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67
제267화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라울 백작.”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앨로드 후작님.”
화려한 응접실.
라울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탄탄한 체구의 남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앨로드 후작.
마커스 왕국에 있는 세 후작 중 한 명이었으며, 가문의 이름을 딴 하마르트 용병기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저번 왕위 쟁탈전에서는 중립적인 포지션을 고집한 덕에 하마르트 후작가는 별 위기 없이 내전을 넘겼다.
하지만 그게 만족스러웠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후작가 중 하나는 주력을 잃고 왕에게 밉보여 백작가로 강등당했다.
하지만 새로운 왕을 후원한 후작가는 마커스 왕국 최초의 공작가로 올라서며 정점을 찍었으니….
‘제길. 별것도 아닌 제스토 놈들이 공작가라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투자보단 보신을 택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그리고 라울은 그 점을 노렸다.
내전이 마무리되고 세력이 개편되며 다른 귀족가문이 새로운 영지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기.
하마르트 후작가는 떡고물도 챙기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으니, 뭔가 이득 볼 것이 없는지 군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금역 개방.
물론 플레이어 한정이라고 하지만, 귀족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건수를 잡아서 금역에 침을 바르고 싶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방인 놈들을 믿을 수는 없고….’
용병단을 직접 운용하는 후작가의 특성상, 그와 비슷한 플레이어들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이득을 참고 넘기지 못하는 부나방 같은 이들.
계약을 맺는다 해도, 진짜 약속을 지키리란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만약 문제가 생긴다 해도, 허락 없이는 금역 내부에 진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
자칫 이방인들의 배만 불려주고 금역에서 밀려나는 수도 있었다.
그때 찾아온 것이 라울.
처음에 그가 방문을 요청했을 때는 그리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백작에 불과하지만, 그가 부리는 마스터들의 수만 해도 열이 넘었으니 부담스러운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요.
‘놈이 운영하는 퍼스트 길드 때문에 우리 수익이 엄청나게 줄었잖아!’
동종 업계의 경쟁자로서 딱히 반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 그 두 번째였다.
하지만 라울과 대화를 나누고 반나절 뒤.
“하하하하핫! 뒤는 우리 후작가에 맡기시오. 내 최대한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직접 신경 쓰겠습니다.”
와인까지 직접 따르며 즐거워하는 그의 머릿속에 라울에 대한 적대감은 사라져 있었다.
금역 개발.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투자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그곳에 진입할 방법을 라울이 제시한 것이다.
거창해 보여도 실제로는 단순한 협력 제안이었다.
라울은 그 휘하에 있는 퍼플 길드를 활용해 금역의 요지를 확보한다.
그리고 그 개발과 보호, 징수권은 후작가가 책임진다.
대신 그 이익은 투자 비율로 적절히 분배한다.
‘이방인은 믿을 수 없지만, 라울 백작은 믿을 수 있지.’
이번 내전을 통해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이가 누구인가?
각 왕국의 새로운 왕도 아니고, 기존의 강력한 세력가들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라울.
십 인의 마스터의 주인이자, 퍼스트 길드의 소유자.
수십만의 플레이어를 자기 원하는 대로 동원할 수 있는 엄청난 수완가.
그리고 그 자신도 십 대에 마스터에 올라선 대륙 최고의 천재 기사.
루벤 왕국의 내전을 빠르게 종결시킨 데 라울의 공이 컸다는 건 이미 대륙의 모든 귀족가가 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퍼스트 길드와 퍼플 협회를 통해 타국 내전의 결과까지 좌우했다는 사실도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으니.
‘적으로 만나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 하지만 손을 잡는다면 그보다 든든할 수 없겠지.’
게다가 이만한 명성을 지닌 이가 타국의 후작가를 상대로 사기를 칠 리가 있겠는가.
“하하하하, 그저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다 가시구려.”
라울은 기분이 좋아진 후작 덕분에 사흘이나 후작가에 머물며 파티에 불려 다녀야만 했다.
“어때? 후작가는.”
“후작이 좀 가벼워 보이긴 했습니다만,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전에 참전하지 않은 관계로 보유한 병력도 충분하고, 후작가 내부적으로도 금역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해오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케인의 대답을 들은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라울은 하마르트 후작가를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 배도현이 커넥트에서 둥지를 튼 곳이 바로 마커스 왕국이었고, 그 주 활동 영역이 바로 하마르트 후작가였기 때문이다.
‘계산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이였지.’
종종 이방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긴 했지만, 그만큼 철저하게 계약을 지키는 이도 없었다.
그 상대가 이방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제국을 굉장히 싫어하는 그 성향이 라울의 마음에 들었다.
‘마커스 왕국이 참전했을 때 가장 많은 병력과 기사들을 파견했지. 본인도 가끔 전장에 서기도 했고.’
덕분에 배도현이 득 본 일들도 많았기에, 기왕이면 그와 협력하기로 정한 것이다.
“그러면 뒷일은 부탁하지. 추가 협상이나 협력할 일이 있으면, 케인이 먼저 조치하고 보고해도 좋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스터도 몸조심하십시오.”
포털에 올라선 둘이 각자의 목적지로 갈라섰다.
케인은 이제 퍼스트 백작령으로 돌아가 라울의 대역으로 활동할 예정이었고, 라울은 마커스 왕국의 자유 도시 제나로 향했다.
* * *
파밧.
마법진이 번뜩이며 포털이 발동되었고, 어느새 라울은 제나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라울은 배도현으로 모습을 바꾼 상태였다.
‘후우, 꽤 오랜만이군.’
자유 도시에 투자한다고 공식으로 방문한 이후로는 처음이었으니,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전생에도 동쪽 금역인 원소 정글을 공략하기 위해 오랫동안 머문 곳인 만큼, 낯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야 했는데….
‘와, 너무 많이 변했는데? 전생에는 끝까지 시골 도시였는데.’
자유 도시 미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5층 가까운 건물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었고, 번화가는 수많은 플레이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자유 도시 제나.
마커스 왕국 동쪽에 위치한 곳이자, 대륙 전체에서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자유 도시였다.
지리적으로 아주 치우쳐 있는 만큼, 자유 도시 가운데서도 낙후된 곳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제법 도시의 태를 내고 있을 줄이야.
‘역시 돈이 돌아야 도시가 발전하는 법이구나.’
전생과 달리 이번에는 라울이 제법 거금을 투자했고, 서쪽 금역을 퍼스트 길드가 차지하는 바람에 이곳으로 플레이어들이 몰려들었다.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리라.
“원소 정글 공략팀 모집 중입니다! 마법사, 정령사분들 대환영이요!”
“천 위권 탱커가 지켜드립니다! 메이지 계열 플레이어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속성 발현 가능한 초능력자분들 모십니다! 몸빵 든든한 탱커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광장에는 원소 정글을 공략하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이 파티원들을 구하느라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커넥트 게시판이나 커뮤니티를 이용해도 될 것을 이렇게 직접 나와서 외치고 있다는 건.
‘몸이 달아 있다는 뜻이겠지.’
게다가 찾는 것이 온통 마법사, 정령사, 원소술사(초능력자)뿐이었으니….
아마도 플레이어들도 원소 정글의 습성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다는 뜻일 터였다.
웅성웅성.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골목골목, 거리 곳곳이 플레이어들로 북적이고 있었으니.
금역 개척의 열기가 정말 피부로 와 닿았다.
라울은 인파를 겨우 빠져나와 퍼스트 길드 제나 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제나 지부장 윌렉스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랜만이군, 윌렉스 지부장. 수련은 잘 되어가나?”
“물론입니다, 마스터.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몸에서 상당히 강렬한 영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만간 상급으로 올라서겠군.’
윌렉스 지부장은 ‘나무술사’였다.
원소 정글 근처인 만큼, 그 특성을 살릴 수 있게 지부장으로 배치했던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지부에 비해 신경 쓸 것이 적었던 만큼, 본인의 수련에 집중한 모양이었다.
“부탁하신 일은 잘 준비해 두었습니다. 연락만 주시면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지.”
개척지의 관리를 하마르트 후작가와 협조하기로 했지만, 플레이어들도 필요했다.
그래서 미리 협력 길드 가운데 원소 정글로 가길 원하는 곳을 선정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이들의 손을 빌리는 이유는 퍼스트 길드와 퍼플 길드는 몬스터 숲을 개척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국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말이지.’
금역이 누구의 땅이라는 법칙은 없지만, 그에 영토를 맞댄 왕국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는 법.
굳이 그들과 다투면서까지 차지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수수료만 받아먹는 것으로도 충분해. 독불장군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적당히 나눠 먹을 필요도 있겠지.’
“그럼 거처로 안내해 드릴까요?”
“아니. 생각보다 일정이 늦어졌으니 바로 금역으로 가겠어. 포털로 안내해주게.”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가장 동쪽의 자유 도시라고는 하지만, 금역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그래서 금역 근처까지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포털을 개설해 둔 상태.
물론 플레이어들에게 공개된 포털은 따로 있었고, 라울은 길드 전용 포털로 이동했다.
* * *
“제리카 길드에서 법사 용병 구합니다!”
“케이드썬 길드에서 레인저 용병 구합니다!”
“랭킹 9백 위대 공방파티 결원 생겼습니다! 법사 한 분, 서브탱커 한 분 모십니다!”
“서브탱커 여깄소!”
“2천 위권 탱커입니다! 몸빵 잘 해드릴 테니 데려가세요!”
금역 초입에 위치한 개척 캠프.
원소 정글 진입로에 자리 잡은 그곳도 플레이어로 버글대긴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라면, 딱 봐도 레벨이 훨씬 높아 보이는 이들이 많았고, 유명 길드들도 상당수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라울(배도현)은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한때는 너도나도 배도현을 파티원으로 모시려고 줄을 서기도 했었으니.
‘고정 파티는 끝까지 만들지 않았지만, 공방은 가끔 뛰긴 했으니까.’
가끔 눈에 거슬리는 길드 이름이 들려오거나, 문양이 보이기도 했다.
전생에 대형 길드 연합의 구성원이었던 길드들이었다.
하지만 배도현은 애써 모른 척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바쁜 일이 있으니까, 조만간 만나자고.’
굳이 그가 찾아가지 않아도, 또다시 충돌할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저런 잔챙이 하나하나를 신경 쓰기에는 배도현이 너무 커버렸다.
굳이 그가 손을 쓰지 않더라도, 명령만 내리면 놈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실력자들이 그의 밑에는 넘쳐났으니까.
그래도 나름 잘 나가는 길드라고 어깨 펴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저 우습게 보였다.
“한 명입니까?”
캠프의 출구를 지키고 있는 플레이어가 물었다.
“그런데요?”
“그럼 1골드입니다.”
당당하게 손바닥을 내미는 그를 향해 라울이 입맛을 다시고는 골드를 건넸다.
별말 없이 통행료를 낸 것이 오히려 신기했는지 문지기가 충고했다.
“보아하니 랭커이신 모양인데, 혼자서는 힘들 겁니다. 보이는 건 평범한 숲 같아도, 아주 변덕스런 곳이니까요. 혹시 파티원을 구하지 못한 것이면, 제가 좀 알아봐 드립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 네. 건투를 빕니다.”
가면을 쓴 배도현의 복장은 누가 봐도 고렙 플레이어였다.
퍼스트 공방에서 판매하는 최고급 갑옷과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니까.
배도현이 문을 통과하고 잠시 후.
문지기가 누군가에게 통신했다.
“방금 고위 랭커로 보이는 솔로 플레이어가 진입했습니다. 네, 장비는 ……이고, 길드 마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네, 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통신이 끝난 직후.
망토를 두른 몇몇 플레이어들이 캠프 출입구를 지나 배도현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