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3
003화
포식자와 피식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종의 발달에 따른 구분도 있을 것이고, 학술적인 의미로도 나눌 수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 정답에 가까울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그냥 아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 없이 포식자는 피식자를 보는 순간 내가 저것을 먹어도 되는구나 하고 아는 것이고, 피식자도 포식자를 보는 순간 자신이 먹히겠구나 하고 알아버린다.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최소한 커슨은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까지는 포식자의 지위를 잘 지켜오며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아. 아아!”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왜 그러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
그라인드 백작가의 병약한 후계자인 아렌이라는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 커슨의 인생에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절대적인 포식자라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다.
“죽어!”
공포에 질린 커슨이 뒷걸음질 치는 그때.
장내에 남아있던 모든 기사들이 검을 뽑아들고 아렌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전후좌우의 사방은 물론이고 위아래까지 점지한 필살의 공격.
본래 협공에서는 아군끼리의 상해를 피하기 위해서 일정한 간격을 설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보통인데, 기사들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전심전력을 다해서 아렌을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무지無知는 공포를 부르고 공포는 전염되기 마련.
눈으로 보았음에도 믿을 수 없는 상황과 아렌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에 질려 버려 공황상태에 빠져 버린 기사들은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것이다.
여덟 자루의 검이 금방이라도 아렌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릴 것 같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벡스터와 유모 베로나는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질렀다.
“도련님!”
절체절명의 순간.
아렌이 슬그머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게 보였다.
거짓말처럼 아렌이 기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황급히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관성을 이기지는 못했다.
카가가가각!
“어억!”
“큭!”
뒤가 없는 공격을 감행한 대가는 적지 않았다.
서로를 찌르는 것은 간신히 면했지만, 제어하지 못한 검이 서로의 몸을 베어 갔고, 크고 작은 자상들이 기사들의 몸에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서 커슨의 눈에 아렌이 다시금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툭.
어린아이가 나 여기 있노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 가벼운 손놀림.
그런 가벼운 손이 아렌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기사의 등에 닿았고, 그 순간 끔찍한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콰지지지지직!
“으아아아!”
“커어억!”
회전.
기사의 생살을 잡아 뜯으며 회전하기 시작한 힘이 이윽고 범위를 넓혀 서로 얽혀 있는 기사들에게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푸슈슈숙!
사방으로 흩어지던 핏물이 강해지는 회전을 따라서 한 점으로 모여들었고 그 기세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쿵!
“우웨웨웩!”
충직한 늙은 하인의 입에서 오물이 쏟아졌다.
시동과 시녀는 얼굴을 돌려버린 베로나의 품에 안겨 덜덜 떨고 있었고, 벡스터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히! 히이익!”
바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는 커슨.
전장에서 누구보다 용맹해야만 하는 기사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벡스터는 커슨을 모욕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육괴肉塊.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덟 명의 당당한 기사였던 ‘사람’이 있던 자리에 남아 있는 둥그런 살덩이를 본다면 세상 누구라도 커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커슨이라고 했었나?”
아직도 울리는 구토소리와 피 냄새, 지린내가 가득한 지옥 같은 상황을 만든 아렌이 커슨을 쳐다보았다.
지금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연한 표정과 분위기.
가볍게 한숨을 쉬며 걸음을 내딛는 아렌을 보면서 커슨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타박타박.
가볍기 그지없는 아이의 발소리.
하지만 장내의 누구도 그 발소리에 소름이 끼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덧 주저앉은 커슨의 앞에 선 아렌이 예의 무표정한 눈빛으로 가만히 커슨을 바라보다 슬며시 손을 들었다.
“서로 대화로 해결하면 좋았잖아.”
“도 ······ 도려 ······ 련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니 제발!”
작고 앙증맞기까지 한 아이의 손이었지만 저 손이 만들어낸 참상을 목격한 커슨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이 ······ 이대로 사라지 ······ 겠습니다! 펴, 평생 백작가에는 돌아 ······ !”
콰직!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배설물을 흘려내며 필사적으로 말을 잇던 커슨의 이마로 아렌의 손이 파고들었다.
쿵.
바닥에 쓰러진 커슨의 시신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렌이 몸을 돌렸다.
죽음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일행을 위협하던 적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공포.
수많은 전장을 거치고 제법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벡스터조차도 질려 있을 정도이니,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일행들은 말 할 것도 없는 상황.
‘흠.’
익숙한 시선이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눈가를 꿈틀거리던 아렌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때.
“도련님. 일단 손을 닦으시지요.”
품에 안고 있던 시동과 시녀를 물린 베로나가 아렌에게로 다가섰다.
창백한 안색과 질린 표정에 아직도 떨림이 가시지 않아서 움직임이 경직되었지만.
“고생하셨습니다.”
큰 심호흡과 함께 아렌의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아 손수건으로 아렌의 손을 정성스레 닦았다.
“유나. 센드. 짐을 챙겨라.”
“네. 네! 시녀장님!”
그런 베로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동과 시녀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렌드. 벡스터 기사님을 살펴요. 아까 포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시녀장님.”
입가의 오물을 닦아낸 로랜드가 헐레벌떡 커슨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호오.’
강단 있는 모습에 아렌은 감탄했다.
어느덧 질린 표정도 정돈하고 아렌의 매무새를 살피는 손길의 떨림도 멎었으니 베로나는 확실히 보통 여인이 아니다.
“크으으윽!”
한편에서는 하얀 연기를 피워 오르며 괴로워하는 벡스터와 그를 부축하고 있는 로렌드가 보였고, 시동과 시녀도 마음을 추슬렀는지 이리 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움직이셔야 합니다.”
창백한 안색이지만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선 벡스터의 모습을 보고 눈을 빛내던 아렌이 일행을 살폈다.
여전히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지만 최소한 아렌을 똑바로 쳐다보는 모습에 아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충직하군.’
이런 하인들이라면 구할 가치가 있었다고 만족하며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라.”
“예.”
결연한 표정으로 앞장서는 벡스터의 뒤를 따라 아렌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 * *
“야영하겠습니다.”
마차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아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하자 벡스터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마차 밖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유나와 센드가 다람쥐처럼 움직이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로렌드가 마차에서 말을 풀어서 쉬게 하는 등, 빠르게 야영을 위한 준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 달도 밝군.”
벡스터의 시선이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다가 이내 마차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는 마차의 문.
검박한 그라인드 백작가의 가풍을 상징하는 듯 특별할 게 없는 마차이지만 벡스터의 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서워 보이는 마차다.
아니.
마차라기보다는 그 안에 탄 사람.
분명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병약하고 얌전한 아이였던 도련님이라는 괴물이 타고 있기에 이 마차는 더 이상 평범한 마차가 아니다.
“······ 시녀장이 강단이 있는 건 알았지만 상상이상이군.”
주변을 살피던 벡스터가 중얼거렸다.
역참에서의 살육전 후에 베로나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하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 한마디 없이 손을 맞춰서 척척 야영 준비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이 나올 만도 하지만, 저들의 모습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행위에 불과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좀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어느덧 마차에서 내려 다가온 베로나를 보며 벡스터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북방 출신이라더니 과연.’
카일룸 제국의 북방은 혹독한 환경과 끊임없이 몰려나오는 몬스터로 유명한 험지.
자연히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기질은 제국의 다른 지방 사람들과는 다른 면이 있어서 쉽게 흥분하지 않고 건조할 정도로 대범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베로나를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덱스터는 생각했다.
분주히 움직인 덕분일까.
어느덧 모닥불위에는 스튜가 끓고 있었고, 늦은 저녁을 먹을 준비가 끝났다.
일반적이라면 고된 하루를 마감하고 식사와 함께 긴장을 풀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긴장을 풀기는커녕 일행은 점점 긴장을 더해갔다.
베로나가 마차 앞에 섰을 때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대범한 베로나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지만 이내 깊게 심호흡을 한 베로나가 공손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나가겠다.”
낮은 목소리가 마차 안에서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로렌드가 재빠르게 움직여 마차 문을 열었다.
허리를 숙인 로렌드의 뒤로 유나와 센드가 역시 허리를 숙이며 덜덜 떨고 있었고, 벡스터는 검 손 잡이를 꽉 잡으며 떨리는 손을 감췄다.
턱.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아렌이 마차 밖으로 나왔다.
은은한 달빛 아래 반짝이는 백금발과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 같았지만 그 미모에 감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리로 앉으시지요.”
야영지 한쪽에 마련 된 자리에 아렌을 인도한 베로나가 음식을 돌렸다.
불편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 * *
“식사는 입에 맞으셨습니까.”
베로나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렌을 보면서 창백하게 질린 유나와 센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일어난 로렌드가 말을 돌보고 있었고 벡스터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때.
“벡스터.”
“······ 예. 도련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온 몸에 힘을 준 벡스터가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답했다.
“그놈들은 누구지?”
주어가 없는 두서없는 질문이었지만 벡스터는 그렇게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본가의 2기사단입니다.”
“2기사단?”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지만 벡스터에게는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는 입맛을 다시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들이 왜 나를 쫓아왔지?”
본래의 아렌이라면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백작 부인이 보낸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아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렌이 베로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누구냐.”
요정처럼 아름답지만 표정 없는 얼굴과 심연 같은 눈빛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지만 베로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공손히 입을 열었다.
“그라인드 백작가의 적자嫡子. 아렌 드 그라인드 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렌은 영각靈覺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뇌리 한편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들.
원래의 아렌이 살아온 짧지 않은 생의 기억들이 우후죽순 적으로 그의 머리를 자극했다.
지끈거릴 정도의 두통이 몰려왔지만 아렌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묵묵히 기억을 받아들였다.
“······ 빙의인가 환생인가. 호접지몽胡蝶之夢일 수도 있겠군.”
잠깐의 침묵 후에 입을 열고 자리에서 일어난 아렌이 마차로 몸을 돌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던 아렌이 피식 웃었다.
“상관은 없겠지.”
그가 아는 별자리와는 전혀 다른 천공을 바라보며 아렌은 마음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