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179
제179화
높이 50m 정도의 작은 언덕 위.
라울과 기사들이 말 위에서 주변 지형을 둘러보고 있었다.
“다행히 정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대칭을 이룬 지형이군요.”
피어스가 [원거리 정찰(B)]스킬을 해제하며 말했다.
“완전히 공개된 모의전인데, 여기까지 손을 쓴다면 할 말 다 한 거지.”
아무리 레슬리 왕국이 마법 왕국이라 해도, 마법사 협회 자체가 레슬리 왕국 소속은 아니었다.
스카일러 마탑 하나의 영향력에 완전히 휘둘릴 정도면 협회라는 간판을 내려놔야 할 테니까.
언덕에서 바라본 전장의 지형은 복잡하면서 단순했다.
그들이 있는 언덕 아래로 커다란 숲이 펼쳐져 있었고, 숲이 끝난 곳부터 넓은 평원이 시작되었다.
평원이라지만 각종 지형을 뭉쳐놓은 것처럼 괴상했다.
얕은 시냇물이 흐르는 주변으로 자갈밭이 펼쳐져 있는 곳.
긴 갈대밭이 시야를 가리는 곳.
갑자기 냇물이 넓어져 강이 되어버린 곳.
심지어 모래사장과 진흙으로 된 갯벌까지 존재했다.
“하여튼 마법사 놈들. 정말 쓸데없이 다 모아놨네요. 어차피 전장은 정해져 있는데 말이죠.”
제이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곳을 바라봤다.
전장의 한가운데.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이곳으로 달려가라는 듯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자연의 힘을 빌려 쓰는 마법사들의 경우, 주변에 관련 지형이 있는 게 유리할 테니까. 마탑 간의 모의전이라면 다른 곳도 유용하게 쓰였겠지.”
라울도 다리오 실장에게 지형정보를 전해 받은 이후, 혹시 이용할 만한 곳이 없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재미없는 황무지였다.
‘그편이 더 임팩트 있을 테니까.’
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라울에게 오늘 전투는 일종의 경고였다.
퍼스트 길드, 그리고 라울이란 존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이 제 살 깎아 먹기를 하고 있는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뼈저리게 느껴봐라.’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닥쳐올 다음 단계의 게이트 웨이브와 제국의 침공에서 레슬리 왕국은 처참하게 당하고 말 테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레슬리 왕국에서 퍼스트 길드의 몸값을 높인다는 목적도 있었다.
“모두 행군 준비. 계획대로 진행한다. 어리석은 놈들이 감히 누구에게 시비를 건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네! 눈도 마주치지 못하도록 박살을 내버리겠습니다.”
필립이 주먹을 가슴에 대며 말했다.
“크~으. 전투 마법사라니! 오랜만에 피가 끓는 느낌입니다.”
“전투에만 들어서면 항상 피가 끓어올라서 날뛰는 건 아니고?”
“크흠. 그건 투지 아닙니까, 투지!”
“하여튼 이번에도 제멋대로 날뛰다가 리타이어하면 가만 안 둔다.”
제이크의 말에 필립이 핀잔을 주자 그가 억울하다는 듯 라울을 바라봤지만, 라울은 그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 진짜. 이번엔 제대로 한다니까요?”
투덜거리는 제이크를 뒤로하고 라울 일행이 언덕을 내려갔다.
오늘의 전투를 위해 라울은 정예들을 끌어모았다.
필립, 제이크, 피어스, 케인까지 최상급 엑스퍼트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간부와 아머 유저들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전장에 투입되는 인원들도 있었으니.
과연 그들이 어떤 활약을 보일 수 있을지 라울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 * *
다각, 다각.
250명의 기사단이 천천히 행군하여 숲을 지났다.
그리고 기사단 진형 가운데서 마법사들이 철통같이 보호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후우….”
30대로 보이는 젊은 마법사가 긴장했는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든든한 기사들에 둘러싸여 걸어간다 한들, 전투를 앞둔 그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지는 못하는 듯했다.
“걱정되느냐?”
“엇! 아, 아닙니다.”
페리도 탑주가 묻자 젊은 마법사가 손을 저으며 부정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페리도는 그저 그의 등을 살짝 토닥이며 격려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탑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바람에 이런 젊은 마법사들까지 전장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조금 진정되었는지 살짝 안색이 돌아온 젊은 마법사.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밝지 못했다.
“저,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그의 눈동자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가 바로 그 스카일러 마탑이잖습니까? 그리고 아군은 마법사도 아닌 기사들만 가득하고, 이상한 이들도 섞여 있고 말입니다.”
그의 말처럼 50인의 마법사 사이에는 도무지 마법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복장 자체는 말에 올라 있는 기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갑옷 차림이었다.
페리도 탑주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모의전이 시작되기 전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을 것이다.
“걱정 말거라. 이번 전투에서 우리가 질 일은 없을 테니까.”
“네…?”
젊은 마법사의 반문에 페리도 탑주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숲의 경계에 도달했다.
저 멀리 맞은편 숲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카일러 마탑 측의 병력도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예상했던 대로였다.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기사단 위주의 병력이 어느 쪽에서 다가올지 알 수 있을 터.
만약 정말 진지하게 이길 생각이었다면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숲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정거리에 들어서면 집중포화를 날렸겠지.’
하지만 자존심인지 자만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정정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라울이 바라보는 가운데 정석적인 진형을 포진하고 있었다.
방패병이 전열을 형성하고, 좌우 날개에 기사들을 배치.
그리고 마법사들은 숲의 경계 바로 앞쪽에서 대기.
기습의 묘는 없겠지만, 진형에 다가가기 전에 마법으로 이쪽을 녹여버리겠다는 생각이 뻔하게 읽혔다.
‘뭐 그렇다고 이쪽도 다르게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라울도 마찬가지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굳이 전장을 우회한다거나 기책을 사용해 적들을 교란할 생각은 없었다.
오로지 힘과 힘의 맞대결.
“기사단 앞으로! 후방 마법사들도 본대와 함께 사정거리까지 진군한다!”
다각, 다각.
푸른 숲을 벗어나 퍼스트 기사단이 천천히 말을 몰아 나갔다.
전투를 앞두고 있었지만,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유유자적하게 말 위에서 몸을 푸는 기사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양측의 거리가 500m 이내로 좁혀들었다.
이제 슬슬 몇몇 마법의 사정거리 내에 진입했다.
슈우웅, 콰과광!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라울의 머리 위쪽에서 십여 개의 화염 마법이 폭발했다.
‘쓸데없는 짓 하기는.’
겁이라도 주려던 것이라면 몰라도, 실질적인 위력 따윈 없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전장을 경험한 전마들은 큰 소리와 불꽃에도 아무런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전투 준비!”
라울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잽싸게 진형을 갖추며 전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250의 기사들은 70명씩 나뉘어 세 개의 추행진(삼각형 모양의 돌격 진형)을 갖췄다.
각 진형의 선두에는 중앙 라울, 좌익 필립, 우익 제이크가 섰다.
그리고 원거리에 특화된 기사들과 피어스는 후방에 남아 지원사격 및 마법사들의 보호를 맡았다.
진형이 모두 갖춰졌지만, 바로 돌격이 시작되진 않았다.
쿵. 쿠궁.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 이곳 모의 전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기사들의 인벤토리에 담겨 있던 1m 크기의 석재블록이 황무지 한복판에 쌓이기 시작했고, 자그마한 요새가 완성되기까지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헛, 도대체 공간확장 주머니가 얼마나 많은 거지?”
아무 생각 없이 진형 뒤쪽에서 긴장하고 있던 페리도 마탑의 마법사들이 입을 쩍 벌리고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페리도 마탑주도 감탄 어린 눈초리로 간이 요새를 바라봤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어떻게 흉내를 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3분이라니.
커다란 석재를 장난감 다루듯 한 손으로 집어 들고 휙휙 뛰어다니는 기사들을 바라보니 없던 믿음도 생길 것 같았다.
‘우리도 이런데 저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페리도 탑주는 요새의 성벽 위에 올라 적진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어이가 없군.”
타데우스 스카일러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기사들만 잔뜩 끌고 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저런 쇼까지 벌이다니.
“드로이젠.”
“네!”
페리도 마탑의 배신자 드로이젠이 타데우스의 부름에 재빨리 달려와 대답했다.
짝!
타데우스가 그의 뺨을 후려치고는 말했다.
“어째서 네 얘기와 다르지? 페리도 마탑에 저렇게 마법 주머니가 많다는 건 왜 보고하지 않았나?”
“…저건 마탑의 물건이 아닙니다. 저게 전부 마탑 것이었으면 벌써 탑주가 처분했겠지요.”
뺨이 붉게 달아오른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흥. 탑주가 숨겨놓은 것을 네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고? 하여튼 쓸모없는 놈 같으니.”
타데우스가 꺼지라는 듯 손짓하자 드로이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뒷 열로 물러섰다.
‘제길. 늙은이가 무슨 야로를 부린 거야?’
겉보기와 달리 드로이젠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엉뚱한 놈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그가 세워놓은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었다.
‘어쨌든 이번 전투가 끝나면 다시 기회가 올 테니까.’
그는 원망스런 눈으로 그의 예전 스승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부관이 다가와서 물었지만, 타데우스는 적진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고 자시고 우리는 우리 계획대로 간다. 이대로 기다리다 적이 달려들면 요격하란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굳이 요새까지 세운 적들에게 먼저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거리를 유지하면 좋은 것은 당연히 스카일러 마탑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에 요새를 세운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마법 방어진도 설치되지 않은 저런 간이 요새 따위는 마법 포격의 타깃에 불과했다.
‘설마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나?’
그건… 좋지 않았다.
왕국 전체에 중계되는 이 모의전에서 한낱 기사들에게 시간을 질질 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긴다 해도 아버지, 아니 탑주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하리라.
‘그래도 먼저 움직이기는 좀 그런데….’
그런 타데우스의 고민을 날려 보낼 소식이 들려왔다.
“적 기사단이 움직입니다!”
“모두 사격 준비!”
타데우스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 * *
간이 요새의 역할은 별것 없었다.
혹시나 적의 기사들이 우회하여 아군 후방을 노리는 것을 막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차지해 사정거리를 늘리는 것.
어차피 전투는 본대끼리의 충돌로 결정 날 것이고, 라울은 그저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아군이 상하지 않도록 조치했을 뿐이다.
‘있는 건 써먹어야지. 그리고 겸사겸사….’
이 전투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은 장면을 남겨두는 것도 필요했고.
“정렬 끝났습니다.”
필립의 보고에 라울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전원 아머 발동!”
챠라라락!
말에 올라있는 퍼스트 기사단의 갑옷이 번뜩이며 화려한 황금빛 매의 문장과 푸른 문양이 각인된 새하얀 파워아머가 나타났다.
저번 백작가 결전에서 노획했던 것의 수리를 마치자 총 180개의 파워아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구난방이었던 파워아머들을 새로이 도색, 도장 작업까지 끝내자 이제 정말 하나 된 아머 유저 기사단이 완성된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라울이 다시 외쳤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목표는 적진의 분쇄! 철저하게 적을 쓸어버리도록. 전원 출진!”
“와아아!”
함성과 함께 퍼스트 기사단이 진격을 시작했다.
기사들로 이뤄진 세 개의 쐐기가 적진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전력 질주하는 말의 속도는 60~70km에 달한다.
아무리 기사를 태웠다 해도 500m의 거리를 돌파하는 데는 40초에서 50초 정도면 충분했다.
결국, 이 전투는 1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에 결정될 것이란 얘기였다.
그리고 기사단의 접근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스카일러 마탑의 진영이 밝게 빛났다.
슈우욱! 화르륵!
수십, 수백 개의 마법이 전장을 가로질러 퍼스트 기사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