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55
제255화
둥둥둥둥.
와아아.
수도 투리엄 앞 커든 평원.
수많은 병사들이 흘린 피가 냇물을 이룬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다시 수십만의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후의 전투를 앞둔 지금.
6왕자를 내세운 연합군의 막사에는 왕국 최고 명문가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허허허, 정말로 야전을 선택할 줄이야. 라울 자작, 자네의 예측이 맞았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검공 마르퀴스 드 템플턴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하자 회의장 단상에 서 있던 라울이 고개를 숙여 겸손을 표했다.
“이거 참. 내가 그리 부탁해도 영지를 벗어나질 않더니, 그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아주 자식들을 용으로 키워놓으셨소, 멜빈 백작.”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알아서 컸을 뿐이지요.”
검공이 마주 앉아 있는 멜빈 드 애쉬튼 백작, 라울의 아버지를 보며 칭찬했다.
멜빈 백작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정말로 해준 것도 별로 없거늘.’
그의 등 뒤에는 큰아들 딜런과 둘째 로렌스가 시립해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백작령을 훌륭히 다스리고 있는 딜런.
차기 백작으로서의 통치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어느새 마스터의 경지에도 올랐다.
딜런의 육체적인 발전은 더욱 눈부셔서 이제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몸을 완성했다는 평가였다.
실제로 오러를 다룰 수 있게 된 이후, 오러로 근육을 강화해 기사들의 마나 블레이드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기예를 펼쳤다.
파워아머 없이도 ‘근육 역장’을 만들어내는 그는 어느덧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진짜 초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둘째 로렌스는 장벽에서 전수받은 나가 대전사 ‘네마도토치’의 힘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냈다.
네 개의 팔로 펼치는 애쉬튼 가문의 대검술은 가문의 다른 마스터들도 쉽게 받아내기 힘든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라울은.
‘…말할 필요도 없지.’
언제 자신을 뛰어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이 빨랐고, 이미 백작가라는 틀에서 벗어난 지 오래였다.
라울이 없었다면 지금의 애쉬튼 백작가 또한 없었으리라.
“후작도 오랜만이오. 그대의 오랜 고행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기쁘구려.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드리오.”
회의장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이는 바로 피델 드 그리어 후작이었다.
켄의 아버지이자, 라울의 든든한 후원자인 그가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별말씀을요. 이제 겨우 단초를 잡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모두 저 아이 덕분이지요.”
흐뭇한 표정으로 단상을 바라보는 후작.
염원하던 가문의 창술을 복원하고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인지, 그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허허허, 잘 어울리는구나.’
단상 가운데 서 있는 라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시립해있는 켄(케일리).
두 사람을 한 눈에 담은 후작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공작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
조금은 침울한 기색으로 앉아 있는 이에게 검공이 말을 건넸다.
“상심이 크시겠소. 하지만 승패는 병가지상사. 백작의 가문이 다시 날개를 펼칠 날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오.”
“…위로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허나 가문의 영광도 좋지만, 오늘 저는 제 분노를 풀어야 겠습니다.”
“그 또한 백작의 선택. 건투를 빌겠소.”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검을 고쳐 잡는 이.
그는 바로 허드슨 드 랜달 백작.
얼마 전 이곳 커든 평원에서 대패했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날 패배하여 쫓기고 있는 허드슨 백작을 구한 것이 바로 라울과 그 부하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랜달 백작 진영의 다섯 마스터 가운데 추가로 한 명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으니.
허드슨 백작과 한 명의 마스터, 그리고 흩어졌던 그의 자식들과 살아남은 이들이 연합군에 합류한 것이다.
‘내 오늘 기필코 그날의 치욕을 갚아주고 말리라.’
허드슨 백작이 복수의 칼날을 뽑아든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렇게 회의장 안에는 템플턴 공작가, 그리어 후작가, 애쉬튼 백작가, 랜달 백작가의 중진들이 모여 있었다.
루벤 왕국 5대 무가 가운데 넷이 한데 뭉친 것이다.
아마도 맥닐 후작이 상상했던 최악의 구도가 완성된 것일 터.
하나하나 각개 격파를 노렸던 그의 계획이 흐트러진 것은 전적으로 라울 때문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잘 풀린 느낌인데?’
라울은 단상 위에 서서 회의실에 모인 면면을 바라보며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 이 회의실에 모여 있는 마스터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했으니.
검공과 템플턴 공작가에 새로 탄생한 마스터 6인.
그리어 후작과 후작가의 두 기사단장.
랜달 백작과 살아남은 마스터.
이들만 해도 열둘이었다.
애쉬튼 백작가문에선, 가주 멜빈 백작.
딜런과 로렌스 형제.
골든베어 기사단장 헤세 경.
총사령관 어네스트 드 보겔 자작까지.
총 다섯의 마스터가.
그리고 라울의 퍼스트 자작령에는 간부와 전투단장까지 총 10명의 마스터가 있었으니.
‘마스터만 스물일곱이라니!’
전생에 한창 제국과 전쟁이 진행될 당시, 네 개 왕국 연합의 마스터 숫자가 채 스물이 되지 않았었다.
내전에서 소모된 초인들.
임페리얼 하운드의 공작으로 사라진 유망주들.
제국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이들.
고등급 게이트에 삼켜져 돌아오지 못한 초인까지.
‘초인의 시대’가 왔음에도 계속해서 전력이 깎여 나가며 일정 숫자 이상이 모이질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커넥트 시스템을 활용한 덕분이긴 하지만, 애쉬튼 백작가와 퍼스트 길드에 속한 마스터만 열다섯이었다.
‘거기에 퍼스트 마탑의 나키아와 마법사들, 길드의 초능력자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갖춰진 것이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엑스퍼트급 기사라고 해서 모두 같은 실력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마스터라 해서 모두 비슷한 실력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초인의 경지를 넘어선 이들 간의 격차는 더 클지도 몰랐다.
당장 퍼스트 길드의 초인 전력을 모두 동원한다 해도 검공 한 명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겠지.’
여태까지는 세력을 키우며 다수의 초인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면, 이제 라울 스스로의 실력을 키울 필요가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그를 앞둔 마지막 과제가 바로 눈앞의 왕위 쟁탈전이었고.
라울은 머릿속을 정리한 뒤 본격적으로 회의를 주도해 나갔다.
“보다시피 적들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공성전이 아닌 회전을 선택했습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병력은 오히려 저들이 많다는 점이겠죠.”
현재 6왕자 연합의 병력은 20만 정도에 불과했다.
애쉬튼 백작가(라울)의 기마대 6만.
템플턴 공작가 10만.
그리어 후작가 3만.
랜달 백작가 1만.
다만 그 병력들이 징집병이 아닌 정규병과 용병 위주로 구성된 정예병이었다.
반면 맥닐 후작가와 3왕자 진영의 병력은 총 45만.
최정예라는 왕국 중앙군 4만.
후작가 정규병 10만.
부활하여 다시 집결한 리플 협회의 플레이어 부대 3만.
이를 제외한 병사들은 징집병 위주로 구성된 지방 영주군이었으니.
“숫자상으로는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지만, 실질적인 전력차는 크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3왕자군이 회전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앞서는 병력을 활용하기엔 수성전보다는 회전이 유리하다.
그리고 병력이 더 많음에도 수성을 선택하는 건 스스로 열세임을 드러내는 것이니, 병사들의 사기와도 직결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맥닐 후작은 회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라울이 선택할 작전도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탁.
라울의 지휘봉이 지도상의 한 점을 짚었다.
“적진을 향한 일 점 돌파. 우리 군의 작전 요강입니다. 다만…”
라울의 브리핑이 한동안 이어졌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출전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 * *
‘템플턴이 문제가 아니었군.’
맥닐 후작이 야트막한 구릉 위에서 적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계획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했다.
3왕자의 폭정을 통해 각 가문과 백성들의 불만을 고조시킨다.
다른 왕자들을 놓아주면 분명 반기를 드는 가문이 생길 것이고, 그를 토벌하면서 합법적으로 왕자들의 수를 줄여 나간다.
동시에 그의 걸림돌이 될 만한 가문들의 세를 꺾어놓는 것도 당연했고.
어차피 공작가는 항상 중립을 지켜왔고, 애쉬튼 백작가나 그리어 후작가도 변방에서 중앙의 일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으니 큰 장애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랜달 백작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순간, 그의 계획은 순풍을 탄듯했다.
왕국 최고라는 검공을 자신의 손으로 꺾고, 제국의 도움을 받아 공작가를 무너뜨린다.
그 과정에서 공작가에 숨은 왕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마지막으로 왕성에 짱 박혀 있는 3왕자를 처리한다.
당연히 3왕자 암살의 주인공은 애쉬튼 백작가, 혹은 그리어 후작가.
맥닐 후작은 왕실을 대신해 그들을 토벌하고 마침내 비어버린 후계 자리를 후작가가 차지한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기만 해도 충분한 계획이었고, 성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실제로 공작가를 포위망에 가두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니까.
‘…설마 애쉬튼 놈들에게 발목을 붙잡힐 줄이야.’
도대체 왕국 남서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던 시골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란 말인가?
백작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백작가의 내전이 벌어진 게 고작 1년 전의 일.
그 피해를 복구하고 영지를 정비하기에도 정신이 없었어야 했거늘.
‘그 말도 안 되는 기사단과 마스터의 숫자는 어디서 튀어나온 거냔 말이다!’
후작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적진에 파견한 첩보원과 이방인들의 정보를 통해 대략적인 적들의 전력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를 확인한 후작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만 해도 20명이 넘고, 기사의 수는 만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
그 분석이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절반만 진실이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전력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이미 기호지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이상, 손을 놓는 순간 파멸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예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마스터의 숫자가 많다고 한들 갓 경지를 밟은 조무래기들에 불과했다.
신경 써야 할 것은 검공과 패배자 랜달 백작, 둘 정도뿐이었으니.
샤락.
검은 그림자가 후작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결심이 좀 서셨습니까?”
은색 가면의 사내.
임페리얼 하운드 루벤 왕국 지부장, 실버 제로였다.
불끈 쥔 후작의 주먹에서 옅은 핏방울이 흘렀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폐하께선 충성스런 신하들에겐 언제나 너그러우신 분이니,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
스르륵.
실버 제로의 모습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후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공왕.
크라넨 제국이 제안한 직위였다.
이번 전투에 제국의 초인들이 참전하는 대가로, 맥닐 후작은 왕국을 팔아먹었다.
이제 전투에 승리한다 해도 그가 루벤 왕국의 진짜 왕이 될 일은 없었다.
왕국 북부 일대를 아우르는 자그마한 신생 공국의 왕좌를 약속받았을 뿐이니.
‘하지만 후회는 없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어리석은 왕의 밑에서 의미 없는 봉사를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제국은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일단 전투에 승리하고 임시라도 왕좌에 오른 뒤, 제국과의 문제는 다시 해결해도 늦지 않으리라.
후작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적진을 바라봤다.
‘애쉬튼! 네놈들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자신의 꿈을 무너뜨린 원흉.
애쉬튼 백작가의 막내.
라울만큼은 그의 손으로 직접 목을 따주리라.
“전원 전투 준비!”
맥닐 후작의 노호성에 45만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