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멍멍이 녀석의 활약으로 리그의 비밀 창고를 찾아낸 건 좋았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보인 풍경에 나는 실망감으로 혀를 찼다.
“쯧, 다 쓸어 갔네.”
무수히 많은 진열장에는 물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재빨리 움직여서 철수할 때 쓸 만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 간 것이다.
뭐 흘리고 간 게 없나 싶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공간 속에서 보이는 건 없었고, 창고 끝에 도착했을 때 작은 보관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잠금도 되어 있지 않은 보관함을 열어 보니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나 보라고 남겨 둔 거 같다.
안의 내용을 살펴보니 동아시아 공략을 하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권력자와 끈을 댄 것이 적혀 있었다.
하긴, 현지 조력자가 없었다면 뿌리를 내리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겠지.
그런데 이거만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알게 해 줬다.
난 혀를 찼다.
“장난질 치네.”
[어떤 게?]“여기 있는 걸 다 들고 간 녀석들이 왜 이것만 남겨 뒀을 거 같냐.”
[모르겠어.]인간 세상 경험이 얕은 용용이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나 보다. 난 권력자들의 비리를 고자질하듯 빼곡하게 정리된 서류를 보고 바로 감이 왔는데.
왜냐면 혈종일 때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봤다.
내 힘을 이용해서 차도살인지계가 횡행했었다.
“이간질하는 거야.”
[잘못한 걸 알려 주는 게?]“리그 녀석들은 내가 이걸 갖도록 의도적으로 놔뒀어. 내가 이걸 보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겠냐?”
[너라면 거기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발악하는 사람의 팔다리를 먼저 부러뜨리고 브레인워싱을 사용하지 않을까?]“…….”
음,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순간 독심술을 한 줄 알았다.
100% 확신에 차서 하는 말이 거슬리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아르고스도 이걸 기대했겠지. 나로 인해 분란이 벌어지길.”
[네 손을 빌려 소란을 만들려고 하는 거네?]“맞아.”
그러니 잘 보이는 곳에 떡하니 이걸 남겨 놨겠지. 대놓고 내 손에 들어가라고.
근데 미사일 공격은 예상하지 못했나? 만약 이곳에 떨어졌다면 내가 갖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아, 미사일 위력을 약하게 상정한 건가.
[그럼 저 의도에 안 어울려 주겠네.]“그걸 또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지.”
[어?]“사실인지 확인하고 쓰레기가 맞으면 치워 버려야지.”
쓰레기가 더럽다고 외면하면 냄새가 사방팔방 퍼져 나가는 법이다. 보이는 즉시 치워 버리고 소각해야 깔끔한 세상이 유지되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르고스의 장단에 어울려 주는 거지만 나한테 이익이 된다면 상관없다.
여기에서 내 이익은 세상이 보다 쾌적해지는 걸 의미한다.
“제일 구린 놈들은 의도적으로 누락했을 수 있으니 잘 찾아봐야겠어.”
쓰레기 더미에서 가장 더러운 걸 찾는 거긴 하니까.
음, 이건 전문가한테 맡겨야겠다.
사실 난 구린내만 나면 다 손을 써 버려서.
용용이가 고개를 저었다.
[네 사고 구조를 모르겠어.]“나도 널 이해 못 하는데 네가 날 이해할 수 있겠냐.”
서로 다른 걸 인정하고 각자 정의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용용이는 용용이대로.
여기에서 선 넘으면 각자 힘을 쓰면 되는 일이고.
난 멍멍이와 함께 서류 보관함을 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죽어 있는 쌍둥이 시체도 챙겼다.
둘이 러시아에서 아주 깽판을 쳐 놨다고 하니 보내 두면 좋아하겠지.
내가 갑자기 러시아를 신경 쓰는 이유는 앞으로 외부로 나갈 때 러시아 영토를 이용할 일이 자주 생길 거 같아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토가 맞닿게 될 테니 사소한 호의 정도는 베풀어 두는 게 좋겠지.
이걸로 별 반응 없으면 그거대로 상관없고.
챙길 거 다 챙기고 돌아가기 위해 요트로 향할 때였다.
[저기 봐 봐!]용용이 외침과 함께 허공 위에 눈동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전에 봤던 아르고스의 것이었다. 역시 지켜보고 있었군.
-오랜만입니다, 헤드 브레이커. 잘 지냈습니까?
“다 봐 놓고 물어보는 건 뭐냐?”
-흔한 안부 인사입니다. 제 선물은 잘 받으셨군요.
기괴한 눈동자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서류 보관함에 고정되었다.
“요긴하게 사용하마.”
-제 의도가 잘 전달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아르고스는 말을 멈추더니 날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아직도 리그에 들어오실 생각이 없습니까?
“어, 없어.”
-그동안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들에게 실망하셨을 테고요. 헤드 브레이커 당신은 그걸 바꿀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억지로 사회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십니까?
“그 충돌하는 과정이 재밌는 거야.”
-…….
이래서 아르고스 녀석이 하수인 것이다. 아니, 리그 전체가 사회 부적응자 모임인 거지.
내가 저번 생에서도 아주 지독하게 경험해 본 건데 굳이 반복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네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빌런 취급받는 거야.”
나처럼 사회가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게 만들어야지. 리그 소속 녀석들은 각국에서 죽여야 할 존재로만 취급받으니 어느 도시에 들어가더라도 정체를 감춰 몰래 다녀야 하지 않는가.
난 마음만 먹으면 새벽에도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고, 얼굴을 감추지 않고 다녀도 된다.
아, 생각해 보니 혈종일 때도 얼굴은 안 감췄네. 그래서 추적을 자주 당했던 건가.
내가 장담하는데 아르고스도 회귀하면 100% 리그 같은 조직 만들지 않고 나처럼 제도권 안에서 누릴 거 다 누릴 것이다.
아니면 말고.
-사회를 우리 입맛대로 바꾸려는 것은 저나 헤드 브레이커, 당신 모두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같습니다.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식으로 합리화를 할 줄은 몰랐네. 새삼 아르고스의 혓바닥이 매끄럽게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입 잘 털어서 리그를 이끄는 건 아니겠지?
-우리의 손을 잡으십시오. 우리는 세계의 절반을 당신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치 세계를 자신의 것처럼 선언하는 패기까지.
우리 집에 방문 판매했다면 옥장판 몇 개 샀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근본적인 문제는, 난 세계 정복이니 뭐니 욕심 없는데.
-그것도 모자라면 리그에 오시길. 당신이라면 기꺼이 리그를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런 거 줘도 싫은데.”
과거로 돌아와 간신히 빌런 낙인을 지웠는데 세계를 지배하려는 빌런 조직의 수장이 되라고?
이걸 받으면 내가 혈종보다 더한 놈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지.
그런 미친놈보다 더한 놈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헤드 브레이커, 당신은 빌런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자식이 또 선 넘네?”
설득되지 않는다고 또 개소리를 지껄인다.
다른 말은 다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어도 저 말만큼은 참을 수 없다.
-우리 손으로 당신을 죽이게 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12궁이니 뭐니 하면서 자랑하던 녀석이 내 손에 죽어도 그런 소리를 하냐?”
-저들은 리그의 사상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던 이들입니다. 실력이 뛰어나 남겨 두고 있었지만 용도가 거기까지였지요. 우리의 손을 쓰지 않고도 처리하게 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언제는 자유니 뭐니 떠들어 놓곤 자연스럽게 독재 수순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럴싸한 겉포장이 벗겨지면 본질은 다 저렇다.
“더 이야기할 것도 없겠어.”
-다음에 다시 볼 땐 그 고집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길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눈동자가 감기더니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다. 부숴 버리려고 했더니 한발 앞서 도망치는군. 다음에는 헛소리를 하는 그 순간 바로 터뜨려야겠다.
점잖음을 뒤집어쓴 개소리에 난 혀를 찼다. 안에 포함된 궤변을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홀딱 넘어가기에 딱 좋았다.
뭐? 세계의 절반을 떼어 줘? 내가 리그를 지배해?
그런 귀찮은 걸 좋다고 받아먹으면 배 터져서 죽기 십상이다.
“멍멍아, 가자.”
멍!
멍멍이와 함께 요트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난 어딘가 넋이 나간 용용이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얜 또 왜 이래?
[…….]“야, 넌 왜 그렇게 심각해?”
[응? 아, 생각할 게 있어서.]“뭘 본 거냐?”
아르고스 녀석이 좀 기괴한 면이 많긴 하다. 신수인 용용이 눈에는 내가 못 본 것이 보였을지도.
하지만 녀석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워낙 심각해 보여서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때 되면 알려 주겠지.
* * *
리그 거점 하나를 무너뜨렸지만 서울로 복귀하지는 않았다. 그 전에 약속했던 걸 지켜야 해서. 나는 요트를 타고 과거 나진항으로 불렸던 곳에 도착했다.
일을 마친 뒤 이곳에서 위하오와 만나기로 했다.
나진항에 도착하고 위성 전화로 연락하니 30여 분 뒤, 위하오가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앞에 정박한 요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진짜 요트를 타고 갔었군.”
“못 믿었나?”
“쉽지 않은 일이니까.”
뭐가 쉽지 않다는 거지?
난 이어진 말에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가는 길에 마물은 어떻게 피했지?”
왜 뻔한 질문을 하는 거지? 딱 봐도 알지 않나.
“보이는 족족 죽였지.”
“…….”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해양 마물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을 처음 봐서 그랬다.”
[봐 봐, 네가 이상한 거라니까?]이때다 싶어 나서는 용용이 말을 살포시 무시하고 위하오에게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미사일 지원 고맙다. 큰 도움이 됐어.”
“약속을 이행했을 뿐.”
그 말은 나도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어차피 지킬 생각이어서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쓸모가 넘치는 녀석인데 잘 관리해 줘야지.
“고독을 제거하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난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하나는 잠들어 있는 지금 바로 죽이는 것. 다른 하나는 완전히 불태우는 것.”
“둘을 분류한 이유가 있는 건가?”
“전자는 아프지 않은 대신 사체가 머릿속에서 서서히 분해될 거고, 후자는 태워 버리니까 많이 아플 거야.”
“후자로 하겠다.”
나도 녀석이 그걸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당장 고통을 겪더라도 깔끔하게 제거하는 게 낫겠지.
녀석이 날 완전히 믿지도 않을 테고.
“머리 내밀어 봐.”
“알았다.”
위하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나는 고독이 잠들어 있는 걸 확인했다.
혜광심어에 의지를 실어 고독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강도로 시전해도 고독이 죽었을 테지만 사체까지 머릿속에서 완전히 제거하려면 그 강도를 높여야 했다.
“크으으으!”
머릿속이 불타오르는 고통에 위하오가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했다.
격렬한 몸부림은 10여 분 동안 이어졌다. 그 후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는지 몸부림이 잦아들더니 완전히 잠잠해졌다.
나도 처음 해 본 건데, 살아 있네.
굳이 이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허억! 허억!”
“괜찮냐?”
“이제 끝난 건가?”
“어, 넌 자유야.”
“…….”
위하오는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하긴, 그동안 고독으로 인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 했으니 기쁨이 크겠지.
나도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먹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묘한 동질감이 들어서 하나 더 챙겨 주기로 했다. 위하오도 좋아할 거다.
“그리고 깜짝 선물 하나 더 준비했어.”
“자유를 얻은 것만으로도 이미 과분하다.”
“그러지 말고. 너도 나와 끈을 이어 놓는 게 좋을 거 아냐? 앞으로 중국 정부랑 적잖이 대립할 텐데.”
“…….”
위하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에 폭탄을 심어 놓은 곳인데 가만히 있을 리 없지. 게다가 내 부탁으로 러시아에 미사일도 쐈으니 이 부분도 문제가 불거질 거다.
퇴로 하나는 필요하겠지.
한국은 어머니의 국가이기도 하니 그 점에서 훌륭한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선물이란 건 뭐지?”
난 녀석이 기뻐할 얼굴을 생각하며 말했다.
“너 레벨 9 해라.”
“…이렇게 갑자기?”
“생각보다 안 기뻐하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무려 레벨 9라고! 너희는 이런 거에 환장하잖아!
“솔직히 말해 당혹스럽군.”
“뭐가?”
“나는 십대초인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지. 그걸로도 모자라서 온갖 통계 조작이 이루어졌고. 그런데 이렇게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하니 익숙하지 않다.”
“어, 내가 보니까 실력도 충분해 보이던데? 그럼 자격이 있지. 자신감을 가져!”
“…….”
위하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더 겸양 떨면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지.
좋아해도 좋다. 넌 최준호가 인정한 1호 레벨 9 탄생이다.
하지만 위하오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괴상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왜 저러나,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직 현실감이 들지 않나 보군.
그래, 얼떨떨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거 받고.”
난 리그 거점에서 얻은 서류 중 중국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담긴 부분을 건네줬다.
내용을 얼핏 살핀 녀석의 표정이 굳었다.
나머지는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그럼 각자 위치에서 잘해 보자고. 레벨 9.”
요트 위로 올라간 나는 손을 저어 보인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서로 죽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