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최준호를 둘러싼 상황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 자신의 손을 벗어나 폭주하는 걸 보며 정주호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신음했다.
“결국 막을 수 없는 건가.”
‘위’에서 최준호를 직접 지목한 것부터 시작해서 브레인워싱을 파악한 것과 미국의 관심까지. 지금쯤 다른 대형 길드들은 물론 타 국가에서도 ‘헤드 브레이커’라 불리는 새로운 대어를 분석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최준호는 국가수호국에서 잡기에는 너무나 큰 대어다.
자신이 직접 뒤를 봐준다고 해도 실력에 비하면 대우는 형편없는 수준.
레벨 8일 게 거의 확실한 실력과 20대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는 장래가 얼마나 창창한 건지 알 수 있게 해 줬다. 세계 어딜 가도 최고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매물인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꽁꽁 묶어 두고 싶었지만 일개 부처 국장에 불과한 그를 강제할 수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위험해.”
문제는 최준호가 위험인물이라는 것.
빌런전담반의 공무원이지만 어쩔 땐 빌런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다행이라면 부와 명예, 권력 이런 걸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 하지만 그 장점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도 남을 과격한 손속과 섬뜩한 발상이 문제였다.
과연 세상이 그걸 납득할 수 있을까?
그러다 권력자와, 대중과 충돌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앞서 말한 모든 찬란한 가능성이 세상을 향한 어둠이 되어 덮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버서커보다 더 미친놈 같았다.
자신의 밑에 있기에 그런 심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떻게든 최준호가 둘러싼 상황이 과격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발버둥을 쳐 봤지만 상황은 이제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신에게 기도를 하게 될 줄이야.”
부디 저 괴물을 세상이 수용할 수 있기를.
정주호는 최준호에 대한 걱정보다 최준호에게 무방비로 노출 될 세계를 걱정했다.
똑똑똑!
“들어와.”
안으로 들어온 부하가 고개를 숙이더니 보고를 해 왔다.
“필요한 정보가 준비됐다고 합니다.”
“벌써? 빌런들 상태는?”
“그게, 그······.”
“자세히 말해라.”
“전부 왕 팀장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한 명은 발설하겠다고 외쳤지만 중국어로 말하는 바람에··· 늦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허, 참.”
브레인워싱을 사용하고 무사하길 생각했던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
‘악’이라고 규정된 상대에게 일말의 자비도 없는 점이 최준호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다.
“그리고 위에서 지시가 하나 더 내려왔습니다.”
“무슨 지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보를 얻어 낸 건지 과정에 대해 보고하라고······.”
“아무래도 최준호의 정체가 노출됐나 보군.”
염기철의 소행인가? 자신이 결혼한 걸로 꽤 놀리기는 했지. 근데 어차피 같은 유부남이라 자폭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쩨쩨한 녀석 같으니라고.
바로 항의 전화를 걸자 염기철이 펄쩍 뛴다.
-나 아냐!
“진짜냐?”
-오히려 보안 지키려고 한 게 나다. 꽁꽁 숨겨 놓고 몇 번 더 이용해 먹으려 했더니만, 쯧.
그렇게 끊긴 전화.
범인이 염기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긴 하다. 최준호가 이곳저곳 오죽 휘젓고 다녔어야지.
그래놓고 완벽 보안이 유지되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임을 깨닫고 정주호가 표정을 구겼다.
* * *
버서커와 인형술사의 접촉에 따른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되었다. 신성 길드 동향에 대해 물어보니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길드 내부에서도 논의가 오가고 있어. 사냥 횟수를 줄이는 건 길드 매출에 영향이 있으니까.”
윤희가 말한 것은 경제논리였다.
신성 길드 소속 헌터들이 사냥해 오는 마물의 심장과 부산물은 각지의 공방과 공장으로 흩어져 재가공을 거쳐 고부가가치 물건으로 탈바꿈한다.
사냥 횟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관련 산업의 침체를 의미했고 그룹 자체의 매출 하락과 시장 활기 저하로 이어진다. 경제 침체라는 단어는 어떠한 재난과 재해가 닥쳐와도 규제를 이겨 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였다.
이럴 땐 대대적인 빌런 소탕도 괜찮은데.
아는 빌런들은 알지만 빌런들도 틈틈이 마물을 사냥해서 꿍쳐 놓은 심장이나 부산물들이 꽤 많다.
“오빠가 보기엔 사냥 횟수를 줄여야 할 만큼 심각해?”
“성가신 두 빌런이 힘을 합쳤으니 위험한 게 맞아. 하지만 빌런이 무서우면 사냥 자체를 할 수 없겠지.”
“나도 같은 생각이거든? 이제 슬슬 밥값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러니 답답해 죽겠어. 진짜 정부 정책 보고 별 생각 없었는데 왜 이리 제약이 많은지. 짜증나! 아! 그렇다고 국가수호국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냐.”
“원래 정부가 다 그렇지.”
국가수호국을 비롯한 실무를 맡은 조직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하지만 그 위쪽, 정치권에 발을 담근 양반들은 비효율 그 자체였다.
원래 정치인은 주기적으로 물갈이를 해 주는 게 가장 좋다. 장부에 적힌 리스트에 있는 인간들만 다 날려도 쾌적해질 텐데.
“아마 우리 쪽은 딸린 식구가 많다 보니 강제성이 생기지 않으면 사냥은 줄이지 않을 거 같아.”
“그럼 너도 활발하게 사냥하겠군.”
“그러겠지? 요즘 물이 오르고 있기도 하니까!”
“자신감 생길 때가 제일 위험해. 항상 주의해.”
마물을 사냥할 때 백 번 방비해도 모자라다. 마물 앞에서 여력을 남기고, 전력을 다하지 않을 때 불의의 사고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냥할 땐 안 그러니 걱정 마.”
“그리고 인형술사는 재능 있는 헌터를 눈여겨본다고 하니 조심하고.”
“그럼 인형술사한테 선택되면 재능 있다는 거네?”
“그게 좋은 일이냐?”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무모한 건지. 내 타박에 윤희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어쨌든 선택받았다는 거잖아. 물론 보면 바로 도망쳐야겠지만.”
“신성 길드에서 인형술사에 대해 주의 준 건 있고?”
“인형술사는 정체가 누구인지 밝혀진 적도 없고 여러 인형을 다루는데 용도가 제각각이라는 게 전부야. 아! 예전에 레벨 7 정해솔 씨의 시체를 확보해서 보면 바로 도망치래. 어차피 죽이더라도 그건 인형이니 타격 없을 거라고.”
“그게 최선이겠지.”
나도 혈종일 때 인형술사와 만난 적이 없어 조언해 주기가 어려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뒤에 숨어 있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나서는 놈이 제대로 되었다는 건 아니고.
결국 다 죽일 놈이란 의미였다.
“밖에 다닐 때 팔찌 차고 다녀. 위험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아주 극성이라니까. 알았어, 한다고.”
“명심해. 내가 도와주더라도 위험할 때 믿어야 하는 건 자기 실력이야. 내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알았어.”
윤희도 더 이상 장난으로 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버서커와 인형술사를 잡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고 각 부처에서 전력이 선발될 때,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국가수호국을 방문했다.
“대한민국을 밝혀 줄 미래들을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군. 난 김영환이다.”
강퍅한 인상에 뱀처럼 날카로운 눈. 마른체구를 가진 노인.
겉모습만 보면 성격 좀 있는 노인으로 보겠지만 그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김영환 명예장관.
이명 붉은 뱀.
특유의 집요함과 무자비함으로 한 번 표적을 고르면 반드시 피를 본다고 알려졌다. 젊은 시절 악명이 빌런과 대형 길드에 자자했던 그가 바로 정부 소속 유일한 레벨 8 초인이다.
김영환의 방문 소식에 국장실을 박차고 나온 정주호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장관님. 이렇게 직접 오실 줄 몰랐습니다.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오랜만이다, 주호야. 잘 지냈나?”
“예. 잘 지냈습니다.”
“이번 작전 수정사항에 대해 지시할 게 있어서 왔다. 요즘 국가수호국 성과가 좋다며? 오랫동안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야 성과 내는 법을 깨달았나 보구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안내를 받고 안으로 들어온 김영환이 국장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너도 이제 슬슬 레벨 8이 될 때 되지 않았나? 꽤 오래 머물렀잖아? 내 뒤를 이어야지.”
“하하, 그 단계가 쉽지 않더군요. 요즘 들어 반쯤 포기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자기 주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넌 자기 주제를 파악하기로 했군.”
“멋모르고 날뛰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 주제 파악하는 사람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혀놀림을 보니 아직 체념은 안 했나 보군.”
못 들은 척 반응하지 않은 정주호는 조금 전 했던 말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작전에 수정사항이 있으시다고······.”
“더 좋은 작전이 생각났다. 버서커와 인형술사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지.”
“······.”
메마른 미소를 본 정주호는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김영환의 생각에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건 없고 오직 ‘효율’만 존재한다는 걸 느낀 것이다.
김영환은 살아 있는 권력의 화신. 더 많은 권력을 쥐기 위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희생시킬 수 있는 냉혹한 인물이다.
실제로 10년 전, 김영환이 직접 진두지휘했던 작전에서 공무원 헌터가 백 명 넘게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을 기했다면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하지만 하반기 끝자락에 맞춰 성과를 거두길 원했던 김영환의 고집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런 전적이 있기에 그가 들고 올 수정안은 위험했다.
정주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영환이 메마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요즘 꽤 유명한 이름이 있더구나. 헤드 브레이커라고?”
“예? 예. 아직 많이 모자란 후배입니다.”
“그래도 후배에게 덕담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정주호가 표정을 굳혔다.
“우선 작전안부터 얘기하도록 하지. 모두에게 얘기하고 싶은데 한 자리에 모으도록.”
“알겠습니다.”
불길함을 느끼며 정주호는 국가수호국 소속 헌터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였다.
* * *
노욕의 추함.
내가 보는 김영환의 모습이다.
올해 70세로 슬슬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명예장관이라는 직위를 내세워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여념이 없다.
정부에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초인임에도 그가 정부 소속 유일한 초인이라는 점 때문에 은퇴를 권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니, 이쯤이면 김영환이 새로운 초인의 등장을 방해하는 게 옳을 텐데.
미래에 김영환은 10년 더 일선에서 해 먹다가 80세의 나이로 일선에 물러나는 걸로 알고 있다.
철저하게 자신이 빛나는 자리에 서고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성과를 챙기던 노인네다. 70세의 나이로 여성편력도 어마어마했고.
그런 노인네가 정다현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허허, 잘 지냈느냐? 더 예뻐졌구나.”
“···네.”
“그동안 많이 발전했구나. 하지만 슬슬 벽에 가로막힐 시기야. 열심히 활동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중요할 시기다.”
뱀처럼 끈적하게 옭아매는 시선에 정다현이 움찔했다. 노인네가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모른 채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언제 한번 찾아오너라. 너 같은 재능을 개화시켜 주는 것도 이 늙은이의 취미기도 하니.”
“감사합니다.”
“장관님. 바뀐 작전은 어떤 건지······.”
치근덕거리는 걸 보다 못한 정주호가 끼어들었다.
“이번 작전도 나쁘지 않지만 둘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더군. 그래서 내가 직접 수정하고 지휘하려고 한다. 내 작전대로 하면 버서커는 물론 인형술사도 잡을 수 있을 거다.”
확신이 실린 목소리에 모두의 얼굴에 불안함이 서렸다.
내가 알기로 이 노인네의 지휘 능력은 평범 이하인 걸로 알고 있다.
“우선 우리 숫자가 많으니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정예 전력이 앞장서서 압도적인 화력을 퍼붓는다.”
김영환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수정된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버서커와 인형술사를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정예전력을 반으로 나눠 둘을 상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김영환이 나서서 버서커를 사냥, 여세를 몰아 인형술사를 잡겠다고 한 것이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결국 공무원 헌터들을 소모품으로 써서 빌런들의 힘을 빼놓은 뒤 자기가 공을 독식하겠다는 말이었다.
정주호가 그 부분을 짚었다.
“피해가 커질 겁니다.”
“두 빌런이 힘을 합친 순간 피해는 어쩔 수 없다. 다소간 피해가 있더라도 잡을 수 있을 때 확실히 잡아야 한다.”
자기 혼자 배터지게 공을 독식하려는 거 같은데 말이지.
희생이 발생할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포장을 벗겨 보면 자기가 잡을 수 있게 너희가 희생해서 힘 좀 빼놓으란 의미였다.
저렇게 뻔뻔한 것도 재능의 영역인가? 솔직히 나는 뻔뻔하지 못해서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다.
그냥 내가 나서서 목을 꺾어버리고 말지.
“너희들 중 희생자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걱정 마라. 내 이름을 걸고 두 녀석을 지옥으로 보내 줄 테니까.”
“······.”
상상을 뛰어넘는 철면피에 나는 감탄을 참지 못했다.
“개소리가 예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