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65
제165화
최근 들어 커넥트 게시판을 달구는 주제가 한 가지 있었다.
-도대체 언제 ‘보호 기간’이 풀려서 자유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가.
풀다이브 가상현실 게임의 특성상 기존의 다른 게임들처럼 빠른 진행은 불가능했다.
클릭 몇 번으로 도시를 이동하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짜 현실처럼 걸어야 하고 직접 검을 휘둘러야 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몇 달 동안 정해진 구역에 묶여 있다 보면 플레이어들은 변화를 원하게 된다.
“다음 업데이트는 언제일까?”
“그러게. 솔직히 게임치고는 너무 진행 설명이 불친절한데.”
“느낌상 2차 전직은 마쳐야 할 것 같아.”
“50레벨을 찍어야 한다고? 도대체 어느 세월에….”
초반의 빠른 레벨업에 비해 현재 랭커들의 레벨업 속도는 굉장히 느려졌다.
게임 시작 6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최고 레벨 플레이어는 50레벨의 배도현.
그리고 수십 명이 그 뒤를 이어 49레벨을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게시판에서 궁금해 하는 다음 업데이트에 대해선 적어도 2차 전직자가 나와야 하지 않는가 하는 추측이 무성할 뿐이었다.
문제는 이미 플레이어들이 자유 도시 밖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벌어졌던 퍼스트 길드의 영지전 영상은 공식 채널과 스트리머들을 통해 전 세계에 흘러나갔다.
당연히 플레이어들은 대규모 전투에 환호했고, 그곳에 참여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자유 도시에 묶여 정해진 던전을 돌며 몬스터 사냥하는데 그쳤으니, 슬슬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 * *
챙!
자유 도시 미라의 퍼스트 길드 지부.
그리고 그 내부에 있는 퍼플 길드 전용 연무장에서 두 인영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매화노방(梅花路傍)!”
외침과 함께 검영이 두 개로 늘어나 상대방을 찔러 갔다.
챙, 텅!
하지만 검과 방패에 막혀 공격은 쉽게 무산되었다.
“이잇! 매화접무(梅花蝶舞)!”
복잡한 스텝과 어울려 검이 이리저리 너울거리며 움직이자 검무를 추는듯한 동작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검무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방패에 막혀버렸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초식명 가져다 붙이면서 공격하지 말라니까.”
“흥. 이건 신성한 의식이라고! 범인의 눈으로 어찌 협객의 고뇌를 알아차리겠는가.”
일우는 어느새 다시 협객병이 도져오고 있는 왕천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동안 배도현이 길드에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그를 통제할 사람이 없어져서인지,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두말할 나위 없는데.’
실제 성격이나 인성도 겉보기와 다르게 차분하고 둥글둥글했다.
다만 검을 잡거나 대결을 할 때만 되면 저렇게 사람이 변해버린다는 게 문제지만.
‘역시 계속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수밖에 없구나.’
배도현이 자리를 비우며 전해준 말이었다.
저런 잘못된 버릇은 주변에서 고쳐주는 게 그를 위한 일이라고.
“하앗, 매화토염(梅花吐艶)!”
왕천명의 입에서 초식명이 나오자 일우가 방패와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검술(S-)’ 특성자답게 아직 엑스퍼트도 아닌데 검기를 발출해 그에게 날려 보내고 있었다.
펑! 주르륵.
물론 위력은 실제 엑스퍼트의 그것에는 훨씬 못 미쳤지만, 그래도 검기는 검기.
그것을 막은 일우의 몸이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그러니까 이 좋은 기술을 왜 먼저 외치고서 발동하냐고?’
이미 초식이 뭘 뜻하는지 알게 된 일우에게 그런 뻔한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건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저걸 고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개성이라고 해야 할지.”
“전투에 방해가 된다면 고집 아니겠어요? 배도현 씨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뭐,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편하긴 하잖아? 솔직히 저 ‘초식명’인지 뭔지를 외치지 않으면 막아내기 버겁기도 하고.”
“실력이야 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죠. 어떻게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퍼플 길드의 길드원 수는 몇 명의 추가 인원을 받아들였음에도 30명을 넘지 않았다.
물론 전투 직군 기준이고, 전투가 주가 아닌 생산직, 예술직, 행정직 등의 플레이어들은 백여 명 가까이 길드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었다.
그들은 이곳이 아닌 퍼스트 길드의 각종 공방과 상회, 행정처 등에서 이미 실전 업무에 투입된 상태였다.
어쨌든 30명도 안 되는 전투 직군 길드원은 모두 전체 랭킹 50위권 안의 랭커들이었다.
그리고 그 랭커들의 모임에서도 왕천명의 실력은 발군인지라, 그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이들은 열도 되지 않았고, 대등한 대결이 가능한 건 다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조금 그럴싸해지긴 했네.”
“그렇죠? 처음에는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그 다섯에 속한 미국의 격투가 루이스 블레이크와 한국의 환수 소환사 한서현이 대결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킬을 통한 무공의 재현이라. 어쩌면 실제로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배도현 씨가 그랬잖아요. 스킬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고. 스킬을 직접 체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고.”
그리고 그 말에 따라 가장 먼저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왕천명이었던 것이다.
아카데미 때부터 각종 스킬을 현실 검술과 접목시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스스로 그 가치를 까먹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게요. 그걸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저 대결을 이기긴 힘들겠죠.”
어느새 연무장에는 사람이 다섯으로 늘어나 있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면 일우가 넷으로 늘어나 왕천명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너덜너덜해진 왕천명이 연무장에 쓰러지는 것으로 대결이 끝나고 말았다.
퍼플 길드 내에서 왕천명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이는 오직 둘.
배도현, 그리고 바로 일우였다.
“비겁한 자식. 또 비기를 사용하다니!”
왕천명이 분하다는 눈빛으로 일우를 쳐다봤지만, 일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었다.
“너도 특성을 쓴 건 마찬가지잖아. 정말로 나를 이기고 싶으면 그 쓸데없는 초식명 외치기를 그만두든지.”
“이건 협객이자 무인의 도리라고! 정정당당한 대결을 벌이기 위해 마련된 유서 깊은 격식이란 말이다. 어째서 이런 남자, 아니 무인의 로망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이야?”
오히려 일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왕천명의 표정을 보며 한숨을 내쉰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에휴, 나도 모르겠다. 여기가 무협 세상도 아니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는 나조차 이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네.”
“흥. 내 무공이 완성되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
“하여튼.”
일우가 손을 내밀어 왕천명을 일으켜 세우고는 함께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뭐, 저걸 보면 일우 씨도 괴물 같긴 하네요.”
“그러게. 처음에는 어째서 저런 평범한 녀석이 부길마가 됐는지 조금 불만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럴 만하구나 싶네.”
“솔직히 1 대 1이면 아직은 상대할 만한데, 분신까지 생각하면 답이 없네요.”
“나중에 얼마나 강해질지 감도 안 잡히는군.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2차 전직을 마치면 환수의 숫자도 더 늘어날 테니 말이지.”
“글쎄요. 셋으로도 벅찬데 나중엔 어떻게 애기들을 다뤄야 할지 걱정이에요.”
강해진 일우의 모습에 감탄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들 또한 커넥트 최상위 랭커들.
어떤 식으로 얼마나 강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길어지네요.”
“길마 얘긴가?”
“네. 벌써 보름 가까이 된 것 같네요.”
배도현은 퍼스트 길드의 개인 의뢰와 2차 전직을 위해 자리를 비운다고 길드원들에게 전해둔 상태였다.
실제론 영지전과 애쉬튼 백작가 내전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상태였지만 말이다.
“뭐, 원래부터 얼굴 보기 힘든 사람이었잖아. 말해둔 게 있으니 정말로 전직하고 나서야 돌아오겠지.”
“역시 그렇겠죠? 바쁜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길드에 얼굴을 자주 비춰줬으면 하는데. 아쉬워요.”
한서현이 살짝 입술을 내밀고는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의 소환수 은별이를 쓰다듬었다.
“흐흐흐, 역시 그런가?”
“뭐, 뭐가요?”
블레이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리자 서현이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아니야.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고.”
“아니거든요!”
서현이 발끈하며 일어서려는 그때.
그들의 눈앞에 전체 공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공지 사항]공개된 플레이어 중 최초로 ‘배도현’ 플레이어가 2차 전직을 마쳤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시길 바랍니다.
-2차 전직자가 탄생하여 메인 퀘스트 [구원자의 등장]과 관련, 연계 퀘스트 [구원자의 증명]이 생성되었습니다.
-각 자유 도시에 [졸업의 탑]이 등장합니다.
-[졸업의 탑]에서는 각 전투 클래스(직군)과 비전투 클래스를 위한 시험과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파티 플레이와 길드전용 레이드 시험도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껏 도전해 주세요.
-[졸업의 탑] 마지막 층에는 오픈기념 이벤트 [교관을 이겨라]의 교관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기지 못하더라도 시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클래스라도 졸업자가 탄생한다면, 신규 플레이어들을 위해 적용되었던 [자유 도시 이동제한]이 풀리고, 본격적인 메인 퀘스트에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주의!] 시험 클리어에 실패할 경우 재도전까지 쿨타임이 필요합니다.
-추천 도전 레벨 : 최소 50, 2차 전직 완료 후.
“대박.”
“이건 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든 블레이크가 관람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게요?”
“경험치하고 숙련도, 마저 올려서 전직해야지. 분명 저것도 졸업 순서가 탑에 새겨질 텐데, 밀릴 수는 없잖아?”
“칫. 저도 같이 가요. 아니 이참에 몇 명 모아서 던전이라도 돌까요?”
“그것도 좋겠지.”
잠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퍼플 길드의 랭커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제 슬슬 플레이어들이 활약해 줘야 할 시간이 왔어.”
라울이 퍼스트 길드의 회의실에서 달튼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 확실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군. 직접 눈으로 보고 지도하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울 정도야.”
불과 6개월.
일반적인 커넥트 주민이라면 정식 훈련을 받는다 해도 병사 한 사람 몫을 하기 힘든 짧은 시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자유 도시를 찾은 수만 명의 이방인들은 수련기사의 수준을 넘어 숙련자의 단계(엑스퍼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게다가 조건만 만족한다면 누구나 엑스퍼트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라니!
달튼은 점점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커넥트를 점령하거나 차지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알잖아, 저들에겐 큰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라울의 말이 아니라도 알고 있었다.
결국, 저들은 이방인.
때가 되면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하고, 진짜 자신의 몸이 아니라서 그런지 감각적인 부분이나 숙련도에 있어선 주민들을 따라올 수 없었다.
“하지만 쉽게 볼 수도 없지. 기사급의 실력자 수만이 한꺼번에 대륙에 퍼져나가다니. 잘못하면 힘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는 일이잖아.”
“그래.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플레이어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고. 저들의 일부만이라도 우리의 뜻에 따라준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우리가 저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라울의 말과 표정에서 기이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 이 느낌이었지.’
달튼이 라울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어리지만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생각하는 바도, 지향하는 바도 일반적인 귀족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라울의 곁에 있기로 결심했고, 지금 이 순간 달튼은 그 이유를 조금은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생각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 이미 몇 수 앞은 내다보며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있어.’
그가 생각하기엔 전혀 쓸데없는 일(예를 들면 쓸모없는 영지를 사들이거나, 손님도 없는 곳에 건물을 짓거나 하는 것)들도 지나고 나서 보면 다 큰 그림의 일환이었다.
처음 아카데미에서 라울을 만났을 때는 그저 명문가 출신의 돈 많은 귀족 자제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7개의 남작령을 지닌 자작이고, 4개의 자유 도시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며, 무려 500이 넘는 엑스퍼트급 기사의 주인이자, 200 아머 유저의 마스터였다.
‘거기에 이제는 플레이어들까지 손에 쥐고 흔들려고 하다니.’
일반적인 잣대로 라울을 평가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래서 결국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해.”
“오케이. 맡겨 줘. 솔직히 너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서 이방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바로 나일 테니까.”
“그래.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는 멍청한 녀석들에게 한 방 먹여주자고.”
라울과 달튼이 주먹을 툭 맞댔다.
‘앞으로가 재밌겠는걸?’
어느새 달튼의 표정에선 부담감 보다는 기대감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플레이어 폭탄이라는 환상적인 카드를 손에 쥔 달튼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지도를 내려다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