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218)
둔재들의 왕 (6)
“결투회 보러 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까?”
클로엘 황제와 셀라하 황녀가 아켄섬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황족 숙소의 사용인들도 한참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페니아 황녀의 얼굴을 보러올 클로엘 황제와 셀라하 황녀를 맞이하기 위해, 만찬회와 함께 정원 쪽에 다과회를 준비해놓고, 사용인들의 업무 보고 사항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분주한 분위기 속의 황족 숙소 안에서, 정원이 바로 보이는 복도를 가로지르던 페니아 황녀를 향해 클레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페니아 황녀는 백금색 머리칼을 한 번 스윽 쓸어내리더니, 저 멀리 솟아오른 실베니아의 첨탑을 바라보고선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페니아 황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조금 더 확신을 가진 어조로 이야기 했다.
“괜찮아요. 역시. 그 남자라면 당초 계획대로 잘 움직여 주겠죠.”
*심호흡.
권왕 다이크의 평정심은 언제나 침착한 심호흡에서 온다.
듬직한 두 팔을 올려서 가드를 세운 채, 그 사이의 공간에서 적을 바로보고 천천히 다음 움직임을 생각한다.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으로… 그 육중한 몸이 벌새처럼 빠르게 날아들 준비를 마친다.
이미 관객석의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학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전투부 학생들도 모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1, 2학년 학생들은 더더욱 몰입해가고 있는 상태였다.
3, 4학년 학생들은 각각 두 사람의 동급생들이기 때문에 이 자들이 얼마나 단시간 안에 빠르게 강해졌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입학한지 얼마 안 된 저학년 학생들 입장에서는 고학년의 벽을 실감하고 만다. 대련장 위의 두 사람이 이례적인 케이스라는 걸 아직은 감안하지 못하는 것이다.
커다란 지팡이를 감싸고 있는 천 싸개를 풀어헤치고, 그대로 집어든 에드 로스테일러는 심호흡 하고 있는 다이크를 노려보았다.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날렵한 도적처럼 움직이는 모습에 빈틈은 없어보인다.
한 손에는 지팡이, 한 손에는 역수로 쥔 단검.
내벽을 등지고 있는 상태에선 움직임에 제한이 걸리므로, 재빨리 대련장 중앙부로 달려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으면, 혹시 공간계 마법이라도 사용할 줄 아는 것일까 싶었을 것이다.
다이크의 움직임은 그 정도로 빠르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떠보면, 코 앞에서 주먹을 내지르는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이크의 모습이 확인되고 나서야, 그의 돌진으로 인한 바람의 여파가 시간차로 몸을 급습해온다.
– 화아아아악!
“하압!”
짧고 굵은 기합소리와 함께, 발을 땅에 내딛으며 강하게 내지르는 정권.
거의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던져 피해내자, 에드가 서있던 곳 뒤편의 내벽에 다이크의 주먹이 꽂힌다.
-콰아아아아아앙!
단 한 번 주먹을 내질렀을 뿐인데, 내벽이 무너져 내린다. 다시금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한 번이라도 허용하면 그대로 끝이다. 직스의 그런 평가가 확실히 이해가 되는 파괴력이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흙바닥을 꼴사납게 굴러서 대련장 중앙 쪽으로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다이크가 자세를 바로 잡기 전에, 지팡이 끝으로 마력을 모았다.
지금까지는 개전 때 사용한 고위 마법이 아닌 이상, 그다지 부담스러운 수준의 마력이 소모되진 않는 기술들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에드 로스테일러도 마력 부담을 감수해야만 하는 영역으로 진입한다.
관객들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에드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마력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마력에 아무런 조예가 없는 관람객들조차도 대련장에 흐르는 기색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위 정령이 도래한다.
고위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정령사. 고위 원소 마법을 다룰 줄 아는 마법사.
둘 중 하나의 경지에 이를 수만 있어도, 실베니아에서는 영재로 통한다.
그러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당연한 듯이 두 경지에 모두 진입해 있었다.
바람이 대련장을 휘감는다.
마법부 학생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한다. 마법부 교수들조차도 마찬가지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나이에 이 두 경지에 모두 이르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마법을 한 번이라도 수련해본 적 있는 자들은 안다.
그대로 다이크의 공격에 의해 일어난 흙먼지가 모두 바람에 흩날려간다.
시야가 원래대로 되돌아오면서, 굳건하게 서있는 다이크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이크의 눈 앞에 서있는 것은, 어지간한 집채보다도 커다란 늑대였다.
관객석들 사이로 환호성을 넘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드가 소환하는 메릴다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게 아닌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그 위용을 직접 목도하고 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는… 저 고고한 고위 바람의 정령, 메릴다는 좋은 구경거리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웅장한 자태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다이크 엘펠란에게 있어서 저 고위 바람 정령은 지금 당장 상대해야만 하는 시련이다.
발길질 한 번만으로도 수십의 사람을 날려버리고, 마력 한 번을 발산해내는 것만으로도 건물을 무너뜨리는 괴물을 손에 쥔 너클 하나만으로 상대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다이크는 그대로 가드를 올렸다.
심호흡을 한다.
후읍-
하아-
평정심이 가슴 안에 자리한다.
몰아치는 바람과 흙먼지 사이에서도, 다이크는 냉정한 눈을 뜬 채 메릴다를 바라보았다.
아우우 –
넓디 넓은 대련장에 늑대의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보다도 두꺼운 앞발을 한 번 휘두르자, 거대한 격풍이 다이크를 덮친다.
– 콰아아아아앙!
‘바위 피부’.
미약한 마력을 이용해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 다이크는, 간단한 생채기 정도는 없애줄 수 있는 마력을 두른 채로 메릴다의 앞발을 막아내었다.
– 쿠웅!
그 충격에 발이 바닥 속에 파묻히는 것만 같다.
팔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위압감에 당장 정신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그럼에도 다이크는 버텨냈다. 오직 의지력 하나만으로.
“후읍….”
– 캉!
그대로 흘려내듯이 메릴다의 앞발을 내쳐버린 다이크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늑대의 아래턱을 향해 도약했다.
정직하게 내지른 주먹이지만, 그 속도가 너무 압도적이라 회피할 수 없다.
– 쾅!
힘껏 아래턱을 후려치자, 메릴다의 머리가 옆으로 휙 꺾였다.
고위 정령이 일격에 제압당할 리가 없다. 그대로 후속타를 준비하려는 순간.
– 쐐액! 콱!
‘바위 피부’를 미리 발현해놓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상태인 다이크의 아랫배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피부를 뚫지는 못했지만, 그 충격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크으윽!”
순간적으로 시야를 틀어 아래쪽을 바라보니, 지팡이를 잠시 내려놓은 에드 로스테일러가 활을 꺼내들어서 사격해온 것이다.
다이크가 방심한 것은, 습관적으로 일반적인 정령사와의 전투를 상정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령을 전면으로 내세워 전투를 진행하는 경우엔 정령사 본인은 전투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정령사가 소환해낸 정령을 제압하면, 정령사 본인도 같이 제압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고위 정령을 전투 요원으로 활용하는 주제에, 본인도 직접 참전해서 견제를 날려댄다.
일대일 결투 상대로서는 불합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다.
그대로 자세가 풀리고 만 다이크는, 다시금 고개를 꺾은 메릴다의 섬뜩한 눈동자와 마주치고 만다.
– 쾅!
이어지는 일격에, 이번에 내벽에 내다꽂힌 사람은 다이크였다.
다시금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그대로 내벽을 기대고 쓰러진 다이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순간에 결판이 난 것이었다. 메릴다의 일격은, 인간이 버텨낼만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대련장 전체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윽고 에드가 조준하고 있던 활을 아래로 내리자…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 와아아아아!
– 대단하다! 고위 정령사에, 고위 원소 마법사라니… 이게 요즘 실베니아의 수준인가…!
셀라하 황녀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고 클로엘 황제도 턱을 쓸고 있었다. 황실에서 직접 육성하는 인재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로 유망한 자는 거의 없다.
과연, 전문 교육기관인 실베니아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만다.
그대로 에드 로스테일러는 활을 갈무리하고, 메릴다의 소환을 해제하여 결투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 턱
다이크 엘펠란이 무너진 바위의 한 켠을 짚고 일어선다.
고위 정령의 일격을 정통으로 맞아놓고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미 이마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온 몸에 자잘한 생채기도 가득했다.
그러나, 권왕 다이크는 다시금 일어서서, 가드를 올린다.
그리고 심호흡을 이어나간다.
후읍-
하아-
그 굳건한 자세에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누가 뭐라해도 방금의 일격은 인간이 버텨낼만한 게 아니었다.
“아직 안 끝났다.”
“더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이 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니다.
다이크는 그리 이야기 하며, 고고하게 군림해있는 메릴다의 자태를 올려다 보았다.
무릇 고위 정령이란 인간이 홀몸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약점을 공부하고, 필요한 공략법을 숙지한 다음 신중하게 덤벼도 이길까 말까한 상대다.
그 사실을 다이크 또한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그 허리를 숙이진 않는다.
“그 나이에 고위 정령을 다루고, 고위 원소 마법을 쓰는데다가, 체술도 수준급이고, 활까지 잘 다루는군. 확실히, 3학년 마법부의 천재라고 불릴만 하다.”
“…”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상대해온 천재가 몇이나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짧게 깎은 머리에서부터 흘러나온 피가 볼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지만, 그 정도는 상처의 축에도 들지 않는다.
다이크 엘펠란은, 천재와 맞붙을 때는 매번 이런 식으로 극한까지 몸을 혹사시켰다.
“걔중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짓밟고 지나간 놈들도 있었지만, 끝끝내 나한테 발목이 잡힌 채 끌어내려진 놈들도 많다.”
“…다이크 선배님.”
“나는 쉽게 질 수 없는 사람이다.”
F반으로 실베니아에 입학해, 잠도 안자면서 수련만 했음에도 남들 다 가는 E반에 진입하는데 반년이 걸렸다. 그렇게 피를 흘려가면서 수련했는데도 중하위권의 성적에 1년을 더 머물러야 했다.
그 비참한 세월을 버텨내는 동안, 다이크의 머리를 짓밟고 지나간 수재와 천재들이 한가득이다. 처음에는 그 숫자를 세어보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무의미할 지경이 되어서 세는 일 조차 그만 뒀다.
두 계단, 세 계단씩 슥슥 올라가는 천재들이 그 속도에 못 이겨 고꾸라질 때, 다이크 엘펠란은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와 수석의 자리에 앉은 자다.
이 정도 힘의 차이는… 시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대로 다이크가 바닥을 박차고 나간다.
이번에 노리는 것은 에드 로스테일러의 본체다. 그대로 가드를 올린 채 자세를 확 낮추고, 도약하듯이 에드와 거리를 좁힌다.
메릴다는 그에 반응해 바람을 발산하지만, 다리를 땅에 때려박듯이 꽂아서, 그 축을 중심으로 삼아 바람의 여파를 버텨낸다. 그리고 날아드는 메릴다의 앞 발을 너클을 이용해 한 번 흘려내는데 성공한다.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몸이 당장 무너지려 하지만, 피를 흩뿌리며 에드의 코앞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허나, 그대로 내지르는 주먹의 동선은 에드의 예상 안에 너무 뻔히 들어온다. 어느샌가 바닥에 박혀있던 단검에서부터 정령식 ‘폭성’이 발현된다. 한 순간 대련장을 뒤덮는 폭발음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던 지팡이를 에드는 발로 차서 밀어올린 뒤 그대로 잡아든다.
정신을 집중한 에드가 한 번 마력을 끌어모으자 고위 바람 마법 ‘태풍의 눈’이 발현된다. 일대를 뒤덮는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다이크의 움직임을 제압해버린다.
그대로 다이크는 메릴다의 발을 맞고 다시 나가떨어진다.
– 쾅!
한 번만 맞아도 치명적인 메릴다의 일격을, 두 번이나 허용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다이크는 내벽에 매다꽂힌 채 심호흡했다.
관객들은 그 광경을 보고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특히 전투부 학생들은… 자신들의 선구자와도 같았던 다이크의 분전에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다친 상처를 추스르며 관객석 사이에 섞여있는 웨이드 캘러모어가 눈을 질끈 감는다.
관객석 맨 뒤에서 학생회원들과 함께 벽에 기댄 채 대련을 보고 있는 직스도, 남들 몰래 작게 한숨을 삼킨다.
그 다음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걱정하기도 전에, 다이크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다.
피가 섞인 가래를 퉤 뱉은 다음, 다시 가드를 올린다. 심호흡을 한다.
후읍-
하아-
에드 로스테일러는 근접전에 있어서도 절대 쉽게 당해주지 않는다. 일반적인 정령사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신중하게 거리를 좁히면서도, 거리를 좁힌 이후에도 근접 전사를 상대하듯 재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그대로 가드를 올린 채 다시금 바닥을 박찬 다이크는, 이번에는 메릴다를 향해 돌격했다.
그대로 메릴다는 마력을 발산해서 정령식 – 높새바람을 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다이크의 몸이 부유감에 휩싸이고,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다이크는 그대로 메릴다의 앞발을 맞고 다시 튕겨나가고 말았다.
흙먼지와 함께 바닥을 몇 번 구르던 다이크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다시금 도약했다.
이번엔 에드 로스테일러 방향이다. 메릴다가 일부러 마법을 발현하도록 유도한 후, 태세를 추스르는 사이에 에드의 본체를 공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일단 메릴다의 공격을 한 번 받아내겠다는 정신나간 계획이다. 그러나 다이크는 의지력으로 어떻게든 해냈다. 몸이 끊어질 것 같고, 피가 철철 흘러서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미 마음부터 꺾여야만 하는 상황이건만… 다이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간 이런 짓을 반복해왔기에, 선천적인 재능하나 없이 이런 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쾅!
찰나의 순간. 이미 에드의 앞에 가드를 올린 채 도달해 있는 다이크 엘펠란.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일반적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이 한 번의 결투에 대체 몇 번이나 거리를 허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눈동자엔 동요의 눈빛이 없다. 그 잠깐 사이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명경지수처럼 평온한 그의 얼굴을 보자 다이크는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근접전 능력까지 지니고 있는 인간이다. 정직하게 내지른 주먹 따위는, 절대로 맞아주지 않는다.
그대로 주먹을 쭉 뻗어내려고 자세를 취하자, 이미 에드는 단검을 역수로 쥔 채 다음 마법 발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쭉 뻗기 위해 옆구리에 붙여둔 주먹이──다시금 가드를 세우기 위한 방벽으로 돌아온다.
상대의 빠른 대처를 예측한 페이크 동작. 순간적으로 에드의 미간이 휙 좁아졌다.
뻗어져나가는 다이크의 주먹을, ‘폭성’의 충격으로 막아내려던 에드의 계획이 어그러진다.
뻗어나온 단검을 가드를 올린 채 자세를 낮춰, 아래쪽으로 몸을 흔들어 피한다.
페이크 동작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위빙’.
그대로 에드 로스테일러의 측면으로 파고드는데 성공한 다이크는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넣는다.
– 쾅!
대련 시작 후, 에드 로스테일러에게 들어가는 첫 유효타.
그러나, 다이크의 공격은 첫 일타가 곧바로 치명타다.
페이크 동작과 회피 동작을 섞어넣느라 힘을 모으는 동작을 전혀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제약 가득한 일격만으로도 에드 로스테일러의 몸은 나가 떨어졌다.
– 콰앙!!!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대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벽에 내다꽂혔다.
“…”
그러나, 다이크의 손에는 깔끔하게 공격이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그 묵직한 감각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벽을 치는 듯한 묘한 느낌만이 남아있었다.
그걸 자각하는 순간, 다이크는 확 인상을 구겼다. 에드 로스테일러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자신이 일격을 허용할 거란 확신을 하고 모든 마력을 기초 방어 마법 쪽으로 돌렸던 것이다.
‘아직… 놈은 멀쩡하다…!’
일단 메릴다의 후속타를 막아내야만 한다. 아주 잠깐의 찰나였지만, 자세를 추스르는 것을 끝마친 메릴다가 그 육중한 고개를 돌렸다.
크르르 거리는 소리가 소름이 돋는다. 메릴다의 소환이 해제되지 않은 채 아직 멀쩡한 것을 보면, 에드 로스테일러는 아직 제압당하지 않았다.
그대로 다이크는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이 다음 공격은 당연히 메릴다로부터 나올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련장을 휘감는 검붉은 마력을 보았을 때는…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성위 마력…!’
마법부 교수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기 시작한다.
에드의 성위 마력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클레어 조교수나, 칼레이드 교수만이 평온한 얼굴이다.
그 마력의 중심에 서있는 다이크가, 다시 에드 쪽으로 시야를 돌리기 전에…. 이미, 다이크는 에드의 마력에 빨려들어가 있었다.
‘강제결집’
저항수단 조차도, 상성 관계조차도 없다.
사용한다면, 반드시 허용해야만 하는 불합리한 수준의 마법. 그것이 성위 마력을 활용한 성위 마법들이다.
멋대로 다이크의 위치를 뒤바꿔버리는 별의 마법은, 근접전의 흐름을 중시하는 그의 전투 스타일과는 완전히 상극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흙먼지 속으로 빨려들어간 다이크는, 시야가 바뀌자마자 쫙 펼쳐진 에드의 손바닥을 마주해야만 했다.
멋대로 다이크의 위치를 바꿔버린 에드는 그대로 도약해서 그의 얼굴을 통째로 잡아쥔 뒤, 그대로 무게를 실어서 바닥에 내다 꽂아버렸다.
– 쾅!
“커, 허억!”
그대로 그의 가슴팍 위를 짓밟고 올라탄 에드가 단검을 뽑아든다.
당연히 메릴다 쪽에서 반격이 올거라고 생각했던 다이크는 아무런 저항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린 뒤 너클을 꽉 움켜쥐어서, 가슴 위에 올라탄 에드에게 내질렀다.
– 카앙!
아무렇게나 휘두른 일격도 에드에게는 치명타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시야가 가려진 채로 대충 내두른 일격을 맞아줄 에드도 아니다.
휘둘러진 너클을 피한 뒤, 그의 아랫목에 단검을 가져다 댄다.
흙먼지가 사라졌을 때에는, 이미 원한다면 곧바로 다이크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허억… 허억…”
둘은 모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제압당한 듯이 보이는 다이크의 모습엔… 저항의 의사가 없어보였다.
관객석 사이에서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다이크의 피가 흥건하게 퍼져나간다. 가득한 생채기는 이미 그 숫자를 셀 수조차 없다.
“항복하십시오.”
거만함의 발로도, 위협의 의도도 아니다.
에드 로스테일러의 항복 권유는… 말 그대로 제안일 뿐이었다. 다이크 엘펠란에게 더 이상 에드와 싸울 수 있는 힘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여기서 마무리 짓자는 이야기였다.
다이크는 그 말을 듣더니, 이윽고 헛웃음을 픽하고 흘렸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직접 항복해본 적 없다.”
“여기서 더 하면 크게 다치실 지도 모릅니다.”
“크게 다친 적이 한 두 번이어야지. 크큭…”
다이크는 웃음을 한 번 더 흘리고서는, 몸의 기력을 끌어모았다. 이윽고 얼마 안 남은 마력마저도 함께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발경’
몸의 기운을 극한까지 이끌어내, 순간적으로 발산해내는 단순 무식한 마법이다. 마력을 대충 때려넣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효율이 나빠 대체할 마법이 많다.
다만, 마법의 재능이 없는 다이크는 아직도 이 기술을 쓰고 있었다.
– 화악!
순간적으로 피어오르는 마력이 에드의 몸을 밀어낸다.
다이크의 기합소리와 함께 다시금 대련장은 전투의 열기 속으로 밀려들어간다.
어느샌가 몸을 일으킨 다이크가 다시금 가드를 올리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 한 쪽 너클은 이미 날아가버리고 없다. 반대 손에만 너클을 낀 채로, 피를 철철 흘리며, 가드를 들어올린다.
후읍 – 하아 –
그 심호흡은, 아직도 흔들림 없이 여전하다.
엘비라를 무릎에 앉혀놓고 관객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클레비어스는… 눈을 질끈 감고 만다.
무릎 위에서 대충 연금술 서적을 훑어보던 엘비라는 곁눈질로 클레비어스를 보더니, 콧김을 한 번 흥 내뱉는다.
반대편에서 보고 있던 웨이드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꽉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지만, 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직스 또한 벽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 대련장을 쳐다본다.
전투부 학생들은 물론이고, 마법부와 연금부 학생들, 교수진들까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가드를 올리는 다이크의 모습에 입을 벌리고 만다.
“예니카… 이건… 저 남자는…”
“고학년들 사이에선 유명해. 기절해서 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포기 안하는 사람이야.”
“확실히… 에드 도련님은.. 말도 안되게 강하구나… 하지만, 저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되어서 덤벼드는데…”
오르테 페일로버는 말끝을 흐렸다. 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도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다이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벌리게 만드는 기백이 있었다.
“예, 예니카. 저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조금 손대중을 해도 괜찮은 거 아니니…? 단순히 연습대련인데 저렇게까지 찍어누를 필요가 있을까…?”
세일라 페일로버는 불안한듯한 얼굴로 예니카를 바라보았다.
“저렇게까지 진심을 다해 덤비는데, 저렇게 막대한 마력으로 찍어눌러버리는 것도 너무… 잔인하지 않니…?”
“그건 안 돼, 엄마.”
그러나, 예니카 페일로버는 알고 있다.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에드 로스테일러와 다이크 엘펠란. 이미 다이크는 한계까지 몸을 채찍질 했건만, 에드는 여전히 봐줄 맘이라고는 한 톨도 없다.
“봐주는 것만큼은 절대로 안 돼.”
예니카 페일로버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기말 평가에서, 진심으로 수석을 노리기 위해 열심히 하던 에드에게… 그 자리를 양보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보았던 에드 로스테일러의 어른스러운 미소는… 아직도 예니카의 가슴 속에는 큰 후회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예니카이기에 두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에드의 항복 권유에 다이크가 고개를 가로저은 시점에서, 에드는 절대로 손대중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다이크 엘펠란에 대해 에드가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다.
“내가 왜 절대로 항복을 안하는지 알고 있나?”
가드를 올린 채, 거대한 늑대정령을 올려다 보던 다이크가 먼저 말을 내뱉었다.
단검을 집어들고 전투 태세를 취하고 있던 에드가 대답했다.
“지기 싫어서 아닙니까?”
“비슷한데, 다르다. 처음에는 그런 근성 넘치는 이유도 아니었어.”
다이크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이야기 한다.
처음 1학년으로 실베니아에 들어와, 최악의 둔재로서 바닥을 기며 이 악문 채 수업을 따라가던 시절이다.
입학 하자마자 검기를 다룰 줄 알던 천재들, 활을 쏘면 백발 백중이고, 창을 다루면 순식간에 곰도 잡아내는 괴물들.
그 사이에서 둔재로 살아가면서, 이 악물고 모든 대련에서 백기를 던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쪽팔리잖나.”
“…”
“나보다 체구가 낮은 놈한테 지고, 학년이 낮은 놈한테 지고, 훨씬 수련을 덜한 놈한 테지고…. 처음엔 그게 너무 쪽팔리고 싫어서, 그냥 이 악물고 정신 잃기 직전까지 마구잡이로 덤벼들었지.”
다이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그렇게 치고박고 싸우면서 살았는데, 그 짓을 반복하다보니까 동급생들이랑 후배들은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더군.”
“이상한 의미 말입니까?”
“그래. 무슨… 둔재들의 왕이라느니, 의지와 기합만으로 수석의 자리에 오른 근성의 사내라느니… 하여튼, 그냥 이 악물고 발버둥 쳤을 뿐인 놈한테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놈들이 세상에 한 가득이야.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우상화 하지.”
뚝뚝 흐르는 다이크의 피가 바닥에 몇 방울 떨어지더니, 흙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런 피가 흐르는 상처가 이미 몸에 가득하건만, 다이크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소처럼 걸걸하고도 흔들림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야. 관객석을 봐. 다들 눈에 빛을 내면서 쳐다보잖아. 할 줄 아는 거라곤 정신을 잃기 전까지 이 악물고 주먹 내지르는 게 전부인 둔재 새끼한테, 뭘 그리 큰 기대를 거는 건지 모르겠어.”
짜증을 내는 듯한 말투지만, 오히려 다이크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자리해있었다.
“이러면, 꼴사납게 나자빠질 수가 없지 않나. 안 그래도 4학년은 둔재들만 모인 곳이라고 평이 자자한 세대인데, 그나마 둔재들의 희망이라 부를만한 인간이 꼴사납게 백기 들고 튀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냔 말이야. 그런 광경을 본 동급생들이 어떤 좌절을 겪게 될지, 평생을 모지리로 살아온 나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거든.”
기대와 선망이라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어깨 가득히 쌓여있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그 무게는 어찌나 무거운지, 사람을 멋대로 쓰러질 수도 없게 만든다.
후들거리는 두다리를 붙들고 일어나게 만들고, 이 악물고 팔을 들어 가드를 올리게 만든다.
그런 모습일지언정, 절대로 손대중을 하거나 봐줄 수는 없다. 애매한 동정은 오히려 다이크 엘펠란 같은 자에겐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 없는 치욕이다.
그렇기에, 에드 로스테일러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와라. 너 같은 천재들은 몇 십 몇 백 번이고 상대해봤다.”
“다이크 선배님.”
그러나, 에드 로스테일러는 알고 있다. 다이크 엘펠란은 중요한 부분에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방금 다이크의 주먹을 허용하면서 에드 또한 큰 충격을 입었다. 셔츠는 여기저기 헤지고, 몸 여기저기에 휘감고 있던 붕대들도 풀려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풀려나간 붕대의 틈바구니로 에드의 상처가 드러난다.
그것은… 고위 마법을 습득하기 위해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증거. 루시의 말도 안되는 마력량에 의해 일그러진 살덩이가 추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이크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비슷한 방식의 수련을 반복해왔던 다이크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애초에, 1학년 때부터 두드러진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에드 로스테일러 또한, 순차적으로 계단을 밟아 올라온 자다.
이 악물고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고, 정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몇 번이고 목숨을 내걸어가면서까지… 에드는 자신을 몰아붙였다.
에드 로스테일러라는 이 몸뚱아리는 비참할 정도로 마법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
오히려 손재주나 생활 기술에 특화된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는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면서 결국 수석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하… 후후… 후후후…”
순간적으로 가드를 올리고 있던 다이크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 후후후후….”
고개를 낮추고, 웃음을 머금은 채… 이윽고 다시금 고개를 들어올린다. 피칠갑이 되어있었던 몸일지언정,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몇 번이고 천재들을 만나 좌절했던 결투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굳이 티내진 않았지만, 한 번 한 번이 모두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었다.
“흐흐흐…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그 표정은, 끝끝내 희열감이 얼룩진 미소가 되었다.
“그래, 실례했군…!!! 에드 로스테일러….!!!”
늘 하던 심호흡이 이어진다. 허나, 직감할 수 있다. 얼마 안가서 이제 결판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