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와아아아!”
“빈시스 단장 최곱니다!”
커든 평원 앞은 병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십만 병사들이 마주한 양 진영의 가운데.
넓은 평지 위에는 오로지 두 기사만이 서서 검을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상공에 펼쳐진 영상 마법을 통해 전 병사들이 지켜볼 수 있었으니.
생전 처음 마스터 간의 대결을 구경하게 된 병사들과 기사들은 감탄과 응원의 함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굳이 이런 요식행위가 필요할까요?”
케인이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기사들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해야 할까?”
영지전에서나 볼법한 기사 대전이 펼쳐지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몰랐다.
‘자존심 강한 5대 무가가 이렇게 공개적인 전장에 함께 선 것은 거의 처음이니까.’
국가의 명운을 건 싸움에서 무슨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이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다.
실제로 맥닐 후작 측 마스터가 기사 대전을 신청했을 때, 일부 지휘관들은 굳이 받아주지 말고 전투를 개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라울도 그중 하나였고.
‘초인과 기사 전력에서 앞선다는 장점을 살리려면 단기 일점 돌파를 통한 전투의 조기 종결이 최선이니까.’
괜히 저들의 의도에 휩쓸려 변수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의견은 검공과 가주들에 의해 거부당했다.
명예.
기사들은 물론이고 명문가라면 누구나 원하는 최고의 트로피.
그걸 드높일 기회가 왔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라울도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아버지까지 기사 대전에 찬성하실 줄은.’
어쩐지 조금은 서운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기사대전은 성사되었다.
새롭게 마스터라는 경지에 오른 이들은 자신의 실력을 만천하에 뽐내고 싶어 했고, 가주들 또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었으니.
“어차피 이길 전쟁이라면, 이런 여흥도 괜찮지 않겠는가.”
뭘 그리 걱정하느냐는 검공의 말에 라울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작된 ‘마스터’ 기사 대전.
벌써 세 번째 대결이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앞선 두 번의 대결은 연합군의 패배였다.
그리어 후작가, 템플턴 공작가의 마스터가 맥닐 후작가의 한 마스터에게 연속으로 꺾인 것이다.
다행히 목숨을 잃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패배를 선언한 상대를 끝까지 공격하는 것은 기사의 명예를 저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쪽에서 대기하던 마스터들을 자극하지 않고 대결을 이어가기 위해서겠지만.’
그렇다고 패배한 마스터가 무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초급 마스터 간의 대결.
검술의 우위를 가리기엔 서로 실력이 비등했고, 결국 오러를 다루는 실력과 오러의 양이 승패를 결정지었으니.
패배한 이는 마나로드에 내상을 입어 당분간 오러를 쓰기는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쯧쯧. 이렇게 될 게 뻔했건만….’
라울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순수한 실력으로 붙었다면 대결의 결과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작가의 마스터들이 감춰두었던 한 수.
그건 바로 ‘황제의 낙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걸 변형시킨 문신 강화술이었다.
아마도 밝혀진 부작용 때문에 안전장치를 추가한 모양이지만.
‘…효과는 없지.’
베이스가 황제의 낙인인 이상 아무리 변형한다 해도 주박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다.
이미 전생의 수많은 기사들이 그걸 증명했으니.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모르니 저리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이쪽의 마스터 둘이 당했고, 현재 적 마스터를 상대하는 이는 템플턴 공작가의 기사단장 가운데 하나인 빈시스.
확실히 앞선 마스터들보단 실력이 앞섰고, 후작가의 마스터를 연신 몰아붙이고 있었다.
“내가 졌소.”
그리고 약간의 대결이 지나고, 후작가의 마스터는 재빨리 패배를 선언했다.
“와아아!”
첫 승리에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지만, 마스터 빈시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분명 여력이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하다니….’
덕분에 후작가의 마스터는 딱히 부상도 없었고, 그저 마나를 소모한 정도로 되돌아갔다.
“와, 얍삽한 거 보소!”
조쉬가 혀를 찼다.
세 번의 대결 만에 이쪽은 마스터 둘이 전력 이탈했고, 저쪽은 잃은 게 크게 없었다.
얕은 수일지 몰라도 확실히 후작 측이 이득을 챙겨간 것이다.
그렇게 세 번의 대결이 더 진행되었다.
결과는 2 대 4.
맥닐 후작가 측의 우세였다.
그리고 두 번의 승리도 실질적으론 후작 측의 기권과 다름없었으니, 승부는 일방적인 듯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후작가의 마스터를 본 라울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놓고 나오겠다?’
놈은 후작가의 마스터가 아닌 제국의 마스터였다.
그의 몸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흑마기가 그걸 증명했다.
푸확!
“이런!”
그리고 처음으로 유혈사태가 생겼다.
랜달가의 마스터 리포크의 허벅지가 반쯤 갈라진 것이다.
“우습군.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목숨 걸고 대결을 펼칠 배짱 있는 놈은 아무도 없나?”
암묵적인 금기를 깨버린 자칭 후작가의 마스터는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리고 그가 순간적으로 내비친 기운은.
‘최소한 마스터 중급 이상.’
다들 그걸 눈치챘는지, 안색이 굳어졌다.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중급이상의 마스터는 검공과 랜달 백작뿐.
하지만 고작 이름도 없는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검공이나 명문가의 가주가 나서기엔 격이 맞지 않았다.
아마 놈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저렇게 도발을 펼치는 것일 테고.
“아무도 없는가? 흥, 그럼 당신은 어떤가, 멜빈 백작! 명문 무가라는 애쉬튼 백작가의 가주 나으리도 내 검을 피할 생각인가!”
“……!”
순간 가주들과 마스터들이 모여 있는 지휘부가 술렁였다.
‘이게 진짜 목적이었나?’
어쩐지 마스터 숫자도 밀리는 쪽에서 오히려 기사 대전을 신청하더라니.
분명 연합의 총사령관은 검공이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누구인가 하면, 당연히 멜빈 드 애쉬튼 백작이었으니.
가장 많은 기사들을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무려 초인 열다섯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퍼스트 자작령은 대외적으론 애쉬튼 백작가 산하 영지이므로.)
게다가 마스터에 오른 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으니.
‘아버지를 꺾어 아군의 사기를 죽이겠다? 혹은 포로로 잡을 생각일지도. 아주 웃기는군.’
고작 마스터 중급 수준으로 누굴 도발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네.”
“멍청한 놈이군.”
“백작님을 상대하겠다고? 백 년은 이르다.”
멜빈 백작의 진짜 실력을 알고 있는 애쉬튼 가와 퍼스트 기사단의 기사들이 황당하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백작과 라울에게 몰려들어 소리쳤다.
“절 내보내 주십쇼! 저 놈의 콧대를 꺾어주겠습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어디 감히 가주님께!”
당연한 얘기지만, 놈이 불러냈다고 멜빈 백작이 진짜 나서는 건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모욕당한 가주를 대신하여 놈을 처벌할 이가 필요하단 뜻.
만약 놈이 이쪽 기사들의 평정심을 빼앗을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성공했다.
광역 도발에 휘말려 기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
‘저놈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건 필립 경 정도려나?’
비슷하게 대결을 펼칠 이들은 머릿속에 많이 떠올랐지만, 이 대결은 비겨서 끝낼 일이 아니었으니.
라울이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봤다.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린 백작의 눈이 라울과 마주쳤고, 그는 라울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라울에게 맡기겠다는 뜻이리라.
“다들 진정하고. 필립!”
“네, 마스터!”
필립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검자루를 쥐고 다가왔다.
“뒤를 부탁한다.”
“네…?”
다가닥, 다가닥.
라울이 전장을 향해 말을 달렸다.
‘역시 저런 건방진 제국 놈은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니까.’
도발에 넘어간 건 비단 기사들뿐만은 아니었다.
* * *
“애쉬튼 백작가의 삼남. 퍼스트 자작령의 주인이자, 퍼스트 기사단의 마스터 라울 드 애쉬튼이다.”
“뭐야, 이 꼬맹이는? 백작가의 가주란 자가 코흘리개 아들놈의 뒤에 숨는단 말인가!”
분명 라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건, 병사들의 사기를 꺾고 라울을 도발해 평정심을 잃게 하려는 수작이리라.
“쯧쯧. 고작 남의 집 곳간을 탐내는 쥐새끼를 상대하기엔 나 하나로도 충분하지.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출신도 밝힐 수 없는 자칭 후작가의 기사!”
“무슨 헛소리냐! 나는 맥닐 후작가의 체인액스 기사단의 수석 기사 커스하트다!”
“웃기는군. 맥닐 후작가 정도나 되는 명문 기사단의 구성원도 모를 정도로 우리를 바보로 아는가? 정말 네 놈이 후작가의 기사라면 이렇게 외쳐봐라. 크라넨 제국 황제는 X새X다!”
라울의 말에 커스하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왜? 못 하겠나?”
“여기서 갑자기 제국의… 황제가 왜 나온단 말인가?”
“그래? 이유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리고 라울이 슬쩍 손을 올리자, 퍼스트 기사단과 병력들이 일제히 외쳤다.
“크라넨 제국 황제는 X새X다!”
순간 커스하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이런 어린노무X끼! 그 불경한 혓바닥을 잘라주마!”
“내 그럴 줄 알았지.”
콰과광!
전장이 오러의 충돌로 인해 진동했다.
커스하트는 맥닐 후작가의 주무장인 배틀액스를 휘둘렀고.
라울은 롱소드를 꺼내들어 ‘인피니티 소드’를 펼쳤으니.
촤락! 챙! 콰과광.
대결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제 주특기도 아닌 배틀액스를 들고 후작가 기사의 흉내를 내는 커스하트 따위가 라울의 검을 제대로 받아낼 리 없었던 것이다.
찌지직. 퍽.
커다란 도끼날의 빈틈을 파고든 라울의 오러가 커스하트의 파워아머에 기다란 자국을 새기고, 견갑을 찌그러뜨렸다.
꿈틀.
커스하트의 어깨 근육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려 했지만, 이내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괜찮겠어?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텐데?”
라울이 가까이 달라붙으며 조그맣게 읊조렸다.
“헛소리 집어치워. 이 정도로 정말 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지만 입과는 달리 그는 배틀 액스를 던져버리고 허리춤의 롱소드와 등에 매여 있던 버클러를 장착했다.
챙! 차자장!
다시 이어진 대결에서는 확실히 전보다 부드러운 공방이 이어졌다.
주무장을 장착한 이점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연합 측의 기사들과 수뇌부 사이에선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저건 제국 검술이잖아?”
“방패 쓰는 법이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후작가의 기사가 제국식 전투술을?”
커스하트는 나름 제국의 특색을 감춘다고 애썼지만, 이곳에는 날고기는 왕국의 기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주적이나 다름없는 제국의 검술을 몰라 볼 리가 없단 뜻이었다.
“후작이 제국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건 비약이 너무 심하지. 그저 허를 찌르려고 제국 검술을 펼치는 것일 수도 있잖은가?”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지 않은가.
조금 나아졌다 한들 라울이 승기를 잡고 있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일부러 라울이 봐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둘 사이에선 알 수 없는 격차가 느껴지고 있었으니.
“목숨이 별로 아깝지 않은 모양이네. 그럼 나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겠지.”
라울의 기세가 돌연 변했다.
촤라랑.
그의 등 뒤에서 무기의 군단이 뛰쳐나왔고, 레그나토르가 발동하며 순백의 날개가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광휘의 아우라가 펼쳐지며 전장을 휘감자, 연합군 병력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신의 사자님이다!”
말에서 뛰어올라 반쯤 허공에 뜬 채, 하얀 날개를 펴고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는 라울의 모습.
정말 신의 사자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이런…!’
커스하트는 자신을 옥죄어오는 신성한 기운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의 몸속에 숨겨둔 마기가 신성력에 반응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길, 이렇게 되면….’
아쉽긴 하지만, 항복을 외치고 물러서는 수밖에.
자신이 뱉었던 말을 뒤집는 것이 되긴 하지만, 어차피 명예 같은 건 왕국 놈들의 사치스런 귀족 놀이의 산물 아니었던가.
“읍…?”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항복을 외치려는 커스하트의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뭔가가 그의 턱을 딱 붙들고는 입을 열수 없게 막아버린 것이다.
“항복은 거절하도록 하지. 네 말처럼 목숨 걸고 끝까지 싸워보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는 라울의 모습에 커스하트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