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422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외전 51화
“음!”
나름의 휴식 끝에 업무를 끝내고 교국에 복귀한 지크프리트는 한결 건강해진 얼굴로 교국의 정문을 넘었다.
‘휴가 최고!’
사람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
이렇게 좀 휴가를 가진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지크프리트는 자신도 모르게 만면에 해맑은 미소를 가득 채우며 걸었다.
충분히 기력을 충전했으니, 못해도 일주일 정도는 즐겁게 교국에서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대충 그런 생각과 함께.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늘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 법.
“……음?”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크프리트가 ‘그것’을 보게 된 것은 일종의 운명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유롭게 교국의 광장에 도착한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여러분, 신께서는 저희 인류에게 미래를 맡기고 저편으로 가셨습니다! 그것은 숭고한 희생이며, 책임이자 아름다운 끝과 시작이었지요……!”
예전 같았으면 감히 광장에서 연설할 생각도 못했었을 마법사가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마법사의 주변은 성지 순례를 온 신자들과 신학자 같은 부류들이 모여 둘러싸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딱히 분쟁이 벌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모습.
‘그런데 저게 맞나?’
모르겠다.
마법사들이 신앙을 설파하는 모습이라니.
솔직히 좀 흥미가 돋아서 일단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마법사의 입장에서 보는 ‘신앙’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다가가던 중.
“……음?”
지크프리트는 걸음을 멈췄다.
마법사가 입고 있는 로브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로브에는 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 정성스럽게 수놓아져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냥 저 마법사가 좀 특이하다 생각하면 되니까.
마법사들 중 괴짜가 한둘도 아니고, 로브에 미소녀를 수놓은 부류가 없는 것도 이상하잖은가.
하지만.
‘이건…… 다르다!’
지크프리트는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걸음을 뒤로 물렸다. 더 이상 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
저 수놓아진 소녀의 모습…….
뭔가 어디서 본 거 같다.
금발에 적안.
거기에 입고 있는 복장은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의 로브를 적당히 리파인한 듯한……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겠지, 설마!
설마 그거겠어? 아닐 것이다.
지크프리트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자 했다.
방금 저 정체 모를 미소녀를 보았을 때부터 그는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 함께 합시다! 저희 미하…… 아니, 미카엘 교에……!”
와, 방금 저거 미하일이라고 하려고 한 거 다 들었다.
지크프리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공포스러운 광경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다.
“으아아아악!”
미친 듯이 광장을 벗어나서 얼마나 뛰었을까.
한참 헐떡이던 그는 눈을 파들파들 떨며 이 공포스러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자 했다.
“으, 으어어어…….”
정신을 차린 후, 눈치가 빨라지고 나름 영민해진 지크프리트.
그는 지금 이 순간, 쓸데없이 영민해진 자신의 머리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고도화된 두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저 ‘종교’의 정체가 무엇이며, 로브에 수놓아진 미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과, 광기…… 광기다!”
난생처음으로 마주한 직접적이며 추잡하기 그지없는 마법사들의 광기.
오오, 광기. 오랜 친구여.
그렇게 파들파들 떨던 지크프리트는 이내 또 하나의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긴 교국.
그리고 이 교국에 누가 있는가.
또 최근 누가 이곳에 올 예정이던가.
지크프리트의 머리가 미친 듯이 빠르게 회전했다.
얼마 안 가 그는 결론에 도달했다. 도달하고 싶지 않았던 끔찍한 결론 말이다.
‘성녀님! 그리고…… 미하일 님!’
합쳐지면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일으킨다 알려진 그 둘.
거기다, 교국과 미카엘인지 미하일교인지 하여간 그쪽의 궁합은 가히 최악이라 할 만하다.
혹시라도 미하일이 여기 오면?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미하일 님의 최종 목적지가 여기라고 하지 않았나?’
맞다, 여기라고 했다.
지크프리트는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파들파들 어깨를 떨었다.
그러고는.
“키에에에에엑!”
익룡이 우는 소리와 함께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자신은 지금 교국이 무너질 수도 있을 최악의 가능성을 눈앞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때, 용사를 목표로 했던 인재가 아니던가.
막아야 한다, 반드시.
“이건, 내가 해야 한다……!”
아주 오랜만에 지크프리트의 두 눈이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 * *
인생이란 무엇인가.
가끔 생각하고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이란 참으로 다양한 일면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최악일 때도, 최고일 때도 있다.
그래서 재밌는 거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거니까.
하지만 뭐라고 할까.
“죽인다! 청혼이고 뭐고 그것들부터 죽이고 본다!”
이따위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까지 원하지는 않았거든.
개 같은 것들아.
왜 온갖 개고생을 해 가며 세상을 구한 나한테 이따위로 구냔 말이야.
[미, 미, 미하일!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하지 못하겠지만, 어쨌건 진정해야 해!]“닥쳐! 다 죽인다! 내가 오늘 부로 이 시대의 새로운 질서가 되어 이 타락한 세계를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이다!”
세트가 기를 쓰고 막으려는 걸, 난 미친 듯이 전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 리안하고 에일렌은 지금 어디에 있냐고?
“그만 좀 해라아아아아!”
“좀 말리는 입장도 생각을 해 보라고요오오……!”
내 다리 양쪽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어떻게든 막는 중이다.
에일렌이 재차 소리쳤다.
“리우엘, 그 애도 잠시 댁 가문에 맡겨 두고 와 줬잖아! 좀 진정하고, 멈추라고요, 진짜!”
“크르르르, 죽인다!”
물론 결론은 간단했다.
죽인다.
내가 여태까지 너무 온화한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른 상황이다.
이건 정당방위.
놈들은 이미 수백, 수천 번 인간으로서의 내 존엄성을 살해했다.
하여간 세트와 두 녀석은 광속으로 이동하는 내 팔다리를 붙잡고 어떻게든 막고 있었다.
덕분에 움직이기 쉽지 않다.
그렇게 얼마나 의미 없는 삽질을 계속 이어 갔을까.
“후우…… 후, 허억…….”
아무리 그래도 사도에 그랜드 마스터 하나, 그 비슷한 거 하나를 달고 이동하려니 쉽지 않다.
결국 멈춰 선 채 잠시 헐떡였다.
다른 셋 역시 마찬가지.
“으허어억……!”
“흐어어어어…….”
다들 죽어 가고 있었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작정하고 내 마나를 억제하고 있었거든.
도대체 내 교국행을 그렇게 기를 쓰고 말릴 가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진정해.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 사이비 놈들을 정말 죽이겠냐.”
“그런 말은 스태프를 쥔 손에 힘부터 풀고 하는 거야.”
“…….”
슬쩍 스태프를 쥔 손을 보자, 힘줄이 잔뜩 돋아나 있었다.
이런, 본심이 나오고 말았나.
하여간 이 짐짝 셋을 끌고 한참을 질주하다 보니, 좀 머리가 식은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식진 않았는데 식은 느낌.
휴화산이라고 할까.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다.
“생각해 봐. 다른 곳도 아니고, 그것들이 교국에서 그 짓을 하고 있다고.”
“……음.”
“아주 씨를 말려야 한다. 그것들은 바퀴벌레 같아서, 진짜 근원을 박살 내지 않는 한 언제든지 다시 솟아날 수 있는 거다.”
그래, 바퀴벌레도 그렇지 않나.
귀찮다고 내버려뒀다간 그 일대가 지옥도로 화할 수 있는 법.
그냥 그것들이 안 나오는 게 최고지만, 일단 나왔다면 닥치는 대로 때려잡아야 한다.
“왜 멀쩡한 마법사를 여자로 못 만들어서 안달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리안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때 에일렌이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무식하게 때려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흠.”
“여태까지 그 잘 쓰던 머리를 요즘 왜 안 써요. 뭐, 계책이라든가 있을 거 아닌가?”
“으, 음…….”
계책이라, 계책?
“에일렌.”
“예.”
“압도적인 힘이 있는데,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있던가?”
“…….”
에일렌이 차마 반박을 못 하고 조용히 날 쳐다보았다.
눈으로 욕한다는 게 이런 표정일까.
“그래서 성녀님 보는 앞에서 눈 까뒤집고 스태프로 마법사들 머리 깨고 다니게요?”
“……음.”
합리적인 지적이군.
반박할 수 없다. 내가 불합리한 일을 당한 것과는 별개로 그건 좀 모양이 안 살기는 하지.
“우리는 지성인으로서 좀 건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고 폭력을 앞세워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죠.”
“지성, 지성이라…….”
하긴 마법사는 지성의 상징.
그리고 난 그런 마법사들의 정점이 아니던가. 요새 가문의 피가 내 머리를 지배한 건지, 좀 주먹이 먼저 나가기는 했어.
이런 건 나답지 않아.
확실히 이번에는 나답게 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민감한 문제가 걸려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까지 폭력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떠올랐다.”
마치 계시와 같이,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최적의 답안.
“사이비는 결코 쉽게 박멸되지 않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놈들을 어찌할 수 없어. 이건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 죠?”
“하지만 이번 일의 경우, 마법사들이 만든 이 ‘사이비’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다.”
“문제점?”
에일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직 짐작이 안 가는 모양이기에 녀석에 답을 해 줬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하일교니, 뭐니 해도 결국 마법사건 신도건 현실을 보는 게 아니야.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이상을 보는 거지.”
“생각해 보니…… 좀 그런 거 같긴 하네요? 사안이 워낙 어처구니가 없어서 깊게 생각 안 하고 있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럼에도 정말 미묘하게 나라는 연결 고리로 기묘하게 현실과 얽혀 있는 상황이다. 꿈과 현실 사이의 그 어중간한 틈새라고 할까……. 마법사들은 지금 그걸 노려 교세를 확장시킨 거지.”
“어, 음…… 그래서요?”
“이참에, 현실을 각인시킨다.”
난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저번에 했던 조치는 좀 약했어. 마음이 약해서 성별 반전을 시켰어도 좀 모양새는 좋게 해 줬단 말이야.”
“……음.”
그때를 떠올렸는지 에일렌과 리안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매스꺼운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둘에게 단호히 말했다.
“이번에 난, 요번 일에 얽힌 모두에게 ‘지옥의 현실’을 보여 줄 것이다.”
“지옥의 현실이라면……”
“그러니까 ‘성별’만 반전시킨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성별’만.”
“…….”
그 말에 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서, 설마…… 너……!”
“너희들이 생각하는 게 맞다.”
없던 건 붙이고, 있던 건 뗀다.
그런데 딱 그것만 한다.
일전에 영지에서 했던 것처럼 바뀐 성별 외모에 보정을 가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컨대, 냉혹한 현실을 강제로 마주하게 만드는 거지.
그때, 에일렌이 말했다.
“미하일, 당신…… 일단 청혼하러 가는 게 맞기는 하죠?”
“…….”
그 말에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게.
어쩌다가 이 꼬라지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