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28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329화
맹, 약?
용사에게서 그 말을 들은 순간, 키루스는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렸다.
떠올린 과거는 둘이었다.
가장 처음, 서로 잔을 나눈 뒤 죽더라도 한낮, 한시에 죽기로 맹세했던 그날의 맹약과…….
– 경은, 우리가 맺은 약속의 연결 고리 아닌가.
– 그래, 맞는 말이다. 살 거면 우리보단 네놈이 살아야지.
마지막 순간, 새빨간 광경.
그날, 자신과 두 왕이 지키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이 파멸하던 끔찍한 광경이었다.
모두의 혼이 흩어진다.
– 내, 내 몸이……!
– 아, 가윽……!
약한 이는 버티지 못하고 살이 녹아내렸고, 피와 녹아내린 살이 섞인 처참한 점액질로 전락했다.
강한 이들은 버텨 냈으나.
– 마, 마물이다!
– 사, 살려…… 컥!
하늘에서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마물들까지는 버텨 낼 수 없었고…….
‘아.’
끝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를 지켜야 했을 ‘교두보의 기사’는 그저 멍하니 그것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아아.’
하늘이, 무너진다.
곳곳에 들끓는 죽음들.
감히 인간이 대처할 수 없을, 압도적인 광경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다.
만약 상대가 타국이었다면.
혹은, 강력한 악마를 숭배하는 교단 정도였다면 복수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두 왕국을 이렇게 증발시키는 압도적 존재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증오나 원망도, 어디까지나 그것이 가능한 상대에게나 품는 법이다.
만약, 그것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존재라고 한다면…….
‘아, 아아아아아아!’
꺾이는 수밖에 없다.
두 친우의 희생으로, 어떻게든 생존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과 무력감뿐.
‘맹약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몸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그때의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용사에게 말하고 싶다.
아무 의미도 없노라고.
당신이 그리 애를 써도, 그날 자신이 보았던 그 ‘신’을 이길 수는 없노라고.
자신들은 고작 피조물 아닌가.
감히 피조물 따위가 신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자포자기로 그날 맺었던 맹약이라도 지키기로 했다.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날의 ‘맹약’이라도 지키는 것으로 이 비루한 생을 마무리하겠다고.
딱, 그 정도의 의미였을 터.
그런데.
‘다른, 의미라고?’
그는 의문을 품었다.
그날, 그와 두 주군이, 친우가 맺었던 맹약에 무언가 다른 ‘의미’가 존재한단 말인가?
모른다.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은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용사를 보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리 말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보았다.
용사가 보인 표정.
‘왜.’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
이 압도적인, 절망적인 광경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으리라는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 신념이…….
‘왜, 당신은…….’
이런 광경 앞에서도 어찌 그런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죄송합니다.”
키루스는 그리 말하며,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맺은 맹약은 그저 서로의 결의를 확인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였노라고.
그것을 위해 세간에서 떠도는 ‘미신’의 힘을 빌렸을 뿐이라고.
“어느 미신(迷信)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시작점인 위대한 바다는 비원을 이룰 힘을 품고 있으며, 곧은 신념을 지닌 셋이 그 앞에서 맹약을 나눈다면…….”
그는 목에 건 목걸이에 쥔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이뤄질 것이라고요.”
“흐음.”
그런 미신들은 의외로 흔하다.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키루스가 방금 언급한 ‘미신’ 역시 그런 것 중 하나.
“공교롭게도 그 맹약을 맺은 후, 국경 지대에서의 피해가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다만, 저희는 어디까지나 주술적 의미로 맹약을 맺은 것은 아니기에…….”
“당시에는 크게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서로의 결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맺은 맹약이었을 것이다.
다만, 나름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미신의 힘을 빌렸겠지.
“그래도…… 좋았습니다. 무엇이 이유건 간에, 그토록 바라던 평화를 손에 넣었으니까요.”
“…….”
“과거, 타인이 절 박쥐라 비웃을 때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제 나름의 신념이 있었기에…….”
키루스는 기사로서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그리고 그 일관된 신념을 인정받아 교두보의 기사라는 칭호와 함께 존중받게 된 것이다.
확실히 존중할 만하다.
“그런데.”
하지만 신념으로 곧게 빛났던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어둡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영광됐던 과거에서, 다시금 가혹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너무, 허망하잖습니까…….”
그는 손을 떨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힘들게, 분쟁을 잠재우고 갈등을 해결했는데, 그 모든 게 한순간에…….”
“…….”
“그,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완전히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이 있음을…… 감히, 감히 피조물이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는 힘없이 키득거렸다.
그러고는 짙은 자괴감이 서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쩌면, 용사님의 말씀대로 두 왕국의 갈등이 사라진 것에는 그 ‘맹약’의 도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이제, 의미는 없습니다.”
“…….”
“제가 지켜야 할 왕국은 없습니다. 주군도 없으며, 그 맹약으로 얻은 평화조차…… 없던 게 됐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상대에게 복수할 힘도……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짙은 자괴감이 서린 웃음을 흘렸다.
마치 다 타오른 잿더미처럼,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태도.
쓸데없이 익숙한 모습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내 입가에서 나온 것은 따뜻한 격려 따위가 아니었다.
“하.”
짙은 냉소.
지나치게 닮은 것이다.
회귀 전, 난 저런 이들이 맺은 결말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안다.
여기서, 그를 ‘이해’해 주는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것임을.
그렇기에, 비웃듯 도발했다.
“그래서 다 끝났다?”
“지켜야 할 것도 없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두 친우와 맺은 맹약뿐. 원수를 갚을 수 없다면, 맹약만이라도 지키고…….”
그는 낙담한 기색으로 그리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조차도 그날, 절망했던 이들과 같다.
회귀 전, 난 키루스가 어떤 식의 삶을 살았는지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물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다는 건, 결코 좋은 결말을 맞지는 않았다는 뜻이리라.
이해는 할 수 있다.
거대한 절망 앞에서, 사람은 때때로 꺾이기도 하는 법이니. 완벽한 철인이 아니고서야,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최선입니까?”
“……예?”
“그 ‘교두보의 기사’의 맹세가 그리도 가벼웠단 말입니까.”
“……!”
그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가벼, 워……?”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날 노려보았지만, 신경 써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해? 속으로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적인 상냥함만큼 확실하게 파멸로 직행하는 티켓도 없으니.
“저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습니까! 저, 전부……!”
“남았잖습니까.”
난 그의 말을 끊고는 똑바로 그를 마주 보았다.
냉혹하게 느껴져도 상관없다. 이런 상황에서 상냥함 따위,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까.
난 방금 전, 눌렀던 그의 가슴 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이 남았고.”
“……!”
“그 안의, ‘맹약’이 남았습니다. 그뿐입니까?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간 신 또한 존재하지요.”
대충 이해가 간다.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맹약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리라.
뭐, 죽더라도 한낱 한시에 죽자는 식의 내용을 나누지 않았을까.
그도 아니면, 살아남은 쪽이 맹약을 나눈 장소에서 먼저 간 친우들의 넋을 기린다거나.
낭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건, 제 살을 깎아 가면서 그런 맹약에 목을 매는 것이 아니다.
“진정 책임감을 느꼈다면, 경이 해야 할 것은 따로 있을 텐데요.”
“그, 건…….”
“만약 맹약을 지켰다면 그 후에는 뭘 할 생각이었습니까. 이 죽음의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그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히 난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경께서 답할 생각이 없다면 제가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친우들의 뒤를 따를 생각이었겠지요.”
“저, 전 맹약을…….”
“맹약에 뭐, 순장이라도 있었답니까? 아닐 텐데요. 오랜 두 국가의 갈등을 끝내고, 자청하여 화합하고자 한 군주들이 제 기사에게 그런 가혹한 맹약을 걸었을 리가 없습니다.”
“…….”
내 말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나도 그가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줄 생각 따위 없었다.
“두려운 겁니까? 감히 신에 맞서지는 못하겠고, 그나마 쉬운 친우들의 넋이라도 기리겠다?”
“아, 아니오! 무슨 말을……! 다, 당신이 지금 내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나 같은…….”
“압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설마하니, 내가 이렇게 답할 줄은 몰랐다는 듯.
“미하일…….”
그런 날, 아리안델이 안타깝다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이쪽이니까.
“모른다면, 애초에 이런 말을 하지도 않았겠지요.”
누가 더 불행한지를 뽐낼 생각 따위는 없다. 하지만 난 결코 키루스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해하기에 이러는 것이다.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이 현실이 증오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원수를 갚기에는 부족하지요.”
“…….”
“그 사실조차 끔찍합니다. 경은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증오스럽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는 그 순간, 죄의식이 뱀처럼 심장을 옭아맸겠지요.”
전부 겪어 봤다.
참으로 지랄 맞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시간이지만, 마냥 기다리기에는 고통스러우며 결코 ‘완벽히’ 낫지 않는다.
지금 나처럼.
하지만 뭐 어쩌라는 건가.
“빌어먹게도, 알고 있습니다. 경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청해서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게 뻔히 보이는데, 내가 그걸 도와야 합니까?”
“…….”
내 말에, 키루스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막무가내라 들릴지도 모른다. 확실히 지금 내 말은 그의 사정을 이해하지 않은, 일방적이며 독선적인 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쩌라고.
비극의 피해자가 뭣도 없이 그냥 목을 매려는데 막아야지.
이걸 그냥 둬?
[하, 하지만 미하일…… 저 기사, 네가 그렇게 말해도 딱히 생각을 바꿀 생각이…….]‘괜찮아. 맡겨 둬.’
내가 다 생각이 있다.
현재 키루스는 맹약을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다. 즉, 그는 맹약을 지키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 음, 어김없이 개짓거리의 기운이 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와이즈가 뭐라 말하기는 했지만, 뭐, 딱히 알 바는 아니고.
“우선, 〈홀드〉.”
“으읍?!”
우선은 키루스를 속박해, 그가 괜한 헛짓거리를 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다.
“……뭐, 뭘?!”
“때마침 짐꾼도 필요하던 참입니다만, 여기 좋은 인력이 있군요. 축하합니다. 취직하셨어요.”
“아, 아니, 뭐, 뭔 소립니까! 저, 전 맹약을……!”
“음, 역시 동의하시는군요.”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태프를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럼 갑시다!”
“자, 잠깐, 내 동의도…….”
“아! 그리고 경,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아무리 현실이 엿 같아도 그 맹약을 지키기 전에 목숨을 끊을 생각은 없죠?”
없을 거야.
난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앉아서는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내 말에 그의 입가가 파들파들 떨렸다.
“도, 도, 도대체 뭐, 뭘…….”
“그러니 미리 말씀드리는데, 괜히 제 허락도 없이 도망쳤다가는…….”
난 조용히 그의 코앞으로 스태프를 들이밀었다.
“……여기, 이 스태프가 경의 머리를 어떻게 만들지 제가 장담을 드릴 수 없습니다?”
“……!”
키루스가 입을 벌렸다.
내 탁월한 제안에 감탄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생각해도 좀 합리적인 제안이긴 해.
“그러니 죽기 싫으면 뭐다? 일단 내 옆을 떠나면 안 된다.”
“어, 억지다! 요, 용사란 자가 어찌 이런…… 서, 성녀님! 이 미친 짓거리를 막아 주십시오!”
키루스가 간절한 얼굴로 아리안델을 보며 소리치자, 그녀가 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미하일, 이건 아니죠!”
“여, 역시 성녀님, 당신께서는 상식적인 대처를……!”
간절한 키루스의 눈을 뒤로한 채, 아리안델이 소리쳤다.
“머리는 제 몫이니까요!”
“……?!”
키루스가 간절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그러고는 입을 벌린 채, 연신 나와 아리안델 사이를 번갈아 보더니…….
“아, 악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