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1020)
엑스트라가 너무 강함 1020화
회담의 분위기는 완전히 변했다.
모르드에 이어 파르웰이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자 그 자리에 있던 강문의 마법사는 털썩 주저앉았다.
“아아, 그분의 성자시여…….”
이 마법사는 용족화하지 않은 신혈이었고, 그중에서도 브레디아스의 신혈이었던 것이다.
브레디아스의 혈손으로서 천상의 문 앞에 선 자, 또한 브레디아스의 총애를 받아 성자로 임명된 자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런 반응을 보일만도 했다.
박 장군 입장에서는 자신의 수하가 손님에게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 무척이나 체면 상하고 언짢은 일이겠지만, 그는 지금 현재 그런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140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은 아니군. 하지만 정말로… 오랜만이다.’
적어도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후로는 처음인 것 같았다.
파르웰은 주변의 놀람이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항구도시 가포를 두 번 파괴했습니다. 한 번은 육지에서, 그리고 한 번은 바다에서. 가포가 항구로서 지닌 모든 시설은 무력화되었으니 육지에 병력과 물자를 공급하는 일 또한 차질을 빚게 될 것입니다.”
“가포를 파괴한 것이 당신들이었단 말인가?”
박성규가 놀라 물었다.
용하의 백룡군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멀리 배치해둔 정찰병력을 통해 가포에서 일어난 전투를 관측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은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파르웰이 말했다.
“예. 또한 두 번째, 바다에서 그들의 함선과 병력을 파괴할 때는 여기 한울왕자님 또한 참전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그 말에 강문의 사람들이 모두 한울왕자를 바라보았다.
한울왕자는 사실 그 전투에서 로텐다르의 신성로에 힘을 좀 보탠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는 처지라서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 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을 포장해 주는 파르웰을 위해서라도 뻔뻔하게 당당한 태도를 연기해 냈다.
“그 대가로 서해용왕궁은 서해의 모든 바다의 백성들이 우리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했으며, 서해용왕궁에서 건조한 검은 포식자 호는 한울왕자의 기함이 될 것입니다.”
“검은 포식자 호?”
“당장 보여드리고 싶지만 바다에서 활약하기 위한 대형 군선이라 이 도시가 끼고 있는 백룡강에 띄우기에는 좀 힘들겠군요.”
파르웰은 아쉽다는 듯 말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모르드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이어받은 모르드가 말했다.
“우리는 이 강문과도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조건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물론 영혼인도자의 권능이 적용된 결계였다.
설명을 들은 강문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능하기에 위대한 바다의 어머니께서 나를 성자로 삼으셨고, 서해용왕이 협력을 약속한 것이다.”
“으, 으음…….”
“만약 당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단죄자나 용족 언데드의 봉인이 있다면, 그 영혼을 구원하여 증명해 주지.”
“…알겠네. 그 검증은 이야기가 끝난 후에 진행하도록 하지.”
강문에서도 얼마 전까지의 용하처럼 용족 언데드를 봉인해서 관리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향후 우리가 구출한 사람들을 받아들여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요괴와 단죄자로부터 구출한 사람들을 용하에서 받아들여 준 것처럼.”
“그건 응당 해야 할 일이지.”
“좋군. 마지막은 통신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모르드가 통신기에 대해서 설명하자 다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런 기술이 있었단 말인가?”
“단죄자들에게도 있다. 우리 것과는 다르지만.”
“아, 그건 들었네. 연락용 환요와 정보정령을 다 틀어막아도 외부와 바로바로 교신하여 원군을 불러들인다고 하더니 그래서였나…….”
박 장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온누리 붕괴 전부터 오랫동안 군문에 몸담고 있었던 몸이기에 군문 출신자들과의 인맥이 풍부했다. 그중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연락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단죄자 놈들이 내륙으로 진출하여 서남도를 유린하고 있는 지금, 용하와의 연락체계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니. 하지만 정말 대단하군. 그런 기술을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여기 파르웰이 만들었다.”
“과연 그분의 성자십니다…….”
강문의 마법사가 경외의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그는 이미 파르웰을 신의 대리인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신의 대리인 맞긴 하군.’
브레디아스한테 물어봐도 그렇다고 대답해 줄 것이다.
‘여기가 용족의 권역이니 그렇지 만약 대륙 어딘가가 최후의 보루가 되어 싸우는 상황이었으면 사람들을 결집시켜 싸우기는 훨씬 쉬웠겠어.’
모르드 일행의 위상은 이곳에서도 대단하지만 대륙 어딘가에서였다면 절대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모든 신들이 자신들을 따르라고 말하는데 감히 거부할 이가 있었겠는가? 있었어도 죄다 신벌 맞고 사라졌으리라.
“통신기를 설치한다면 서로 협력이 원활해지겠지. 당신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우리가 구하러 올 것이고, 당신들에게 정보를 부탁할 일도 있을 것이다.”
“그 기술 또한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사실이라면 받아들이겠네.”
“좋군. 우리의 요구사항은 그걸로 끝이다. 검증이 끝나서 협력이 결정되면 곧바로 통신기와 결계를 설치하도록 하지.”
“음?”
박 장군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게 끝이라고?”
“그렇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의문이 있으면 말로 해줬으면 좋겠군.”
모르드가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묻자 박 장군은 당황한 기색으로 그와 한울왕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대는 한울왕자의 동맹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우리에게 한울왕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 말에 모르드는 애써 실소를 참았다.
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해할 만도 했다.
강문에는 협력 관계를 요구한 데 비해 한울왕자와는 동맹임을 명확히 했으니까.
또한 파르웰이 설명할 때도 한울왕자의 공적을 어필하여 그의 위상을 높여주었으니 이런 추측을 할 만도 했던 것이다.
모르드가 말했다.
“아니다. 그것은 한울왕자와 당신들의 일이지.”
“그대들과 한울왕자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군.”
“흠…….”
모르드는 팔짱을 끼었다. 잠시 머릿속에서 할 말을 고른 다음 차분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한울왕자의 동맹으로서 그가 하는 일을 돕는다. 단죄자와 싸우고, 사람들을 구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온누리 각지의 세력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일은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그 세력이 사람들을 지배할 때, 우두머리들이 사리사욕 채우느라 폭주하면서 도적 떼처럼 무도한 짓거리라도 벌이고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본 강문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사는 게 팍팍해진 느낌은 들지만 지배자들이 패악질을 벌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온누리의 권력에 관심이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향후에 단죄자들을 격파하여 온누리 제국의 재건에 성공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말하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황손인 한울왕자를 동맹으로 선택하여 그가 온누리를 재건하여 황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도울 것이면서 권력에는 관심이 없다고?”
“그렇다. 우리는 이 나라의 권력을 목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모든 목표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는 합당한 대가를 받고 이 땅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온누리의 황제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겠지.”
“어떤 요구인가?”
“온누리 사람으로 살 것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단죄자에게 빼앗겼던 저 광활한 대륙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재건하는 것을 지원해 줄 것.”
“…….”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온누리의 재건을 돕는 대가로, 이 광활한 대륙에 온누리만이 남은 이후에도 대륙 진출을 포기하게 하겠다는 것인가?”
“혹시 당신은 반역의 용군단인가?”
모르드의 직설적인 질문에 박 장군이 흠칫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온누리 사람들에게 반역의 용군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타락자 이레티샤 하음을 거짓된 황제로 옹립하며 북누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는 그랬던 적이 있었지.”
박 장군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 또한 온누리 붕괴 전에는 반역의 용군단의 일원이었다.
수십 년 동안 군문에서 활약하여 장군이라 불리게 된 그는 온누리 제국이 다시금 대륙으로 진출하여 세상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로 거듭나는 것을 꿈꾸었다.
그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그러했다. 반역의 용군단이 내세우는 이상은 많은 온누리 사람을 매료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닐세. 그들이 온누리의 건국이념을 저버리고 타락자 이레티샤 하음을 거짓된 황제로 내세운 시점에서…….”
“온누리의 건국이념이 무엇이었기에?”
“이로써 신의 시대가 끝나고 사람의 시대가 열렸으니, 이 나라는 오직 사람에 의해서만 지배되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 나고 자란 존재만을 의미한다. 온누리 제국은 법전에도 그 점을 명시해 두었다.
따라서 신화의 존재는 온누리의 권좌에 오를 수 없었다. 벼슬조차 할 수 없는, 공인된 권력 바깥에만 자리할 수 있었다.
“반역의 용군단이 그런 무도한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황제께서 그 수장이었기 때문이었다네. 하지만 위대한 황제를 잃은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폭주를 시작했지. 반역의 용군단은… 그래, 그리운 꿈의 잔향 같은 것일세. 이제는 온누리의 그 누구도 그 일원일 수 없지.”
“…….”
모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지금까지는 한울왕자를 비롯한 용하의 사람들이 북누리에 강렬한 적개심을 보이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온누리가 붕괴한 지 50년 이상이 지났고, 단죄자에게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신화의 존재들이 주축이 되어 잔존세력을 규합시켜 국가를 세운 뒤 이전의 국가를 계승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토록 강렬한 증오와 적개심을 살 만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박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비로소 이해가 간다.
북누리는, 온누리 제국의 가장 근본적인 이념을 파괴함으로써 탄생한 존재다.
온누리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의 소산(所産)인 것이다.
‘아마도 온누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지금쯤은 이런 감정이 희석되었을 것이다.’
50년은 그러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물며 국가가 붕괴하고 생존의 위협이 닥쳐오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온누리 제국의 지배계급은 용족이며, 용족은 인간보다 두 배 이상 장생하는 존재다. 사회적 세대교체도, 역사에 대한 망각도 늦을 수밖에 없다.
또한 온누리 제국은 나라에서 기록에 대해서 광적인 집착을 갖고 있었다. 용하만 해도 기록관이 따로 있어서 일 단위로 일어난 일들이 보존되어 있을 정도며, 이 기록 중 일부는 시민들도 허가받고 열람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나라다 보니 아직도 예전을 그리워하며 온누리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마음이 희석되지 않은 것이다.
무수한 지방 세력들로 분열되어 수십 년을 보낸 지금도, 심지어 그사이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까지도 모두가 ‘온누리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할 수 있는 이유였다.
박 장군이 말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네. 신화의 존재는 맹약의 계승자가 될 수 없다는.”
온누리 제국은 신화에 구축된 거대한 맹약의 힘으로 수호되던 나라다.
그리고 이 맹약은 오직 사람만을, 현세에 나고 자란 존재만을 그 대상으로 인정했다.
오래된 신화의 존재인 이레티샤 하음은 천명의 불꽃조차 품을 수 없다. 모두가 황제로 인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온누리 제국의 건국이념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맹약이 더 이상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결과를 낳으리라.
모르드는 생각했다.
‘확실히 그건 곤란한 일이지.’
적어도 단죄자를 무찌를 때까지는 이 새벽 반도를 온누리 제국의 결계로 지켜낼 필요가 있었다.
‘이미 바다의 결계는 붕괴 직전이다.’
서해용왕이 확인해 주었다.
바다를 수호하는 결계의 힘은 대단히 약해졌다. 서해 수군이 괴멸당한 이후로 단죄자들은 점점 더 많은 병력을 보내고 있었으며 그 과정은 갈수록 수월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육지의 결계가 버텨주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새벽 반도의 바다를 감쌌던 결계와 달리 육지의 결계는 밖에서부터 차근차근 깎아나갈 수 있으니까.
‘역시 남쪽부터 오길 잘했군. 여기부터 온 것도, 한울왕자를 선택한 것도 틀리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북누리부터 가지 않은 이유는 반역의 용군단의 권역이기 때문이다.
그들과는 이미 적대관계임이 명확해졌다. 설령 단죄자의 위협 앞에 손을 잡는다 하더라도, 무작정 북누리에 찾아갔다면 그들의 밑으로 들어가는 신세를 강요받았으리라.
모르드 일행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니 결국 그들과 한바탕하고 파탄이 났을 터.
그들에게 협력을 강요하기 위해서라도 남누리에서 세력을 일구어내는 게 우선이었다. 최소한 그들과 대등한 수준이어야 그들도 협력부터 생각하지 않겠는가?
‘물론 기왕이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야지.’
모르드는 반역의 용군단에게 고개 숙일 마음 따윈 전혀 없었다. 한쪽이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면 그건 무조건 저쪽이어야만 한다.
‘한울왕자로 하여금 맹약을 계승케 하여 만인이 인정하는 정당한 황위 계승자로서 남누리를 통합하게 한다.’
그로써 남누리만이 진정한 온누리 제국임을 천명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