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82 Enchanted
* * *
백소연은 악보를 유심히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 생각보다 곡이 잘 나왔어. 설마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신주원도 그 말에 동조를 해줬다.
“이 정도면 연주용 곡이라고 봐야지. 중학교 수행평가 같은 느낌은 아니야.”
“그렇지?”
“우리가 작곡에 대해 잘 모르는 거지, 곡을 볼 줄 모르는 건 아니잖아? 지금까지 공부해온 곡만 해도 몇 곡인데.”
“셀 수도 없지. 그래서 우리도 이 곡이 어떤지 잘 아는 거고.”
처음 팀플레이를 시작하고, 팀원별로 다양한 의견을 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곡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주제부 멜로디가 정해지고, 각자 파트를 나눠서 작곡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사실, 말이 좋아 수행평가지 바꿔말하면 숙제 아닌가.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팀원들이 만들어온 파트를 팀장이 전부 편곡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수준이 달라져 버렸다.
팀원들이 만든 멜로디는 분명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주제부를 발전시키는 방식이나 전개 방식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밀해졌다.
여기에서 더 이상 음표를 더하거나 빼면 안 될 정도로.
곡의 방향성이나 분위기가 명확해졌고, 멜로디는 한층 더 돋보이게 됐다.
거의 창조에 가까운 편곡이었다.
덕분에 양우주 선생님께 보냈던 1차 검토본에 비해, 지금의 완성본은 퀄리티 자체가 달랐다.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음악.
그 때문에 팀원들은 나름대로 토론을 하고 있는 거였다.
백소연이 입을 연다.
“서진이는 대체 정체가 뭘까? 너도 걔 피아노 치는 거 봤지? 그것만 해도 기절하겠는데··· 작곡까지 이 정도로 한다고? 이게 가능해?”
“한 마디로 천재지. 그래도 뭔가 있는 것 같긴 해. 분명 비밀이 있는 놈이야.”
“비밀? AC2505 사고 당사자라는 거?”
“그건 이제 우리 학교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잖아.”
“그럼?”
“나야 모르지. 냄새가 난다는 거야. 냄새가.”
“······.”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한 신주원.
백소연은 이마를 짚었다.
심각한(?) 토론 끝에 둘은 학교 도서관에 도착했다. 학생증을 제시하고 도서관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는다. 해당 악보 파일을 열고, 말없이 쳐다본다.
최종 검토 작업.
둘은 마침내 결론을 냈다.
“이거··· 사실은 서진이가 거의 다 작곡한 곡이잖아.”
“맞아. 우린 음표를 몇 개 끄적이다가 서진이에게 혼나는 일개 팀원일 뿐이었지.”
“작곡 실기가 아무리 지나가는 수행평가라고 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겠지?”
“동감이야.”
신주원과 백소연은 다시 한번 결심을 다졌다.
백소연의 마우스가 빠르게 움직인다.
곧이어······.
백소연, 신주원 팀원의 폰트 크기는 10pt로.
‘한서진 팀장’의 폰트 크기는 15pt로 바뀌었다.
기여도에 따라 폰트 크기를 바꿔본 것이다.
“이만하면 됐을까?”
“50%면 충분해. 이 이상이면 오히려 과해 보일 거야.”
“마음 같아서는 200pt로······.”
“그렇다고 한 페이지를 한서진 석 자로 덮을 수는 없잖아.”
“그, 그렇겠지?”
백소연이 숨을 깊게 뱉는다.
그리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나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킨 둘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폰트 크기를 수정하고 이메일까지 보내는 데 성공한 그들은 서둘러 피아노과 A반으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아직 남아있던 터라 학생들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건의 당사자도 있었다.
한서진은 이들을 반겼다.
“이메일 보내고 왔어?”
“으, 응.”
“그냥 내가 한다니까. 별것도 아니었는데.”
“아냐. 원래 이런 건 크로스 체킹이 중요하잖아? 네가 마지막으로 검토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한 번 더 보는 게 맞는 거야. 그렇지? 주원아?”
“물론이지.”
한서진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런가? 악보는 문제없었고?”
“완벽했어. 그리고 코다 부분 고친 거 멋지더라.”
“오. 알아봐 줬네?”
“나도 악보를 열심히 보긴 했으니까. 도움은 별로 안 됐지만······.”
뜬금없이 고개를 푹 숙이는 백소연. 이유를 몰라 한서진이 신주원을 쳐다보자 부연 설명을 해준다.
“한 게 너무 없는 것 같아 민망하대. 서진이 네가 다한 것 같다고.”
“······ 한 게 없다고? 소연이 네가 의견도 제일 많이 내줬잖아. 거기에 실제로 도입부는 네가 거의 다 작곡한 거고. 충분히 도움이 됐는데?”
“그거야 내가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였고······.”
한서진은 백소연을 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이 나이대 애들은 순수하구나.’
막상 자신도 ‘이 나이대’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서진은 백소연에게 격려의 말을 조금 과하게 해주기 시작했고, 그건 백소연의 “아, 알았으니까.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신주원은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칭찬하는 선생님. 부끄러워하는 학생. 딱 이거네.”
“내가 무슨 선생님이냐. 또.”
“뭐, 뭐! 내가 뭘!”
잠깐의 소란 끝에 한서진이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든 우리 실기 수행평가 다 끝난 거네? 다들 고생했다.”
“응. 서진이 너도 고생했어.”
“그런데 아직 네 발표가 남아있잖아. 연주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이던데 잘 할 수 있겠어?”
신주원의 물음에 한서진은 가볍게 대답했다.
“진작에 연습하고 있던 거라 문제는 없어. 지금이라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거든.”
“아주 만능이라니까. 괜히 수석이 아냐.”
“그보다 너희들 생각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뭐?”
“응?”
한서진의 설명을 듣던 백소연은 중간에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 곡을 발표해보자고?”
“저작권 등록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니 걱정 말고.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까운 곡인 것 같아서.”
신주원이 큭큭하고 웃는다.
“그래서? 단순히 발표만 할 거야? 그다음은 뭔데?”
한서진이 눈을 빛낸다.
“꽤 재미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겸사겸사 용돈도 챙길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게 있거든.”
친구들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의향을 물어보는 한서진.
“분명 의미는 있는 일이겠다. 가능하면 나도 해보고는 싶어.”
“그런데 이 곡으로 될까?”
한서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해보고 안 되면 말지 뭐. 밑져야 본전이잖아.”
* * *
한편.
“어때요? 가능성이 있죠? 자작곡이라 더 눈에 띌 거예요.”
“좋네요. 이걸 1학년 A반 애들이 작곡한 거라고요? 음악과 수석이 포함된 팀에서요?”
“네. 오늘 점심에 완성본을 받았는데 이거 보고 확신이 들었어요. 이건 수행평가로 끝내면 안 될 곡이에요.”
양우주 선생님의 설명에 교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연주하는 걸 보고 나서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곡이 좋은데도요?”
“확인은 해봐야죠. 자리가 한정적이니까요.”
설화 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그곳에서 연간 2회 진행되는 실내악 공연이 있다.
티케팅만 성공하면 누구나 보러 갈 수 있는 공연이지만, 이 공연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었다.
‘사실상 후원회 모임 같은 거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재벌계 인사와 음악가들이 수두룩하게 모이는 곳.
이곳에서 잘만 눈에 띈다면, 앞으로 음악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바이올리니스트라면?
세기의 명기라 불리는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 같은 악기를 무상으로 대여받을 수도 있다.
만약 피아니스트라면?
후원을 바탕으로 유학이나 레슨에 들어가는 돈을 대폭 지원받을 수 있다. 공연을 제안받을 수도 있다.
원래 음악이란 음악으로만 놓고 봐야 하는 게 정상이지만.
현실의 음악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게 진짜 현실이니까.’
실제로 이 미술관 공연을 통해 과르넬리를 무상 대여받은 학생도 존재했다.
거의 몇 년 전 일이긴 했지만,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만약 가능만 하다면야 이 노래를 음원으로 발표하고, 대중의 주목을 받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차라리 시선을 조금 돌려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릴 테니까.
교감 선생님과 대화를 마친 양우주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직접 보시고 나서 결정하시겠다니···.’
양우주는 작곡 실기 발표 날짜를 확인했다.
‘내일모레. 팀장이 서진이니까 발표도 곧잘 하겠지.’
최종적으로 결정이 난 상황이 아니기에 아이들에게 미리 말을 해두진 않았다.
마침맞게 미술관 공연은 다음 달 초였다.
서진이가 준비 중이라는 독일 콩쿠르는 여름방학.
시기가 겹치지 않기에 이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주원, 백소연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번 여름에 콩쿠르에 참가한다고는 들었는데, 그들에게도 이번 미술관 공연은 분명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내일모레 발표에 따라 결정이 되겠지만.
* * *
설화 예중 대강당.
“오늘 피아노과 애들이 다 모였네? 작곡 실기 수업, 원래 반별로 하는 거 아녔어?”
백소연의 물음에 이하은이 대답한다.
“갑자기 바뀐 거야. 오늘 교감 선생님이랑 교장 선생님도 참관하러 오신다고 하던데?”
“진짜?”
“응.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감상도 써내야 한다고 하더라고.”
신주원이 한숨을 쉰다.
“도통 쉴 수가 없네.”
“수업 시간에 쉰다는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닐까?”
백소연의 눈총에 신주원이 변명했다.
“나는 그냥 음악 감상에 집중하려고 했지. 특히 이번 우리 곡. 우리 팀 연주자님의 연주가 궁금했거든.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신주원의 말처럼 나는 팀원 앞에서 제대로 된 연주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시간이 딱히 나지도 않았고, 팀원들끼리 모였을 때는 ‘작곡’ 하는 데에 더 중점을 뒀으니까.
연습은 주로 나 혼자 있을 때 했었다.
“그런데 나한테 너무 부담 주는 거 아니냐.”
“설마. 수석한테 부담은 무슨. 기대가 된다는 것뿐이었지.”
우리가 대강당 입구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그때.
“좀 비키지? 여기 전세 냈어?”
오범준이 우리에게 신경질을 냈다. 지나갈 길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람 세 명도 같이 지나가겠네.
처음 봤을 때부터, 합동 수업이 있을 때마다 한결같은 아이.
덕분에 오히려 정감이 가기 시작했다.
“미안. 그런데 너는 오늘 작곡 실기 준비는 잘 해왔어?”
“뭐? 지금 시비 거는 거야? 그러는 너는?”
어··· 나름 관심의 표현이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나는 무난해.”
“나도 어련히 잘해왔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고?”
“우리 타인을 위해 말투를 조금만 고쳐보는 건 어떨까?”
“너나 잘하세요. 수석이라고 거들먹거리지 말고.”
“너도 수석이잖아. 피아노과 수석. 피차일반이지. 너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
오범준은 나를 째려보다가 홱 지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신주원이 운을 뗀다.
“전생에 서로 깊은 악연이 있었을 것 같네. 어때? 생각나는 건 없고?”
“전생?”
“응.”
“······ 아, 갑자기 하나 생각났다.”
“뭐?”
“전생에 신주원 너랑은 말을 많이 안 섞었을 것 같아. 어이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 쳇.”
우리는 강당에 자리를 잡았고, 수업도 금방 시작됐다.
이하은이 말했던 것처럼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는 이미 자리에 앉아계셨다.
수업 방식은 단순했다.
팀별로 무대에 올라가 간단히 곡 소개를 하고, 연주를 한다.
무대 아래 있는 학생들은 그 곡을 듣고, 개인별로 평가를 한다.
팀별로 주어진 시간은 1분 30초 정도.
덕분에 A반, B반, C반이 모두 연주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첫 번째 팀이 올라갔다.
C Major를 베이스로 한 아기자기한 곡.
그런데···.
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콕 찔렀다. 슥 돌아봤더니 이하은이 입 모양으로만 내게 말한다.
‘⌜왠지 모르게, 봄⌟하고 살짝 비슷한데?’
아마······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본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이하은이 큭큭 웃는다.
두 번째는 이하은 팀이었다.
팀장은 이하은.
이하은의 연주는 무척 부드러웠다.
곡은······ 조금 어설픈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애를 쓴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전조를 하기도 하고, 당김음을 쓰기도 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웃음이 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군것질하러 가는 아이를 보고 쓴 음악 같네.’
그 유쾌함만큼은 분명히 느껴졌다.
차례는 금방금방 지나갔다.
“한서진, 백소연, 신주원 팀.”
드디어 우리 팀이 호명됐다.
무대 위로 팀 전체가 올라갔다.
백소연이 대표로 곡을 설명하는 사이, 나는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작곡한 곡(팀원들과 함께)을 내 얼굴을 드러낸 채로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러면 나중에 저작권 등록할 때 어떻게 되려나. 각자 이름 첫 글자를 따서 팀 한백신? 피아노과 A반 일동? 차차 고민해볼 문제였다.
백소연의 설명이 끝나간다.
나는 피아노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무대 아래를 봤더니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 그건 양우주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 그렇게 해서 이번 곡을 만들게 됐습니다. 저희 곡은 표제음악이기에 제목이 있는데요. 그건.”
백소연은 “크흠!”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Enchanted Mist⌟.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마법의 안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소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건반을 강렬하게 눌렀다.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건 조금··· 무섭지.’
세 명의 아이가 안개에 갇혔다가 빠져나오는 이야기.
내가 직접 겪었던 ‘환상 같은 진짜 이야기’를 살짝 가미해서 표현해본 곡.
그게 이번 곡의 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