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dest son is eager for soccer RAW novel - Chapter (43)
장남은 축구가 간절하다 43화
“쟤 나이 가지고 장난친 거 아냐?”
이정후 감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충분히 의심이 들 만했다.
“쟤가 태클하면 다리 하나는 아작 나겠는데.”
류준서가 혀를 내두르며 그리 말했다.
실제로 바이스티거와 몸싸움을 해서 다친 사람이 무수히도 많았다.
한국에서 쟤를 괴물이나 백호 말고 또 뭐라 불렀던 거 같은데 뭐더라?
아, 그래.
인간흉기나 진격의 거인 같은 별명도 붙었던 것 같다.
녀석을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별명은 개인적으로 그거였다.
‘그저 벽, 벽 그 자체.’
의욕이 조금 떨어진 가운데, 경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녀석의 시선이 자꾸 나를 향한다.
혹시 싶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데도 마치 CCTV처럼 놈의 시선은 오로지 나만 쫓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뮌헨에서 나를 맨마킹하라고 지시라도 내린 모양이다.
으, 저 괴물이 맨마킹이라니.
질색이다.
은근슬쩍 라인을 내리면서 놈과 거리를 벌려본다.
맨마킹이긴 하되 지역을 벗어나란 지시는 없었는지 여기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그 틈에 공세환에게 공을 전달 받았다.
몸을 빙글 돌리며 빠르게 상대 진영을 훑었다.
상대 수비진영은 예상외로 헐거웠다.
전체적으로 라인을 바짝 올린 상태에서 후방에는 두 명의 수비수를 제외하고 모두 공격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바이스티거를 피해서 내려온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이것 때문에 내려온 것도 있었다.
우리 팀 2선과 3선이 압박을 강하게 받아 공을 전방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거든.
내가 내려오지 않았으면 공격라인으로 공을 이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압박하기 위해 위로 올라간 선수들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공을 전개해야 한다.
나는 공을 가진 그 상태 그대로 측면을 타고 앞으로 달려가면서 이성호와 김효준을 찾았다.
류준서를 밀어내고 모처럼 선발로 나온 김효준은 의욕적으로 풀백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었고, 이성호는…….
‘저 미친놈.’
호기롭게 바이스티거 옆에 있었다.
물론, 정말 미쳐서 바이스티거 옆에 있는 건 아니다.
바이스티거의 발을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거다.
바이스티거가 이성호에게서 벗어나 내게 오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류준서와 이성호를 견제하는 선수들 빼고 한 명의 센터백과 풀백이 간격을 좁히고 나를 견제했다.
사이드가 휑하니 넓어졌다.
마치 대놓고 사이드로 들어가서 크로스나 올리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지?
맞다.
이들은 자신 있는 거다.
백날 크로스를 올려봤자, 괴물을 이기고 득점을 따낼 리 없다는 자신감.
그리고 실제로 성인팀도 아닌 유스팀에서 저 괴물을 상대로 공중전에서 이긴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골이 아예 안 들어간 건 아니다.
운이 좋으면 저 괴물을 거치지 않고 득점을 할 수도 있겠지.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있었을 거고.
거기에 도박을 거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굳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놓고 공간을 만들어주는 적들을 상대로 확률 적은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이드보다, 공간을 좁힌 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마음을 정한 순간 속도를 올려 달려갔다.
센터백과 풀백은 나를 견제할 뿐 무리해서 앞으로 달려오지 않았다.
1대1 상황에서 내가 돌파 성공률이 굉장히 높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지.
선수들이 내려올 동안 시간을 벌겠다는 생각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발끝에 힘을 주고 전력으로 달려 나간다.
아무리 뒤로 물러선다 하더라도 정해진 선이 있는 법.
나를 조사했다면 내가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득점 성공률 또한 알고 있을 거다.
절대 그 안으로 나를 들일 수는 없겠지.
역시.
내 예상대로 상대 센터백과 풀백은 더 이상 거리를 두지 못했고, 둘 중에서 비교적 발이 빠른 풀백이 나에게 다가왔다.
풀백을 코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빠져나갈 듯하다가 풀백이 반응하는 걸 보고 멈춰서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풀백이 몸을 돌려 나를 잡으려 했지만, 반 박자 늦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난 건 아니다.
왼쪽으로 빠지며 풀백을 벗겨내니 기다렸다는 듯 센터백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넌 어디에도 못 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저 득의양양한 표정.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주 웃어주며 다리를 움직였다.
오른쪽?
아니면 왼쪽?
어디로 갈까?
내가 계속 발을 놀릴 때마다 놈의 눈이 어지럽게 움직인다.
내 선택은 정면이었다.
멈추지 않고 놈에게 달려들어 귀신같이 스치고 지나간다.
고작 라 크로케타 하나에 놓칠 거면서 으스대기는.
자, 이제 남은 건 골대인……!!
“어억!”
머릿속에서 쿵! 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마치 차가 내 옆에서 달려와 날 들이박은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난 이후 드리블하다 단 한 번도 무릎을 꿇어본 적 없는데, 무릎을 꿇는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에구구…….”
나이답지 않은 노인 같은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들이받은 차를 바라봤다.
“흠.”
괴물이 나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야, 그 몸은 진짜 반칙이지 않냐?”
아, 영어 모르려나?
“…물려주신 몸인데 어쩌라고.”
아니네, 잘하네.
독일식 억양이 짙기는 하지만, 뭐 같은 프랑스 억양보다는 훨씬 낫다.
“좋겠다, 피지컬 금수저 새끼.”
“뭐지? 방금 거는 어느 나라 말이냐?”
“모국어다, 새끼야.”
“어디 출신이지? 중국? 일본?”
이 새끼 알면서 이러네.
“한국이다.”
“너처럼 작은 나라에서 왔군.”
녀석이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된 도발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 녀석 몸으로 모든 걸 해결할 거 같지만, 수비수로서 가져야 할 것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신체능력, 수비기술, 멘탈, 지휘력, 지능, 그리고 적절한 반칙과 사람을 살살 긁는 입담까지 말이다.
굉장한 녀석이다.
저 큰 덩치로 뒤에 바짝 붙어서 등이나 엉덩이를 꼬집으며 상대 멘탈을 흔드는 쌍욕을 아끼지 않는다.
“이봐, 그 계집애 같은 몸으로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긴 한 거야?”
아까 녀석의 차징으로 심판이 반칙을 불렀기 때문에 최지우가 프리킥을 준비하는 사이, 라인에 서서 공을 주시하는 가운데 녀석이 내 옆에 다가와 옆구리를 쿡하고 찌르면서 말을 걸었다.
“미안한데 네 영어 발음이 너무 뭣 같아서 못 알아듣겠거든? 그만 떠들고 꺼져줄래?”
“뭐라고? 설마 네 발음보다 더할까? 영어 발음이 마치 칭챙거리는 거 같은데?”
이 자식이 교묘하게 인종차별 발언까지 하네.
이것만큼 상대를 도발하는 단어는 또 없지.
프로 경기면 모를까 이런 애들 경기에서 대화 내용을 따낼 수도 없으니까.
내가 항의해도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인 상황이다.
그래,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도발한 거다?
“아, 못 알아들었어?”
“어, 네 발음이 너무 뭣 같거든. 칭챙칭챙ㅤㅊㅛㅇ.”
“그렇게 들린 건 게르만 전용 언어 필터가 걸려서 그런 걸 거야. 내가 뭐라 그랬냐면…….”
그사이 최지우가 프리킥을 찰 준비가 끝나고 휘슬이 울린다.
휘슬과 함께 최지우가 도움닫기하며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두르는 그 순간.
“히틀러 같은 새끼라 그랬다 이 병신 같은 인종차별자 나치 새끼야.”
“……!!”
악의 마법사 그 이상의 금기시된 이름을 꺼내자 놈의 몸이 굳는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놈에게서 벗어나 공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달려갔다.
선수 둘을 헤집고 들어간다.
나를 향해 뻗어오는 손을 쳐내고, 은근슬쩍 내미는 다리를 피하며 공의 위치를 확인한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을 향해 머리를 들이미는 건 이성호였다.
유럽이 상대적으로 키가 압도적으로 크던 시절은 거짓말이 아니라 수십 년 전이다.
그중에 이성호는 독일인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피지컬과 타고난 공중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높이 떠올라 공을 머리에 가져가며 이성호는 힐끗 눈짓으로 나를 발견하고 내 쪽으로 공을 떨궈준다.
오른발 발등으로 공을 띄워 올린 나.
빈 공간에 뮌헨 선수의 발이 허공을 가르고, 뒤이어 떠오른 공을 향해 나는 다시 한번 오른발을 들어 휘둘렀다.
강한 슈팅은 필요 없었다.
골키퍼의 시야를 가린 틈을 타, 골대 오른쪽 아래 구석으로 정확하게 노리는 슈팅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 * *
세바스티안 바이스티거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윤태양을 바라봤다.
세상에 히틀러라니?
자신이 들은 게 맞는 건가?
그는 득점을 하고도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한국 선수들을 밀어내며 하프라인으로 걸어가는 윤태양에게 다가갔다.
“이봐, 내가 방금 들은 게 맞아?”
“뭐가 맞아?”
“히틀러라 하지 않았나?”
뭐?
히틀러라고?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이 이 자리에 태반이지만, 독일 선수 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뭐래는 거야?”
“아까 네가 히틀러라 하지 않았냐?”
“참나, 인종차별은 네가 해놓고 오히려 나더러 그딴 소리 하는 거야?”
“뭐? 내가 언제?!”
“니가 아까까지 나한테 칭챙거리지 않았냐? 네 말 듣고 깜짝 놀랐잖아. 뮌헨은 인종차별 발언을 장려하나 싶어서 말이야.”
“그럴 리 없잖아!”
흥분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태양은 오히려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화사해 오히려 등골이 서늘했다.
“어쭙잖은 도발은 더 커서 하라고, 이 친구야. 하나도 안 통하니까.”
뭔가 어른스러운 말에서 바이스티거는 이 작은 소년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재능 있는 애송이는 아니라 이거냐?”
바이스티거의 말에 윤태양이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그거 네 이야기 아니냐? 타고난 피지컬과 재능밖에 없는 애송아.”
“재밌는 친구군.”
“그래, 재미없는 너네 나라 사람한테 난 꽤나 유머러스한 사람이겠지.”
어째 말 한 마디를 안 진다.
바이스티거는 고개를 저으며 본래 위치로 걸어갔다.
멘탈을 흔들려다가 되려 당했다.
그렇다면 집중해서 실력으로 녀석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재개된 경기.
뮌헨은 라인을 올리면서 대한민국을 가두고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대한민국의 빈틈을 노렸다.
국가대표팀 치고는 수비 조직력이 좋았다.
하긴, 실력적으로 경쟁력이 없으면 조직력이라도 갖춰야겠지.
아마 이전에 세 팀을 상대로 하면서 수비 조직력을 바짝 끌어올렸으리라.
하지만, 거기까지다.
캐논 같은 슈팅으로 골문을 두드리고, 빈 공간을 계속해서 파고든 놈들이 헤집기 시작하자 한국팀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뮌헨은 급해지지 않았다.
할퀴고 물어뜯으며 사냥감이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리고 치명적인 위치에 상처가 벌어진 그 틈에 하얀 호랑이가 직접 나서 이빨을 들이민다.
쾅!
압도적인 피지컬에서 나오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어마무시한 중거리 슈팅을 말이다.
정확하게 공 가운데를 때린 슈팅이 아무런 회전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골키퍼 코앞에서 난데없이 뚝 하고 떨어져 내리며 바닥에 한 번 바운드 되고 튕겨 나가더니 골망을 뒤흔들었다.
“우오오오오!”
그래, 이 맛이지.
골을 넣고 포효하는 바이스티거는 그야말로 한 마리 괴물 같았다.
바이스티거는 괴물 보듯 하는 그 시선을 즐겼다.
세리머니 후에 모두들 내려다보며 자신을 향한 그 시선을 만끽한다.
그런데 단 한 사람.
“윤…….”
도발을 하던 자신을 상대로 오히려 더 독한 멘트를 날리며 멘탈을 뒤흔들었던 작은 아시안이 아까 골을 넣은 뒤에 표정 그대로 시큰둥하게 하프라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득점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재미있군.”
승부욕이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