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2
제12화
‘좋아.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다.’
제레미와 기사는 승리를 직감했다. 비록 아직은 막아내고 있었지만 점차 공격이 급소 가까운 곳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이제 이 건방진 애송이의 숨통을 꿰뚫을 시간이 머지않아 보였다.
그리고 삼십여 차례의 공방이 지나간 후.
‘보였다!!’
기사의 눈에 라울의 목으로 향하는 검로가 그려졌다. 넥가드가 살짝 방해가 되긴 하지만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단번에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신이 생긴 기사는 빠르게 이어지던 연계 공격을 아주 잠깐 늦추고 힘차게 레이피어를 찔러 넣었다.
쉬이익~ 푸슛!!
손에 감촉이 있었다. 그리고 라울의 목에서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헐거워진 틈을 노린 라울의 검이 어느샌가 기사의 목을 꿰뚫었다.
‘그래도 결국 우리의 승리다!’
머리가 반쯤 잘린 기사는 휘리릭 돌아가는 시야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 * *
‘저 멍청이가!!!’
제레미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쉬잉 소리를 내며 넓직한 바스타드 소드가 그의 가슴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건방진 애송이는 마치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여유롭게 넥가드에서 레이피어를 뽑아냈다.
마지막 순간에 애송이의 아랫배에 구멍을 하나 뚫어 주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분명 확실한 기회였다.
애송이의 가드에 빈틈이 생겼고 남은 것은 그저 정확하게 목에 찔러 넣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검끝이 흔들리다니!’
이곳에 와서 훈련은 안 하고 술만 처마시더니 수전증이라도 온 것일까? 그저 쭉 뻗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마지막 순간 라울이 염동력으로 레이피어를 살짝 밀어냈다는 사실을 제레미는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어쨌든 미소짓고 떠난 멍청이 하나 때문에 공세가 풀려버렸다. 다시 바스타드 소드의 간격을 파고들어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제레미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치명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 그의 레이피어가 놈의 아랫배를 꿰뚫었다.
그 증거로 구멍난 갑옷 사이로 놈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태연한 표정이냐고!!’
라울의 얼굴에선 아무런 고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배에 구멍이 난 와중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둘렀다. 실전 경험도 얼마 없는 애송이가 보여 줄 수 있는 퍼포먼스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휘둘러지는 검을 피해 뒷걸음질 치는 제레미의 얼굴엔 질린 듯한 표정이 가득했다.
* * *
라울은 세차게 검을 휘둘러 제레미를 밀쳐내고는 차분하게 적진을 살펴보았다.
남은 것은 호위단장 제레미, 랜달가의 청년귀족 제리, 일반 기사 다섯까지 총 일곱 명.
이미 절반이 넘는 적을 처리한 상태였다.
가장 걸림돌이 될 만한 랜달 기사단원 3명을 처리했기 때문에 승부는 거의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자, 그럼 나머지 쓰레기를 치워볼까나?’
라울은 땅을 박차고 제레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공기를 찢어버리는 듯한 강렬한 상단 내려치기가 자신을 향하자 제레미가 스텝을 밟아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보통이라면 빈틈을 가리기 위해 검을 회수하며 반격에 대비해야 했지만 라울은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제레미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챙, 푹! 푹!!
당연히 그걸 지켜보고 있을 제레미가 아니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내지른 레이피어가 라울의 옆구리와 허벅지에 옅은 관통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라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자유 도시. 죽은 사람도 부활하는 마당에 작은 상처 정도는 금방 회복되었다.
그걸 증명하듯 조금 전 입었던 아랫배의 상처가 이미 흔적도 없이 아물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무조건 일격필살, 큰 한 방을 노려야지!!’
라울은 당황한 표정의 제레미를 일별하고는 정면의 사냥감들을 향해 거칠게 뛰어들었다.
“타핫!”
강력한 사선베기가 기사 하나의 상반신을 대각선으로 쪼개버렸다.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진 가로 베기가 또 다른 기사의 허벅지를 절단시키고 지나갔다.
“크읏! 죽어라!!”
살아남은 기사들이 차례로 라울을 향해 공격을 해왔지만 라울은 가볍게 그들의 검을 흘려냈다.
오히려 이어진 몇 번의 휘두르기에 남은 기사들도 모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느새 도망쳤는지 제레미의 뒤에 숨어 있는 제리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라울은 바스타드 소드를 살짝 휘둘러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는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둘 남았군.”
라울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맹수처럼 흉포한 살기를 드러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그 흉험한 눈동자를 마주한 제레미가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후우. 인정하지. 15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훌륭한 솜씨다. 게다가 거침없는 손속에 빠른 결단까지. 대단하군!”
제레미는 레이피어를 앞으로 뻗어 라울을 향해 겨누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방심했어. 진짜 혼자로 덤벼들 줄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하지 않다니…. 누가 보면 전장에서 몇 년은 구른 베테랑 전사인 줄 알겠어.”
빈틈을 찾기 힘들어서였을까? 라울은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제레미가 말하는 걸 막지 않고 그저 자세만 잡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차피 나를 이기지 못하는 한 이 상황은 끝나지 않아. 그리고 정말 실력으로 네가 우리 기사들을 쓰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라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제레미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나? 어차피 네가 쓰러뜨린 기사들은 모두 되살아난다. 그리고 이제부턴 아무도 방심도 하지 않겠지. 과연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제야 라울의 입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제레미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무슨 헛소리야? 잔머리 굴리지 말고 덤벼.”
제레미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어차피 그도 말로 이 상황을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
‘역시나 아직 어리군. 나 같았으면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일단 전투를 이어갔을 텐데.’
이미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전투 초반에 쓰러졌던 기사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도 차례로 부활해 전투에 가세할 것이었다.
“어리석은 선택이군. 어쩔 수 없지. 자, 모두 일어서라! 이제부턴 대형을 갖춰 상대한다!!”
그의 단호한 명령에 따라 용맹한 랜달가의 기사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이, 일어서라! 명령에 따르지 않을 생각이냐!”
당황한 제레미의 음성이 울려 퍼졌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의 명령에 반응하지 않았다.
“훗.”
처음으로 라울의 표정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라울이 안 됐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깨를 으쓱하자 제레미가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의 부하들을 살펴보았다.
‘……!!’
“우리보다 훨씬 일찍 미라에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제대로 훈련해본 적이 없나 보지??”
라울의 비꼬는 말이 제레미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끄어억!”
“그르르르.”
그의 부하기사들은 모두 바닥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자유 도시 미라. 상처를 회복시켜주고 목숨까지 부활시켜주지만 그 통증과 고통까지 줄여주지는 않는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은 이들이 과연 부활하자마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인가? 웬만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힘든 것이 당연했다.
라울이 초반부터 기습적으로 적들을 몰아붙인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상황 파악 되었으면 다시 시작해볼까? 그 ‘방심’이란 걸 뺀 제대로 된 실력으로 말이지.”
라울의 말에 제레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말처럼 이제 비기든 뭐든 사용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놈!! 그 건방진 주둥아리를 잘라주마!!”
제레미는 왼쪽 허리춤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왼손에 쥐었다.
패링 대거, 혹은 망고슈라 불리는 검이었다. 손잡이 쪽 가드 부분이 날 쪽으로 살짝 굽어 있어 상대방의 검날을 흘려낼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른손 레이피어를 앞으로 쭉 내밀고 왼쪽의 망고슈를 아래로 내린 특이한 기수식.
이것이 바로 랜달 백작가의 검술 ‘슈팅 스타’의 본 모습이었다.
선공은 제레미였다.
낮은 자세로 바닥을 미끄러지듯 움직여 접근한 제레미가 레이피어를 연속으로 찔렀다.
라울 또한 바스타드 소드의 긴 리치를 이용해 마주 찔러 갔다.
이전이었으면 뒤로 몸을 피했을 제레미지만 이번엔 달랐다.
몸을 슬쩍 비틀어 찌르기를 이어가는 한편 왼손의 망고슈로 바스타드 소드의 검날을 흘려낸 것이다.
제레미의 찌르기 또한 적중하지는 못했다.
라울이 건틀릿을 낀 손등으로 레이피어 끝을 쳐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레미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튕겨나간 레이피어를 채찍처럼 휘둘러 Z자 형태로 라울의 몸을 베어나간 것이다.
찌지직, 후웅~!
라울은 갑옷의 경사면을 이용해 레이피어의 날을 받아내고는 바스타드 소드를 거칠게 휘둘러 제레미를 밀어냈다.
살짝 뒤로 밀린 제레미는 쉴 틈이 없다는 듯 다시 앞으로 달려들며 검날을 흔들었다.
낭창낭창한 검날이 격하게 흔들리며 마치 유성우가 쏟아지는 듯한 잔상을 그려냈다.
라울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검의 궤적을 막아갔다.
‘확실히 1대1 대인전 최강의 검술이라 자칭할만하군.’
몬스터와 전투를 통해 성장한 애쉬튼 백작가의 검술과 달리 랜달 백작가의 검술은 철저히 사람과의 결투를 통해 정립되었다.
애초에 무기 자체도 사람의 급소를 찌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상대는 엑스퍼트급 기사. 육체적인 면에선 라울을 단연 뛰어넘는 상대였다. 쉽게 상대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라울의 갑옷 곳곳에 흉터가 생겨났다.
그리고 채 막아내지 못한 검날들이 그의 피부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라울은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밀리는 와중에도 그의 눈은 정확히 제레미의 칼끝을 향하고 있었고 속으로는 알 수 없는 숫자까지 세고 있었으니.
‘88%, 89%….’
그렇게 한동안 일방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라울의 머릿속에서 100이 카운트된 순간.
쾅!
갑작스럽게 뻗어 나간 라울의 바스타드 소드를 제레미가 망고슈와 레이피어를 교차하여 막아냈다.
그 여파로 제레미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난 사이 라울은 슬쩍 걸음을 옮겨 바닥에 쓰러져 있는 랜달 기사단 기사에게서 레이피어와 망고슈를 탈취했다.
“무슨 짓이냐??”
어이없게도 바스타드 소드를 버리고 자신과 같은 무기를 손에 쥔 라울을 보며 제레미가 고함쳤다.
“무슨 짓은. 배운 건 써먹어야지.”
살짝 입꼬리를 올린 라울이 취한 자세는 제레미가 펼쳤던 ‘슈팅 스타’의 기수식, 바로 그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