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21
제221화
요요한 붉은빛을 내뿜던 커다란 보석, 최후의 결계석은 전투가 끝나자 빛을 잃었다.
빛을 잃은 결계석은 그냥 커다란 바위덩어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최후의 결계석 앞쪽에 자리 잡은 목조 건물.
바로 라울이 통째로 꺼내 설치한 임시 지휘실이었다.
결계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은 전투가 끝나고 바로 회수했기에, 목조 건물 몇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임시 지휘실 안.
라울 일행과 로렌스는 용사 파티와 마주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라울 자작님. 그리고 로렌스 경.”
키에라 여신관과 시마르 이하 파티원들이 허리를 푹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물론 코넬리우스는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뻣뻣하게 서 있었다.
“제게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을 살려준 건 나가족 대족장 라크네샤의 결정이니까요.”
라울이 공치사가 싫다는 듯 별 감흥 없이 대답했지만, 키에라는 다 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들에게 들었습니다. 라울 자작님에 성소의 재봉인을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면서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아닙니까?”
대족장의 선택은 포로들의 석방이었다.
그로서도 그들의 성소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방치되는 건 불편했다.
이곳이 그들의 영역이긴 하지만, 삶의 터전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내팽개치고 성소를 지키겠다는 결정을 내릴 정도로 라크네샤는 어리석지 않았다.
물론 포로 해방이 공짜는 아니었다.
라크네샤가 포로를 풀어주는 대신 라울도 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재봉인이 끝나면 인간들을 모두 데리고 성소를 떠나라는 요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라울은 이곳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이곳에 남아 있으라고 하면 대번에 거절했을 테니까.
“흥. 몬스터 따위와 협상이라니. 어이가 없군.”
“코넬리우스 경!”
키에라가 그를 노려보며 소리치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오.”
“분명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한 번만 더 약속을 어기면 진짜 내보내겠어요.”
“칫.”
키에라는 코넬리우스를 떼어놓고 오려 했지만, 그가 극구 참석해야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약속을 받고 이 자리에 대동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쫓아내고 싶지만, 그의 뒤에 있는 바타르 교단의 체면을 생각해 억지로 참고 있었다.
“실례했습니다. 일단 이곳을 재봉인하려면….”
키에라가 깨져나간 결계의 복구와 암흑 게이트 봉인에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설명했다.
“다른 건 어려울 게 없군요. 하지만 키에라님의 말씀대로라면 ‘봉인의 수호자’가 필요하단 얘기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봉인석과 결계에 걸리는 부담을 감당해 줄 수호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말을 꺼내는 키에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재봉인을 실행하면 수호자는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평생, 어쩌면 영원히 봉인의 수호자로서 결계 내부에 머물러야 한다.
임시든 뭐든 현재 결계석의 수호자는 바로 라울의 형인 로렌스.
어떻게 보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이런 희생을 강요한다는 게 너무나 미안했던 것이다.
“그건 문제없습니다. 수호자에 관해선 이미 나가족 대족장 라크네샤와 얘기를 나눴으니까요. 나가족 대전사들 중 하나가 봉인의 수호자 역할을 맡아줄 겁니다.”
원래 이곳은 나가족들이 신성시하는 성소.
기존의 수호자 네마도토치도 바로 나가족의 대전사였다.
그들이 수호자를 자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 다행이네요. 그럼 봉인 절차를….”
“잠깐!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어처구니가 없군. 성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코넬리우스가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당신, 정말로!”
“닥쳐! 난 진심으로 묻고 있는 거다! 정말로 저 미개한 몬스터 따위에게 이 중요한 봉인지를 맡기겠다고? 제정신인가!”
그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그럼 어쩌자고요? 당신도 들었잖아요? 이곳은 나가족의 영토고, 대대로 나가족들이 지켜온 성소라고. 그들이 아니면 누가 이곳을 지킨단 말인가요?”
“참고로 말하자면, 나가족 대족장은 인간이 새로운 수호자가 되는 걸 꺼려하더군. 봉인이 끝나면 인간들이 그들의 영역을 떠나주길 요청했다.”
라울이 키에라의 말에 첨언하자, 코넬리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이미 신께서 적임자를 점지해 주셨거늘 어째서 다들 모르는 척하는 거지? 몬스터가 아니지만 몬스터들이 받들어 모실 만한 수호자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코넬리우스가 대놓고 로렌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X새끼가.’
라울은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어차피 로렌스 경은 이미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개X식이!”
제이크가 튀어나가며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로렌스가 그를 제지했다.
“그래서?”
로렌스가 차가운 말투로 코넬리우스에게 물었다.
그의 어깨 위에는 여전히 반투명한 두 개의 팔이 솟아 있었다.
아직 컨트롤에 익숙하지 않아서 팔을 숨기지 못한 것이다.
“신께서 당신을 수호자로 점지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곳의 봉인석이 깨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 당신 하나만 희생하면 커넥트 대륙의 모든 인류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고민할 게 뭐 있나?”
“신의 뜻이란 말인가?”
“그래. 설마 제 한 목숨이 아까워 인류를 배신하는 겁쟁이는 아니겠지? 어차피 그 몰골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도 웃기는 얘기 아닌가. 크크.”
코넬리우스는 자신이 틀린 말이라도 했냐는 듯, 뻔뻔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세우고는 좌중을 둘러봤다.
‘이놈은 여기에 묶어둬야 해. 몬스터와 동맹을 맺어? 협상을 한다고? 이보다 큰 이단이 어딨단 말인가? 그리고 이곳을 벗어나면 라울 놈도 반드시…!’
그때 잠자코 있던 라울이 입을 열었다.
“남의 일이라고 아주 쉽게 말하는 군. 만약 당신이 수호자가 된다면 그렇게 쉽게 희생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하, 이런 불신자 같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만약 신께서 그런 숭고한 임무를 내게 부여하신다면, 이 한 몸 바치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코넬리우스가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듯 가슴을 치며 연기했다.
“성기사 코넬리우스. 당신이 내뱉은 그 말, 정말 진심인가? 정말 수호자가 되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고?”
라울이 살짝 인상을 쓰며 재차 물었다.
‘하하하, 백 번을 물어봐라. 내가 말을 바꾸는가.’
형을 어떻게든 빼돌리려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생각이겠지만, 코넬리우스는 그런 뻔한 수작에 놀아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최대한 경건하고 신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신께 맹세코! 내게 그런 임무가 부여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목숨이 아까워 도망칠 생각만 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그의 과장된 행동과 표정을 본 회의실의 인물들이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봐도 진심이라기 보단 라울 형제를 조롱하기 위한 말이었으니.
하지만 라울은 딱히 신경쓰지 않는 듯 담담하게 로렌스에게 물었다.
“들으셨습니까, 형님? 본인이 원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신의 뜻이라는데 어찌하겠는가. 네 말에 따르도록 하지.”
두 형제의 담담한 대화가 이상하게 코넬리우스의 귀에 거슬렸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휘우웅.
지휘실 내부에 훈훈한 미풍이 일었다.
근원지는 바로 로렌스.
그의 몸에서 붉은빛 무언가가 빠져나와 지휘실 밖으로 흘러나갔다.
결계석의 가호가 거둬진 것이다.
“하아.”
로렌스는 몸을 한가득 채우고 있던 힘이 빠져나가자 허탈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응…? 어떻게 된 거지?’
그런데 이상했다.
이곳에서 얻은 모든 힘을 잃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마도토치 님이 남긴 힘이 남아 있다니…?’
사라진 것은 결계석이 추가로 부여했던 가호의 힘뿐이었던 것이다.
그가 놀란 눈으로 라울을 바라보자 라울이 슬쩍 윙크를 날렸다.
어쨌든 그렇게 로렌스는 임시 수호자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의 몸을 빠져나간 결계석의 가호는.
휘리링.
“음?”
코넬리우스가 무의식중에 신음을 내뱉었다.
뭔가 커다랗고 따뜻한 힘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아앗.
그리고 다음 순간, 코넬리우스의 몸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자, 잠깐! 이게 무슨?”
“오오!”
“새로운 수호자가 탄생했다!”
코넬리우스가 결계석의 수호자로 간택되었다.
* * *
‘크크크, 푸하하!’
당황한 표정으로 굳어버린 코넬리우스를 바라보며 라울이 속으로 박장대소했다.
그의 눈앞에는 새롭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준플레이어 ‘로렌스 드 애쉬튼’이 수호자 직을 포기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성기사 코넬리우스가 결계의 수호자가 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플레이어 라울의 중재가 성공했습니다.
-3단계 고대 봉인지 A의 수호자가 로렌스 드 애쉬튼에서 성기사 코넬리우스로 변경되었습니다.
-시나리오 NPC ‘용사 파티의 성기사 코넬리우스’가 시나리오 NPC ‘봉인의 수호자 코넬리우스’로 변경됩니다.
‘고맙다, 코넬리우스.’
사실 라울은 조금 곤란한 상황이었다.
형인 로렌스가 수호자 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 의도치 않게 전해 받은 힘이지만, 계승자로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의 머릿속엔 전대 수호자인 네마도토치의 가르침이 심어졌다.
형은 네마도토치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심했고, 수호자로서의 의무도 이어받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라울로서는 기도 안 차는 얘기였다.
봉인의 수호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미 카르데나스를 통해 생생히 전해 듣지 않았던가?
결국, 끈덕진 라울의 설득 끝에 로렌스가 내민 조건은 단 하나.
자발적으로 수호자의 역을 맡을 믿을 만한 실력자를 데려올 것.
원래는 나가족 대전사 중 하나를 선택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 훌륭한 지원자(?)가 나서주지 않았는가?
‘아마도 형은 나가족 대전사에게 힘을 넘겨주지 않았을 거야.’
라울에게 한 약속은 핑계고, 실제론 못미덥다며 자신이 계속 수호자로 남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라울에게 험한 소리를 하고, 시비를 거는 코넬리우스를 보며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둘째 형도 그렇게 호인은 아니니까.’
큰형 딜런이 호방한 성격이라면, 둘째 형 로렌스는 냉철하면서 칼 같은 성격이었다.
아마 내색은 안 했지만, 이번 일이 아니었더라도 코넬리우스를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자, 이제 봉인을 지킬 수호자도 결정되었으니까 재봉인 절차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서두르도록 하죠. 암흑 게이트가 오래 노출될수록 흘러나오는 마기도 많아질 테니까요.”
라울이 말을 꺼내자 키에라 여신관이 옳다구나 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럼 결계 내부부터….”
“잠깐!”
뜻하지 않은 사태에 정신줄을 놓고 있던 코넬리우스가 외쳤지만.
짝짝.
“바로 시작합시다. 언제 또 제국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서두르죠.”
“네, 자작님!”
“기사분들 몇 분은 저를 따라오세요. 결계석의 위치를 조절해야 합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이건 뭔가 잘못됐어! 그, 그래! 나가족! 분명 나가족이 인간 수호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잖아? 역시 봉인을 수호하는 건 원주민인 그들의 역할이지. 그럼.”
아까 본인이 했던 말은 헛소리였는지, 순식간에 말을 바꾸는 코넬리우스.
“샤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족.”
그때 나가족 대족장 라크네샤가 지휘실로 들어왔다.
그는 대전사 둘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서도 코넬리우스처럼 붉은빛이 은은하게 어려 있었다.
아무래도 코넬리우스 하나로는 못 미더웠는지, 결계석이 수호자를 두 명 더 선택한 모양이었다.
“샤아. 고맙다. 인간 대전사여. 그분의. 유지는. 우리가. 잘 이어받도록. 하겠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은 잘 정리해서 나중에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로렌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대족장 라크네샤가 네 팔을 모아 합장하며 예를 표했다.
“야이 XXX들아! 감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몬스터와 짜고 나를 이런 함정에 빠뜨리다니! XXX! 내 반드시 네놈들을 고발하여 이단심판을 받게… 웁, 웁!”
나가족 수호자들이 코넬리우스의 붙들어 입을 막고는 결계석 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코넬리우스의 경지도 낮지 않은데 손쉽게 힘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했다.
“샤아. 신을. 모시는. 자라고. 들었는데. 인간족의. 사제는. 원래. 저렇게. 입이. 험한가.”
“그럴 리가요. 아주 특별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니 신께서 선택하지 않으셨겠습니까.”
“샤아. 그렇군.”
그리고 재봉인 절차는 순조롭게 이뤄졌다.
성녀의 신성력으로 추가된 봉인석에 결계까지 설치되자, 골짜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던 신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시 결계가 파괴되지 않는 한, 봉인지가 다시 세상에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샤아. 고생했다. 인간족. 성녀여. 앞으로. 이곳은. 우리가. 철저하게. 지키겠다.”
그렇게 금역 내의 고대 봉인지가 재봉인되며 사건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라울은 여전히 찝찝했다.
‘일단 이곳을 막아내긴 했는데, 장벽은 어떻게 되는 거지?’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렸던 장벽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