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제117화
‘이제 한 명 남았나?’
생존자의 수는 이제 81명. 80명이 되는 순간 잠겨 있던 1구역이 개방된다.
생존자 수를 확인한 배도현은 팔짱을 낀 채 눈앞의 내성을 바라봤다.
성벽 높이가 10m.
성벽을 둘러싼 해자가 15m 너비로 파여 있었고, 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단 하나.
석재로 만들어진 폭 3m의 다리뿐.
‘해자까지 정성 들여 파놓고 도개교가 아닌 석재다리라니….’
구조적인 측면에서 조금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환상 마법으로 생성된 공간이니 뭐 문제가 될까 싶었다.
따져보면 고여 있는 해자 속의 물이 장마 직후의 계곡처럼 급류 치고 있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굳이 지름 50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영주관을 지킨다고 10m 높이의 내성을 쌓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 설정이지, 설정.’
누구라도 선점한다면 지형적 이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공적인 지형.
시험을 좀 더 긴장감 있게 만들려는 라울의 요청에 따라 1구역은 이런 기이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배도현은 그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에 맞춰 1구역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언제쯤 모습을 드러내려나….’
인벤토리에서 간이 의자까지 꺼내 석조다리 한가운데 내려놓은 배도현은 성문을 등지고 편안하게 앉아 시가지를 바라봤다.
1구역과 다른 구역들 사이에는 100m 정도 되는 공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쉬이익.
멀리서 화살이 날아왔다.
‘간 보는 건가?’
배도현은 굳이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도 하지 않고 오른손을 살짝 뻗어 화살을 탁 잡았다.
100m가 넘는 거리에서 정확하게 그의 심장을 향해 쏜 걸로 봐선, 스킬 보정이거나 현실의 양궁선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정직하게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줄 정도로 배도현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쪽의 실력을 눈치챘기 때문인지 화살은 다시 날아오지 않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좋든 싫든 결국엔 덤벼올 것이다.
예선 시간 마지막 10분이 되면 1구역을 제외한 모든 구역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1구역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인 석재다리를 배도현이 점거한 이상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뭐, 아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이제 겨우 30분이 지났다.
남은 한 시간,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나름대로 에측해보며 배도현은 유유자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를 만끽했다.
* * *
‘있다!’
서현은 멀리 떨어진 성문 앞 석재다리 위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얼굴이 확실히 보이진 않았지만, 배도현이 분명했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저렇게 전장 한복판에서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겠는가?
거리는 대략 100m.
시스템 보정을 받는 지금이라면 전력 질주로 12초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리.
배도현이 정말로 그녀를 도와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가 도와준다고 한들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배도현이 합류한다 한들 이쪽은 둘에 불과했고, 그녀를 쫓고 있는 이들은 열 명이 넘었으니까.
어쩌면 그녀로 인해 배도현까지 피해를 입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녀가 원해서 이쪽으로 온 것도 아니었고, 이제 와서 방향을 틀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서현은 마지막으로 각오를 다지고는 골목에서 뛰어나와 성문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20레벨을 달성하고 얻은 특별한 스킬을 발동했다.
‘[환수의 감각] 발동!’
그러자 직접 눈으로 본 것도 아닌데 주변의 지형지물이 감지되었고 평소에 전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들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그녀의 환수인 실버폭스 은별이 느끼는 감각의 일부.
몇 번 시험 삼아 발동해 보았지만,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개활지로 나가다니, 죽으려고 환장했군.”
“쏴, 죽여버려!”
“숨을 곳도 없어. 먼저 잡는 게 임자다!”
쫓아오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낀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피웅, 핑! 텅!
뒤이어 놈들이 환하게 드러난 그녀의 등을 향해 발사한 화살과 볼트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화살 세례가 그녀를 꿰뚫을 것 같은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침착해졌다.
탓, 타탓.
그리고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 십여 발의 화살을 피해냈다.
“뭐야?”
“잔재주를 부리다니. 계속 쏴!”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화살을 피하느라 속도는 느려졌고, 중국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그녀를 노려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배도현이 의자에서 일어서는 게 눈에 들어오자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피해요!”
어째서 ‘도와줘요’가 아니라 ‘피해요’라고 외쳤는지는 그녀 자신도 몰랐다.
배도현을 말려들게 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제 와서 남의 도움을 받기 싫다는 자존심이라도 생긴 건지.
어쨌든 공허한 외침이었다. 아직 1구역이 개방되지 않았기에 피할 곳 따위는 없어 보였으니까.
피잇. 피슛!
‘악!’
아무리 환수의 감각을 일깨웠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모든 화살을 완벽하게 피한다는 건 무리였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이미 몇 개의 화살이 그녀의 어깨, 종아리, 팔뚝 등을 스치고 지나가며 화끈한 통증을 불러왔다.
덕분에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몸놀림도 둔해져 갔다.
‘조금만 더…!’
정신없이 이를 악물고 달려가는 그녀의 옆으로 배도현이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대로 달려서 성문 안으로 들어가세요.”
‘……! 어, 언제?’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리 위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입을 열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그리고 막 다리에 올라서려는 그녀의 눈앞에 작은 창이 팝업되었다.
-생존자의 수가 80명 이하가 되었습니다. 잠겨 있던 1구역이 개방됩니다.
구구궁.
내성을 둘러싸고 있던 반투명한 장막이 사라지고, 나무로 된 커다란 성문이 작은 진동을 일으키며 열리기 시작했다.
* * *
‘음?’
멀리서 소란스런 기척이 느껴졌다. 건물 지붕을 타고 움직이는 플레이어들의 모습도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것은 한국 플레이어인 한서현.
시험장에서 그를 안내해줬던 환수 소환사였다.
쫓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어떻게 할까?’
솔직히 다른 플레이어들 간의 분쟁에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플레이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먼저 공격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먼저 도와줄 생각도 없었다.
‘뭐, 도와달라고 한다면 모른 척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눈이 마주친 한서현이 뭐라고 말하려는 듯했다.
‘도와달라는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피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호오.’
의외의 반응에 배도현의 마음이 살짝 동했다. 적당히 살려만 주려고 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도 좋을 것 같았다.
배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여분의 창을 꺼내 들고는 조용히 ‘플리커’ 스킬을 발동했다.
플리커는 초능력 계열의 순간이동 기술이었다. 딜레이가 없이 발동할 수 있는 대신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짧고, 횟수나 쿨타임 제약이 상당했다.
그래도 잘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전황을 바꿀 수도 있고, 생존기로 활용도 가능했다.
좀 전에 있었던 쇼이치로 일행과의 전투에서 놈들의 혼을 빼놓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플리커와 염동력의 조합 때문이었다.
팟.
순식간에 30m의 거리를 줄인 배도현은 염동력으로 몸을 밀며 한결 빠르게 가속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한서현을 스쳐 지나가며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따다닥. 탁! 탁!
한서현의 등 뒤를 노리던 화살과 볼트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화가 난 표정의 중국 플레이어 셋이 멧돼지처럼 배도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어디서 영웅 행세냐? 뒈져!”
“멍청한 한국 놈 같으니!”
“죽어랏!”
각자 창, 검, 도를 들고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배도현도 마주 달려가며 창을 움직였다.
푸슉! 텅, 쿠당탕!
“끄르륵….”
점프까지 하며 창을 휘둘러 온 멍청이의 목에 간결하게 내지른 배도현의 창이 구멍을 뚫어주었고, 이어진 휘두르기는 검사를 검과 함께 옆으로 밀쳐냈다.
덕분에 균형을 잃은 검사는 도수를 덮치며 함께 바닥을 굴렀다.
푹, 푹.
상대의 역량도 알아보지 못하고 무작정 달려든 멍청이 셋은 배도현의 창을 한 번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목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미친!”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텅, 피웅.
물론 화살도 계속해서 날아들었고.
하지만 배도현은 그저 가볍게 스텝을 밟고 몸을 흔드는 것으로 화살들을 피해냈다.
그리고 등에 걸쳐 맸던 활을 풀어 경고하듯 놈들에게 화살을 날려주자, 위협을 느꼈는지 그제야 날아오던 공격이 멈췄다.
‘뭐, 스킬 보정을 받으면 움직이면서 쏴도 맞출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잠시 소강상태가 생겼고, 배도현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원래 있던 돌다리 위쪽까지 무사히 물러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어느새 올라간 것일까.
한서현이 성문 바로 위에서 시가지를 향해 활을 겨눈 채 묻고 있었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걸 봐선, 들어가자마자 성루에 오른 듯했다.
“괜찮으니까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요. 놈들도 당분간은 쉽게 덤벼들지 않을 테니까요.”
배도현은 다리의 끝자락, 성문의 바로 앞쪽에 다시 의자를 꺼내 앉으며 편안하게 말했다.
“잠시만요. 일단 내려갈게요.”
그리고 아래로 내려온 그녀는 일단 고개부터 팍 숙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적들을 끌어들여서 죄송합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배도현 씨를 위험하게 만든 것 같아서 정말 면목 없습니다.”
뭔가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에 배도현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혔다.
어쩌면 별것 아닌 인사와 사과일지 몰라도, 이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이들을 수없이 경험해왔던 탓이다.
“괜찮아요. 시험 시작 전에 제가 뱉은 말이 있으니 책임도 져야죠. 일단 치료부터 하세요. 그러다 과다출혈로 죽겠어요.”
배도현이 사과를 받아주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한서현이 후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인벤토리에서 간단한 구급약을 꺼내 응급처치를 했고, 배도현은 다시 시가지를 바라보며 적들을 경계했다.
잠시 후. 치료를 끝낸 한서현이 다시 성루에 올라 싸울 준비를 하며 물었다.
“근데요. 배도현 씨는 이미 킬 수도 충분히 올렸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솔직히 말해서 더 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아, 혹시 불편한 질문이라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글쎄. 이유를 대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일까요.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과 걱정 없이 싸울 수 있는 기회가 그리 쉽게 찾아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녀의 질문에 꼭 대답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약간은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이유 없이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살인귀라는 말이라도 듣게 된다면 큰일 아니겠는가.
“아.”
한서현은 자칫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배도현이 조금은 부러웠다.
말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증명하고 있으니 누가 그를 오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도 아카데미에서 배운다면 언젠간 저렇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갑자기 떠올랐다. 그녀의 품속에 황금 매 조각상 네 개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에 관해 물으려는 찰나, 배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또 누가 오네요. 싸울 생각이면 준비하세요.”
서현의 표정이 다시 긴장감에 물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