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ra’s Academy Survival Guide RAW novel - Chapter (80)
신입생 반 배정 시험 (4)
황성의 지원을 받는 토그 마력학회에서 최연소 나이로 연구자 지위를 받은 요제프 화이트펠츠.
실베니아까지 와서 기초 마법학을 배울 필요도 없을 정도의 인재건만, 굳이 졸업장을 따러 왔다는 점에서 얼마나 실리적인 인간인지 알 수 있다.
마력학 연구조차도 벌이가 좋아서 진행하고 있을 뿐, 그에게는 어떤 학술적인 숭고함 같은 것은 없다.
요제프는 예비 4학년생들 중 연금부 수석인 도로시 화이트펠츠의 친동생이다.
궁상맞은 누나와는 달리 본인은 조용하고 점잖은 성격이지만… 반대로 그가 연구하는 마법들은 하나 같이 요란했다.
아직 신입생 신분인 주제에 중위 마법을 다룰 줄 안다. 그것도 세 개씩이나.
중위 불 마법 ‘일점 폭발’과 중위 빙결 마법 ‘얼음 창’, 중위 흙 마법 ‘대지 분쇄’까지 사용하는… 도저히 신입생 수준으로 볼 수가 없는 마법사였다.
환영 마법의 시련을 선두로 통과한 이유가 있는 인재인 것이다.
마법부 수석은 당연히 노려볼만 하고, 전투부의 웨이드 캘러모어만 제치면 아예 학년 수석을 노려볼 수도 있을 실력이다.
머리는 자르기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덥수룩한 더벅머리다. 테가 얇은 머리띠로 앞머리를 올려 올백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뒷머리는 거의 산발에 가깝다.
“그래, 지나가렴.”
폭발의 흔적이 제단 입구에 자욱하다. 아니스는 그 아래에서 조용히 고개를 내리깔았다.
마법사와 마법사의 승부는 그 결판이 빠르다.
무엇보다 요제프 정도 되는 마법사가 된다면, 상대의 수준을 재빠르게 가늠할 수 있다. 애초에 승부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아니스는 수석 조교이자, 실무 및 학술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인재지만… 전투 마법 분야에서는 예비 3학년들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일 뿐이다.
물론 일반적인 신입생들이 어떻게 비벼 볼 수준은 아니다. 단지 요제프가 특이할 뿐이다.
“…그렇게 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성함이…”
“아니스 헤일란.”
“예, 아니스 선배님.”
요제프는 점잖은 목소리로 마력석을 챙겨들었다. 아니스의 뒤편으로 커다란 제단의 기둥이 보인다. 거기에 가서 마력석을 바치기만 하면 시험도 끝이다.
요제프는 좀 싱겁단 느낌을 받았다. 실질적인 시험에 투자한 시간보다, 등산 자체에 투자한 시간이 더 많았다.
“선배님은 분명 선배님만의 특화된 분야가 있으시겠지요. 그게 전투에 적합하지 않으셨을 뿐, 제가 감히 비벼보지도 못할 선배님만의 분야가 있을테니…”
“착각이 심하네.”
아니스는 고개를 내리깐 채로 요제프의 말을 끊었다.
“분하긴 한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분함은 아니란다. 요제프 네 말대로 나는 내가 잘 하는 분야가 따로 있거든.”
“그러면…”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지나가려거든 빨리 지나갈래…? 나는 네 뒤에 올라오는 학생들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라 체력을 좀 아끼고 싶네.”
요제프는 슬쩍 고개를 들어 아니스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과연, 요제프와의 실력 차이에 기가죽은 모습은 아니다.
확실히 예비 3학년 쯤 되니까 선배님들의 기가 세다. 요제프는 고개를 휙휙 가로젓고는, 털레털레 아니스를 지나쳐갔다.
그렇게 요제프가 지나가고 난 뒤, 아니스는 근처 바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시울을 북북 닦아내었다.
분하긴 분하다. 그러나 요제프의 지적과는 묘하게 달랐다.
아니스가 길고도 긴 겨울과도 같은 학사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근간은 ‘완벽한 일처리를 하는 자신’에게 있었다.
별 시답잖고 사소한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법이 없다. 매사 모든 것이 깔끔하고도 완벽하게 살아왔기에 고된 학사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스가 분한 이유는 바로 무능한 자신 때문이다.
마공학용품을 고장냈고, 흔치 않은 실수에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렇다 할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끝끝내 북쪽 제단 입구를 막지도 못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아니스의 완벽주의는 양날의 칼이 되어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비수가 된 것이다.
항상 잘난 체, 완벽한 체, 빈틈 없는 체는 다 해놓고 중요한 순간에서야 삐끗하는 한심한 인간상이 바로 자기자신이다.
있는 힘껏 발버둥 치며 살아왔음에도 아직도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분하다.
아니스는 바위에 걸터앉아 코 끝을 훌쩍이며, 정상 쪽 제단을 쳐다보았다.
금발의 소년이 마지막 제단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좀처럼 실수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아니스가 온갖 대형사고를 잔뜩 쳤지만, 그 모든 것을 임기응변으로 수습하려 들고 있는 사람이다.
화날 만도 한데 짜증 한 번 내지도 않고, 오히려 건설적인 방향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가려 한다.
문득 그 얼굴이 떠오른다.
심장이 눈치가 없다.
아니스는 제단 입구에 그대로 앉아… 조용히 제 가슴을 다독이고 있었다.
*
“첫 손님이네.”
제단에 들어선 요제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나 여기서 시험이 끝은 아니었다.
제단에 걸터앉아 있는 소년이 하나 있다.
휘황찬란한 짧은 금발 앞머리를 반올림한 모습은 영락없이 귀족가 도련님이다. 날카로운 눈매는 요제프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지만, 대충 제단에 걸터 앉은 모습은 퍽 여유롭기도 하다.
“그리고 네가 마지막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시험 방식이 알기 쉬워서 좋군요.”
요제프는 순식간에 주변 환경을 관찰해냈다.
제단을 중심으로 여기 저기에 떨어져 있는 마공학 용품이 대여섯개. 올라오면서 봤던 환영 원반의 개량형인 듯 하다.
다만, 누가 급하게 손을 댄 것처럼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저런 고급 마공학 용품은 쉽게 고칠 수 없다. 단순한 기능 조정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한 마공학 지식 가지고는 넘볼 수도 없는 수준의 물건이다.
또한, 제단 근처로 자란 여러 나무에는 여기저기 베어져 있는 흔적이 있고, 제단 위에는 꽤 커다란 가죽 주머니가 놓여 있다.
내용물이 뭔가 했는데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마력석인듯 했다. 꽤나 고가품인데 저 정도로 쌓아놓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 가지 유추 가능한 점은, 이 전장 자체가 이미 저 소년에 의해 조율되어있다는 점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시험 내용은 너도 알고 있지? 네가 챙겨온 그 마력석을 제단에 바치면 된다. 다만, 내가 가만히 놔두진 않겠지.”
“역시 시험 방식이 묘하군요…”
요제프는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뱉었다.
“제가 만약 선배님을 제압해버리고 마력석을 바치는데 성공한다면… 제 뒤에 따라오는 학생들은 누구랑 시험을 칩니까?”
“글쎄다.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지.”
“그렇긴 합니다. 어련히 다 대안이 마련되어 있겠지요.”
요제프는 그리 말하고 눈에 정신을 집중했다.
금발 소년의 이름은 알 수 없다. 다만, 명찰의 색이나 복식을 통해 유추해보건데 올라오면서 상대했던 아니스와 마찬가지로 마법부 소속이다.
마법사 대 마법사는 이미 말했듯, 서로의 그릇을 순식간에 가늠해낼 수 있다. 백 퍼센트 완벽하진 않아도, 얼추 견적은 나오는 것이다.
요제프의 눈에는 딱히 에드에게서 강대한 마력 같은 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에드는 제단에 바쳐진 마력석의 힘을 빌리고 있었다.
마력석의 힘을 빌린다고 해서 모두 강력한 마법사를 제압할 수 있으면, 누가 열심히 노력해서 마법을 공부하겠는가.
마력이란 결국 연료에 지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당장 손에 잡히는 마력의 양이 많아도, 태생적인 마력총량이 낮다는 건 그 사람이 다루는 마법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뜻이다.
한 인간의 마력총량이란 결국 마법을 단련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금발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대부분 마력석에 의존한 마력일 뿐이지, 본인의 고유 마력이 거의 없다.
그 말인즉슨… 마력 단련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법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뭔가 상대가 한심해 보이기 시작해.. 요제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선배니까 얕잡아 볼 수는 없다. 중위 마법을 이용해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는 게 나을 듯 했다.
슬슬 배가 고파지려고 한다. 빨리 끝내고 샌드위치라도 사먹으러 가자.
그런 생각을 하며, 요제프는 허공에 손바닥을 들어올려 보였다.
그리고 잠시간 정신을 집중한 뒤, 손바닥을 꽉 움켜쥐며 금발 소년 쪽을 응시했다.
중위 불 마법 ‘일점 폭발’.
전투 마법학의 여러 마법 중에서도 ‘모르면 당해야하는’ 악질 마법으로 유명하다.
시전 자체가 빠르지는 않고, 정신도 꽤 집중해야 하지만… 일단 시전에 성공하면 대처가 거의 불가능하다.
원하는 지점에 본인이 감당 가능한 마력 규모의 폭발을 순식간에 일으키기 때문에, 일점 폭발에 대처하려면 ‘미리’ 움직여야만 한다.
이 작은 손동작만으로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 목표지점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회피기동.
한 번 폭발 지점을 정하면 쉽게 위치를 바꿀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일단 읽어낼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대처가 가능하지만, 읽어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어지간히 마법전투 경험이 쌓여있지 않으면 힘들지만, 에드 로스테일러는 재빠르게 자세를 낮추고 몸을 굴린 것이다.
– 콰앙!!
빠르게 발동시켰기에 폭발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일점 폭발은 범용성이 좋은 대신 마력 효율이 영 꽝이다. 상대를 제압가능한 수준의 화력은 나오나 치명타를 먹이기는 힘들다.
고위 마법 정도 다룰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정말 건물도 무너뜨릴 수준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요제프의 레벨은 아니었다.
재빠르게 몸을 굴려 폭발 지점에서 빠져나온 에드가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요제프는 마력의 기운만을 보고 에드가 다루는 속성 하나를 유추해낸다.
‘불마법…!’
원소 마법과 원소 마법의 대결에서는 상대가 무슨 원소를 다루는지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요제프는 순식간에 방어 마법을 위한 마력을 끌어모으며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해냈다.
‘저 정도 수준의 마력에서 쓸 수 있는 건… ‘발화’ 아니면 ‘작열’…!’
발화라면 불이 바닥을 타고 뻗어져 나올 것이다. 작열이라면 방사 형태로 뿜어져 나올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요제프의 방어 마법을 뚫을 순 없다. 요제프는 순식간에 자세를 잡고 법진을 구현해냈다.
에드의 발화 마법은 바닥을 타고 뻗어져나가 요제프 쪽을 습격했지만, 불타오르는 화염은 요제프의 주변을 감쌀 뿐 그에게 열기를 뻗치진 못했다.
‘화염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기초 마법 하나는 착실히 단련한 케이스야. 중위 마법을 구사할 수도 있겠어…!’
요제프는 순식간에 상대에 대한 평가를 아예 반전시켜버린다.
토그 학회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일삼아온 그는 기초 마법 수준만 보고도 상대의 전체적인 마법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어째서 본인의 고유 마력 규모가 그렇게 적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걸 자잘이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 전투 경험 자체는 많지 않은 것 같네…!’
에드의 발화 마법은 계속해서 요제프의 방어 마법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숙련도의 차이를 메꾸기는 힘들다. 에드의 불꽃으로는 요제프의 방어를 뚫을 수 없다. 계속해서 마력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노련한 마법사라면 이런 식으로 마력을 낭비하기보다는 다른 활로를 찾는다.
제 아무리 마력석을 쌓아놓고 있어도 이 정도 규모의 발화 마법은 소비가 더 크다. 마력량 이전에 본인이 피로해서 먼저 쓰러질 것이다.
오래지 않아 불꽃은 멎어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결계 너머로부터 목소리가 스며들어왔다.
“요제프 화이트펠츠.”
어떻게 이름을 알았는지, 상대는 요제프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
불꽃이 사라지고, 코 앞에 에드 로스테일러의 모습이 나타난다.
불꽃은 공격 수단이 아니다. 시야를 가리기 위한 연막 수단이다. 그 사실을 깨우친 순간, 이미 에드 로스테일러의 오른발이 방어 마법을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방어 마법진은 마력은 기가 막히게 막아내지만, 얽힌 법진 사이로 몸을 들이 밀면 하릴 없이 뚫린다. 물리적인 공격을 막으려거든 다른 방식의 법진을 구현해야만 한다.
그대로 배를 걷어차버리자, 요제프는 컥 소리를 내며 나가 떨어졌다. 왼손에 들려 있던 요제프의 마력석이 바닥을 굴렀다.
“마법사라고 해서 항상 마법사만 상대하게 될 것 같냐?”
에드가 그 마력석을 주워들려고 하자, 재빠르게 발현된 염동 마법이 요제프의 손으로 마력석을 끌어 당긴다.
-휘익!
가까스로 마력석을 챙겨든 요제프가 구석에서 배를 움켜쥐며 일어섰다. 몸 자체는 거의 단련되어 있지 않은 요제프이니만큼 충격이 꽤 오래갔다.
“허억… 허억…”
요제프는 숨을 몰아쉬고선 겨우 몸을 가눴다.
그리고 겨우 상황 파악을 끝냈다.
대륙 최고의 교육기관 실베니아 아카데미다. 요제프는 고개를 몇 번 가로젓고 이제야 그 의도를 간파했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마법전을 상정해서 전투 훈련을 한다. 마법사 간의 마법전이 가장 심오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전 전투 상황에서 항상 마법 전투만을 전제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현실의 전투는 진흙탕 싸움이다. 교본에 나온대로 순수한 마력의 싸움으로 이루어지는 전투는 거의 없다.
요제프는 자신의 최대 약점을 다시금 되새김질 한다. 그건 바로 실전 경험이다.
“방심 안하겠습니다. 선배님.”
요제프는 차갑게 시선을 깔았다. 너무 세게 걷어차여서 잠시간 호흡을 못하는 둥 애로사항이 생겼지만, 전황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다.
확실한 건, 상대는 마법사지만 마법사로서의 전투를 하고 있지 않다.
방금 전 아니스가 마법사로서 기량이 밀리자, 정석대로 패배를 인정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앞에 아니스를 배치한 것 조차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일까.
다시금 에드의 손에 마력이 모인다. 물론 요제프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또 다시 불 마법…!’
요제프는 무려 세가지 원소를 다룬다. 불, 얼음, 흙이다.
하위 빙결 마법 ‘얼음벽’을 세울 계획을 세운다. 여전히 시야를 가리겠지만, 물리적인 벽이 세워지는 것이니 방금처럼 쉽게 뚫고 들어올 수는 없다.
‘아니…! 이것조차 의도일 수도 있어!’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얼른 생각을 고쳐잡았다. 얼음과 불이 닿으면 융해가 일어나며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결국 시야를 가린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마법적 기량은 요제프가 앞선다. 괜히 상대에게 변수를 제공해줄 이유가 없다.
발화의 범위는 굉장히 넓기 때문에 흙 마법으로 덮기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더 강한 불로 상대를 덮어버릴 뿐이다.
제 아무리 에드 로스테일러가 잽싸게 움직인다 해도 불을 뚫고 올 수는 없을 것이다.
힘은 더 강한 힘으로. 기량이 앞선다면 싸움 구도를 단순하게 만드는 게 유리하다!
순식간에 ‘작열’을 시전한 요제프의 손에서 말도 안되는 규모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방사되는 화염은 시야를 가리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제단 앞 공터 절반을 덮어버릴 수준이다.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요제프가 내심 승리의 확신을 가지는 순간, ‘불 속에서’ 에드 로스테일러가 튀어나온다.
재빠르게 돌파해 옷 군데군데만 불타고 있다. 허나 저게 말이나 되는가.
피어오르는 불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미친 짓이다. 큰 화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불탄 옷가지를 제외하고선 에드 본체는 머리카락 한 올 타지 않았다.
‘화염 내성…?’
-화아아아아악!
이내 바람이 불어오더니, 요제프가 구현한 불꽃을 전부 날려버린다. 이미 에드 로스테일러는 코앞이다.
근접전.
마법 시전 속도만큼은 자신있다.
물리적 공격을 방어하느냐? 마법적 공격을 방어하느냐? 이지선다에서, 요제프는 가까스로 정답을 선택했다.
-파악!
순식간에 발현된 물리 방어 마법. 에드가 허벅지의 가죽 검집에서 꺼내든 단검을 막아낸다.
날붙이를 보자 요제프의 눈이 크게 떨렸다.
‘미, 미친…! 저런 건 어디서 꺼내든 거야…!’
진짜로 찌를 맘은 없었겠지만 새삼 소름이 돋는다.
‘실전 전투’의 살벌함이 주는 공포다. 요제프는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그러나 물리 공격을 방어해냈다면, 이 다음부터는 요제프의 승리가 결정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서로 간 물리 공격이 차단된 상태니, 이 다음 마법을 얼마나 빨리 시전하냐의 승부다.
마법 시전 속도에서 요제프가 뒤처질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한 순간, 거대한 폭발이 한 차례 요제프의 주변을 감쌌다.
-콰앙!
“크, 허억!”
요제프는 초인에 가까운 정신력으로 왼손에 쥔 마력석을 놓지 않았다. 그대로 마력석을 안아든 채 다시금 공터 구석에 내다 꽂혔다.
마력석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아직 괜찮다.
“후욱, 후욱…”
헤진 옷을 입은 채 공터의 중간에서서 요제프의 마력석을 노려보는 에드의 눈빛이 섬뜩하다. 요제프는 덜덜 떨리려 하는 오른손을 꽉 움켜쥐고 겨우 몸을 가누었다.
‘실전’
마력학회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교본과 연습 대련으로만 전투 마법을 익혀온 요제프의 가슴께에 쿵 하고 얹어지는 두 글자의 무게.
안전 장치 따위는 없다. 점수를 메겨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심판도 없다. 대련 따위가 아니므로.
누가 보아도 지금 에드와 주고 받는 합은 ‘실전 전투’ 그 자체였다.
상대는 격식을 차리고 순수하게 마법만으로 승부를 걸어오는 자가 아니다.
기발한 수든, 더러운 술수든 모두 동원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덤벼오는 자다.
‘정신 줄 놓지마…! 생각을 계속 해…!’
다음은 상대가 무슨 수로 나올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애초에 반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현장이므로, 무슨 수를 써도 누가 뭐라할 수가 없다.
A반이라는 명함을 받기 위해선 이 정도 임기응변은 가능 해야한다. 그 사실을 다시금 새기고 요제프는 숨을 바로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기초 마법 시전 속도가 빠를 순 없어. 저건 미리 법진을 새겨 놓거나… 마법식 자체를 부여해놓은 경우…! 마법의 시전 과정 자체를 압축해놓은 거야!’
요제프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의 비상한 머리만큼은 헛것이 아니다.
그러고보면 방금 화염을 맨몸으로 뚫은 것도 이상했다. 화염 내성 장비를 두른 것 같지도 않다.
방대한 요제프의 마법 지식이 향하는 곳은…
‘정령술이다..!’
요제프는 다시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에드도 당장에 움직이지는 않았다.
잠시간의 소강상태.
계약된 정령들은 ‘상시 발동 마법’을 술자에게 부여해주는 경우가 많다. 싸잡아서 ‘가호’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하위 불 정령들이 자주 부여해주는 ‘화복의 가호’. 일시적으로 화염 내성을 폭증시켜주는 그 상시 발동 마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가, 요제프보다 폭발 마법을 빠르게 발동시킨 것도 설명이 된다.
‘마법식이 아니라… 정령식…!’
다루고 있는 마법이든, 장비든, 전략이든.. 모두 상대의 허를 찌르고 적을 제압하기 위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쯤 그을린 옷을 입고 싸늘한 시선으로 요제프를 내려다보는 저 금발 귀족은, 마법사라고 딱 잘라 규정 할 수가 없다. 그저 마법도 쓸 뿐이다.
그냥 전투 그 자체에 익숙해져 있는 인간. 스펙의 차이를 요령으로 메꾸는… 철저히 실전 지향적인 자다.
요제프는 정령 감응력이 얼마 대단하진 않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면 하위 정령 정도는 그 윤곽을 볼 수 있다.
미간에 마력을 모아 시선을 바로하자, 그제서야 에드의 등 뒤를 이리저리 부유하는 불꽃 박쥐의 형상이 보인다.
‘불 마법을 교묘하게 섞어써서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감추고 있었나…!’
생각해 보건대, 그가 감추고 있는 체스말은 저게 전부가 아니다.
주변 환경.
잘려나간 나뭇가지들. 바닥을 뒹구는 마공학용품들 따위가 요제프의 눈에 밟힌다. 그 외에도 기술적으로도 뭔가 더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전부 대처할 수 있을까…? 요제프는 현실적인 성격이다. 재빠르게 고개를 가로젓고, 전략을 수정했다.
“제가 졌습니다. 여기 마력석 반납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요제프는 마력석을 바닥에 미끄러지 듯이 집어던졌다.
에드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마력석을 향해 쏠린다. 요제프가 재빠르게 생각해낸 기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저기서까지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순 없다. 에드의 목적 자체가 마력석을 빼앗는 것이었으므로.
에드의 시선이 쏠려있는 그 잠깐 사이, 누구보다 빠른 시전 속도로 ‘얼음창’을 구현한다.
빠른 시전은 마법의 위력을 줄인다. 그러나 상관 없다. 에드의 시선을 끌 두 번째 미끼일 뿐이다. 에드는 여기까지는 예상할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확신이 들었다.
결국 실전 전투에서 이기려거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수밖에 없다.
요제프는 골방 구석에서 마력학만을 연구한, 뼛속까지 마법사다. 그런 요제프가 바닥을 박차고 얼음창과 함께 몸을 날린다.
“으아아아아아!”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에드의 턱을 향한다. 얼음창을 의식하느라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던 에드의 볼에 정확히 요제프의 정권이 때려박혔다.
-퍼억!
에드의 고개가 휙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고개가 돌아갔을 뿐이다.
몸이 고꾸라지거나, 날아가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다. 체급의 차이다.
단지, 일평생 마법만을 연구해온 요제프가 이런 궁지의 궁지에까지 와서 주먹질을 할 줄은… 에드조차도 예상 못했다.
주먹이 꽂힌 그대로, 에드의 고개가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온다.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은 그대로다.
거리는 제로다. 주먹을 내지르면 곧바로 닿을 거리다.
요제프는 그대로 헛숨을 삼켰다. 마지막 자존심은 눈물이 고이려는 걸 억지로 참아내게 만들었다.
에드가 손을 들어올려서 요제프의 팔목을 쥐려는 순간,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몰아쳤다.
-화아아아아아악!
에드가 구현해낸 마법이 아니다. 다만, 평소 에드의 몸을 지키고 있는 ‘상시 발동 마법’. 이른바 정령의 가호다.
하나의 정령하고만 계약했으리란 법은 없다. 그건 당연하다. 요제프는 알 수 없는 바람에 떠밀려 공터 구석에 쳐박혔다.
“컥! 허억!”
그리고 겨우 몸을 가누며 숨을 몰아쉬었다. 동공은 이미 한계까지 비대해져있었다.
에드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발동한 것을 보면, 저것은 분명 정령의 가호다.
요제프는 정령의 가호라면 전부 외고 있다.
일정 시간에 한 번씩, 예상치 못한 타격이 들어오면 적을 바람으로 날려버려서 제압해주는 마법. ‘풍랑의 가호’
아직 계약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발동 속도가 좀 늦다. 그래도, 확실히 발동하긴 발동했다.
그 가호를 제공해주는 정령은, 적어도 요제프가 알고 있기로는 단 한 개체 뿐이다.
요제프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제단 비석의 꼭대기를 보았다.
그러고보면 방금 요제프의 화염 마법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바람 또한, 에드 본인이 발현해낸 것이 아니다.
에드 본인이 발현해냈다면, 그 바람은 에드를 기준으로 뿜어져 나와야 했다.
그러나 바람의 근원은 분명… 저 높은 비석의 꼭대기.
요제프의 감응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 저 거대한 비석을 감싸안은 채 걸터 앉아 있다. 요제프의 예상이 맞다면 그건…
대체, 앞으로 뭘 더 얼마나 숨겨놨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손대중이었다는 이야기인가? 앞으로 상대해야할 신입생들이 많으니까?
– ‘제가 만약 선배님을 제압해버리고 마력석을 바치는데 성공한다면… 제 뒤에 따라오는 학생들은 누구랑 시험을 칩니까?’
아무 생각없이 내던진 그 말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가?
-휘익.
단검을 꺼내든 에드가 다시금 자세를 잡고 일어선다. 흔들리는 시선에선 안광이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요제프는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지, 진짜로 제가 졌습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일점 폭발’ 마법을 발현시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마력석을 부숴버렸다.
가장 알기 쉬운 항복 선언이었다.
“…”
완전히 부숴져서 파편으로 변해버린 마력석을 잠시간 지켜보다가, 에드는 어깨의 힘을 풀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래, 수고했다.”
에드는 지금까지의 전투가 뭐 어떻냐는 듯, 단검을 갈무리해서 집어넣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요제프 뿐이었다.
“마지막엔 훌륭했다. 나름대로 훌륭한 결단이었어. 한 방 먹었네. 그럼 이제 가 봐.”
그리고 불에 그을린 교복을 가다 듬으며, 다시금 제단에 걸터 앉았다.
“…”
요제프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에드 로스테일러.”
에드는 소매를 털고 제단에 가만히 앉아,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제단에 앉아 있는 에드를 보면서, 요제프는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한가지 확신이 드는 건 있었다.
아직 저 인간은, 가진 수의 절반도 채 쓰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