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 Wicked Woman RAW novel - Chapter 88
88화
“…….”
오늘만 도대체 몇 번이나 놀라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아니, 진짜 소설은 또 뭐야. 그게 제일 충격적이라고. 무엇보다 너무 진지하고 너무 기대에 찬 듯한 아타샨 영애의 표정에 반박할 의지를 잃어버렸다. 돌아가면 마야에게 소설에 대한 부분을 기필코 물어보리라.
‘친구 한 명 만들려다가 팬 한 명을 만든 기분인데…….’
나를 동경하는 눈동자 속에서 더는 친구를 운운하며 말하기엔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 똘망똘망했다. 얼마나 똘망똘망하냐고 묻느냐면…….
나, 저 눈 본 적 있어.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고양이가 딱 저 표정이었어. 모자를 든 채로 똘망똘망한 눈으로 처량하게 바라보던 그 표정이랑 똑같아!
“어…. 음. 그렇군요. 처음 듣는 소리라 조금 놀랍네요.”
“그런가요…? 당연히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하하. 제 소문, 아시잖아요. 그래서 딱히 바깥소식을 전해 듣지 않는답니다.”
무엇보다 소문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지. 그리고 그 모습마저도 ‘멋지다…!’라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타샨 영애였다.
“음…. 일단. 영애.”
“네!”
“그, 계속 영애라 부르긴 좀 그런데,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요.”
“헉…! 저야 영광이죠! 제 이름은 아리아 아타샨이에요. 편하게 아리아라고 불러 주세요.”
“좋아요, 아리아. 아리아도 절 엘리라고 불러 줘요.”
“하지만…….”
“뭐가 되었든 전, 아리아가 제 친구가 됐으며 좋겠거든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아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참, 책. 못 읽어 보셨으면 제가 빌려드릴까요?”
“…그래 줄래요?”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절판까지 되냐. 무엇보다 누가 어떻게 썼는지 봐야겠다. 다들 그 소설의 주인공을 나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겠지. 적은 가까이 있다고 하던데 알고 보면 마야가 작가 아냐?
“근데, 아리아. 그 책 제목은 뭐예요?”
“아, 제목이요? ‘누가 가녀린 백작 영애의 드레스 자락을 훔쳤는가’예요!”
‘……저기요? 제가 그 책 제목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니, 그것보다 무슨 책 제목이 그렇게 길어!! 게다가 드레스 자락을 왜 훔쳐!!
“…이름이 참 정열적이네요.”
“그야…….”
살짝 붉어진 아리아의 표정에 직감했다. 아, 저 소설. 19금이구나. 19금이다. 분명 빨간 딱지가 붙은 청소년 관람 불가 책임이 분명하다. 아니면 저렇게 얼굴을 붉힐 일이 없잖아!!
“크흠, 그래서 아직 완결이 나진 않았는데…. 정말 누가 백작 영애의 드레스 자락을 훔쳤을까요?”
‘낸들 알겠니?’라고 되물을 수도 없어서 그냥 그 책을 빌려 달라고만 말하고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19금 소설의 주인공이 나인 걸 알면 아나이스가 기함할 것 같은데 용케도 마야는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아가씨~. 곧 사냥제가 시작됩니다아~.”
밖에서 나를 부르는 에인의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옷맵시를 정리하곤 서둘러 검을 챙겼다.
“이런, 아리아.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사냥제 끝나고 봐요~.”
“네…!”
막사에서 나오자 나를 반기는 수호 기사단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이며 에인을 바라보았다. 수호 기사단. 황족을 지키는 기사단 중 하나이면서 황실보다는 엘리자벳을 위해 움직이는 일들이 더 많았던 기사단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불만과 불평을 하는 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황실을 모시는 것보다 더 나아가 빈센트가를 모시는 것보다 엘리자벳을 지킨다는 말이 더 좋았던 그들이었다. 원작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엘리자벳의 처형을 막기 위해 직접 처형대를 부수러 가지 않았던가. 그 가운데 앞장섰던 것이 에인이었고.
“아가씨! 저희 것도 남겨 주세요!”
“맞아요!! 아이던, 이 녀석은 좋아하는 영애한테 그 사냥감을 주고 싶다고 맨날 늦은 시간까지 연습했다니까요…!”
“……!! 그건…! 으익…! 그럼 에슐라, 너도 마찬가지잖아!”
“자, 진정하고…. 너희들이 다 잡아도 뭐라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한 마리도 안 잡을 예정이거든. 그냥 호수를 확인하고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는 생각이 더 강하기에 딱히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기사단이 걱정하는. 특히나 에인이 걱정하는 ‘멸종’의 사태는 없으리라.
“자, 그럼 이동할까?”
“네!”
나의 말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네!’를 외치곤 사냥제가 시작될 숲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준비를 마친 기사들도 보였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기사들도 보였다. 그 속에 심사 위원과 진행을 맡게 된 아나이스가 근엄한 표정과 더불어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실컷 발산하며 기사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레이저가 강력하게 나올 것만 같은 흑안이 나를 보자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며 다가왔다.
“엘리! 으구우우우!! 정말이지…! 1등은 할 생각도 말아! 위험하면 일단 냅다 도망치는 거다!”
“알겠어요~.”
“또, 또! 마물이랑 사냥감 잡겠다고 뛰어다니다 다치지 말고.”
“할아버지…. 저도 이제 19살인걸요.”
“그래도 이 할아버지에겐 아이다.”
‘그건 맞지만.’ 여전히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아나이스가 나를 꼬-옥 안아 주곤 입구에 가서 대기하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겨 입구로 도착한 나는 아나이스가 기사단들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듯 보였지만 청력이 좋은 이 언니가 듣지 못할 정도면 아주 작은 목소리거나 이미 한 번 이야기한 내용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눈빛을 주고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친 아나이스가 입구 중앙으로 향해 걸어왔다.
“사냥제의 시작은 폐하께서 축사를 읽은 뒤 진행될 것이며 3시간 후 결산을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우승은 가장 큰 사냥감을 가지고 온 자가 될 것이며 곳곳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으니 잘 피하도록!”
아나이스의 멘트가 끝나자 검붉은 망토를 두른 카를시아가 시작을 알리는 축사를 읽기 시작했다. 대충 내용은 이 사냥제의 목적과 이후 있는 수확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럼 제군들의 무운을 빌겠네.”
그 말을 끝으로 기사들은 환호와 함께 제각각 카누 숲을 향해 뛰어갔다. 처음 사냥제에 참여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다만 일단 호수부터 확인하도록 하자.
“아가씨, 같이 이동할까요?”
“응? 아냐~ 대충 카누 숲의 지리도 익혔고 에인이야말로 꼭 1등 해야 하는 거 아냐…?”
“아…. 뭐, 음. 그렇죠? 단장님에게 안 혼나려면요.”
“근데, 작년까지 에인은 사냥감 잡아서 누구한테 줬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못 줬어요.”
“응? 왜? 영애가 안 받는데? 아니면 참여를 못 했나. 올해는 노려도 되지 않을까? 대부분 다 참여했다고 하던데.”
“글쎄요. 사냥감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사냥제에 참여는 했는데 제 라이벌이 되는 바람에 주진 못할 것 같은데요.”
“…….”
에인이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선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먼저 가 보겠다며 카누 숲으로 향했다. 서브 남주의 냄새가 난다 했더니 찐이었구나. 그냥 주종 관계라고 하기엔 너무 한쪽이 일방적이긴 했지.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으니 더더욱 애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수호 기사단이 줄 영애가 뻔했겠지만.
“자, 그럼 나도 슬슬 브렌치아 호수로 가 볼까.”
모두가 떠나고 느지막하게 천천히 걸어 브렌치아 호수가 있는 숲의 중앙으로 향했다. 호수를 기준으로 둥근 원을 가지고 있는 숲은 호수의 북쪽을 카누 숲으로 그 아래, 남쪽을 벨레아 숲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이 북쪽 카누 숲의 입구였다. 한마디로 브렌치아 호수로 가려면 숲의 가장 안쪽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몇몇 기사단들이 사냥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도 내가 있다 하여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함정에 걸린 자도 있었고 서로 자신의 사냥감이라며 싸우다 사냥감이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다. 덩치가 좀 있다고 하면 다 신전의 허가 아래에 풀어놓은 마물들이었다. 뭐, 그렇게 큰 사이즈는 아니고 대충 대형견 같은 사이즈랄까. 마물이라 해서 코끼리 정도의 빅 사이즈를 예상했는데 생각 외로 아담하단 말이지.
“마물을 처음 본 것치곤 너무 잘 적응하는 것 같은데….”
역시나 익숙하다는 듯 갑자기 튀어나오는 마물에도 놀라지 않는 엘리자벳의 몸이었다. 이것도 아라한이 말한 신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아나이스 몰래 검술을 수련하면서 마물도 몰래 때려잡아서 익숙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보이는 넓은 들판은 누가 봐도 ‘내가 바로 숲 중앙이요’하는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산들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폭신한 느낌의 잔디밭은 누군가 일부러 손질한 듯 잘 다듬어져 있었다. 설마, 이것도 세 남자의 합작품은 아니겠지?
“…그냥 생각 안 할래.”
더 생각하다간 이상한 생각까지 할 것 같았다. 이러다가 나 때문에 제국의 법도 바꿀 것만 같은 카를시아였고 그걸 승인할 것만 같은 아라한과 승인하지 않은 자들은 모조리 무력으로 제압해 버릴 것만 같은 아나이스의 조합이란.
‘무섭다.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