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94
제294화
“협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저들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일치하는 모양입니다. 이야기가 잘 흘러가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들과 NPC들의 이주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초보들과 떠돌이 유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모집이 괜찮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조만간 ‘독립’을 선언할 수도 있겠지요.”
화려하게 치장된 회의실.
이십여 명의 인물들이 모여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
그들은 커넥트의 자유 도시에 있는 커다란 호텔 연회장에 모여 있었다.
퍼스트 호텔.
커넥트 서비스 시작 이후 여태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최고급 호텔이었다.
지구에 있는 최상급 호텔들보다 편의성이 뛰어난 시설 자체도 그렇고, 커넥트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포털의 접근성 때문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연회장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언제라도 뉴스 1면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 최고 기업의 총수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국적도 다양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한국 등 각국을 대표하는 기업가의 모임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눈초리를 본다고 행동이 너무 굼떠요. 그리고 기업 윤리 어쩌고 떠들어대는 멍청이들은 무조건 거르세요. 당장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의를 주도하는 이는 미국의 유명한 SNS 서비스 기업가 진 라이언이었다.
“옳은 소리. 이제 지구와 커넥트가 연관되어 있다는 건 가정이 아니라 팩트니까요. 저걸 보고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병신인 게지.”
회의장 벽에 설치된 마법 스크린에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십 개로 분할된 화면에선 각종 특이한 능력을 발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간단하게 손바닥에서 불꽃을 일으키는 이부터, 맨주먹으로 강철판을 찌그러트리는 이까지.
소소한 초능력이긴 했지만, 저게 촬영된 장소가 지구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알렉스 송 회장의 말이 맞았소. 지구의 이상 현상에 대한 답은 커넥트에서 찾아야 했던 것이지. 그 방향이 어떻든, 우리는 확실히 커넥트에 자리를 잡아야 할 필요가 있소.”
“그게 바로 여러 회장님들과 이 ‘파이어니어(선구자) 협회’를 만든 이유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지도층이 부족한 민중을 이끄는 선구자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죠.”
라이언 회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당 안건을 정리하겠습니다. 제국과의 협상을 통해 동쪽 금역 원소 정글에 우리 세력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 이미 산하 대형 길드들이 상당한 영역을 확보한 상태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지도가 펼쳐졌다.
왕국과 원소 정글 경계에 길게 늘어선 퍼스트 길드의 개척지.
그 너머 남쪽 부근부터 중앙 위쪽까지, 파랗게 칠해진 대형 길드 연합의 점령지가 표시되었다.
추정되는 원소 정글 전체 면적의 30%가량 되는 상당한 크기였다.
그리고 살짝 북쪽에는 엘프의 거점이 자리 잡았고, 동쪽의 나머지 검게 칠해진 부분은 모두 제국의 점령지였다.
“어차피 퍼스트 길드나 왕국과는 길게 갈 수 없는 사이. 그러니 굳이 그들과 국경을 길게 맞댈 필요는 없지요. 현재 제국과 협상이 끝나면 형성될 새로운 지형도입니다.”
남서쪽에 자리 잡은 길드 연합의 영역이 중앙 위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원소 정글 남쪽을 길게 관통하는 검은 통로.
그들은 제국에게 왕국으로 향하는 길목을 제공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제국이 통로를 확보하게 되면 왕국이나 퍼스트 길드와 충돌하게 되는 것은 필연!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벌이는 틈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면 됩니다. 퍼스트 길드를 완전히 몰아내든, 엘프를 공략해 그 자산을 빼앗든. 그리고 만약 제국이 생각만큼 강력하지 않다면, 우리가 제국을 공격해 원소 정글을 통째로 접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물론 아직 구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이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만들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라는 가장 훌륭한 힘 말이다.
“그러니 회장님들께서는 계속해서 커넥트의 골드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 주십시오. 조만간 상황이 변하면 환전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협력자들을 채근해서라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차 드리는 말씀이지만, 외부에 우리 모임의 정체나 목적이 드러나면 곤란할 수 있습니다. 모두 비밀 유지에 주의해 주십시오.”
“당연하지요. 철저하게 단속하겠습니다.”
뒤이어 몇 가지 자잘한 안건들이 논의되고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재계의 거물들은 악수를 나누고 연회장을 벗어나 각자의 갈 길로 떠났다.
하지만 떠난 줄 알았던 몇몇 인물들은 따로 준비된 방에 다시 모여들었으니.
“어떻게, 물건들의 확보는 잘 되고 있습니까?”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더군요. 조건을 만족하는 물건들이 잘 없다 보니…. 이게 다 그 퍼스트 길드 놈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외출하는 놈들에게 경호원까지 붙인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 전까진 퍼스트 컴퍼니 놈들만 경호하더니, 이젠 협력 길드 랭커들까지…. 혹시 정보가 새어 나간 건 아니겠지요?”
불안한 목소리에 상석의 인물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물건들은 철저히 사회에서 고립된 것들이니까요. 그깟 고아나 게임 폐인 한둘 사라진다고 문제가 생길 리 없잖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어차피 게임말곤 할 줄도 모르는 사회의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건 오히려 사회봉사지요, 하하.”
장내의 인물들이 같이 웃음을 흘렸다.
“문제는 이대로는 충분한 물건을 조달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기준을 좀 더 낮춰야 하는 것 아닐까요?”
“흠…. 순위가 낮아도 랭커 정도는 되어야 참고가 된다고 하던데.”
“연구하는 놈들이 항상 그렇지요. 아무리 많이 지원해도 부족하다고 떠들어대는 밥버러지들 같으니. 벌써 몇 년이나 돈을 쏟아부었는데, 캡슐의 간단한 기능 하나조차 복제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번 일도 정말 가능하긴 한 건지 원.”
“그러게요. 들어간 돈은 이미 어마어마한데, 나온 것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이대로라면 돈 낭비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몇몇 회장들이 불만을 표하자 상석의 인물이 박수를 짝짝 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투자 없는 성과는 없는 법입니다. 뜯기만 하면 저절로 불타버리는 캡슐이야 그렇다 쳐도, 이번에 연구하는 물건은 그렇지 않잖습니까? 충분히 연구하고 폐기해도 되니 너무들 조급해 마시지요.”
그러자 다른 이들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건 조달 기준은 조금 낮추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랭커가 아니더라도 ‘싱크로율’이 높은 것들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실험체가 하나로 부족하면 여럿을 보내주면 되겠지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조달 업체에는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일은 정말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일에서 성과를 낸다면, 커넥트의 모든 것을 우리의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퍼스트 길드든 뭐든 우리의 앞을 막지는 못할 겁니다.”
“크하하. 그렇지요. 연구가 성공하면 일단 배도현과 김일우. 두 놈부터 해결해버리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고맙게도 밥상을 다 차려놨으니 말이죠.”
장내에 모인 이들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플레이어들의 뇌를 연구해, 타인의 계정으로 커넥트에 접속한다는 것.
이게 가능해진다면 퍼스트 협회, 퍼플 길드 놈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자, 그럼 다들 움직입시다. 확보한 물건은 절대 들키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서 연구소로 배달해야 한다는 것! 절대 잊지 마세요.”
그렇게 협회 속의 숨겨진 또 다른 조직이 플레이어들에게 암수를 뻗치고 있었다.
* * *
한편, 그들의 수상한 회동에 대해선 속속들이 라울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이번에 마커스 왕국 동쪽 자유 도시 제나에서 회담을 가진 이들입니다.”
케인이 건넨 보고서를 확인한 라울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거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탓이다.
“실제 회담의 내용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종업원들의 정보에 따르면 ‘제국’이나 ‘원소 정글’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듯합니다.”
“대충 짐작이 가는군. 원소 정글 개척지의 경계 태세를 높이고 대형 길드 연합의 동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네, 마스터.”
케인이 방을 떠난 후 라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쉽군.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호텔의 보안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바로 라울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도청, 감청당하지 않는 완벽한 보안 결계를 갖춘 호텔.
그 철저한 보안 덕분에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NPC 거물들까지 애용하고 있었으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나눈 내용을 훔쳐 들을 순 없지만 모이는 이들의 면면, 그들이 흘리는 작은 단어나 이슈들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이번 일 같은 경우에도 어떤 인사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추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
라울은 책상 위에 펼쳐진 복잡한 인물 관계도를 정리하고는 라벨을 불렀다.
“놈들은?”
“아주 활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이상 현상으로 빈틈이 생긴 사회 감시 시스템을 잘 써먹고 있는 듯해.”
“역시 뒤를 봐주는 세력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군.”
“아마도. 먹통이 된 감시 카메라, 감지기, 검문이 없는 도로 등을 칼같이 파악하고 있으니까.”
2030년대에 들어서며 지구는 더더욱 완벽한 사회 감시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웬만한 장소에는 감시 카메라가 다 설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각종 전자 기기는 거의 24시간 그 행적을 노출했다.
현금 거래가 거의 사라지고 전자 결제 시스템이 자리 잡자, 개인의 재산 상황, 거래 내역, 생활 패턴까지 모든 것이 전자 정보로 저장되었다.
그러니 보안만 뚫을 수 있다면 한 개인의 개인 정보를 손에 넣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쉽게 뚫릴 것 같았으면 이런 체계가 구축되지도 않았겠지만, 지구의 이상 현상이 시스템의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잦은 정전, 시스템 고장, 물리적 파손 등은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놈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저장되어 있는 방대한 개인 정보를 열람해 조건에 맞는 희생자를 물색.
그 위치와 동선, 생활 패턴을 파악했다.
그리고 감시, 보안 시스템이 고장 나거나 다운된 곳을 활용해 먹잇감을 노렸으니.
평소 외부 활동이 거의 없고, 가족이나 친구가 적은 이들.
그리고 커넥트 내부에서도 솔로 플레이를 즐기거나, 존재감이 빈약한 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감시하는 덴 문제없어?”
“물론이지. 기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퍼스트 시큐리티 요원들이 커버하고 있으니까.”
라울과 라벨은 커넥트에 있었고, 감시할 대상은 지구에서 활동 중이었으니,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그 부분을 보충해 주는 것이 바로 ㈜퍼스트 시큐리티.
중요한 플레이어들을 경호하는 것 외에도 라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특수 작전팀이 곳곳에서 활동 중이었다.
현재도 배도현의 목숨을 앗아갔던 정장 사내들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플레이어들을 납치하고 협박하는 이들을 멀리서 감시하고 있었으니.
“언제쯤 덮칠 생각이야? 생각보다 희생자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
라벨이 조심스레 물었다.
놈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노련해졌다.
덕분에 피해자의 숫자도 점차 늘고 있었으니.
단순히 납치된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엔 목숨을 잃은 뻔한 이들도 있었다.
감시팀이 체크하지 못한 이들 가운데는 실제 사망한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라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꼬리를 아무리 잘라내 봤자, 그들을 멈출 수는 없어. 적어도 누가 윗선인지 파악하기 전까지는 안 돼.”
현실에서 플레이어들에게 손을 대는 이들은 단순히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으니 실질적인 지시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최대한 증거와 단서들을 수집하자. 놈들이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준비되면…. 그때, 단번에 마무리 지어 버리겠어.”
라울의 눈에서 차가운 복수의 불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