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I became a dragon RAW novel - Chapter 138
말지소더가 죽었지만, 지구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흑룡 제국은 건재했고 제국과 연합이 벌이는 기싸움에 애꿎은 사람들만 갈려 나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제국 수뇌부들도 말지소더의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말지소더가 가면 간다, 오면 온다 하는 친절한 지배자였을 리도 없으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거다.
이쯤 해서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내가 연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거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제국이 싫은 것뿐이지 연합이 좋은 건 아니거든.
내가 살던 부산 도시가 연합령에 속해 있을 때도 일반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은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제국에 들러붙어 연합을 뒤집어엎을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일정 부분 이해가 갈 지경이었으니까.
결국, 인간 시절에 내가 죽은 이유도 연합의 시스템이 초즌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방치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나도 안다.
인간이라는 것은 다양한 개성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악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야동 본다고 강간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총 게임 한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강간을 저지르는 놈이 야동을 보는 것뿐이고 살인을 저지르는 놈이 총 게임을 하는 것뿐이다.
비슷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전자와 후자는 전혀 다르다.
애초에 사내놈 중에 야동 안 보는 놈하고 게임 안 하는 놈을 찾기 힘들지 않나?
하지만 사회의 시스템이라는 것은 바로 이들, 악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제어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연합 녀석들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이 악마를 제어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아니, 오히려 은연중에 부추기기도 했지.
커먼과 초즌이라는 계급으로 분열되어 가는 세상을 통합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분열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권력을 쌓는 데 이용했다.
뭐, 그렇다고 제국이 연합보다 더 낫느냐?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연합의 신분제도는 제도화 되지 않은 악습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면 제국 놈들은 아예 신분제를 전면에 내세운 놈들이거든.
제국의 황제를 비롯해서 귀족 계급에 해당하는 놈들은 흑룡에 축복을 받은 용인들이다.
실제로는 말지소더의 불법 야매 시술을 받아 어설픈 드래곤 스폰이 된 놈들이지만.
내가 말지소더의 전생대법을 야매 시술이라고 말하는 건 드래곤 스폰이라는 게 본래 혼돈의 용신인 크루툰의 축복을 받아 태어나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말지소더는 사악한 흑마법과 연금술을 이용하여 그걸 어설프게 재현한 것뿐이고.
기술의 원 소유주인 우리 고모(크루툰)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불법으로 미용실 쌍커풀 수술하듯 멋대로 벌인 시술이니까 야매 시술이 맞지 뭐.
아무튼, 이 야매 시술받은 놈들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며 그 근거를 자기들은 흑룡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라고 내세우고 있다는 거다.
그럼 그 선택받은 인간들이 제국을 풍요롭게 잘 통치하고 가꾸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다.
선민사상과 극단적 민족주의, 계급의식에 사로잡힌 놈들이 제대로 통치를 할 리가 있나?
제국의 귀족 놈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들 밑에 계급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제일 밑바닥 인생들은 제국의 폭거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 수밖에 없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다.
그래 바로 김문덕 형을 구출해 냈던 바로 그 공장이다.
제국의 인육 공장.
제국이 악의 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합도 그다지 깨끗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게, 저렇게 대놓고 인육 공장을 차릴 정도는 아니어도 인신매매와 아인 거래가 백주 대낮에 벌어져도 무시하던 것도 연합이었거든.
아무튼, 최종적인 판단은 그래도 제국보다는 연합이 낫다는 거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연합 쪽에 확실히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지.
지지하지도 않는 데 힘을 실어 준다니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이성적인 심사숙고하에 나온 판단이다.
오히려 한쪽에 치우친 감정이 없기 때문에 더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도 있는 거다.
“안 된다.”
“응? 왜 안 되는데?”
“애초에 연합에 아인매매가 횡행하고 초즌들이 커먼들을 억압하는 지경까지 타락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난데없는 타다스트라아의 방문이 없었다고 한다면 나의 연합 지원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근데 이 양반은 여태 어디 있다가 이제 나와서 남이 하는 일에 감놔라 배놔라야?
“그거야 윗대가리들이 국정 운영을 잘못했기 때문 아닐까?”
드래곤들의 사회는 수평적인 사회다.
딱히 나이가 많은 고룡이라고 해서 존댓말을 듣거나 하는 건 아니다.
성룡이 되면 모두가 평등하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인 친분이나 존경심에 의해 존댓말을 쓰는 경우는 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본인의 자유의지에 달렸다는 이야기.
사실 고룡들도 아랫것(?)들이 존댓말을 쓰건, 안 쓰건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태고룡이나 로드 정도 급이 돼야 자동으로 존댓말이 따라붙는다.
아무튼, 타다스트라아는 고룡급 드래곤이고 나는 이제 갓 성룡이 된 드래곤이었지만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딱히 내가 싸가지 없어서가 아니라고!
타다스트라아는 고개를 저었다.
참새 모습으로 근엄하게 고개를 내 젓는 모습이 위엄 있다기보다는 귀여웠다.
“그것은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류가 아직 통합된 공동체를 갖기에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자신들이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지. 제국의 존재는 인류 연합이 더 성숙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반면교사가 되어 줄 거다.”
“그러니까 제국이 필요악이 되어 줄 거라는 이야기야? 연합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나의 말에 황금참새 타다스트라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곰곰이 타다스트라아의 말을 생각해 보다가 알았다고 답했다.
그 뒤로 연합에 은밀하게 찔러주던 지원도 싹 끊어 버렸다.
타다스트라아가 하는 말은 대의였다.
현실보다는 미래를 생각한 말이었다.
실제 제국의 압제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겠지.
대의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배부른 자들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허울 좋은 소리로 들릴 거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이 가질 않는걸.
오히려 내가 공감이 가는 것은 고통을 겪음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타다스트라아의 말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제 인간보다는 더 드래곤에 가까워졌다는 반증일 거다.
그래, 인류의 구원자가 되기로 했던 결정을 철회했으니 이제 무얼 해야 할까.
황금 참새 타다스트라아는 그 길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지상, 아니 물질계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에게 있어서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런 건 없다.
힘을 가져본 사람은 – 그것이 권력이든 재력이든 – 알겠지만 힘은 곧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는 의무에서의 해방을 말하고 그 힘이 근원에 가까울수록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책임이나 의무 이런 것들에서 벗어났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런 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의미가 되어 주기도 하니까.
“···.”
뭐, 말을 길게 늘어놓기는 했다만 요약하자면, 지금 나는 해야 할 일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백수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카지노를 관리하는 일도 이미 내 손을 떠났다.
쓰리피오가 워낙 일을 잘해주고 있어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카지노는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다.
사실 카지노를 만든 목적 자체가 제국의 힘을 약화시켜 말지소더에게 타격을 가하고 종국에는 녀석을 끌어내어 봉인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말이야.
어쩌다 우연이 겹쳐 그 일이 좀 더 빠르게 이루어지다 보니 카지노를 키우던 제1의 목표가 사라져 버리게 된 것이다.
흠,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당장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워낙에 큰일을 끝내고 난 다음이기 때문일까?
“···하암.”
그냥 잠이나 조금 잘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뒤에 일은 잠에서 깨고 나서 생각하는 거지.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잠을 생각했더니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드래곤은 이게 좋다.
불면증이 없다.
인간이었던 시절에는 고된 일을 마치고 와서도 쓸데없는 잡념들로 인해 잠을 설치던 날들이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온갖 망상들이 마음을 어지럽혀 잠을 못 이루게 만든 거다.
그리고 그렇게 제대로 잠을 못 잔 밤을 보내고 나면, 다음 날 일할 때는 완전히 지옥이었지.
지금은 그것도 한때의 추억일 뿐이다.
“누렁아, 뭐하냐.”
잠들어 있는 나의 귀로 검둥이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드래곤은 수면 중에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일어나서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뭐야, 자는 거야?”
들으라는 듯이 투덜거리던 검둥이 녀석은 나를 깨우지 않고 다시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시 적막에 휩싸인 공간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
말지소더가 봉인되고 난 뒤에도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잔잔하면서도 평범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 주인, 주인!
나는 이제 살룬폭포의 주인이 된 견우 녀석과 같이 수영을 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브랄큰 녀석과 함께 새로운 폭탄을 개발하기도 했다.
“키이, 주, 주인님 완성입니다요! 전보다 강력하면서도 훨씬 안정적인 마나 폭탄을 만들어냈습니다요!”
“여어, 드디어 성공인 건가.”
기뻐하는 브랄큰을 보며 나는 건성으로 박수를 쳤다.
브랄큰은 신이 나서 작고 더러운 엉덩이를 흔들고 난리를 부렸다.
“그렇게 좋냐?”
“이를 말씀입니까, 주인님! 이것으로 우리 큰 왕국은 더욱 큰 평화와 안정을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요!”
어, 그 폭탄을 사용해서 까부는 애들을 날려버리면서 말이지.
평화를 사랑하는 브랄큰은 국왕이 되고 간디 같은 녀석이 되어버렸다.
마나 폭탄을 내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말이지.
고블린들이 자기 작은 몸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걸 가지고 있어서,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폭탄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되자 좀 폭주하는 경향을 보이더라고.
지금 만들어낸 마나 폭탄은 소형 수류탄 사이즈로 TNT 10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물건으로 크기에 비해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대량 생산 체제만 갖춰지면 제국이나 연합에도 위협적인 무력을 조그만 고블린 왕국이 갖게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갖춘 물건이었다.
뭐, 들어가는 재료가 무척 희귀한 거라서 대량 생산을 하려면 값싸고 저렴한 대체재를 찾아내야 하겠지만.
뭐, 그래도 기술 협약을 맺고 있는 드워프들이나 동맹인 트리 엘프들이랑은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하와와와와!”
“으랏차!”
그 외에는 하와와 녀석한테 레슬링을 배운다던가, 검둥이 녀석하고 같이 무기술을 수련한다던가 하면서 보냈다.
성룡이 되고 난 다음에는 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 같은 건 없었지만.
사람들이 헬스를 하는 것하고 비슷한 의미로다가 하는 거다.
나의 육체는 단순히 단련만으로 성장을 꾀하기에는 너무나 강인했지만.
그래도 운동을 하고 나면 어딘가 조금 상쾌한 기분이 들잖아?
“바하마타님~.”
“실비아~.”
트리 엘프 왕국에도 자주 놀러 갔다.
실비아 여왕은 왕국을 살피고 트리 엘프의 아기들을 키우는 바쁜 와중에도 내가 놀러 가면 시간을 내서 반겨줬다.
“쳇!”
검둥이 녀석은 어쩐지 실비아 여왕이 조금 싫어진 눈치였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저러지?
아니, 그보다 저렇게 툴툴댈 거면 매번 따라오지 않으면 좋잖아?
나는 [해츨링 모드]로 실비아 여왕의 품에 안겨 낮잠을 즐긴다든가 수다를 떤다든가, 쟈누스가 해준 비비큐를 먹는다든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걱우걱.”
검둥이 녀석은 실비아 여왕 앞에서는 툴툴거리다가도 쟈누스가 해준 바비큐는 아주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혹시, 쟈누스 바비큐 때문에 매번 따라다니는 건가?
“누렁아~!”
내가 트리 엘프 왕국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물론 실비아 여왕을 만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솜털 녀석을 보기 위해서였다.
녀석은 두 번의 가출에 이어 말지소더 독에 당해 사경을 헤맨 대가로 이문트미린을 벗어나지 못하는 외출 금지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에에~!”
녀석은 며칠 만에 나를 만날 때마다 매번 심심하다고 투덜거렸다.
하긴 살룬 분지에서의 일상이 한가롭고 평화롭긴 하지만 조금 심심한 면이 없진 않지.
나는 슬슬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며 눈을 반짝였다.
끝
ⓒ 미래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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