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지금 당장 병력 소집해! 저 정신 나간 것들을 붙잡아서 직접 물어봐야겠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요새를 지었는지 말이다.
“전부 다 부릅니까?”
“보면 몰라? 다 뽀록났잖아! 이렇게 된 이상 저 요새를 박살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 엉?? 있으면 말하라고, 이 새끼야!”
“아, 알겠습니다.”
짜증이 극에 달한 잭에게서 목숨의 위협을 느낀 부하가 서둘러 명령을 전달하러 달려갔다.
“이런 제기랄.”
쾅!
잭은 신경질적으로 대검을 휘둘러 애꿎은 바위 하나를 박살 내버렸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애송이.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볼 생각인가본데, 지원군 따윈 없을 테니까. 크크크.”
게이트 하나에 진입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다.
인원이 꽉 찬다면? 당연히 아무도 진입할 수 없다.
조직에선 라울 일행이 게이트에 진입한 직후 추가로 병력을 투입해 이 게이트의 한계 인원수를 가득 채워버렸다.
즉,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게이트에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다시금 떠올린 잭은 끓어올랐던 화를 가라앉히고 차가운 눈으로 요새를 올려다봤다.
“조금 이따 보자. 아주 똥오줌을 질질 싸게 만들어주마, 크크.”
그는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 * *
푸슛.
“끄르륵….”
대검을 박아넣은 땅속에서 미약한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검을 뽑아내자 검 끝에 묻은 붉은 핏물이 툭툭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촤락!
검을 휘둘러 핏물을 털어낸 라울이 조용히 걸음을 옮기자, 제이크와 피어스가 그 뒤를 따랐다.
「다음 타깃은… 정지!!」
라울의 손짓에 일행이 모두 민첩하게 자세를 낮추고 수풀 뒤에 몸을 숨겼다.
삐리릭.
숨을 죽이자 귓속으로 새소리를 닮은 듯한 가느다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수풀을 헤치고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발각된 걸까요?」
제이크의 말에 라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들의 움직임으로 보아선 집결지로 가는 것 같은데.」
「마스터의 말씀이 옳은 듯합니다. 수색한다기보다는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것 같습니다.」
피어스가 말하자 제이크가 슬쩍 검을 들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처리할까요?」
어느새 시야에 들어온 놈들의 인원수는 열 남짓.
기사가 한 명 포함되어 있는 듯했지만 그들 셋이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라울은 신중했다.
「대기한다. 저들만 움직이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괜히 적진 한가운데서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겠지.」
「쩝, 한참 재밌었는데 아쉽네요.」
아쉬운 건 라울도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머릿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테니까.
때맞춰 요새에 남아 있던 필립으로부터 길드 통신이 날아들었다.
「마스터. 적들이 요새를 눈치챈 듯합니다. 요새 근처로 적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찰병의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랬군. 지금 귀환할 테니 전투태세로 대기하도록.」
대검을 인벤토리에 넣어버린 라울이 아쉬움을 털어내듯 두 기사에게 말했다.
「돌아간다.」
라울의 말에 피어스가 나무 위로 몸을 날리며 퇴로를 정찰하러 나섰고, 제이크는 입맛만 다셨다.
‘백 명 정도 처리했나…?’
몇 시간 전, 요새를 완공한 라울은 제이크와 피어스만 대동한 채 적진으로 침투했다.
정찰병은 적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라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조금 떨어진 수풀 속에서 위장하고 있는 복면인 둘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제국 놈들이었군.’
당연히 복면인들만 보고 적의 정체를 확신한 건 아니었다.
진짜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으니까.
라울이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자 그 아래 숨어 있는 불길한 존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국 마병.
제국이 만들어낸 최악의 생체 병기가 땅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라울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병을 땅속에 숨겨두었다가 기습하는 전법은 전생에도 자주 등장했던 수법이었다.
마병은 생체 병기답게 호흡을 멈추고 동면에 들어가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숨을 쉬지도 않고 생체 반응도 없으니 당연히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적들이 위를 지나갈 때 튀어나온다면!
그런 단순한 전법임에도 수많은 플레이어와 왕국 병사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
라울은 제이크와 피어스에게 수신호를 보내고는 인벤토리에서 활을 꺼내 들었다.
화살을 걸어 시위를 당기고 호흡을 멈춘 라울이 머릿속으로 소리쳤다.
「지금!」
피슝~퍽, 퍼벅!!
피어스와 라울이 날린 화살이 두 복면인의 머리를 꿰뚫었다.
털썩.
그들이 쓰러지고 난 뒤, 잠시 그 자리에서 대기하던 라울은 다른 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복면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쓰러진 복면인들의 몸을 뒤지자, 아티팩트로 보이는 반지와 작은 피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확인해보니 아티팩트는 기척을 숨겨주는 2서클 은폐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반지였다.
그리고 피리는….
‘마병을 움직이는 도구지.’
아쉽게도 특유의 마기가 필요하기에 라울이 쓸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나름 아티팩트이기에 팔면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자, 그러면….’
전리품 회수를 끝낸 라울이 대검을 꺼내 들었다.
휘익~푸욱!
사정없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은 대검은 땅속에 숨어 있던 마병의 머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버렸다.
정확하게 9번을 더 반복한 라울이 검을 거두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마병의 단점은 바로 이것이지.’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전투 시에는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이렇게 대기하거나 보관 중일 때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마병을 상대할 때 가장 포인트가 되는 것은 마병을 조종하는 적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놈들도 그걸 아니까 아티팩트씩이나 되는 물건을 가지고 다니겠지만, 이미 대처법을 아는 라울에겐 통하지 않았다.
‘자, 그럼 계속해볼까?’
그렇게 라울은 두 기사와 함께 방심하고 있는 적들을 사냥해 나갔던 것이다.
* * *
“뭐야!? 왜 이것밖에 없어?”
잭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부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돼? 아티팩트씩이나 들고 있는 놈들이 제대로 숨지도 못했단 말이냐!”
한동안 씩씩거리던 잭이 다시 물었다.
“마병은? 멍청한 것들이야 당했다고 해도, 땅속에 묻어둔 마병은 남아 있을 것 아냐?”
“저, 그게….”
“뭐?”
“마병도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제에엔장!!!”
퍽퍽퍽!
죄 없는 나무가 잭의 대검에 박살이 나버렸다.
마구잡이로 분통을 터트리던 잭이 대검을 휙 집어 던지고는 부관의 멱살을 붙들었다.
“그래서? 지금 몇 놈이나 남은 거야? 엉!?”
“케객. 그, 그래도 150명 정도 남아 있습니다.”
“아, 그래? 많이 남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이! 멍청한! 새끼야!”
퍽! 퍽! 퍽!
잭이 부관을 두드려 팼다.
“100놈이나! 죽어나가는데! 그걸! 눈치를 못 채!? 이 병신같은 놈아!”
“…끅!”
부관은 변명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웅크린 채 맞고만 있었다.
그러길 잠시. 분이 풀린 건지 잭이 구타를 멈추고 이마에 가면 아래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아, 상황 엿 같게 됐네. 대장한테 뭐라고 해야 되나.”
뒤통수를 슬쩍 긁은 그가 던져뒀던 대검을 주워들고는 부관을 툭툭 쳤다.
“안 죽은 거 아니까 얼른 일어나!”
“네, 넵!”
부관이 부랴부랴 일어나자 잭이 요새를 가리켰다.
“일단 저거부터 해결해야지? 시간 얼마나 필요해?”
“사, 삼십분이면 충분합니다!”
“뭐! 삼십분?”
“이, 이십분만 주십시오.”
“좋아. 딱 이십분 준다. 저 꼴같잖은 걸 내 눈앞에서 치우고 놈들을 끌고 와.”
“맡겨 주십시오.”
잭이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자, 부관 에밀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후우, 짜증나는군.’
잭에게 두드려 맞은 곳이 얼얼했다.
자신도 엑스퍼트급 실력자인 만큼 마나를 둘러 몸을 보호했기에 실질적인 타격은 크지 않았다.
솔직히 매복한 병력이 발각된 게 어째서 자신 탓인가?
하지만 그런 불만은 마음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각인을 몸에 새긴 이상 그의 생사여탈권은 상관인 잭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뭐, 대든다고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성격은 더러워도 잭의 실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상급 엑스퍼트의 검사인데다 각인까지 새겼으니 날뛰기 시작하면 마스터가 아닌 이상 적수가 없었다.
어쨌든 일단은 저 이상한 요새부터 처리해야 했다.
농담이 아니고 20분 만에 해결하지 못하면 잭은 진짜로 자신의 목을 떼어버리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표정엔 걱정이 전혀 없어 보였다.
마병 130개체에 각인을 새긴 준 기사급 요원이 20여 명이나 있는데 저깟 요새 하나쯤이야.
에밀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공격 개시!”
* * *
“흐아~암.”
달튼은 하품을 내뱉으며 막사를 벗어났다.
무슨 일인지 병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 보였다.
‘흠. 진짜로 누가 쳐들어오나?’
몇 시간 전.
라울이 떠나며 달튼에게 필립과 함께 요새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했다.
진지한 부탁에 자신도 모르게 그러겠다고 하긴 했지만 솔직히 진짜 전투가 벌어질까 싶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을 떼어놓고 어딘가 가려는 느낌이었으니 약간은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라울이 떠나고 몇 시간 동안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러려고 게이트에 들어온 게 아닌데….’
개인 막사에서 장비를 정리하고 간이침대에 몸을 누인 달튼은 아쉬움에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진짜 무슨 일이 터진 듯했다. 병사들은 무장을 점검하고 어느새 요새 벽 위에 도열해 있었다.
달튼도 눈을 반짝이며 필립이 서 있는 성루로 향했다.
“필립 경, 무슨 일입니까?”
“아, 달튼 공자. 아무래도 적이 나타난 듯합니다. 참전할 생각입니까?”
“하하, 뭘 물어보십니까? 저도 기삽니다. 적이 누구든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훌륭하군요! 그럼 같이 들으시지요.”
필립은 만족스럽단 표정을 짓고는 병사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모두 주목!! 적들이 이 요새를 노리고 있다! 정찰 결과, 놈들은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다. 놈들의 정체는….”
필립은 제국 마병의 정체와 약점, 공략 방법에 대하여 설명했다.
용병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생존을 위해선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용병들은 마병이 성벽에 오르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데 집중하도록! 이상!!”
이 상황을 미리 예측했는지 용병들에겐 강철로 만들어진 장창과 쇠뇌가 지급되어 있었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
“오셨습니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연설이 끝나고 어느새 요새에 도착한 라울이 필립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를 줄여놓긴 했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분명 놈들에게도 숨겨진 수가 있을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놈들이 감히 누구에게 이빨을 들이댄 건지 확실히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멀리 떨어진 숲과 수풀 사이로 거뭇거뭇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이군.’
“모두 사격 준비!”
필립의 지시에 용병들이 특수한 볼트(쇠뇌용 화살)가 장전된 쇠뇌를 일제히 꺼내 들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수성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