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13)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13화
무엇보다 서해용왕은, 적어도 이 심해의 서해용왕궁 안에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페세이타의 휘하 신들, 그리고 그 권속들 또한 심해에서는 현세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권능을 행사하지만 지금의 서해용왕에 비하면 전신을 쇠사슬로 구속한 다음 무거운 족쇄를 몇 개나 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들이 승자고, 서해용왕은 패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다.
그들은 용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활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서해용왕은, 개인의 관점으로 보면 광활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매우 좁은 영역에 갇힌 신세다.
고작 이 안에서 제약 없는 힘을 휘두를 수 있다 한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서해용왕궁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운 제약이 그를 옭아맬 것이고, 얕은 바다까지만 가도 육지에 올라온 고래 같은 신세가 될 텐데.
‘아마도… 맹약에 의해 결계를 구성하는 것이 그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힘을 현세에 투영할 수 있는 조건이겠지.’
이렇게 그와 마주한 것만으로도 칠감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 온누리의 황손 한울왕자가 위대한 서해용왕을 뵙습니다.”
한울왕자와 그 측근들이 넙죽 엎드리며 예를 표했다.
하지만 모르드 일행은 그렇게 과한 예를 갖출 이유가 없었으므로,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갖추었을 뿐이었다.
“새벽반도 서해의 지배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만남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문을 환영하는 바일세, 페세이타의 성자여.] [또한 세레스의 성자이며, 베르나스의 성자인 자여.] [그대들의 활약은 대단했네. 신화에 우리를 괴롭혔던 그 배가 짐의 속을 이토록 시원하게 해줄 거라고는 상상 못 했군. 만 년을 넘게 살아왔어도 여전히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서해용왕의 세 머리가 차례차례 말했다. 정신파가 워낙 크고 강하게 울렸지만 목소리 자체는 온화하고 침착했다.
그렇게 모르드에 대해서 이야기한 서해용왕이 한울왕자 일행을 바라보았다.
[온누리의 황손이여, 고개를 들라.]고개를 든 것은 한울왕자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서해용왕의 어전에서 고개를 들 자격이 없었으니까.
그것은 단순히 계급에 따른 법도일 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아무런 제약 없는 고대의 신성을 지닌 서해용왕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호흡이 힘들어질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한울왕자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서해용왕과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사고가 멈추지 않도록 정신을 다잡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었다.
[어머니의 말예여, 그대가 무엇을 바라고 이곳에 왔는지 안다.]그를 굽어보는 서해용왕은, 그의 상태를 배려해 주지 않았다.
신화의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바랄 때는 마땅히 시련이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모르드 일행이 그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한들, 이 자리에서 서해용왕과 말을 나눌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짐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그대에게 굳이 긴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싶지 않구나. 그러니 질문을 듣지 않았어도 대답을 들려주겠다. 짐은 그대의 소망을 들어줄 수 없다.]“어째서… 입, 니까?”
한울왕자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숨이 막힌다.
마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물조차 마시지 못한 채 몇 시간이고 무리한 노동을 강요받은 것처럼, 머릿속이 흐릿해지고 시야가 흐트러진다.
당장에라도 용혼강림을 하고 싶은 충동이 불길처럼 일어난다.
하지만 참아낸다.
어려서부터 길러온 정신력을 바닥까지 쥐어짜 내어 어떻게든 인내력을 유지한다.
‘인내하거라. 큰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때로는 고통에서 벗어나 쉽게 편해질 수 있는 길이 눈앞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참아내야만 한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니.’
어린 시절, 엄하게 그를 훈육하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의 충동을 억눌러주고 있었다.
‘나는 시험받고 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그것조차 어렵다. 마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이 모든 시험의 답은, 인내하는 것이다.’
모르드 일행과 만났을 때부터 한울왕자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이 과연 자신에게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만백성의 지지를 받아 온누리를 재건하고 단죄자를 격파한다. 그것만이 망가져 버린 이 세상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며 나의 꿈을 이루는 길이다!’
이 난세에 그러한 야심을 품고 있는 인물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울왕자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그 야심을 실현할 능력이 없었다. 이 세상을 덮친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시련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을 초월한, 하늘의 도우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하늘은 인간 개개인의 운명에는 무심할지언정 모든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두고 볼 정도로 무심하지는 않았다.
한울왕자의 눈앞에 나타난 모르드 일행은 세상에 드리운 종말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희망의 불씨였다.
이들의 선택을 받아 세상을 비추는 광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에게 천명을 짊어질 자격이 있는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지.’
자신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억조창생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를 잡을 자격이 있는지 시험받는다니, 평생 감사해도 모자랄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는…….’
조각조각 흩어지는 것 같은 사고력을 그러모아서, 한울왕자는 머릿속에 뚜렷한 의지를 만들어내었다.
‘…설령 그 불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몸과 영혼이 모조리 불타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좋아. 이 어지러운 세상을 비추는 광명이 되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겠다! 그로써 내 삶이 올발랐음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의 선택이 올발랐음을 증명하고야 말겠어!’
한울왕자의 시야가 밝아졌다.
* * *
[이유를 들을 자격은 있구나.]서해용왕은 흡족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위압감에 시달리고 있던 한울왕자는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서해용왕의 신성으로부터 비롯된 위압감은 그를 덮치고 있을 것이다. 서해용왕에게는 그를 괴롭힐 의도가 없지만, 격이 다른 존재가 서로 마주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울왕자의 신성은 그와 마주하여 대화를 나누기에는 작고 초라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온누리의 황손에게 내려지는 천명의 불꽃이 있었다.
이 불꽃은 외압으로부터 황손의 정신을 지켜주는 힘이 있으며, 황손의 마음이 백성을 위하는 것에 가까워질수록 효과가 강해진다.
한울왕자는 서해용왕의 위압감을 견디기 위해 의지력을 극한까지 쥐어짜 내며 자신이 품은 야망이 백성을 위한 길임을 증명했고, 천명의 불꽃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명의 불꽃에 깃든 힘이 이런 식으로 발휘되는 것이었다니…….’
황통의 제를 치를 때부터 천명의 불꽃에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천명의 불꽃을 갖고 있기만 하면 당연히 발휘되는 효과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소유자의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을 줄이야.
자신은 지금까지 황손으로서의 신분패로 쓰고 있었을 뿐, 그 힘은 활용하지 못했던 셈이다.
[짐이 그대의 소망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대를 지켜주는 그 천명의 불꽃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더 많은 백성의 지지가 필요하단 말씀입니까?”
[그렇다. 적어도 온누리의 황위를 계승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짐을 설득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토록 작은 불씨만을 갖고 맹약을 계승하겠다는 것은 뻔뻔함이 지나친 것이다.] [설령 짐이 그대를 선택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해도 맹약이 허락하지 않는다.]서해용왕의 세 머리가 차례차례 말했다.
“그, 그렇군요.”
한울왕자는 얼굴을 붉혔다. 서해용왕의 말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납득했다면 이만 물러가도록 하라. 다시 짐을 보고자 한다면, 짐을 설득할 만한 명분을 준비해 와야 할 것이다.]“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울왕자는 혈족의 어른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하고는 괴로워하는 측근들과 함께 알현실에서 물러났다.
모르드 일행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아함도 느끼지 않았다. 처음 그들을 대하는 태도만으로도 서해용왕에게 있어서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중요한 손님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군.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만백성을 위해서도, 그리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 * *
거대한 알현실 문이 열렸다가 다시금 닫혔다.
한울왕자 일행 없이 서해용왕과 마주하게 된 모르드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상냥하시군요.”
엄격한 게 아니라 상냥하다고 말했다.
서해용왕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온누리의 혼란은 길었다네. 그리고 그 혼란이 종식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 종말이 다가와 있지.]만약 단죄자의 위협이 없었다면, 서해용왕은 한울왕자와 제대로 말을 나누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위압감에 짓눌려 용건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는 한울왕자에게 자격이 없는 주제에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를 청했다며 호통을 치고 쫓아냈을 터.
하지만 지금의 서해용왕은 그렇게 모질게 굴 수가 없었다.
단죄자들에 의해 남누리의 서해를 지키던 수군이 격파당하고, 얕은 수심에 사는 바다의 백성들까지 그들의 마수에 사로잡혔으니까.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절망 앞에서, 그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좋으니 온누리에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를 갈구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운이 좋지. 그 운이 하늘의 도우심이라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로군.]모르드 일행을 만나고, 그들에게 지원할 만한 아군으로 선택받아 여기까지 온 것이 한울왕자가 행운의 주인공임을 증명한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시대에 찬란히 빛나며 역사에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은 운명의 선택을 받아야만 가능한 법.
서해용왕은 지금의 한울왕자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저 또한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고요.”
[그대는 저 아이를 온누리의 황제로 만들 생각인가?]“그가 저희를 실망시키거나 그보다 훨씬 더 적합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가 바라는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의외로군.]“어째서입니까?”
[그대들이 그렇게 우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네.] [그대들이 가포를 두 번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았지.]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굳이 온누리를 재건하느라 애쓰기보다는 그대들이 주인공이 되어 일을 진행하고자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네.]새벽 반도의 상황은 실로 어지러웠다.
지금 새벽 반도에는 온누리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긴 세월 동안 온누리 바깥에서 단죄자를 피해서 온 난민들의 비중도 상당히 높았다.
단죄자의 위협이 서쪽에서 시작되어 계속 동쪽으로 진행되어왔기에, 살아남은 이들은 계속 동쪽으로 피난하다가 마침내 새벽 반도에까지 이른 것이다.
사분오열된 온누리의 각 지방 세력은 이 난민들을 받아들여 세를 불리기도 했고, 난민들을 쫓아낸 결과 그들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곳도 있었다.
국가가 온전치 못하니 그들이 새벽 반도에 멋대로 자리 잡아도 토벌하거나 쫓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국의 사람들인 모르드 일행이 굳이 온누리 재건을 목표로 하는 것은, 오히려 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의문을 이야기한 서해용왕이 물었다.
[혹시 그대의 일행, 위대한 어머니 란팔로제의 잔재 때문인가?]“에리우야.”
[음?]“난 에리우야.”
[…….]에리우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자 서해용왕은 조금 당혹감을 느꼈다. 감정을 짐작할 수 없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렇게 불리기를 바란다면, 존중하도록 하마, 에리우여.]서해용왕은 괜히 이런 문제로 기 싸움을 할 마음이 없었기에 순순히 그녀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모르드가 말했다.
“에리우의 존재는 그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전혀 말인가?]“그렇습니다. 우리는 온누리라는 나라에 아무런 빚이 없습니다.”
모르드 일행에게는 이미 50년도 더 전부터 사분오열된, 실질적으로 붕괴한 지 오래된 온누리 제국을 애써서 재건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단죄자와 싸움으로써 새벽 반도에 자리한 생존자들을 돕긴 했겠지만, 그것이 온누리 재건이라는 목표로 이어진 것은 어디까지나 한울왕자 때문이었다.
[그가 황손이기 때문인가?]“아닙니다. 그가 황손이면서 우리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울왕자가 모르드 일행을 경계하여 거리를 두었거나, 혹은 자신의 혈통이 온누리의 황손임을 내세워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면 동맹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드 일행은 계속 단죄자들을 때려 부수고, 그 실적과 명성을 바탕으로 사분오열된 온누리의 지방 세력들과 느슨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만족했으리라.
[온누리의 황손이든 누구든 그대들이 고개 숙여가며 그 밑으로 들어갈 이유는 없다는 뜻이군. 납득이 간다.]서해용왕은 모르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모르드 일행은 주도권을 남에게 넘겨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분오열된 온누리의 누군가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면 그의 권력 성취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었으니까.
그건 동쪽 세계에 있어서 실로 심각한 기회비용 낭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