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49
049화
코린은 번개가 치는 것 같은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아렌의 작은 손이 짐승의 발톱 같은 형상으로 허공을 가볍게 긁는 것 같았는데, 허공에 붉은 선 다섯 개가 생성되더니만 검은 트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간 것이다.
쩌저적!
앞으로 나아갈수록 기세를 늘린 다섯 개의 벼락은 이내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검은 트롤에 적중했다.
“카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소리에 모두들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괴물이 심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모두 직감한 그 순간.
쾌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친 단면을 앞세운 나무가 아렌을 향해 투창처럼 뻗어 왔다.
“흠.”
하지만 아렌은 피하지 않았다.
앞으로 가볍게 한발 나서는가 싶더니 왼손이 뻗어나갔고, 검붉은 기운에 감싸인 나무와 부딪쳤다.
콰지지직!
콜레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아렌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크기의 나무가 아렌의 왼손과 부딪치는가 싶더니 이내 산산 조각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공자님! 검은 기운에 닿으면 안 돼요!”
레티시아의 비명에 모두의 시선이 아렌의 왼손으로 향했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은 기운이 아렌의 손을 타고 오르려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오러로 막아!”
트리안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숲을 울렸지만, 아렌은 팔을 타고 오르는 기운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막으라니까!”
그 모습에 다급하게 다시 한번 소리친 트리안이었지만, 아렌은 묵묵히 검은 기운이 팔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아렌!”
“시끄럽다.”
아렌이 가볍게 손을 털자 검은 기운이 잠시 일렁이는가 싶더니 불에 타듯이 사그라졌다.
“헛!”
그 광경에 놀란 네이던이 비명을 질렀고, 콜레트의 눈이 다시금 커다래졌다.
신관이 정화주문을 외어야지만이 겨우 제거가 가능한 외계의 기운을 너무도 쉽게 처리한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행의 반응이 어떻든 아렌은 얼굴을 가볍게 찡그렸다.
“묘한 기운이 있기에 따라와 봤더니만, 이게 뭔지.”
가볍게 혀를 찬 아렌의 시선이 검은 트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검은 기운은 아렌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중원에는 수많은 사교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외계의 존재를 신으로 모시며, 악신을 강림시키려는 시도도 제법 있었다.
사교도라는 것들이 대부분 타협을 모르는 미치광이 집단인지라 아렌이 손을 쓴 적도 몇 번 있었고, 그때 비슷한 기운을 접했던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거 같구나.”
새삼스럽지만 이 세계도 중원 못지않은 무법천지라는 것을 느끼며 아렌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느냐?”
“카아아아아!”
아렌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숲의 폐허 너머에서 검은 트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헙!”
“······끔찍하군요.”
숲의 지형과 아렌을 향해 달려오던 검은 트롤은 아렌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다섯 줄기의 번개는 트롤의 몸을 산산조각 내었었다.
제 아무리 트롤이라고 하더라도 재생이 불가능한 치명상이었지만 놀랍게도 검은 트롤은 몸을 일으켜 걸어오고 있었다.
“······침식이 시작됐어요.”
침중한 콜레트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검은 트롤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산산 조각난 몸을 검은 기운이 억지로 엮어서 일으켜 세운 모습은 트롤이 주체가 아니라 악마석이 트롤을 움직이는 모습처럼 보였던 것이다.
“정화해야 해요!”
이대로 둔다면 트롤은 알 수 없는 외계의 마물로 변해 버릴 것이고, 악마석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파괴와 오염을 흩뿌리고 다닐 것이다.
아렌이 콜레트를 잠시 보더니 이내 양손을 들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심유한 눈으로 트롤을 바라보던 아렌의 양손이 붉게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공기가 달궈지기 시작했다.
파박! 팍!
아렌의 손 주변에서 불똥이 튀기기 시작했고, 고열이 사방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니, 그 열기에 일행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크으으으으으.”
발성 기관이 상했는지, 괴성을 지르지는 못했지만, 위협적인 울음을 흘리며 검은 기운으로 기워진 발을 끌고 아렌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때, 아렌의 양손이 붉은색을 넘어 하얗게 물들었고 끔찍한 열기가 짐승의 손이 되어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화아아아악!
마치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손이 양쪽에서 트롤을 꽉 쥐었다.
부글부글!
“키이이이이······.”
마치 태양과도 같은 열기가 치솟아 올랐지만, 검은 트롤의 몸 밖으로 번지지는 않았고 집중된 열기가 모든 것을 트롤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마법인가? 아니야 ······. 오러? 오러로 저런 게 가능해?”
멍하니 중얼거리는 네이던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일행들 모두가 비슷한 심정이었다.
마치 신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 같은 모습에 넋을 잃어버린 것이다.
긴 시간 같기도 하고, 아주 짧은 시간 같기도 한 순간이 지나고, 검은 트롤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검은 기운이 거의 사라져 버린 악마석만이 남아 있었다.
쩍!
하지만 커다랗게 금이 가더니 모든 빛과 기운을 잃어버리고 평범해 보이는 광물로 변했다.
A급 몬스터가 재만 남아 버린 상황에 아렌을 제법 안다고 생각했던 레티시아마저도 입을 열지 못했고, 느릿하게 걸어간 아렌이 악마석이었던 것을 주워들었다.
아렌이 이리저리 악마석을 살피던 그때였다.
“내려놓게나.”
숲을 헤치고 마일스와 그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대규모 정화주문이 펼쳐지고, 악마석이 엄중하게 봉인된 상자에 넣어졌다.
레티시아를 비롯한 일행은 신관들과 마법사들에게 상담을 받고 있었고, 기사들이 주변을 정리하는 그 시점에 마일스는 아렌과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우물우물.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없이 육포를 우물거리고 있는 아렌을 마일스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골치 아프군.’
A급 몬스터의 출현도 정신이 나갈 만한 일인데, 악마석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이 전달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휘페리온에서 이단심문관들이 아카데미를 뒤집어엎기 위해서 출동할지도 몰랐다.
그것만 해도 골치가 얼얼한 일인데, 일개 학생이 그런 마물을 때려잡은 것이 아닌가.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버려서 잔해가 남지 않았다지만, 힘을 잃어버린 악마석은 남았고 대지의 기억을 살핀다는 수단도 있었으니, 아마 증언은 사실일 거라고 마일스는 생각했다.
‘특별한 건 알았지만 너무 지나친데.’
학생을 넘어서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보유한 자.
일단 함구령을 내렸지만, 아렌에 대한 소문은 제국의 유력자들을 강타할 것이다.
당연히 수많은 사건이 아렌의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사건의 수만큼 아카데미는 진통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마일스는 머리가 아팠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업은 끝난 건가?”
어느새 우물거리던 육포를 다 먹어치운 아렌이 우묵한 눈으로 마일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끝났다.”
적당한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아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평가는 어느 정도지?”
한결 같은 아렌의 태도에 화가 날 만도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마일스는 더 이상 아렌의 말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최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내가 주관하는 수업에는 안 나와도 된다.”
마일스의 대답에 아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별을 받을 수 있는 건가?”
뜬금없는 질문에 마일스가 잠시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렌에게 답했다.
“······불가능한 건 아니야. 어찌되었든 아카데미의 위기를 막았으니까······. 자세한 정황을 살펴야겠지만 가능할거다.”
마일스의 대답에 아렌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내려왔다.
“기대하지.”
몸을 돌리는 아렌에게 마일스가 물었다.
“별에 관심이 있나?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조금 흥미가 생겼다.”
낮은 목소리와 함께 숲 너머로 사라지는 아렌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일스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마법사들과 이야기를 마친 레티시아가 살기가 풀풀 날리는 표정으로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마일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트리안은 오늘 하루가 정말 길었다는 생각을 했다.
트롤을 상대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야 북방에서는 늘 하던 일이었고, 실력 좋은 동료들까지 옆에 있었으니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즐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지.’
A급 몬스터와 악마석, 그리고 아렌.
트리안은 테이블에서 육포를 우물거리며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아렌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풍성한 백금발과 그림 같은 이목구비, 작은 체구에 번듯한 몸가짐을 하고 있는 꼬마의 모습은 그림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귀족가의 도련님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정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었고, 그저 짐작만 했던 무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버렸으니, 트리안의 심정은 복잡했다.
“뭘 보는 거냐?”
그런 트리안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네이던이 슬며시 아렌에게로 다가서 물었다.
‘저 녀석도 생각이 복잡하겠지.’
오를 수 없는 산을 마주한 암담한 기분이었지만, 이내 트리안은 마음을 다 잡았다.
북부의 사내는 그저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생을 마무리할 자리를 찾게 될 것이고, 그 시간에 떳떳하다면 북부의 사내는 웃을 수 있다.
“그래. 뭔데 그렇게 열심히 봐?”
패배심과 시기는 독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트리안은 마음을 다지며 일어섰다.
“별건 아니다.”
둘의 물음에 아렌이 읽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어디 보자······. 대륙인의 평균 수명? 성년으로 인정하는 나이? 이런 것에 관심 있었어?”
트리안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올랐고, 네이던이 손에 턱을 대며 말했다.
“사회학에 관심이 생긴 건가? 하긴 백작가의 후계자라면 신경을 쓰기는 해야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한 제국은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학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인 사회학.
단순한 숫자 취급하는 영지민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학문이었다.
“흠. 평균 수명이 38세라······. 낮기는 한데 이게 왜? 우리하고는 크게 상관없지 않나?”
트리안의 말에 아렌의 시선이 향했다.
“왜지?”
“귀족들과 평민들의 나이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간혹 뛰어난 평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의문이 섞인 아렌의 눈빛에 네이던이 말을 이었다.
“결국 환경의 문제라는 거다. 아무래도 귀족과 평민의 주거환경은 다르니까. 거기에 오러와 마법까지 포함하게 되면 일반적인 평민과 귀족의 수명은 아득할 정도로 벌어지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국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변방에서는 무수히 많은 국지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제국의 평민들은 성년으로 인정받는 16세가 되는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징병이 될 것인가 아니면 특별세를 내어서 면제가 될 것인가.
제법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평민의 삶은 빡빡했고, 하층민은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시대다.
“결국 우리도 아카데미를 졸업하게 되면 선택을 해야 해. 아렌 너는 후계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으니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다르지. 아마 종군하게 될 거다.”
담담하게 말하는 네이던의 모습에 아렌의 눈이 가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