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204)
“그리고 원래라면 이런 이야기는 너한테 하면 안 되는 건데, 안 만났다면 모를까, 너한테 이야기를 안 해 줄 수도 없고… 참, 형 입장이 좀 그렇네.”
말끝마다, 형, 형 하는 거 진짜 더럽게 거슬리네.
“실은 얼마 전에 작은아버지들, 그리고 고모가 집에 오셨어.”
당연히 그랬겠지.
“그래?”
“어. 너희 집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 특히 고모는 억울해서 죽으려고 하시지. 작은아버지 스타일 잘 알잖아. 작은아버지도 작은아버지대로 고모 못지않게 화가 많이 나셨고. 자기들 편 안 들어 준다고, 우리 아버지한테 역정들을 내고 돌아가셨다.”
“역정? 왜 뺨은 우리한테 맞고, 화풀이를 거기에서 해?”
최대한 녀석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도록, 그쪽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낸들 아냐? 물론 작은아버지들, 그리고 고모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네 말대로 뺨을 때린 쪽은 따로 있는데, 우리한테 와서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그럼 뭐 우리 아버지가 자기들 말만 듣고 작은고모한테 전화해서 대신 따져 주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이야? 정훈이 너는 잘 알잖아. 우리 아버지는 정말 정확하신 분이야.”
“그렇…지.”
“같은 부경의 이름을 쓴다고 다 같은 부경은 아니잖아, 솔직한 말로. 그리고 재경은 뭐 우리 가족 아니냐? 아버지도 그러시지만, 나도 실은 너희 집 쪽으로 더 정이 깊지, 나머지 작은아버지들, 혜선이 고모 집 쪽으로는 이상하게 정이 안 가. 자기들이 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결과물만 가지고 와서 같이 싸워 달라고 하면, 우리 아버지 성격에 그러자고 하시겠냐고.”
“같이 싸워 달라고 해?”
“진짜 유치하지 않냐? 그 나이들 먹고 그러고들 싶을까, 진짜….”
사람을 부리는 법은 참 다양하다.
사람에 따라 부리는 법이 다 달라져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장민석이처럼 원초적인 인간 유형은 다루는 법이 무척 간단하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해지는 유형.
이런 유형을 상대로는 그냥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한 놈이라는 걸 인지시켜 주기만 하면 끝.
“말만 들어서는 유치하네. 근데 설마하니 진짜 그랬을까?”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그랬겠냐니?”
“유치해도 너무 유치하잖아. 어떻게 자기 집 사업 안에선 회장님, 대표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못 지켜 내서 빼앗긴 걸 가지고 형네 집에 쪼르르 다 같이 달려가서 같이 싸워 달란 말을 해? 그리고 또 뭐? 자기들 편 안 들어 줬다고 역정을 내고 돌아갔다고?”
내 말에 장민석은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막힌 숨을 토해 놓고 말했다.
“그럼 내가 지금 너한테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하고 있단 뜻이야?”
“없는 말을 보탠 건지, 있는 말을 뺀 건지는 내가 알 수가 없지.”
답답해서 숨이 막힌다는 식으로 자기 가슴을 때려 가며 장민석이 말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너한테 없는 말을 지어내서 해, 인마.”
“원래 그런 거 잘하잖아. 즐기기도 하고.”
“뭐?”
하지만 난 여유를 보여 주기 위해 싱긋이 웃어 주고 있었다.
“아냐? 중간에 끼어서 이 사람, 저 사람 시비 붙이는 거 좋아하는 거 같더만.”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2년 전 결혼식장. 기억 안나?”
“그게 왜?”
“중간에서 우리 재경과 부경유통 싸움 붙여 놓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 말리는 척해 가며 즐기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엔 선한데? 그게 발단이었잖아. 우리 재경과 부경유통. 물론 자질구레한 감정이야 그 전부터도 쌓여 왔겠지만, 어쨌거나 그날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던 거지.”
장민석은 자신의 결백을 보여 주기 위해 애써 기가 막힌다는 식의 표정을 만들어 냈다.
“너는 무슨 오해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하냐? 내가 돌아이야? 사이코패스냐고. 내가 왜 정태랑 민수를 시비 붙여?”
“나는 재경과 부경유통이라고 했지, 손정태, 장민수… 그 둘의 이름을 콕 집어내진 않았는데?”
“……!”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장민수 옷에 와인을 일부러 쏟으면서 터진 거지, 손정태 사장이 아니라. 그때는 많이 놀라더라. 내가 터뜨릴 줄은 몰랐던 얼굴이었어. 그 표정, 난 아직도 생생하게 다 기억해.”
자, 그럼 이제 지금부터 장민석이를 좀 부려 볼까?
“그런 표정을 내가 다 기억을 하는데, 형 말을 어떻게 믿어? 형이 나라면 믿을 수 있겠어? 내가 우리 회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외삼촌들, 큰이모 쪽으로 뭐가 그렇게 섭섭해서 큰외삼촌 찾아가 같이 싸워 달라고 했는지 여쭤보라고 말씀드릴게.”
“…어?”
“나는 아니라고 믿는데, 그래도 혹시 알아? 정말 형 말대로 삼촌들, 이모가 형네 찾아가서 같이 싸워 달라고 했을지.”
“진짜라니까? 내가 왜 없는 말을 지어내냐?”
“그야 나는 모르지. 난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난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 다른 사람 통해서 하지도 않고, 명이나물 같은 말 같지도 않은 걸 핑계 삼아 이런 자리를 만들지도 않아.”
“…….”
“그러니 형처럼 속이 시꺼먼 사람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냐고. 나랑은 아예 다른 사람인데. 그냥 솔직하게 말을 해. 그게 어렵나?”
“뭘 솔직하게 말을 하란 거야?”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 이유부터 말을 해. 그래야 그 사람들이 형네 집에 찾아가서 그런 유치한 짓거리를 했다는 걸 내가 믿어 보는 시늉이라도 해 보지. 그게 맞는 순서 아냐?”
장민석이.
넌 지금 이 순간부로 나의 개다.
* * *
그건 내가 잡을 거야
정엽이, 정태와 함께 가진 시간은 태영쇼핑의 구정진이가 오기 전과, 구정진이 먼저 돌아간 후로 나뉘었다.
“오, 마이 브로! 역시 제일 먼저 왔네?”
넥타이만 안 했다 뿐이지, 제법 이 호텔의 주인 자세가 나오는 정엽이었다.
혼자 바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정태 사장은 아직 안 왔어?”
“너는 정태한테도 그렇게 부르냐?”
“뭐가?”
“형이라고 안 부르고 꼬박꼬박 이름에 사장까지 붙여서 부르냐고.”
잔에 남은 맥주 양을 보아하니, 작은 잔으로라도 같이 한 잔 마셔 줘야 할 거 같았다.
“구정진 부사장은 20분 정도 걸릴 거 같다고 방금 전화 왔어. 여기 저도 이거랑 똑같은 거 작은 잔으로 하나 주세요.”
바텐더에게 맥주 한 잔을 부탁해 놓고 넥타이를 풀었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갑갑함을 못 느꼈는데, 정엽이 놈이 시원하게 풀고 있는 걸 보니까 괜히 갑갑하게 느껴졌다.
“말 돌리기는. 나한테야 그렇게 부르더라도 회사 밖에서 정태한테까지 그렇게 부르는 건 에바 아닌가?”
“오랜만에 만나니까 반갑냐? 왜 쓰잘데기없는 소릴 주렁주렁 길게 늘어놔?”
“으으음… 이 싸가지 밥 말아 처먹은 아름다운 자식. 어, 저기 정태 오네. 여기, 여기.”
뚜벅뚜벅 걸어오는 정태의 얼굴엔 왜 외부 손님을 불렀는데 이딴 바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냐는 듯 못마땅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손까지 안 흔들어도 어디에 있는지 다 보이거든?”
“으으음… 이 아름다운 자식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까칠한 거까지 그대로 쏙 빼닮았네.”
스툴 의자를 뒤로 빼며 정태가 물었다.
“친한 척은. 설마 손님 불러 놓고 여기에서 마시자는 건 아니지?”
“안에 룸 잡아 놨어. 세팅도 다 끝내 놨고.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뛰어다녔더니 갈증이 나잖아. 혼자 맥주 한잔하고 있는데, 너희가 좀 일찍 온 거야.”
그 틈에 정태한테도 구정진이 20분 정도 늦어질 거 같단 이야기를 전해 줬다.
웃겼던 게, 정태 이놈이 쉽게 넥타이를 벗는 놈이 아닌데 나와 정엽이가 타이 없는 정장 차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기도 함께 넥타이를 벗어 버렸다.
“20분? 에이씨, 나는 술 잘 안 섞는데. 그럼 저기, 저도 여기 똑같은 거 이 걸로 한 잔 주세요.”
정태 앞으로도 똑같은 맥주 한 잔이 도착했을 때였다.
“그럼 나는 손님 오기 전까지 막간을 이용해서 영업이나 좀 해 볼까?”
정태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후 그 잔을 내려놓고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고, 난 바 테이블 위로 양쪽 팔꿈치를 올린 채 맥주잔을 들고서 정엽이를 바라봤다.
“정태야, 내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안 불렀음 어쩔 뻔했어?”
“부탁 좀 하자.”
“하는 건 자유지.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일단 들어 보고 판단할 일이고.”
“여기 호텔 있잖아? 제주점까지 다 통틀어서. 스너프에 ‘봄맞이 특별 이벤트!’ 이런 식으로 프로모션 좀 넣어 줄 수 있어?”
“고작 해낸다는 영업 전략이 유통판 배 불리는 프로모션 신청이야?”
“노노노… 그걸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정엽이 이놈이 멘탈이 대단한 놈이구나.
정태가 일부러 틱틱거린다는 건 나도 대충 눈치로 알겠는데, 그래도 저걸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다고?
“매출 올리겠다고 지금 바로 프로모션을 넣어 보겠다는 게 아니라 프로모션 효과가 얼마나 나오는지 미리 확인을 좀 해 보려고 그러는 거야.”
“스너프 트래픽을 검증해 보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 1등 플랫폼의 트래픽 파워를 확인해 보겠다는 거지.”
“아직 우리 1등 아니거든?”
“항공을 잡고 있는데, 최소한 여행 상품 관련해선 스너프가 국내 1등 플랫폼이라고 봐야지.”
져 줄 듯 져 줄 듯하면서도 밀리지 않는 정엽이.
넘을 듯 넘을 듯하면서도 지켜야 하는 선은 지켜 주고 있는 정태.
이 두 놈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까 우습기도 우습고,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아무튼,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트래픽 파워 확인한 다음엔?”
“다음 주면 벌써 4월이야. 그다음 달은 5월이고.”
“그게 왜?”
“대한민국에서 한 달 내내 호텔 장사가 잘되는 달이 바로 5월이지. 결혼식, 가정의 달, 기타 등등… 1, 2월 장사는 아예 다 말아먹었잖아. 이번 달도 크게 다를 건 없고. 4월에 JK 드 누락 이름 달고 스너프 쪽으로 노출 좀 때려 보자. 5월 장사부터는 정상화시켜야지.”
“이벤트 내용은?”
“지점별로 하루 스무 명씩 객실 타입 상관없이 객실 반값. 조식 포함.”
“지점별로 다?”
“어.”
정태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어 맥주를 마신 후 이렇게 말했다.
“호텔 객실 판매는 1월, 그리고 11월이 가장 저조해. 스너프 기준이야.”
“부경호텔 시절 잡혀 있던 매출로도 그래.”
“그럴 때 반값 이벤트를 때리는 것도 사실 특급 호텔들은 꺼려. 시작부터 호텔 브랜드를 너무 저렴하게 만드는 거 아냐? 그렇게라도 해 보겠다면 내가 말은 해 놓을 수 있어. 그런데 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데?”
“아직은 여기가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 낼 레벨은 아니지. 최대한 현실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는 중이야. 우선은 서비스 퀄리티를 증명해 내는 게 순서 아니겠어? 증명은 우리가 하는 거지만, 브랜드 파워는 고객들이 만들어 주는 거잖아. 잘 보여야지.”
“혹시 다른 플랫폼에도 이벤트 넣을 생각이야?”
“그렇게 해도 돼?”
“되겠냐?”
“물어보길래,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물어본 거지.”
“그 부분도 내가 JK 드 누락은 케이스가 특수한 케이스니까 우리 쪽 사람들한테 이야기 정도는 해 놓을게.”
“크흐!”
“원래는 안 되는 거야. 다른 상품들은 몰라도, 항공, 호텔 이쪽 상품들은 한국에선 이벤트 겹치게 넣는 거 아냐. 그건 스너프뿐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서도 안 좋아해.”
“알지, 알지. 그 정도는 나도 당연히 알지. 그런 의미로 치얼스….”
하지만 정태는 정엽이의 잔을 무시한 채 혼자 홀짝거리며 맥주를 입에 담았다.
“그럼 이제 마이 브로, 정훈이 차롄가?”
“거참, 진짜 손 많이 가네. 나는 또 뭐?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혼자서 나라 구하고 있는 줄 알겠네. 겨우 요만한 업장 몇 개 돌리면서 무슨….”
“어허이. 너한테는 내가 영업하자는 게 아니라 팔아 주겠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웃어 줬다.
“내일 오전 중으로 내가 메일 하나 보내 줄게. 전 지점 상대로 식자재 종목을 정리해 오라고 해서 그런지 시간이 좀 걸리네.”
“왜? 우리 재경식품 물건으로 가공 식자재 다 바꾸게?”
그게 몇 푼이나 한다고 그런 정성까지 쏟느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정엽이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JK 드 누락 정도 소비처면 티끌 모아 태산은 힘들더라도. 티끌 모아 먼지 소린 안 듣지 않겠어?”
“감동의 눈물이 흐르네.”
“지점별로 식자재, 가공 식자재 납품업체가 다 달라. 해당 납품업체에서 모든 브랜드 조미료, 수입 가공 식자재까지 다 취급을 하고.”
“…….”
“현재 우리 쪽으로 납품하고 있는 업체들 대표들을 다 만나 봤어. 우리가 범재경가라는 거 모르는 사람이 없지. 그런 중간 도매 업체들이 납품 넣는 매장들이 호텔뿐이겠어? 가급적이면 앞으로 우린 재경식품 생산품을 납품받아 쓸 생각이고, 그래서 어쩌면 재경식품과 다이렉트로 거래를 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전제를 깔아 놓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봤지. 너 그런 업체들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무시한 적 없다.
오히려 난 지금 정엽이 놈이 보고 있는 시야에 살짝 놀라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지금 편승일 사장을 시켜 준비하고 있는 가공식품 영업과 거의 딱 맞아떨어지는 내용이 정엽이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업체들이 끼고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들도 상당해.”
“뭐라던데?”
“마진만 맞아떨어지면, 재경식품 제품들을 납품처 쪽으로 푸시를 못 해 줄 이유가 어디에 있겠냐고. 내가 나머지 디테일 부분까지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한다는 건 선 넘는 짓인 거고, 네가 생각만 있다고 하면 다리 정도는 놔 줄게. 우선 내일 내가 메일 보내면 담당자들 불러서 확인부터 해 봐. 우리 쪽에서 쓰는 제품들 브랜드, 마진 위주로 정리를 시켰거든. 거기에서 재경이 대체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대체가 가능하다면 마진은 얼마까지 맞춰 줄 수 있는지, 딱 그 정도만 확인하면 답 나올 거 아냐.”
정태의 눈치를 살피며 정엽이가 말을 맺었다.
“고마워서.”
“…….”
“딱히 먼저 해 준 것도 없는데, 계속 도움을 받기만 하는 거 같잖아. 오늘 이런 자리까지 같이 불러 주고.”
그에 정태는 여전히 차가운 모습을 유지한 채 혼잣말을 하듯 짧게 말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 조울증이야, 뭐야? 별것도 아닌 걸로 갑자기 분위기를 깔고 있어, 안 어울리게.”
* * *
태영쇼핑 구정진 부사장의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