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라울이 당당하게 나오자 오히려 답답해진 것은 젠더 남작이었다.
병사들을 동원하고 무기까지 꺼내 들었지만, 그건 그저 협박을 위한 장식일 뿐.
진짜로 검을 휘두르는 순간, 오늘의 일은 단순한 친족 간의 다툼이 아닌 말 그대로 전쟁이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비밀병기는 진짜 최후의 수단으로 준비해 두었을 뿐이지, 여기서 휘두르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으니.
‘역시 준비했던 대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겠군. 라울 녀석이 소문대로의 쭉정이였다면 일이 쉽게 풀렸을 것을, 쯧.’
젠더 남작은 속으로 혀를 차며 외쳤다.
“날조된 문서로 나를 모함한 것! 그리고 짧은 식견으로 나와 이곳의 친척 어른들을 욕보인 것에 대해 사죄를 받아야겠다. 라울 드 애쉬튼 공자, 너에게 ‘혈족의 증명’을 신청한다!”
젠더 남작이 옷깃에 달려 있던 곰 머리 모양의 브로치를 뜯어 라울의 발치에 던졌다.
“혈족의 증명이라고?”
구석에 몰려 있던 혈족 하나가 반문하듯 물었고, 장내가 웅성거렸다.
혈족의 증명.
그것은 애쉬튼 가문의 혈족들에게만 주어진 일종의 권리였다.
가주나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혈족의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일생에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결투 신청권이었다.
‘그걸 지금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게 맞나?’
‘조카뻘 아이에게 결투 신청이라니?’
‘공증할 사람도 없는 데다가, 애초에 억지 아니오?’
구석에서 웅성대는 혈족들의 말처럼 원래라면 성립될 리 없는 억지스런 요구였다.
“젠더 남작. 진심으로 하는 얘기요? 내가 왜 그 억지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지?”
라울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젠더 남작이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이건 너에게 베푸는 내 마지막 자비라고 생각해라. 강제로 인장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결투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넘겨줬다는 쪽이 그나마 덜 부끄러울 거다.”
“그리고 남작은 조카의 것을 강제로 뺏은 것이 아니라 명예로운 결투를 통해 얻은 것이란 명분을 챙기고 말이지?”
라울의 비웃는 듯한 말투에도 남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결정해라. 만약 거부한다면 이제는 진짜 실력행사에 들어가겠다.”
남작의 협박에 금방이라도 반박할 것 같았던 라울은 웬일인지 살짝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듯한 라울의 모습에 남작이 속으로 안도했다.
‘그래. 어린 혈기에 강한 척했지만 너도 생각이 있다면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잠시 멍하니 있던 라울의 입이 열렸다.
“결투 조건은? 설마 남작이 직접 나와 검을 나누겠다는 건 아닐 테고.”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한 남작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양 측에서 3명씩 대표를 뽑고, 1대1 결투를 통해 최후의 1인이 살아남는 쪽이 승리한다. 혈족의 증명인 만큼 대표는 혈족 중에서만 뽑아야 한다는 건 당연하겠지?”
“말도 안 돼! 그렇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어딨단 말이오?”
듣다 못한 필립이 소리쳤다.
젠더 남작 측은 대표로 뽑을 인원이 넘쳐났지만, 라울은 혼자였다.
하지만 젠더 남작은 뭐가 문제냐는 듯 물었다.
“이곳에 모인 혈족이 수십 명이다. 양측의 주장을 모두 들었을 테니, 라울이 옳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는 그의 편을 들겠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해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억지가…!”
필립이 다시 나서려 했지만 라울이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결투의 대가는? 남작이 이기면 그 말도 안 되는 서류에 직인을 찍어주면 될 거고. 남작은 뭘 걸 거지?”
“글쎄,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긴 한데. 뭐, 원하는 거라도 있나?”
“공정한 결투를 원하니 대가도 공정해야지. 내가 이기면 서류에 서명한 혈족들의 저택을 모두 가져가도록 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혈족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자신들에게 완전히 유리한 판을 깔아놓고도 손해보는 게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라울도 더 이상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결투는 없다. 어때 남작?”
젠더 남작은 묘한 눈으로 라울을 쳐다봤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이지?’
이쪽에 포섭되지 않은 혈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도 모자랄 판에, 저런 조건을 걸다니?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자존심이라도 세워보려는 건가?
어쨌든 남작 입장에선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서류에 인장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깟 집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좋다.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그럼 이제 혈족의 증명을 받아들일 테냐?”
젠더 남작이 묻자 필립이 라울에게 다가가 말했다.
“공자님. 이건 너무 불리한 대결입니다. 굳이 응하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필립의 말처럼 굳이 받아줄 필요 없는 결투였다.
젠더 남작은 자신이 이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라울은 이미 모든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라울은 이미 이 결투를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퀘스트가 떴는데 피할 이유가 없지.’
등급 : C
목표 : 결투에서 승리
추가 목표 : 혼자 모든 상대에게 승리할 것
설명 : 수도의 혈족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실력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
보상 : 경험치, 코인, ????
“필립 경. 설마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솔직히 그건 아닙니다만….”
현재 라울의 실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건 필립이었다.
순수한 검술만 놓고 봐도 이미 엑스퍼트 초급 수준을 벗어나고 있었고, 그가 가진 기묘한 힘까지 포함하면 과연 이 자리에서 라울을 이길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하지만 실전에는 항상 변수가 등장하는 법. 필립은 다만 그 변수가 라울의 예측을 벗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될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혹시나 문제가 생길 거 같으면 필립 경이 난입해서 깽판을 만들어버려! 어차피 저놈들도 그럴 생각일 테니까.」
라울이 길드 통신으로 필립에게 지시했다.
어차피 서로 간에 명분을 쌓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결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쉽게 승복하고 넘어갈 리가 없었다.
“혈족의 증명을 받아들이지. 그런데 공증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남작? 지고 나서 무효라고 억지를 부리는 건 곤란해.”
그러자 젠더 남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오늘 귀한 분이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말이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젠더 남작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눈매가 날카로운 젊은 기사가 서 있었다.
“이런… 조용히 구경이나 하다 가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요.”
‘누구지??’
‘호위기사 아니었나??’
좌중의 소리를 뒤로 한 채 라울이 물었다.
“누구신지?”
그러자 젠더 남작이 환한 웃음으로 과장된 제스처를 펼치며 말했다.
“이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뛰어난 검술과 인품으로 수도에서 소문이 자자한 ‘루벤왕국의 떠오르는 신성’. 하파엘 드 랜달 공자님이시다. 랜달 백작가의 4공자님이시지.”
‘랜달 백작가??’
‘어떻게 랜달 백작가의 공자가 여기에?’
아무 정보도 없던 이들은 너무나도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자 놀란 표정이었고, 라울 곁의 세 기사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처럼 기세를 일으켰다.
“워워. 진정들 하시고. 저는 그저 초대를 받고 왔을 뿐이니 너무 노려보지 마시죠. 라울 공자와 인사라도 나눌 겸 왔는데 이런 재미, 아니 안타까운 일이 생길 줄이야!”
마치 비웃는 것처럼 입가를 일그러트리는 하파엘의 모습이 굉장히 얄미워 보였다.
하지만 라울은 흥분하지 않았다.
“랜달 백작가라. 스스로를 명문이라 칭하는 만큼 공정하게 심사를 보리라 믿겠습니다.”
“물론이지요.”
* * *
합의가 이뤄진 만큼 결투는 금방 준비되었다.
젠더 남작 측의 대표는 젠더 남작의 두 아들과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케스피 남작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라울은 예상대로 홀로 출전하게 되었다.
혹시나 한두 명 정도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했지만, 그들은 양측의 눈치를 볼 뿐 개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군. 괜히 이제 와서 어설프게 편들면 곤란하지.’
라울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쓰레기와 덜 쓰레기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자, 그럼 첫 시합을 시작해보죠. 대표는 앞으로!”
라울의 첫 상대는 젠더 남작의 셋째 아들인 애런이었다.
그는 어제 자신의 18번째 생일파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라울에게 굉장히 감정이 상해 있었다.
‘X발. 6개월이나 공들여서 겨우 꼬드겼는데…. 하필이면 거사를 치르려 할 때 등장해서!’
라울 때문에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애송이 놈의 거만한 표정도 맘에 들지 않았고, 반말을 찍찍 뱉는 태도도 거슬렸다.
‘오냐, 죽이지는 않겠지만 분풀이는 실컷 해야겠다.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 가지고 놀아주마!’
아카데미 3학년이고 소드 유저 상급에 올라있는 애런은 자신이 질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에게 라울은 그저 시골에서 갓 상경한 부잣집 아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시골 검술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어차피 수도에 오는 귀족들은 다들 타이틀 하나씩은 들고 오기 마련.
오히려 나약해 빠진 백작가의 내놓은 자식이란 소문이 훨씬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물론 오늘 큰소리를 좀 치긴 했지만, 시골 놈들 허세 부리는 거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애런이 라울을 씹어대며 분풀이를 하려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었다.
“넌 뒈졌다, 이 새끼야!”
애런이 자신의 애검인 양날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라울에게 힘차게 휘둘렀다.
퍼억!
그리고 다음 순간. 애런은 눈에서 별이 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털썩.
“…….”
일순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시합이 시작된 지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승패가 결정된 것이다.
“흐~음. 승자 라울!”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하파엘이 알 수 없는 눈빛을 보이고는 뒤늦게 승패를 선언했다.
“뭐야? 일격이야??”
“어떻게 된 거지? 난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뭐야? 다 헛소문이었던 거야?”
“멍청한 놈. 방심하다니, 쯧쯧.”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이 생각했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라울이 무서운 기세를 보였다 한들 겨우 15살.
일반적으로 이 나이대의 소년들이 보이는 성취는 잘해야 소드 유저에 턱걸이 하는 수준.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소드 유저 상급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니 소드 유저 상급인 애런이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애런 이 멍청한 녀석!!’
젠더 남작의 수염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어지간한 실력 차가 나지 않는 한 이런 짧은 승부는 한쪽이 방심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굳이 첫 순서에 애런을 넣은 것은 그에게 기회를 주기 위했던 것.
아무리 샌님이라 소문난 녀석이라도 명문가의 직계 후손이었다. 이기기만 하면 나름 명성을 챙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걸 날려버릴 줄이야.
“어떻게, 바로 다음 시합을 시작할까요?”
하파엘이 묻자 라울은 말없이 검을 앞으로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젠더 남작 측에서 두 번째 대표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엔 내가 상대하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