔기와 검에 의지해서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근육이라도 베고 지나간 것인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크하하핫! 꼴좋다. 벡스터!”
광기에 찬 목소리와 함께 커슨이 앞으로 나섰다.
흥건하게 젖기 시작한 목의 붕대와 새파랗게 번들거리는 눈빛이 마치 악귀처럼 보였다.
“컥!”
“건방지게 감히! 퇴물 따위가!”
그리고 시작된 무자비한 구타.
절도도 신묘한 기술도 없는 순수한 폭력이 바닥에 쓰러진 벡스터에게 쏟아졌고, 몸을 웅크린 벡스터의 몸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중년여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고, 시동과 시녀가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눈을 감아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사들의 안색도 굳어졌지만 그 누구도 커슨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말리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당탕!
커슨의 무자비한 발차기에 날려진 벡스터의 몸이 구석에 있는 일행의 앞으로 날아오고서야 커슨의 구타가 멈췄다.
“크으윽.”
“그러게 알아서 기었어야지.”
조금은 진정을 한 것인지 가쁜 숨을 내쉬던 커슨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큭. 크크크. 다른 사람한테는 그럴 수 있어도 검을 손에서 놓치는 반푼이한테는 그럴 수 없지.”
꿈틀거리던 벡스터가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들어 커슨을 노려보며 빈정댔다.
“······ 오냐. 편하게 죽이지는 않겠다.”
분노가 극에 이르면 외려 차분해지는 법.
나직한 목소리에 실려 있는 살기에 모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공할 살기를 줄기줄기 뿌리는 커슨이 벡스터의 앞에 서서 검을 치켜세웠다.
“손가락 끝부터 해서 말단까지 천천히 끊어주마. 마침 포션도 있으니까 쉽게 죽지는 못할거다.”
최대한의 고통을 줘가면서 고문을 하겠다는 커슨의 말에 일행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고, 기사들도 안색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기대해라. 내 솜씨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입맛을 다시며 노려보는 커슨의 얼굴을 보며 벡스터의 눈빛도 흔들렸다.
“그건 곤란한데.”
나직하지만 기묘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 아렌 도련님?”
하인의 품에서 벗어나 두 발로 서 있는 창백한 안색의 소년이 가만히 커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하얗다 못해 병색이 완연한 창백한 피부.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해도 작은 체구와 가느다란 팔다리는 연민마저 불러일으키지만 지금 역참안의 누구도 아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눈.
화사하게 흘러내린 백금발과 선이 고와서 여자아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얼굴에 안 어울리는 서늘한 눈동자가 아렌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 도련님이 아직 어리셔서 제대로 판단을 못하신 겁니다. 여기 반역자 벡스터를 처단하고 제가 영지로 편하게 모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잠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표정을 고쳐서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커슨이 말했다.
정중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눈과 양손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핏방울이 조언보다는 협박으로 들리게 만들고 있을 뿐.
심약한 아이라면 경기라도 일으킬 것 같은 살벌한 모습.
그리고 커슨이 아는 아렌은 몸도 마음도 심약한 아이였으니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아 버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최소한 커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곤란하다고 했잖아.”
하지만 아렌은 천천히 발자국을 옮길 뿐,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고 커슨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 아렌 도련님?”
커슨만의 느낌은 아니었던지 중년 여인의 입에서 홀린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러서라.”
어느새 벡스터의 앞에 서서 커슨을 올려다보는 아렌을 보면서 커슨의 가슴속에 뭔가 간질거리는 것이 올라왔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을 모셔라. 그리고 나머지들을 죽여.”
커슨의 차가운 목소리에 기사들이 흠칫했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며 앞으로 나섰다.
아렌을 향해 다가오는 둘과 살기가 일렁이는 검을 들고 일행에게 다가가는 나머지 기사들.
“모시겠습니다. 도련님.”
양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기사들을 보며 아렌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왜 사람들은 말로 하면 들어먹지를 않을까?”
이어서 그 가느다란 팔을 들더니 마치 밀쳐내려는 듯이 기사를 향해 뻗었다.
마치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에 기사가 실소를 뱉으며 아렌을 안기 위해 양 손을 뻗었고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렌의 손이 기사의 가슴에 닿았다.
콰직!
끔찍한 소리에 모두의 행동이 멈췄다.
“어. 어?”
뭔가 어이없어 하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이. 쿨럭!”
기사의 입에서 울컥 터져 나온 선혈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고, 아렌의 손이 거짓말처럼 기사의 심장에 파고들어가 있었다.
기사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지고 앞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아렌이 손을 빼며 가볍게 기사의 몸을 밀었다.
쿵!
“쓸만하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의 행동이 멈추고 경악어린 표정으로 아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아렌은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부룡기공 상의 용조龍爪.
비록 한줌의 진기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녀석들을 상대하는데 아렌에게는 그 정도면 차고도 남았다.
손끝에 어려 있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던 아렌이 커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물러설 건가?”
너무나도 태연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같은 모습에 커슨의 전신에 소름이 올랐다.
“으! 으아아아!”
그 순간 아렌을 붙잡기 위해서 있던 다른 기사가 괴성과 함께 검을 내려쳤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내려치는 검의 목표는 아렌의 정수리.
절박한 순간 한계라도 넘은 것인지 기사의 검에서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고, 희미한 빛에 감싸인 검을 보면서 커슨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오러AURA!”
세상 만물을 베어버리는 파괴의 빛이 당장이라도 아렌의 정수리를 반으로 갈라버릴 것 같았지만 정작 아렌은 태연한 얼굴로 이번에도 손을 들었다.
아렌의 손은 물론이고 몸까지 반으로 쪼개지리라는 것을 기사들이 확신하던 그때.
쩡!
굉음과 함께 기사의 검이 부수어졌고, 한걸음을 내딛어 슬며시 기사의 품으로 다가선 아렌이 손을 뻗었다.
콰자자자작!
“으아아아악!”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끔찍한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이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광경에 모두의 눈이 찢어질 것만 같이 커졌다.
아렌의 손이 닿은 하복부를 중심으로 기사의 몸이 꽈배기처럼 비틀려져 버린 것이다.
생살과 근육은 물론이고 내장까지 강제로 찢어 저버린 기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해 버렸다.
“이것도 괜찮아.”
또 다시 손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렌이 악마로 보였다.
최소한 커슨은 그랬다.
“안 물러서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 악마가 커슨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