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azy Villain Regains His Sanity RAW novel - Chapter 28
28화
말소자, 그놈의 말소자.
오종엽 때문에 한 번 등장시킨 이름이 참 오래도 간다.
나중에 녀석한테 비싸게 청구해야겠다.
아무튼 내가 어떤 대답을 하던 버서커 저 녀석은 이미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나 좋을 대로 믿으란 말인가.”
“언젠 안 그랬냐?”
“······.”
입을 닫고 날 빤히 보던 버서커가 질문을 던졌다.
“말소자와 헤드 브레이커 중 어느 게 더 강하지?”
말인지 똥인지.
녀석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머리통이 부서진 뒤 생각해 보든가.”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네가 빅텐을 지워 버렸던 그 순간을.”
버서커의 눈이 번뜩였다.
“오로지 적을 말살하기 위한 살의만 있었다. 죽음을 향한 순수함, 거기에서 나는 별의 순간을 엿봤다.”
별의 순간은 미친놈에게만 보이는 환각 같은 게 아닐까.
난 안 보이니 안 미친 거군.
“나중에 보면 사진 보내라.”
저승에서 스마트폰 쓸 수 있겠지.
버서커는 본래 검의 구도자로 불렸던 인물로 왜 헌터 시절에도 독특한 행보를 보이던 녀석이다.
왜 빌런이 됐는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했고.
자신의 검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고 과도한 수련으로 미쳐 버렸는데 그것이 180도가 아닌 90도 정도만 돌았다는 설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프트를 개방하기 위한 수행이 다른 방향으로 비틀렸다는 말이 있다.
마지막 말은 거짓이다. 저번 생에 내가 직접 버서커를 죽이면서 어떤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버서커는 자신이 정의한 ‘별의 순간’에 대해 말했다.
“별의 순간은 내가 전능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본 모든 것들이 나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 그 조각들이 모여 내가 추구하는 궁극이 완성된다. 내 의지가 닿아 완전무결해지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그냥 미친놈의 개소리였구나.
잠깐이지만 이걸 해석하려고 귀를 기울였다니. 반성했다. 미친놈은 상종하는 게 아닌데.
“나도 하나 묻자. 리그는 왜 가입했냐?”
“말소자가 리그 출신이라고 하더군.”
“누가?”
“인형술사.”
“그걸 믿냐?”
“아니면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리그가 지 맘대로 드나드는 자동문인 줄 아나.
“더 얘기하면 나만 피곤해지겠네. 이제 끝내자.”
내가 검을 들자 광기에 물들었던 눈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미친놈이 본래대로 돌아와 봤자 결국 미친놈이지만.
“와라, 말소자.”
* * *
버서커는 내게 말소자와 헤드 브레이커 중 무엇이 더 강하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다.
맨손의 헤드 브레이커도, 검을 든 말소자도 모두 나 최준호다. 그날 기분에 따라 맨손으로 적의 머리를 부숴 버리거나 칼로 베어 버리는 기호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강함에 대한 차이는 없다.
“미쳐 버리면 대가리가 단단해지냐?”
강철처럼 단련된 육체, 성격처럼 질기디질긴 포스가 기뢰의 침입을 허용했다고 해도 위력을 약화시키고 충격을 완화하여 큰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누적시키다 보면 무력화 시킬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녀석과 사흘 내내 싸워야 할지 모른다.
미친놈과 사흘 내내 있으라니. 끔찍한 일이다.
버서커는 내게 몇 번의 공격을 허용했지만 몸을 들썩일 뿐 큰 타격 없이 버텨 냈다. 오히려 기뢰가 녀석을 총명하게 만들었는지 눈빛이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기뢰에 이런 효능이 있었나?
문득 녀석과 프란츠 그 영감하고 붙으면 어떤 결과일지 궁금하긴 해졌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사람 아니냐고 했다가 나한테 바로 기뢰를 날리던 할밴데.
“큭!”
수 싸움에서 외통수에 몰리는 건 버서커였다. 녀석은 나를 밀어내기 위해서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고, 저번 생에 진득하게 어울려 봤던 나는 검격을 여유롭게 피해 내며 기뢰를 적중시키는 전개였다.
나는 다시 한번 버서커에게 접근하여 손을 뻗다가 손가락을 모았다. 사람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 벨 수 없는 예기지만 실낱같은 예기의 존재는 기프트 슬래쉬를 발동 가능하게 만들었다.
“······!”
기뢰에 대비했던 버서커가 처음으로 혼비백산하여 고개를 뒤로 꺾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포스 칼날이 머리칼을 베어 우수수 떨어지게 만들었다.
다시 고개를 든 버서커의 이마에 붉은 선이 생기더니 피가 흘러내렸다.
“크크! 고통은 오히려 살아 있는 걸 실감케 해주지. 그나저나 듀얼 기프트라니. 방금 공격이야 말로 나를 별의 순간으로 이끌어 줄 수 있던 것······!”
“미친놈.”
그런데 버서커가 처음으로 정색했다.
“대결을 끝내기 전 하나는 바로 잡자. 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쳤어.”
“그럼 너도 제정신이 아니란 의미인가?”
“난 제정신인데.”
“나도 제정신이다. 말소자, 너는 미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지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세상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
“너도 분명 그 순간을 느끼고 있었을 터.”
어떻게 내가 공무원 헌터를 하면서 느꼈던 소감이 저 녀석 입에서 나오는 거지?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서로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였다. 우리는 이해받지 못했고 그들이 이해하려들지 않았기에 나를 버서커라 칭했을 뿐이다.”
“병신 같지만 맞는 말인 거 같아.”
솔직히 말하면 말소자나 헤드 브레이커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이명이다.
빌런 같지 않은가. 왜 빌런을 잡았는데 빌런 같은 이명을 지어 준단 말인가. 좀 더 멋진 것도 있을 법한데.
“난 돌아갈 곳이 없고 너는 있지. 우리의 차이는 그것뿐이다.”
“그래서 듣고 싶은 말이 나 정상이란 말이냐?”
“그저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맞는 말만 하는 걸 보면 개과천선 시켜서 데리고 다니고 싶긴 한데.
기프트를 뺏어야 해서 포기했다.
“유언 다 했지? 이제 끝내자.”
* * *
몇 차례 충돌이 벌어지는 순간, 버서커는 자신이 말소자에게 닿지 않는 걸 느꼈다.
그야 말로 절망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강함이었다. 녀석 앞에서 춤추는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공격을 허용했다.
기뢰라 칭해지는 기프트는 여태까지 접한 공격 중 가장 악랄했고, 슬래쉬는 가장 예리했다.
무엇보다 놀랍게 한 건 전투 중 보여 주는 경험이다.
평생 전투를 치러왔던 것처럼 완벽한 완급조절을 보여줬다.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녀석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벽이로군. 높은 곳을 보기 위해 이걸 극복해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눈앞의 벽은 극복이 불가능했다.
대체 녀석은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저 녀석이 보는 곳의 경치는 어떤 것일까. 그마저도 가늠하지 못하는 자신의 수준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무의 구도를 추구한다고 했음에도 이 얼마나 부족한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녀석의 여유를 조금도 빼앗지 못했다.
“큿!”
이제껏 해 온 공격과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공격이 이어졌다.
침음을 집어삼키고 무호흡으로 서른 번의 검격을 사방에 뿌렸지만 녀석은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모조리 흘려 냈다. 그리고 검을 잡더니 그대로 뜯어냈다.
반토막 난 검을 휘둘러 밀어내려 했지만 바로 코앞까지 도달한 손이 목을 지나 쇄골을 움켜쥐었다.
콰드득!
“크아아아!”
쇄골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고통 속에 기합을 지르며 몸통 박치기를 시도했지만 녀석은 유령처럼 옆으로 비켜나 차례대로 오른쪽 어깨를, 팔뚝을, 팔목을 부숴 버렸다.
고작 눈 한 번 깜빡할 시간에 팔 하나가 작살이 났다.
팔 내부에 활개 치는 기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더 강한 독성을 품은 힘은 제멋대로 날뛰면서 산산조각 냈다.
“크흐흐!”
왼손으로 검을 바꿔 쥔 버서커는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 실소를 흘렸다. 세상이 노랗게 물들 정도였지만 말소자가 보여 준 힘은 새로운 세계였다.
저 강함을 조금이라도 더 겪고 싶다. 세상 모든 걸 말살시킬 수 있는 압도적인 힘. 말 그대로 말소자라는 이명이 잘 어울리는 최강 최흉의 헌터였다.
저자가 보는 세계는 어떤 걸까. 자신도 다가갈 수 있을까. 보고 싶다. 녀석의 눈을 뽑을 수 있다면 뽑아서라도 그 세계를 담고 싶었다.
버서커는 전의를 꺾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말소자가 도달했을 저 간격에 닿고자 하는 간절함이 강해졌다.
하지만 왼손 손목마저 비틀리면서 검을 놓치게 되었고, 팔꿈치가 부러져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툭툭 차 버린 발차기에 기뢰가 실려 적중된 다리가 멈추면서 기동력이 상실되었다.
녀석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말소자의 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끄아아아!”
심장이 파열되는 고통과 함께 세상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찰나 간 유지되는 의지 속. 버서커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기프트를 발현했다.
완전회복.
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기프트이자 비장의 한 수.
부서졌던 심장이 복원되고 온몸의 상처가 완벽하게 나았다.
몸 상태는 최상.
말소자도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녀석을 죽일 틈이다. 비겁하지만 이 또한 운명.
말소자를 죽이고 별의 순간을 취하리라.
하지만 완벽하게 회복한 자신 앞에 있는 것은 무표정한 말소자의 얼굴이었다.
녀석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완전회복이군.”
“어떻게······.”
이 순간만큼은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그마저도 재차 가슴을 파고든 손으로 인해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이 말은 하고 싶었다. 버서커.”
“······.”
“네 기프트 쩔더라.”
콰드득!
* * *
“질긴 놈.”
허물어지는 버서커의 시체를 밀어 버리고 나는 녀석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취한 피를 섭취했다.
혈중섭식(血中攝食)은 버서커의 피에 담긴 완전회복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기프트는 피에 새겨진 지문과도 같은 것. 혈중섭식은 그걸 복사해와 내 피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나는 새로운 기프트가 새겨지는 걸 느끼며 기존에 있던 통증완화 기프트를 삭제했다. 통증완화도 전투 중 고통을 경감해 줘 지속적인 전투력 발휘에 도움이 되지만 완전회복에 비교할 건 아니다.
찌잉!
강렬한 두통이 엄습했다. 익숙한 고통이다. 이 고통이 내가 힘을 얻어나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해 줬다.
혈종이 최강이 되었던 건 무수히 많은 기프트 중 최고만 추려내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미쳐 버렸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중 가장 유력한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많은 기프트를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 핏속의 기프트가 너무나 많아 서로 충돌하고 폭주하면서 내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했던 것.
미쳐버린 혈종도 어느 순간 필요 없는 기프트를 버려 필요한 것만 남겼고. 난 그것이 생존본능이 발휘된 행동이라 보았다.
상념에 빠진 사이 완전회복 복사가 끝났다. 이제 나는 심장이 부서져도, 설사 목이 잘리더라도 한줌의 의지만 남아 있으면 부활이 가능해진다.
완전회복은 여벌의 목숨이다. 버서커라는 번거로운 녀석을 죽이고서 얻을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야. 너 왜 살아 있냐?”
“······.”
“눈 떠라. 안 그럼 다시 죽인다.”
내 경고에 죽은 척 쓰러져 있던 버서커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