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96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외전 25화
“……음.”
지크프리트는 지금 굉장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정말로 중요한 선택의 기로.
고뇌에 찬 얼굴로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민을 입 밖에 냈다.
“아, 뭐 먹지.”
점심 메뉴 고민!
인간에게 있어 식욕이란 참으로 중요한 욕구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크프리트는 지금 삶을 이어 가기 위한 중대한 고민을 한다 할 수 있으리라.
벅벅.
배를 벅벅 긁어 대며 한참 고민하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
“그래, 과자로 대충 때우자.”
…….
그 중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 생각 이상으로 비루한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건 지크프리트는 대충 결론을 내렸다.
과자.
거창한 음식을 먹기는 귀찮다.
도대체 어쩌다가, 한때 교국 제일의 바른 생활 사나이였던 그가 이 꼴이 났는가.
바로 그건 최근 3년간의 행적에 있다. 최근 3년간 교국 곳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반강제적으로 온갖 일에 투입되었다.
유능하기도 했고, 어쨌건 한때 용사 후보였다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엇나간 적도 있지만, 현 용사인 미하일에게 용서를 받았기에 문제는 없고.
어쨌건 그런고로 굴려졌다.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결과 자연스레 그의 기본적인 생활 패턴이 망가지게 된 것이다.
아주 철저하게.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밥을 해먹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
“밥만 축내는 벌레가 되고 싶군. 왜 사람은 벌레가 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
지크프리트는 참으로 한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대충 방 안에 보관해 두었던 과자를 꺼내었다.
오도독, 오독.
맛있다.
배가 차는지, 이런 걸로 끼니를 때우는 게 건강에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맛있긴 하다.
“인생 뭐 있나.”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지.
과거, 대주교에게 꼭두각시 취급을 받던 때와는 다르게 염세적이게 된 지크프리트.
게다가, 여태까지 그가 믿고 따랐던 신조차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교국이 혼란스러워지고, 신도들이 혼란에 빠졌듯 지크프리트 역시 적잖은 고뇌에 빠졌었다.
하지만 한때 ‘용사’ 후보였던 그답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일했다.
‘……그래, 열심히 일했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혼란스러운 땅을 안정시키고, 몇 남지 않은 악마들을 섬멸했다.
그리고 카산드라를 도와 교국의 안정화에도 힘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자 자고, 생활하고 움직인 결과…….
“밥벌레다운 일생이군.”
이 꼴이 된 것이다.
교국도 꽤나 안정화되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도 꽤나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애써 무시해 왔던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
‘그건 그렇고, 최근 성녀님께서 느낌이 묘하던데, 아무래도 미하일 님과 관련이 있는 건가…….’
포만감이 깃든 배를 매만지며, 지크프리트는 최근 있었던 자잘한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활약했던 일들이 떠올랐지만…….
– 서류 정리가 이게 뭔가요!
– 아, 오빠, 뭐하는 거야, 진짜!
실수를 해서 카산드라에게 구박받았던 일이나 동생에게 경멸 어린 눈빛을 받았다거나…….
“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순간 지크프리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어흑.”
주륵.
볼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감상적이게 되는 건지.
“고독하구나…….”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여러 사건을 거치며 지크프리트의 멘탈은 꽤나 단단해진 것이다. 잠깐의 슬픔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자연스레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은인’을 떠올렸다.
‘미하일 님은 어디서 뭐 하고 계시나 모르겠군.’
미하일 발푸르기스.
마신을 소멸시키고 훌륭하게 용사의 책무를 마친 존재.
한때 그는 같은 용사 후보로서 미하일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때였을 뿐.
지금은 그 누구보다 미하일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분이라면 나와는 다르게 지금쯤 무척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시겠지.”
물론 그래야 마땅하다.
그 고생을 해서 용사의 책무를 완수했으면, 당연히 휴식을 마음껏 취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긴, 내가 누구 걱정을.”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지크프리트는 눈을 감았다.
“으아아아아, 튀어어어!”
……물론 그 미하일이 지금 발에 땀이 나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 * *
인간이란 언제 자유로워지는가.
난 그 난제에 관해 수많은 생각을 하였었지만, 명확한 결론에 이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이 자유로운 순간.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만나기 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두 다리가 멀쩡한 순간…….
인간은 다리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 줄어들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텔레포트〉!”
지금의 내 행동은 바로 그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10번쯤 공간이동을 거듭했을까.
나는 그제야 멈출 수 있었다.
“으, 흐어어억……!”
뒤질 뻔했네, 진짜!
난 한참 숨을 헐떡이며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짜 눈앞에서 먼저 간 헤카우가 손을 내밀고 있더라니까.
“아니, 공간 이동 좀 작작…… 우, 우욱……!”
뒤에서 리안이 입을 틀어막으며 울렁거림을 억눌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랜드 마스터라는 녀석이 뭐 그리 허약한지…….
“리안, 네가 그러고도 대륙 검술의 정점이란 말이냐.”
“지…… 랄 마…….”
공간 이동을 10번을 반복한다면 그랜드 마스터 할애비가 와도 속이 뒤집어질 거라고, 리안은 그렇게 말하곤 힘없이 흐느적대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무사히 도망을 친 건…… 맞냐?”
“아마…… 도?”
이렇게까지 공간 좌표를 꼬고, 공간 이동을 거듭했음에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도.
분노에 찬 아버지에게 사도들이 붙었을 가능성.
[으어어어…….]‘여기 세트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버지에게 붙었을 정도면 암만 봐도 나한테 원한이 단단히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뭐지. 난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
그 순간, 기절해 있는 에일렌과 리우엘을 제외한 셋의 시선이 일제히 날 향했다.
“뭐, 왜. 나만큼 타의 모범이 되게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그러는데.”
“어, 음, 그래. 그렇다고 치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이제 죄다 내 말에 굳이 딴죽을 걸고 싶지도 않다는 표정.
어쨌건 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나중은 모르겠지만, 일단 당장은 아버지의 시선을 피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쉴 즈음, 기절해 있던 에일렌이 정신을 차렸다.
“으, 어…….”
그러고는 좀비마냥 고개를 들어서는 느릿하게 주변을 보더니, 이내 내 쪽에서 시선이 멈춰 선.
“……미하일?”
“그래, 에일렌. 기뻐해라. 내 신속한 조치 덕에 우리는 간신히 안전해졌어.”
“…….”
에일렌은 그런 내 말에도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정신을 덜 차렸다기보다는 도대체 내가 뭔 말을 씨부리는지 잠시 따라가지 못했다는 표정.
하지만 이내.
“아니, 이 개……!”
정신을 완전히 차린 에일렌이 분노의 고함을 토해 내려 했다. 얼마나 화가 난 건지, 냅다 검을 쥐고 휘두르려는 모양새.
“으아아아아!”
물론 그 전에 곧바로 리안에게 제압당했다.
“아, 이게 몇 번째야, 진짜! 좀 진정해! 진정하라고!”
계속 버둥거리는 에일렌을 필사적으로 붙잡는 리안.
에일렌은 그 상태 그대로 한참을 난동을 부리다 이내 잠잠해졌다.
잠시 후.
“후우, 좋아요.”
기세가 한풀 꺾인 에일렌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충 이해했어요. 후작 각하의 말을 들은 순간,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거잖아요.”
“이른바, 생존 본능이란 거지.”
“아니, 생존 본능이고 나발이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그냥 벌을 받아야지…….”
“그치만 다리 부러지기는 싫은 걸…….”
“반대로 다음번에 잡히면 더 작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요?”
“…….”
해 봤다. 안 해 봤을 리가 있나.
아들인 내가 우리 아버지 성질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알아. 이번에는 어쩌면…… 팔까지 바쳐야 할지도 모르겠네.”
[어찌 된 게 대사가 꼭 악마에게 대가 바치는 것처럼 들리냐.]“착각이야.”
암, 착각이고말고.
뭔가 여기까지 상황이 이른 건 내가 쓸데없이 일을 키워서 그랬던 거 같기는 하지만…….
사소한 건 일단 잠시 치워두도록 하자.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미하일.”
“음?”
“일단 멋대로 납치된 입장이니, 납치된 권리로 하나 질문을 좀 하겠는데요.”
납치된 권리는 또 뭐야.
하지만 어쨌건 멋대로 일을 처리한 내 탓이 확실하기는 했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봐.”
“이번 여행의 목적이 뭐예요?”
“…….”
이걸 물어보네.
설마하니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만.
“목적이라…….”
“제가 아는 당신은 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거든요? 마신을 소멸시키고 책무를 완수했지만, 그런 당신의 성격마저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흠.”
“혹시 다른 ‘문제’가 생겼다거나 하는 거라면…….”
“아, 그건 아니야.”
그래, 결코 아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일축했다.
동시에 이제 세계에 필요 이상의 문제가 생겨날 가능성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당장은 말이다.
“세상에 이것저것 불안 요소가 없진 않지만, 전부 다른 이들이 해결이 가능한 정도야. 굳이 내가 나설 것들은 없지.”
“그런가요.”
그 말에 에일렌은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됐어요. 전 혹시라도…… 또, 그때와 같은 위협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거라…….”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적극적으로 움직였겠지.”
애초에 나 혼자 꽁꽁 싸매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끌어모을 수 있는 것들은 죄다 끌어모아서 속전속결로 처리했을 테니까.
“이번 건 그냥 개인적인 문제다. 넌…… 어쩌다가 보니, 합류하게 된 느낌?”
“…….”
“원래 계획은 그냥 안부나 좀 묻고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딱 깔끔하게 거기서 끝이었어.”
아니, 그런데 거기서 아버지가!
누가 갑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튀어나올 줄 생각했겠냐고.
내가 후레자식이라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아들이라도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면 도망치기 마련이야.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야. 에일렌, 너도 그 불확실성에 휘말렸을 뿐이지.”
“아, 개소리는 하지 말고.”
에일렌은 갑갑한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리우엘을 품에 안았다.
어찌 됐건, 제 가족으로 돌보기로 한 건지 지극정성이다.
“어쨌건 그 버킷 리스트 하는 걸 따라다니면 된다는 거잖아요. 옛날 생각나긴 하네요.”
“뭐, 그렇지.”
마신을 상대하겠다고 돌아다녔을 때는 꽤 몰려다녔었으니, 확실히 옛날 생각이 나기는 한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요?”
“아직 못 고르긴 했는데, 일단 최종적인 목적지라면…….”
물론 버킷 리스트의 목록을 단기간에 채우겠다고 이렇게 정처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다.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신성교국이겠지, 아마도.”
“아.”
그 말에 에일렌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사이에 머리카락이 꽤 길어지긴 했네요?”
“뭐, 그렇지.”
어느새 내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올 정도가 되었다. 적당히 묶어 둬서 크게 티는 안 나지만…….
어쨌건 결과적으로 보자면, 회귀 전과 비슷해진 셈이다.
“……어쨌건.”
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모두를 향해 말했다.
“이왕 이리 된 거, 같이 느긋하고 평화롭게 여행이나 하자고.”
추억도 되살릴 겸.
그리고 그 말에 에일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평화로운 여행 맞아요?”
“날 뭐로 보고 그러냐. 당연히 평화롭지.”
생각해 보자. 내가 여태까지 얼마나 평화로운 여행을 해 왔……
“……흠.”
대충 평화롭다고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