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단정한 정장차림의 백발 신사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알프레도 그레이!’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 의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이미 익숙한 얼굴이었다.
“어서 오세요, 라울 군. 잠시 거기 앉아서 기다려 주겠어요? 급하게 처리할 서류가 있어서 말입니다.”
라울은 접객용 소파에 앉아 차분한 눈으로 그레이를 관찰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고, 딱히 풍채가 좋다거나 왜소하지 않은 평범한 체격이었다.
얼핏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장년 귀족으로 보였지만, 알 수 없는 아우라가 그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백 살이 넘었다는데 정말일까?’
겉으로 봐선 환생 전 마지막으로 봤던 영상 속 얼굴과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것처럼.
호기심을 참지 못한 라울이 조심스럽게 개발자의 분석안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름 : 알프레도 그레이(???세)
*레벨 : ???
*직업 : 대현자, 8서클 대마법사, 연금술 마스터
*소속 : 루벤 국립 아카데미 부총장, 그레이 마탑주, ???, ???
*칭호 : 방랑 현자, 마탑주, ???, ???
*스탯 : ???
*고유 특성
마력의 지배자(SS), ???, ???, ???, ???
다시 눈을 뜬 이후로 정보를 훔쳐볼 수 없는 이는 처음이었다.
표시된 정보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 대부분. 눈이 빠져라 마나를 집중시켜 새로 확인한 것은 고작 마력의 지배자라는 굉장한 특성 하나에 불과했다.
“그래, 뭐가 좀 보입니까?”
“……!!”
분명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라울의 모습을 훤히 보고 있는 듯한 뉘앙스였다.
라울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살짝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워낙 보기 힘든 분이란 얘길 들어서 그만….”
“아닙니다. 당분간은 아카데미에 머물 테니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이제 거의 끝났으니 잠시만 더 기다려 주겠어요? 나도 라울 군에게 궁금한 것이 참 많거든요. 그 ‘눈’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
라울은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개발자의 분석안을 간파한 건가? 아니면 그냥 찔러보기??’
왠지 모르게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탁탁.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허허, 가까이서 보니 더 미남이군요.”
서류를 정리한 그레이가 빙긋 웃으며 라울의 맞은편에 앉았다.
라울은 살짝 긴장했는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런, 손님이 왔는데 차도 대접하지 않다니. 내 정신 좀 보게. 잠시만 기다려 주겠어요?”
그레이가 소매를 살짝 걷고 일어서자 라울이 눈을 빛냈다.
‘혹시 마법을??’
하지만 라울의 기대와 달리 느긋하게 움직인 그레이는 평범하게 차를 타서 돌아왔다.
“일단 수석 입학을 축하합니다. 라울 군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 깊게 지켜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살짝 차를 들이켠 그레이가 차향을 음미하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 이렇게 라울 군을 부른 것은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예요. 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딱히 답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얘기해달란 건 아니니까.”
긴장을 풀라고 했지만 라울은 그럴 수 없었다.
도무지 그레이가 그에게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추측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레이를 만난 건 어제 입학식장이 처음이었고, 배치 고사에서 딱히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도대체 이 양반은 뭐가 궁금한 거야?’
불편한 마음을 억지로 밀어둔 채 라울이 물었다.
“뭐가 궁금하신가요? 그레이 님 같은 대현자님이 저에게 물어볼 만한 일이라니. 짐작도 안 갑니다.”
그레이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라울 군. 혹시 ‘임페리얼 하운드’라는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
* * *
50년 전 크라넨 제국의 대대적인 침공은 커넥트 대륙을 전화에 휩싸이게 했고, 네 개의 왕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전쟁은 영웅을 부르는 법.
혜성처럼 나타난 구국의 영웅들은 목숨을 바쳐가며 제국의 수뇌부를 무너뜨렸고, 결국 몬스터 산맥 너머로 제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근 50년간 커넥트 대륙은 평화를 유지해왔다.
국가 간의 신경전이나 국지전은 종종 벌어졌지만, 대규모 전투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바로 크라넨 제국의 존재 때문이었다.
알프레도 그레이는 바로 그런 영웅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전쟁 이후 마탑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끊임없이 대륙을 순회하며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레이가 미라에서 라울을 발견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나키아 녀석….’
그레이가 미라로 향한 것은 바로 나키아를 보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나키아는 그레이의 사손(師孫), 즉 제자의 제자이기도 하고, 일찍부터 점찍어 놓은 인재였기 때문이다.
연금술 협회의 고문이기도 한 그레이는 협회에서 일어난 나키아와 니키의 일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하지만 당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를 도울 수 없었고, 뒤늦게나마 나키아에 대한 진정서(사면 요청서)가 도착한 걸 알게 되어 미라로 간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는 대번에 토벌전의 진상을 알 수 있었다.
제국 첩보기관인 임페리얼 하운드 지부를 처리한 것이 라울이고 그 전공을 랜달 백작가에 넘겨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득을 버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그 결단력에 놀랐을 뿐.
게다가 아무런 이(利)도 바라지 않고 시민들을 위해 움직이는 라울의 모습을 보며, 그레이는 떠올릴 수 있었다.
‘영웅의 씨앗인가…. 하긴 평화가 너무 길었지.’
영웅의 탄생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는 법.
그레이는 결국 가까운 곳에서 라울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라울이란 소년이 다가올 격변의 중심에 서게 될 게 분명하다는 강렬한 직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레이가 지금 라울과 방안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 * *
“…….”
라울은 선뜻 대답을 꺼낼 수가 없었다.
과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그레이에게 붙였던 또 다른 별칭이 있었다.
‘제국 퀘스트 공장장’
크라넨 제국과 관련된 퀘스트를 받으려면 그레이를 찾으란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라울에게 있어 제국이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결국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그 시기를 스스로 앞당기고 싶진 않았다.
그레이는 묵묵부답인 라울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혹시라도 앞으로 누군가가 그 이름을 입에 올리더라도 지금처럼 아무 말 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들은 지금의 라울 군이 상대하기엔 굉장히 위험한 상대이니까요.”
‘설마 이 양반이 나를 걱정해주는 건가? 퀘스트를 던지려는 게 아니고?’
“사실 미라에서부터 라울 군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 굉장히 뛰어난 솜씨로 깔끔하게 처리했더군요. 랜달 백작가가 고생 좀 하게 생겼어요, 그렇죠?”
라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어디까지 아는 거지? 혹시 랜달가에 얘기가 흘러 들어갔으면 낭팬데….’
하지만 그런 라울의 걱정을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 그레이가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또 말할 생각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칭찬하고 싶군요. 라울 군의 정체를 숨긴 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이번 시험에서도 실력을 숨기려고 애쓰는 모습에 감탄했어요. 라울 군 또래라면 당연히 자기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죠.”
결국 라울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그리고 왜 모른 척 해주신다는 거죠?”
그레이가 식어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라울 군. 크라넨 제국이 왜 무서운지 아십니까?”
“…글쎄요. 당장 떠오르는 건 그 기이한 마병들이나 강력한 군사력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것도 맞습니다만,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제국의 국토가 얼마나 될까요? 인구는요? 과연 왕국들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국가라 할 수 있나요?”
‘흠….’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국토는 왕국 두 개를 합한 넓이만큼 크지만, 황폐한 북서 지방의 지형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면적은 크지 않았다.
척박한 기후 덕에 인구 또한 왕국 하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에 불과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국이 우리를 계속 위협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정보력’의 차이라고. 왕국들은 노출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까요.”
제국은 몬스터 산맥과 금역의 결계 건너편에 있었다.
왕국과의 통로는 협곡을 통한 통행로 단 하나뿐.
왕국들은 그 입구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놓고 연합군이 상주하며 제국의 침입을 방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국에선 희생을 감수하고 산맥을 뚫으며 꾸준히 첩자들을 파견해왔다는 것이고, 왕국 측에선 제국에 아무도 침투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제국은 우리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며 전쟁을 준비한단 얘기죠. 그리고 만약 침공이 시작된다면 제국 측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단 얘기일 겁니다.”
듣고 있자니 섬뜩했다.
실제로 전생의 커넥트 세상은 그레이의 예측대로 흘러갔다.
제국은 플레이어들의 존재마저 상정한 뒤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전쟁을 시작했다.
배도현이 목숨을 잃을 때 즈음엔 거의 전쟁의 판도는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약간은 침울해진 라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레이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에겐 라울 군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제국의 첩보망에서 벗어나, 언젠가 제국에게 비수가 될 수 있는 힘을 갈고 닦은 젊은이들이 말입니다.”
라울은 문득 전생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제국을 괴롭혔던 여러 네임드 NPC들이 떠올랐다.
‘설마 나키아도??’
어쩌면 나키아가 급성장한 데에는 그레이의 손길이 닿아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을 낮추고 신중하게 판단하며 행동하길 부탁드립니다.”
“충고,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사실 궁금한 것이 더 있긴 하지만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긴 이야기, 불만 없이 들어주셨으니 선물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선물이요?”
자리에서 일어선 그레이가 책상서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라울에게 건네주었다.
뚜껑을 열어보자 고풍스런 문양이 새겨진 작은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얼핏 봐도 굉장히 비싸 보였고, 중요한 건 반지에서 마력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라울 군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까 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자세한 사용법은 상자 안에 넣어두었으니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세요.”
“이런 귀한 물건을 받아도 괜찮을까요?”
“마음 편하게 받으셔도 됩니다. 이건 일종의 보상이기도 하니까요.”
‘보상…?’
나키아와 니키를 구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란 사실을 라울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레이의 집무실을 벗어나 반지를 확인한 라울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맙소사! 이 반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