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304
제304화
“내비에는 분명 이 근처라고 나오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운전기사가 차를 세운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뒤따르던 차들도 줄줄이 멈춰 섰다.
그렇게 수백 대의 차량이 아무것도 없는 산기슭 아래의 황무지에 늘어섰다.
일우가 문을 열고 내리자 옆의 차들에서 퍼플 길드원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어때? 뭐가 좀 느껴져?”
조금은 가벼운 느낌의 갈색머리 남자가 익살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이름은 사비에르 아델.
커넥트 전체 랭킹 7위.
퍼플 길드 최고이자 커넥트 최고의 마법사 플레이어가 바로 그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너희는 어때?”
일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묻자, 다른 길드원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우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확실히 성공이네. 그러면 어디 보자.”
그가 손에 장갑을 끼고는 작은 스틱을 꺼내 허공에 어떤 문양을 그렸다.
우우웅.
작은 마법진이 나타나 제자리에서 회전하더니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파아앗!
“와우.”
“장난 아닌데?”
점점 크기를 키워가던 마법진이 직경 5m까지 커지고는 허공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바로 성벽이었다.
높이 15m의 무채색 성벽.
만약 그 재질이 콘크리트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곳이 지구가 아닌 커넥트라고 착각했을지도 몰랐다.
“자, 다들 들어가자고.”
사비에르가 싱글벙글 웃으며 앞장섰다.
그리고 커다란 성문을 수백 대의 버스가 통과하고 나자, 허공에 생겼던 구멍이 사르르 허물어졌다.
이내 그곳에는 이름 모를 야산만이 남아 을씨년스런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어때, 새로운 쉘터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최고야.”
라울의 집무실.
라울과 일우, 둘만이 차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며칠 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퍼스트 컴퍼니의 지사들은 그 보금자리를 옮겼다.
기존에 본사와 지사는 각국 도시들의 빌딩을 인수 혹은 세를 얻어 들어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라울은 도시가 아닌 한적한 곳에 ㈜퍼스트 컴퍼니만을 위한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업무 자체가 투자나 매니지먼트, 인터넷 관련 쪽이었기에 굳이 도심지에 위치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만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과 부대시설을 갖춘 주거 및 상업 단지를 구축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일우를 비롯한 길드원들이 현실에서 능력을 발현할 수 있게 되자 그 목적이 조금 바뀌었다.
‘혹시나 각성자들이 배척받을 때를 대비해 그들이 안전하게 머물 장소를 만들려고 했었지.’
덕분에 단지 내에 자체 발전 시설은 물론, 저수지와 식량 생산 설비 및 기본 물품 생산 단지까지 조성했다.
게다가 게이트가 등장한 이후엔 단지를 둘러싸고 있던 담장을 아예 성벽으로 바꿔버리기까지 했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모양새가 되긴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거의 선견지명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마법진과 결계는 어때?”
“사실 좀 놀라워. 현실에서 정말로 그걸 재현해 낼 줄이야. 항상 생각하지만, 너는 참 대단한 것 같아.”
일우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라울을 바라봤다.
마법진이 구현된 걸 본 이들은 그저 ‘어, 능력이 발현되더니 마법진도 작동하네?’ 정도로 생각할지 몰라도, 그 과정을 알고 있는 일우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우가 처음 능력을 각성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후, 라울은 정말 여러 가지 것들을 준비하고 시험해왔다.
다른 길드원들도 현실에서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을 통해 각종 마법과 마법진, 결계를 재현하도록 한 것.
그리고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마나를 담아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장비 제작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었다.
‘중요한 건 성과가 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지.’
게이트 웨이브가 터져 마나가 폭증하기 전까지는 거의 유의미한 성과가 없었다.
그저 연구비만 잔뜩 낭비하고 있었으니, 쓸데없는 짓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모든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만약 사태가 다 터지고 난 이후 연구를 시작하거나 도전했다면 그 성과가 나오기까지 얼마가 걸렸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직원들의 반응은 어때? 사실 반 강제로 가족들까지 이주시킨 거라 반발이 많았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다들 회장님을 칭송하느라 바쁜데! 네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정말.”
라울은 ㈜퍼스트 컴퍼니 지사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 쉘터를 만들었다.
그 숫자가 수십 개.
그곳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만 해도 5년.
얼마나 많은 비용이 투자되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아.’
사실 시작은 ㈜커넥트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랭커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투자였다.
어차피 지구에 갈 일도 없는 라울이 뭐가 아쉬워서 자체 단지까지 만들겠는가.
게다가 돈이라면 커넥트의 골드 판매와 그걸 투자로 불린 ㈜커넥트 인베스트먼트 때문에 부족할 일이 없었다.
대충이라도 10년 뒤까지의 세계 경제 흐름을 기록해둔 연결고리 카페에, 웬만한 정보는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천재 해커 라벨까지 있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어쨌든 준비해 두었던 것들이 결실을 맺었다.
이제 지구에 있는 라울의 사람들(퍼스트 컴퍼니 직원, 퍼플 길드, 협력 길드원 및 그 가족)은 안전한 보금자리로 이주를 마쳤다.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할 각종 생산 시설과 더불어 마법진과 결계라는 요소까지 합쳐진 쉘터.
그곳이라면 게이트 웨이브뿐만 아니라 다른 외부 세력의 위협에서도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
‘몇 가지 요소만 더 추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마나석과 코어 확보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어?”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정말 신경 쓰고 있어. 길드원들도 충분히 협력하고 있고.”
당연한 얘기지만, 지구의 게이트에서도 마나석과 코어 원석이 드롭되었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가려면 그것들은 필수 자원이었다.
“사비에르에게 들었겠지만, 그것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해선 안 돼. 조만간 완성될 ‘그것’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니까.”
“알고 있어. 어차피 당장은 우리 외엔 그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곳도 없잖아.”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지금의 커넥트가 안정을 되찾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그건 바로 ‘게이트 생성 방지 결계석’이었다.
지금 인류가 어마어마한 피해를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게이트가 도시 한복판에 생성되었기 때문.
하지만 게이트 결계석만 확보하게 된다면 적어도 기본적인 거점만큼은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게이트 결계석을 만들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나석과 코어 원석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결계석의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마나석도 만만치 않았으니,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명심해. 결계석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쉘터에 일반인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걸.”
“…그래야겠지. 나도 알고 있어.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게이트 웨이브가 안정되기 전까지 게이트 생성 우선순위는 인구가 밀집된 곳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각국 정부도 부랴부랴 인구 분산 정책을 꺼내 들었지만, 답도 없는 상황.
땅덩이가 넓은 미국이나 중국이면 모를까.
대한민국에는 사람들을 분산시킬 땅도,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집과 직장을 버리고 이주하라면 누가 쉽게 따르겠는가?
결국 게이트가 생겨난 이후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마스터! 지구에 새로운 게이트들이 등장했습니다!」
길드 통신을 통해 급보가 전해졌다.
“제길. 나는 이만 나가볼게!”
“조심해. 절대 무리하지 말고. 게이트 사태는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 알고 있지?”
“알았어. 후방 지원 부탁할게.”
“그래.”
일우가 로그아웃했다.
“후우.”
라울은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상황실로 향했다.
* * *
3차 게이트 웨이브가 지구를 휩쓸었다.
그리고 인류는 더 많은 영역을 몬스터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집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임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식량은 배급제로 바뀌었고, 그나마도 정말 최소한만 배급되었다.
도시를 잃은 인류의 각종 시스템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각종 시설의 이전 속도가 게이트 침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전산망과 통신망이 곳곳에서 끊어졌고, 항구를 잃자 해상 무역로가 막혔다.
대도시가 무너지자 다음 타겟이 될지 모르는 중소 도시의 시민들도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B등급을 넘어서는 게이트는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각성자의 수가 증가하고, 몬스터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면서 인명 피해 자체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무조건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한정된 자원으로 국민들을 책임져야 하는 각국 정부들은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커넥트 오픈 베타 서비스 종료까지는 불과 40여 일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제발 골드를 조금만이라도 팔아 달라고 합니다.”
“회장님이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미국 정부에서도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뻣뻣해 보이던 자세는 이제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라울은 각국 정부의 요구사항과 그들이 넘겨주겠다는 각종 자산과 대가를 살폈다.
‘정부 소유의 대지를 무상으로 넘기겠다라. 얼씨구, 이미 국회 동의도 얻었다고?’
‘국채, 공기업 지분, 현금 자산…. 이딴 건 솔직히 별 필요 없지만.’
‘커넥트에서 일정 수의 플레이어를 의무 파병하겠다? 뭐야 이건? 동의라도 받고 말하지.’
지구의 자산을 넘기겠다는 약속도 있었지만, 커넥트에 넘어와서 세금으로 골드를 장기 상환하겠다든지, 플레이어를 제공하겠다는 등의 제안도 제법 있었다.
그게 과연 그들의 마음처럼 될지는 둘째 치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각국 정부는 이미 지구를 반쯤 포기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이것들을 이렇게 쉽게 넘겨줄 리가 없겠지.’
라울은 몇 가지 서류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며칠 뒤.
퍼스트 컴퍼니의 각 쉘터에는 탱크와 헬기를 비롯한 각종 군수 물자들이 전달되었다.
* * *
“…마음을 돌릴 생각은 없는 거냐?”
“…미안해. 그간 네가 베풀어준 은혜를 갚으려면 일평생도 모자라겠지만…. 그래도 지구를 버릴 수는 없어.”
라울은 일우의 눈을 바라봤다.
‘이미 결심이 섰구나.’
일우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의지를 품은 채 빛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 솔직히 지구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너를 막을 사람은 없잖아.”
아쉬움에 라울이 묻자 일우가 살짝 머리를 긁적이더니 손가락을 움직여 어떤 화면을 보여줬다.
-일우 아저씨,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와 어머니가 살아남았어요.
-일우님이 게이트를 정리해주신 덕분에 소중한 부모님의 유품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큰 대가를 받고 싸우시는 게 아니라고 들었어요. 별것 아니지만 드시고 힘내세요.
-일우님 덕분에….
각종 SNS와 메일 등에 감사 인사와 선물을 보내온 사진들이 가득했다.
“사실 좀 고민했어. 네 말처럼 커넥트에 접속하기 전의 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고아에 불과했으니까. 그냥 살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딱히 그곳에 좋은 추억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일우는 잠시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커넥트에 들어와서도 사실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시작은 퍼스트 아카데미에서 라울을 만난 이후였으니.
“하지만 너를 만나고 달라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힘을 손에 넣었고, 여러 사람들을 책임지는 자리에도 올랐어.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
항상 궁금했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걸까?
정말 내가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인 걸까?
“그리고 이제 답을 찾은 것 같아. 나에게 찾아온 행운, 주어진 이 힘. 이건 결코 나를 위해 사용해선 안 된다는 걸.”
일우가 라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간 정말 고마웠다. 어쩌면 이 선택이 너를 배신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고민하기도 했어. 하지만 한편으론 너라면 이해해 줄 거라고 믿고 싶었어. 왜냐면 내가 그동안 지켜본 너도 지금의 나처럼 주변의 모두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으니까.”
“…….”
라울은 뭔가 울컥한 기분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는 내 차례가 된 것 같아. 너는 내가 없어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지만, 지구에 남겨질 사람들에겐 내가 필요하니까.”
라울은 주먹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기사식 경례를 올렸다.
“…건투를 빌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
일우도 자신의 주먹을 가슴에 대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둘은 한동안 살짝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의 앞날을 축복했다.
그렇게 커넥트에서 그들의 인연이 정리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