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71
71화. 결승 무대.
날씨가 제법 풀린 날의 오후였다.
계절은 서서히 봄에 접어들지만 아직은 늦겨울의 추위가 모두 꺾이지 않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봄의 꽃들은 생명을 피워내기 시작하고 대학교의 캠퍼스에도 서서히 신입생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시기였다.
나 또한 오디션이 아니었다면 저들처럼 학교의 로고가 박힌 자켓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은 결승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공연장에 와 있다.
어느덧 우리에게 주어진 곡은 단 한 개의 곡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예송이형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
승현은 안재일과 함께 이미 공연장에 도착해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은 예송이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나의 문자에는 답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대에는 이전처럼 예송이형과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다만 추가 된 것은 코러스와 오케스트라였다.
코러스만 해도 인원이 4명이었다. 이외에도 매우 많은 외부 인력들이 우리의 무대를 위해 동원되었다.
효인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인맥을 동원했다고 했다.
그건 김설도 마찬가지였는데, 김설의 경우에는 무대 뒤 스크린에 깔리는 동영상 제작에만 수십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뮤직비디오 연출가들이 동원되었다고 했다.
김설 본인이 무대에는 홀로 올라가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에 생긴 아이디어였다.
택시를 타고 박주원 PD가 지정해준 주소에 도착하자, 그곳은 어느 지하철역 인근이었다.
그곳에서부터는 방송국에서 제공해준 리무진을 타고 공연장까지 이동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공연장 밖으로 100m가 넘게 늘어져 있는 대기줄을 볼 수 있었다.
리무진의 차창은 썬팅이 진하게 되어 있어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바깥에 있는 인파가 아주 잘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을 들거나 핸드폰에 응원 문구를 작성해두고 밝게 내비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나의 이름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연장 내에 마련된 슈팅 스타 대기실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는 이미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승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안녕, 먼저 와 있었네.”
“어.”
승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었다.
예송이형은 이 상황이 탐탁지 않은 듯했지만, 무대 직전이라 딱히 뭐라 말을 하진 못하고 그저 한숨을 조금 내쉴 뿐이었다.
나도 이런 사사로운 감정에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공과 사는 구분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무대 시작 전 루틴을 가져갔다. 500ml 생수를 반 정도만 마신 뒤 목을 풀고 박하맛 캔디 하나를 살살 녹여서 먹는 것.
그것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나만의 루틴이었다.
그런 와중 공연장에서는 서서히 관객들이 입장을 시작했으며, 결승 무대 전 스폐셜 무대를 위하여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페셜 무대는 방송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참가자들 위주로 마련되어 있었다.
공연장에서는 그리 큰 호응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으나, ‘하.모.니’ 팀 같은 경우는 방송 출연 이후 이전 다른 예능에서 출연했던 일들이 함께 조명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승현은 대기실 내에서 계속 말이 없었고, 예송이형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효인과 재일은 대기실에 오지 않았다. 후에야 알았지만 일부러 김설 대기실에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결승 무대를 앞두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긴장감을 이겨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굳이 별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이겨낼 수 있다 생각했고.
하지만 슈팅 스타의 대기실에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긴장감이 도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내부 분열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런 걸 보면 우린 아직 어리고 미숙했다.
고작 기사 하나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컨트롤이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니 말이다.
나 또한 승현의 저런 태도 하나 가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아직 어른이 되긴 멀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단 한 곡만 남았을 뿐이잖아.
이 곡에 담겨 있는 우리들의 의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슈팅 스타 분들, 이제 슬슬 준비 하실게요!”
TV에서는 조금 전부터 시작된 탈락자들의 스페셜 무대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늘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예송이형과 내가 무대 뒤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승현은 제자리에서 미동도 않고 있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무대 위에 같이 올라가진 않아도 무대 뒤까지는 함께 이동해주는 편이었는데,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니 그때에는 나도 조금 화가 났다.
그리하여 승현에게 뚜벅뚜벅 걸어간 뒤 말했다.
“네가 만든 곡이잖아. 우리 엄마한테 헌정한다면서 만든 곡이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그러자 승현이 우물쭈물하더니, 끝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승현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의 말을 더 얹었다.
“똑똑히 지켜 봐. 네가 만든 곡이 얼마나 뛰어난지, 네가 좋아했던 가수인 이수아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우리 엄마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대 뒤로 이동했다. 그 뒤로 승현이 어디까지 따라왔을지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알 수 없었다.
*
모든 스페셜 무대가 끝나고, 결승 무대의 시작은 김설의 순서였다.
나는 무대 뒤에서 무대 위로 오르는 김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특유의 무덤덤하고 긴장감 따윈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문득 리허설 때 보았던 김설의 무대를 생각했다.
김설이 이번에 준비한 곡은, 자신의 ‘눈’에 관한 자작곡이었다.
그 전까진 김설의 눈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지만, 이번 곡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때 들었던 곡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동시에 냉혹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소용돌이나 눈보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낼 것 같은 호소력이, 김설의 노래에는 있었다.
김설이 가진 모든 장점이 이 한 곡에 사무쳐 있다는 느낌.
나는 그 노래에 감동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을 느꼈다.
Top 8 라운드 때처럼, 김설에게 1위 자리를 내줄 수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음악은 다만 경쟁이 아니었다. 음악은 자신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목소리를 외적으로 수단화하는 것일 뿐.
노래 자체가 가진 의미는 경쟁 구도 바깥에 있었다.
나에게 이 가지는 의미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그거면 됐다.
1위건, 2위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잔잔한 배경음이 깔리기 시작하고, 무대 위의 조명이 푸르게 드리워진다.
김설이 노래를 시작했다.
···♩···
“아.”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나만 이런 체험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관중석에 앉아 있는 8만명의 관중들도.
그리고 실시간 중계로 TV나 스마트폰을 통해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도.
모두 그 한 소절에서는 몸 어딘가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나도 예송이형도 결승 무대 준비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김설의 무대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때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예송이형이 나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쟤 다음 바로 우린데, 너무 빠진 거 아니야?”
내가 “하하···, 그러게요.” 하면서 웃자, 예송이형도 자신 또한 잠시 넋이 나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은 정신을 차린 채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이따금 예송이형과 우리의 무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설이 무대를 하고 있을 때면, 관중석은 늘 조용하다. 그래서 우리는 혹여나 우리의 대화 소리가 무대까지 울리진 않을까 걱정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김설의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흘러갈 무렵, 누군가 말을 걸었다.
승현이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승현에게 묻자, 승현이 대답했다.
“나는 무서웠어. 내가 만든 곡이, 의미 없이 버려지진 않을까 하면서 말이야.”
“······, 그래서?”
“그래서 흔들렸던 거야. 네가 이 노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경연이 끝나면 나까지 버릴까 싶어서 말이야.”
“······.”
“미안하다. 그건 내 오해였어.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한 거야.”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승현을 보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순간 승현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편곡 요청을 한 번도 안 했겠냐? 네 음악이 그만큼 쩔었으니까 그런 거지. 너도 알고 있잖아. 네가 음악을 그만큼 잘한다는 걸. 근데 왜 그런 멍청한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따지듯이 말하자 승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면서도 조금 위축된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승현의 어깨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네가 얼마나 뛰어난 작곡가인지, 네가 증명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증명해줄게. 한 번 지켜봐.”
때마침 무대 위에서는 김설의 무대가 끝난 이후, 사회자가 멘트를 치고 있었다.
“자, 이제 대망의 마지막 무대입니다. ‘슈팅 스타’를 무대 위로 올립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당장이라도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거세게 폭주하는 관중들의 환호성.
“저 사람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응.”
“그럼, 즐겨.”
그렇게 나는 승현에게 마지막 말을 건넨 뒤, 무대 위에 올랐다.
눈부신 조명이 우리를 감쌌다.
예송이형은 무대 위에 올라가자마자 피아노를 점검했다.
띵-
띵···, 띵-
그리고 나에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으로 우리의 무대는 시작되었다.
···♩···
*
신율이 노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 유성은 생각했다.
‘저런 녀석을···, 한국에 붙잡아둘 수 있을까?’
유성은 로부터 이미 신율이 캐스팅 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들은 바 있다.
최종 선택은 신율이 할 몫이지만, 1차 미팅은 성공적이었으며, 이 딜이 이뤄질 경우 한국에서 최소 1년, 최대 2년 동안 활동이 보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도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인 를 통해서 말이다.
신율은 자신이 이번에 참여한 에서 가장 욕심이 났던 참가자였고, 그런 참가자를 자신의 회사에 꽁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1년은 감질만 난단 말이지.’
더 큰 욕심이 생긴 유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