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decided to become a star RAW novel - Chapter 22
22. 제안
이사장과 학부모들을 교사로 착각한 노현우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이사장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물론 다른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어이구! 노현우 씨를 여기서 뵙네요! 노현우 씨 모르는 사람이야 없지요. 그런데 어떻게 여길?”
이사장의 얼굴에는 조금 전 박동철 선생으로 인한 불쾌감이 어느덧 가시고 없었다.
“아, 그게…”
노현우가 시선을 돌려 민서연을 찾았다. 하지만 먼저 나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강도훈이 노현우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선배?’
이몽룡 역을 맡았던 학생. 어쩐지 조금 얼굴이 익다 싶었는데. 노현우는 짧게 기억을 뒤졌지만, 역시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 어머, 노현우 배우님이 혹시 우리 도훈이를 보러 오신 건가요? 어머, 어떻게. 너무 영광이에요!”
강도훈의 엄마가 불쑥 나서서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노현우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아, 저 그게…”
강도훈의 얼굴을 지난 노현우의 시선이 민서연을 찾아 멈췄다. 노현우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깡충 뛰었다.
“서연아!”
한류 스타. 그리고 여동생 바보.
그가 와락 민서연에게 달려들어 커다란 꽃다발을 안겼다.
“축하해. 수고했어!”
누가 보면 연기 대상이라도 수상한 줄 알겠네.
너무 큰 꽃다발에 서연이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꽃다발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망정이지. 서연이 바보 오빠에게 속삭였다.
“오빠. 뭐 하는 거야. 쪽 팔리게.”
“이놈 시키. 오빠가 쪽 팔리냐? 응? 응?”
노현우가 서연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이사장 일행에게 말했다.
“여기 민서연 학생이 제 친척 동생입니다. 오늘 공연한다기에 관람도 할 겸, 축하도 할 겸 이렇게 왔습니다.”
“아, 그래요? 민서연 학생과 가족이셨군요!”
강도훈과 그의 엄마가 머쓱해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민서연이 다시 꽃다발로 얼굴을 슬쩍 가렸다.
“자자, 오늘 우리 학생들 너무너무 멋졌습니다. 저도 그렇고 학부모님들도 그렇고 연극 아주 인상 깊게 보았어요.”
이사장의 눈이 슬쩍 박동철 선생에게 향했고, 박동철 선생은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학부모님들을 대신해서 많이 칭찬해 주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대스타께서 방문해 주셨으니, 실례가 안 된다면 노현우 씨께서 아이들에게 격려의 말씀 한마디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노현우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제가 대표로 말할 자리는 아닌 듯하지만, 선생님께서 부탁하시니 한마디 할게요. 진심으로 좋은 연극이었습니다. 빈말이 아니고요.”
스타 배우의 칭찬에 연극을 했던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파격적인 스토리 변주도 좋았고요, 이음새가 거칠어질 수도 있었는데 좋은 연기력으로 잘 커버해 준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연출하신 분들, 연기한 학생들 정말 모두 대단했습니다.”
노현우의 시선이 우진혁에게로 향했다.
“변 사또 맡았던 친구 이름이?”
“우진혁입니다.”
“아, 진혁 학생. 연기 정말 인상 깊었어요. 내가 볼 때는 지금 배우로 데뷔해도 될 것 같아요.”
“우와!”
주변의 학생들이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딱 세 사람, 강도훈과 그의 모친, 그리고 박동철 선생만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이사장은 노현우에 이어 덕담 몇 마디를 남기고는 짧게 말을 맺었다.
“자, 그럼. 저희 이만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겠군요. 내가 간식을 준비 시켜 놓았으니, 맛있게들 들어요. 수고 많았어요.”
“와–!”
먹을 걸 준비했다는 이사장의 말에 학생들의 환호가 터졌다.
흐뭇한 표정으로 대기실 입구로 돌아서는 이사장. 박동철 선생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 눈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박동철 선생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이사장의 뒤를 따랐다.
“안녕히 가세요!”
학생들의 시선이 떠나는 교사와 학부모를 배웅하는 사이, 민서연이 노현우에게 슬쩍 물었다.
“왜 왔어?”
“인마, 톱스타 오빠가 바쁜 시간 쪼개서 와줬는데, ‘왜 왔어?’가 뭐냐.”
“아, 그니까. 그렇게 바쁘신 분이 여긴 왜 왔냐고.”
퉁명스러운 동생. 하지만 현우에겐 서연의 그 찌푸린 미간까지 귀여웠다.
“왜 오긴 인마. 보고 싶어서 왔지. 이 귀여운 놈.”
노현우가 두 손으로 민서연의 볼때기를 잡아 늘였다. 서연은 커다란 꽃다발을 두 손으로 안고 있었던 터라, 순간 저항하지 못했다.
“이, 시. 하이 마라!”
서연이 새는 발음으로 짜증을 냈지만, 노현우는 더 장난스럽게 놀려댔다.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이 귀여운 놈아. 이히히”
“이, 시! 지짜, 중능다!”
순간 노현우를 스치는 서늘한 위화감.
“크흠! 현우야.”
매니저의 신호에 서연에게 향했던 노현우의 시선이 주변으로 옮겨졌다.
어느덧 조용해진 대기실. 모든 학생의 시선이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
노현우가 슬그머니 서연의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하하하. 동생하고 좀 많이 친해서 그래…”
민망한 웃음을 짓는 노현우.
그런 노현우를 아까부터 커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강도훈이었다.
둘이 저렇게 가까운 친척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가 성도병원 이사장인 민서연. 그러니 물론 보통 집안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노현우 선배 집안이 재벌가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강도훈이 놀란 표정으로 입술을 훑었다. 그리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다시 인사드립니다. 저는 강도훈이라고 합니다.”
노현우의 시선이 강도훈에게로 옮겨졌다. 강도훈이 더욱더 싹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재작년에 선배님 작품에 잠깐 함께 출연했었습니다.”
“아!”
노현우가 이제야 생각이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서연과의 일로 민망했던 분위기를 전환해준 게 고마워 반응했을 뿐.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도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도훈입니다! 선배님께서 서연이 친척이신지는 몰랐습니다. 저 정말 선배님 팬입니다! 롤모델이시기도 하고요.”
“하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아무튼 고마워요.”
노현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어넘겼다. 강도훈이 정색을 하며 손을 저었다.
“아, 아니, 정말로 제 롤모델…”
“아, 진혁 학생.”
하지만 노현우의 시선은 이미 우진혁에게 옮겨졌다.
“… 모델… 이신데…”
강도훈이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머쓱하게 입맛을 다시는 동안, 노현우가 진혁에게 다가갔다.
***
“혹시 연기해요?”
대기실 구석 자리. 다른 학생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진혁을 마주한 노현우가 물었다.
우진혁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아직 아는 사람이 이영준뿐이었지만 딱히 비밀이랄 것도 아니었다.
“네. 학원에 다닌 지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두 달?”
노현우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달이면 그냥 거의 막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럼 아직 기획사는 없는 거고?”
“네. 없습니다.”
“아… 그럼, 앞으로 연기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 있어요?”
본격적이라.
그건 앞으로의 일은 아니었다. 진혁은 인생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격적이 아닌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그에게 있어 삶이란, 대충해서 꾸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번 생에서도 마찬가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던 새로운 삶. 그 삶에 대해 진혁은 매 순간 진심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기는 진혁에게 이미 본격적이었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내가 우리 기획사에 좀 추천을 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그 본격적인 마음이 아직은 선뜻 기획사라는 것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학생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를 배운다는 것과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었으니까.
짧은 진혁의 침묵을 고민으로 이해한 노현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긴. 아직 시작한 지 몇 달이니, 여기서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죠. 혹시 마음에 결심이 들면 여기 우리 매니저님께 연락 줘요.”
노현우가 눈짓하니, 매니저가 명함을 꺼내 우진혁에게 건넸다.
“내가 이런 제안 직접 하는 건 처음이에요. 그만큼 진혁 학생을 높게 본다는 거고. 배우로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이들의 대화에 몰래 귀를 기울이고 있던 강도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현우의 소속사라면, 강도훈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었다.
HC엔터테인먼트. 자타공인 국내 1위의 배우 기획사. 그것도 무려 노현우의 추천으로?
강도훈의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감사합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강도훈이 놀라 입이 벌어졌다.
‘저 바보 녀석!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횐데! 뭘 생각한다는 거야?’
다른 애들은 아등바등 오디션을 봐서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기획사다. 나중 일은 나중 문제다. 무조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도 가지 못하는 기획사에 우진혁이라니.
“그래요.”
노현우가 진혁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때였다.
도민우가 헐레벌떡 대기실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를 쳤다.
“야! 진혁아! 대박! 나 아까 화장실에서 노현우 봤다! 진짜 졸라 잘 생ㄱ…”
말을 맺지 못하고 멈춰 서는가 싶더니,
“… 겼는데… 으와 악!”
놀란 눈으로 펄쩍 물러섰다.
“졸라 잘생긴 건 칭찬 맞지? 고맙다.”
노현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던 도민우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네! 졸라 잘 생기셨습니다!”
“뭐? 하하하!”
모두가 노현우와 함께 폭소했고, 민망해진 도민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
이사장이 물끄러미 진혁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말도 안 되게 잘생긴 녀석이네.’
진혁을 부른 이유가 외모 때문일 리는 없었건만, 진혁을 가까이 마주한 이사장의 눈은 진혁의 얼굴에서 떠날 줄 몰랐다.
“하하. 편한 자리니까. 편하게 앉아. 편하게.”
라고 말하는 이사장이 오히려 좀 더 편해져야 할 것처럼 보였다.
‘흠.’
이상한 긴장감이었다. 아니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짜릿함에 가까운 느낌일까.
전 과목 만점자가 나왔다기에 으레 최상위권 학생 중의 하나겠거니 했다.
하지만 진혁을 만나기 전, 진혁의 학교생활에 대해 살펴본 이사장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 학기까지 성적이 바닥을 기던 학생.
그런 학생이 불과 두어 달 만에 난이도가 까다롭기 정평이 나 있는 명성고 정기고사에서 만점을 받은 것.
‘그렇다는 말은…’
진혁을 바라보는 이사장의 눈빛이 빛났다.
역시 천재.
게으름에 빠져 있던 압도적인 천재의 각성.
암사자에게 사냥을 맡기고 초원에서 뒹구는 게으른 수사자. 그놈들의 강함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인 순간에 포효하며 초원의 지배자가 자신임을 드러내는 무적의 야수.
그것들의 강함을 그때 갑자기 생겨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야수의 강함은 본래의 힘일 뿐, 감춰져 있었다고 해서 수사자의 본래적 강함을 의심하는 이는 없는 법이다.
사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듯, 어느 순간, 이 녀석은 자신 안에 감춰 두었던 천재성을 꺼내 놓기로 작정한 것이겠지.
이사장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결심만으로 단 몇 개월 만에 명성고 전교 1등을 어린애 과자 뺏듯이 쟁취해 버리는 녀석이라니!
그뿐인가. 영어 교사마저 가볍게 눌러 버리는 회화 능력 하며, 엄청난 연기 실력, 거기에 보는 사람을 눈을 사로잡고야 마는 저 외모.
“천재는 천재가 맞네. 허허. 공부에, 영어 회화에, 이젠 연기까지.”
이사장이 진혁을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진혁에 대한 놀라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근데 그 좋은 머리, 선생님 놀리는 데 쓰는 건 너무했다.”
“……”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잘해보려고 바꿨다는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진혁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다 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지간히 아둔하지 않고서야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
“당황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네. 허허.”
교사의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학생다운 복수를 해버리는 배포. 이사장인 자신 앞에서 눈곱만큼도 흔들리지 않은 강단.
이 천재 녀석이 이만한 배포와 강단까지 있다고 하면, 도대체 뭐가 되는 걸까.
산전수전 다 겪은 이사장이었다. 하지만 학생 중에 이만한 녀석을 만나 본 적은 없었다.
“뭐, 여기서 그걸 탓하자는 얘기는 아니야.”
“아닙니다. 탓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일이니까요.”
“애초에 잘잘못을 따지자고 들자면, 어른들이 먼저 책임을 져야겠지. 아무튼, 내가 진혁 군을 부른 이유는 따로 있네.”
이사장이 소파 몸을 당겨 앉았다.
“몇 가지 얘길 해야겠는데, 뭐부터 얘기하면 좋을까…”
이사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