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6
86 오직 그들만을 위한
* * *
“어? 오늘 아역 배우가 너니?”
“잘생겼네!”
“너 엄청 귀엽다! 이름이 뭐야?”
“광고 촬영은 처음이지? 그 나이부터 열심히 하는구나.”
촬영장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태프분들에게 이런 말들을 들었다. 아마··· 머리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배우가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빴다.
막상 그 원인을 제공한 설하 누나는 큭큭 웃고만 있었지만.
“어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연예계에 데뷔해버리는 건. 내가 예상하건대 우리 동생은 가능성이 있어. 천만 배우상이야.”
“사양하겠습니다.”
“왜에! 여기 있는 분들 영 빈말만 하는 분들 아니라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강렬하게 받고 있는 느낌이 있는데 그게 뭔 줄 알아?”
“······ 글쎄요.”
설하 누나는 내 옆에 딱 붙어 귓속말했다.
“우리 동생이 잘생겼다는 소리 들으니까 내가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 이래서 사람들이 매니저 직업을 선택하는 건가? 이참에 나도 직업 전향해버릴까? 어때. 누나가 방송국 인맥은 좀 있는데. 그냥 네 매니저 해버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야.”
“······.”
“참고로 나는 밥만 사주면 돼. 무임금으로 일할게.”
“······.”
완전무장 상태 때문에 설하 누나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누나는 오늘 일정은 어쩌고 저 따라오신 거예요? 요즘 바쁘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으, 응?”
“혹시 다 캔슬을 했다거나······”
“아, 아냐! 요령 있게 앞으로 당기고, 뒤로 밀고, 계획적으로 처리하고 온거야아.”
“그런데 목소리에 떨림이 있으신데요?”
“······ 엇.”
괜히 고개를 홱 돌리는 설하 누나.
뒤에서 따라오시는 누나 매니저님 말씀을 들어봤더니 약간 무리해서 일정을 조정하셨단다. 어제는 거의 밤샘을 하셨다고.
“그러다가 몸 상하면 어쩌려고요. 누나야말로 진짜 연예인인데요. 차라리 하루 푹 쉬지 그러셨어요.”
“······.”
그런데 어째 이 말이 기폭제가 됐는지 “꺄앜! 서진아, 내 걱정해주는 거야? 갑자기 힘이 나는데? 오늘, 네 PR은 내가 책임 져 줄게! 누나 믿지?”라는 식의 하이톤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어머니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셨다.
설하 누나랑 내가 진짜 남매처럼 보인다고.
그 소리에 설하 누나는 더 신이 났다.
“크흠! 뭐··· 사실상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어머니 눈이 정확하시네요. 제가 앞으로 서진이는 잘 챙길게요.”
“정말 든든하네요.”
“당연히 누나가 해야 할 일인걸요.”
“······.”
곧이어 나는 설화 누나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인사를 다녔다. 스태프분들을 만나기도 전에 그분들 소속을 슬쩍슬쩍 이야기해주셨는데, 진짜로 아는 분들이 많았다.
물론, 가끔씩 돌발 상황도 생겼다.
“어? 그런데 목소리가··· 혹시 권설하 가수님 아니세요? 저번에 저희랑 광고 찍으셨었잖아요. tvM 스튜디오에서요.”
“아, 아닌데요? 촬영장 신기하네요. 아하하하. 이런 곳은 처음··· 와봐서 말이죠.”
“······?”
“아~ 저게 카메라인가?”
그럴 때면 설하 누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래도 설하 누나는 매니저 역할을 성실히 이행해주셨다.
물도 챙겨주고, 손수건도 챙겨주고, 초콜릿도 챙겨주신다.
촬영 시간이 다가오자 공익광고협회 분들이 촬영장에 도착하셨다.
그분들 중에서 저번에 봤던 차장님께서는 나를 무척 반겨주셨다.
“그냥 편안하게 평소처럼 피아노 친다고 생각하면 돼. 실수해도 편집으로 커버 가능하니까. 긴장할 것도 없어.”
“오늘 저를 따라와 주신 분이 있어서 긴장이 되지도 않아요.”
“그러면 다행이네.”
저 멀찍이서 내 말을 엿듣던 설하 누나는 괜히 팔짱 낀 포즈를 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하시네.’
설하 누나,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오늘 촬영 현장에서 주역은 당연히 배우였다.
주인공은 올해 12살이 됐다는 남자 아역 배우.
광고 스토리도 무척 단순했다.
산에서 실족한 탓에 길을 잃어버린 아이는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공포에 떨던 아이는 기나긴 밤을 홀로 지새우게 되는데 그때, 구조대가 와서 아이를 구한다.
산악구조대, 소방관, 헬기 조종사, 중증외상센터 의사와 간호사.
그분들이 힘을 합쳐서 한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그들을 평소에도 응원해주자는, 정말 심플한 콘티였다.
“공익 광고는 복잡할 필요가 없거든. 간단명료. 이게 최고야. 거기에 음악이 잘 나왔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지.”
설명을 마친 차장님은 내게 촬영 감독님과 음악 감독님을 다시 한번 소개해주셨고, 일단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그리고.
“어! 권설하 가수님? 여기에서 다 뵙네요!”
“엇······.”
“웬일이세요? 근처에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그게······.”
설하 누나는 결국 몇몇 사람에게 정체가 들통나버렸다. 방송 관계자분들이 많은 자리라 그런지 어느 정도 투시(?) 능력이 있으신 모양.
“서진아! 나 잠깐만 저분들 보고 올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덕분에 설하 누나는 매니저님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촬영 현장은 정신이 없었다.
오늘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바람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배역이 다양했기에 배우님 숫자도 많았다.
그중에서 한 아이가 갑자기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그러더니 곧장 내 쪽으로 걸어온다.
아이는 내 앞에서 자기소개부터 했다.
“오늘 촬영에서 주연을 맡은 김은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 12살입니다. 배우 경력은 3년이고요. 잘 부탁드려요!”
꽤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아이.
나도 간단히 내 소개를 해줬다.
“역시! 형일 것 같더라고요. 중학생 형이 이번 음악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딱 맞췄네.”
“그런데 형은 대체 어떻게 그런 음악을 만든 거예요? 처음 음악을 듣고는 엄청 놀랐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나도 친구들이랑 같이 만든 거라서.”
“그래도 대단한 것 같아요!”
은수는 내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자기 꿈은 유명 배우가 되는 거라고. 나중에 설화 예중에도 들어오고 싶단다.
“앗. 그러면 제가 나중에 설화 들어가게 되면 선배님이 되시겠네요? 서진 선배님!”
“그렇게까지 부를 건 없을 것 같은데?”
“아녜요. 선배님.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은수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러고는 ‘배우’라고 쓰여있는 의자에 나를 앉힌다.
나름··· 대우를 해준 건가 보다.
“너는?”
“저는 서 있는 게 더 편해요. 앉아 있으면 갑갑해서요.”
그러면서 내게 설화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한다.
연기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지만, 아는 선에서는 최대한 답변을 해줬다.
그러고 보니 은수가 주연이라 내가 ‘손 모델’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인 피아니스트를 손 모델로 쓰면 너무 어른스러워 보일 테니까.
은수는 내게 이 음악을 만들 때 어떤 느낌으로 만들었는지를 궁금해했다. 호기심이 생겼다고. 그리고 오늘 연기에 도움도 될 것 같단다.
“그냥 콘티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요. 배우 선배님들 보면 모든 요소를 다 계산하면서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러고 싶어서요.”
“그래?”
“네.”
‘저번에 정현우 배우님도 그러긴 하셨지.’
내 대답을 기다리는 은수를 보며 나는 잠깐 고민을 했다.
그리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세상에 가상의 섬이 있다고 해보자.”
“가상의 섬이요?”
“응. 아무도 살지 않는 가상의 섬.”
그곳에서 갑자기 깨어나게 됐다.
온몸은 부서질 듯 아팠고,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진 것조차 별것이 없었다.
그저 공포만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척이나 어렸고, 연약했으니까.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아야 했다.
그래서 길을 걸었다.
일단 높은 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높은 산은, 낮에도 어두컴컴한 숲을 지나가야 오를 수 있었다···.
“그게 이 노래의 도입부지.”
“와··· 무슨 옛날이야기 같아요.”
은수에게 해주는 내 이야기는 무척 제한적이었다.
‘모든 걸 다 말해 줄 수는 없으니까.’
“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다행히 은수는 내게서 약간의 팁은 얻어간 것 같았다.
촬영이 시작됐다.
배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감독님의 외침과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설하 누나가 돌아왔다. 한 스태프에게 된통 영업을 당하셨단다.
“서진아! 이쪽으로 와 볼래?”
그때, 감독님께서 나를 찾으셨다.
피아노는 이미 세팅이 되어 있었다.
업라이트 피아노.
가볍게 쳐봤더니 조율이 잘 되어 있었다.
피아노 주변에는 대부분 초록색 천들이 널려 있었다. 크로마키다. 배경은 합성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가짜 돌멩이도 보이고, 가짜 나무도 보인다.
이런 곳에서도 쉽게 몰입하시는 배우님들이 대단해 보였다.
피아노 의자에 앉자 감독님께서 사인을 주셨다.
시작하고 싶을 때 언제든 시작하면 된단다.
내가 첫 촬영임을 감안해서, 촬영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신 걸로 알고 있다.
보면대에 있는 악보를 보려다가 포기해버렸다. 저 너머에 있는 초록색 천들이 신경 쓰였던 탓이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져 가는 야속한 기억을··· 간신히 되살리며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강렬하게.
그곳의 숲에서 바위산을 찾아갔었던 느낌을 떠올리며.
나는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 과거를 연주했다.
.
.
.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 같은 강렬한 도입부.
학교 녹음실에서 녹음했다는 음원을 들었을 때도 놀라웠지만, 지금 이 현장에서 날 것으로 듣는 아이의 연주는 마치 천둥 같았다.
거기에.
‘눈을··· 감았어?’
악보를 볼 필요가 없다는 듯 유려하게 연주를 이어간다.
상승하던 멜로디가 급격히 하락한다.
단지, 음원 싱크에 맞게 손만을 촬영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의 연주에 빠져들게 됐다.
촬영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스태프들도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잠깐동안 시간을 내서 아이의 연주를 바라본다.
하지만 저 아이는.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도 오롯이 자신만의 연주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 * *
숲은 깊었다.
방향을 구분할 수도 없었다.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봤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표식을 남길 만한 것도 없었기에, 이곳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걷다가 넘어졌다.
그래도 일어났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나는··· 이런 곳에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의 관념은 점점 옅어져 가기 시작했다.
숲은 마치 미로 같았다.
시간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잠깐 나무에 몸을 기대 쉬어가기도 했다.
다만.
아무리 잠들었다가 깨어나도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행히 바위산에 올라가는 길을 찾아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 역시 고행이었다.
그 누구 하나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곳엔 나 혼자뿐이었다.
팔이 긁히고, 무릎이 까져도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
나는 희망을 찾았다.
이 섬엔 나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 분명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고 그건 조금씩 움직이기도 했다.
물을 마시지 못해 기절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그 빛을 보고 움직였다.
그 방향에 고개를 고정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이 혼미했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이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숲을 빠져나왔는데도 주변은 어두웠다.
그렇게······.
내가 모른 걸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Hi. How are you feeling?”
누군가가 나를 잠에서 깨웠다.
빛이 내게 찾아왔다.
아저씨와 섬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나무배로 섬을 탈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과 식량이 떨어지고, 서서히 탈진하고 있을 그때.
아저씨와 기타를 번갈아 연주하며···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던 그때.
“잘 가거라. 서진아.”
빛이 내게 찾아왔다.
험한 세상.
동행이 필요하다면.
난 그 누구도 찾지 않고, 당신부터 떠올리겠다는.
내가 아저씨께 마지막으로 불러드렸던, 그 가사가 입 안에서만 맴돌고 있을 그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컨테이너선의 누군가가 나를 발견했다고 들었고,
구조대 헬기가 곧바로 컨테이너선으로 와줬다고 들었고,
병원에서 수많은 의료진분들께 도움을 받았다.
아이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수백의 구조대분들이 밤낮없이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나는 안개 속에 있었다.
하지만 빛이 내게 찾아왔다.
아저씨.
그리고 그들을 향한 감사한 내 마음은 아직도 여기에 남아있었다.
그건 영원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영원불멸하길 바란다.
나는 연주를 멈췄다.
서서히 눈을 떴다.
과거를 연주하던 나는 오늘로 돌아왔다.
촬영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설하 누나.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선글라스를 벗고 눈물을 닦고 있다.
어머니.
내게 박수를 보내주신다.
고요하던 촬영장은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와···. 지금 연주 뭐야?”
“나 소름 돋았어.”
“대박이다. 그냥 손 모델이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피아니스트 같네.”
“작곡을 쟤가 했다잖아. 설화 예중 출신이라더니, 뭔가 다른가 보다.”
“요즘··· 중학교 수준이 저렇다고?”
“그런데 쟤 이름이 뭐야?”
“아, 뭐였더라?”
“한서진. 아마 그럴 거야.”
촬영은 다행히 한 번에 끝났다.
그런데 원래 녹음본이 아닌, 오늘 촬영하며 녹음한 이 음원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감독님께 들었다.
“오늘 음악이 더 현장감이 있는 것 같았어. 한서진이라고 했지? 기대되네. 앞으로 종종 보자.”
감독님은 내 어깨를 툭툭 쳐주셨다.
그다음엔 설하 누나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나를 꼭 끌어안는다.
주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설하 누나는 내게 속삭였다.
“······ 잘 돌아왔어. 그거면 된 거야.”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하 누나는 이곳에서 그나마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분이 아닐까. 당시 15일간 행방이 묘연했던 나를, 진짜로 이해를 해주셨을까.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다만.
나 역시 누나에게 별말을 하지는 않았다.
“누나도 잘 돌아왔어요.”
“그래.”
그 정도가 전부였다.
촬영이 모두 끝났다.
며칠 뒤, 시간을 내서 설하 누나 연습실에 놀러 갔다.
홍대에 잠깐 들렀던 터라 기타를 가지고 갔었는데, 설하 누나는 내 어쿠스틱 기타를 바라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네 기타··· 내가 AC2505 사고에서 잃어버렸던 기타랑 같은 모델인 거 알아?”
“······ 네?”
“예전에 선물 받았던 기타였거든. 그냥 이 모델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
너무 놀라는 바람에, 그 기타 케이스 안에 혹시 손거울이 들어있지 않았냐고 묻고 말았다.
“어? 맞아. 하늘색 손거울. 그건 어떻게 알았어?”
“······.”
한동안 당황을 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누나의 손거울을 가리켰다. 그냥 있을 것 같았다고. 연예인이라 거울을 많이 볼 것 같았다고 말을 돌렸다.
“치. 싱겁긴.”
하지만 내 감상은 싱겁지만은 않았다.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된 거였어.
설하 누나는 내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고 있지만, 실은 내가 설하 누나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거였다.
“어? 그런데 서진아, 어디 아파? 표정이 왜 그래?”
설하 누나는 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수다를 떨며 누나와 시간을 보냈다.
공익광고협회 차장님 말씀처럼 광고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촬영은 그날 하루에 끝났고, 편집도 일주일 만에 완료됐으며, 바로 여러 매체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큰 자본이 투입되는 광고가 아니다 보니 속전속결이었다.
광고가 나갈 무렵에 맞춰 나는 이메일을 썼다.
조금 정성스럽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 * *
미얀마의 어느 구조 센터.
그곳에서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이메일 봤어? 그 아이! 잘 지내고 있대!”
“그 아이? 누구?”
“희망의 아이!”
우루루 모여드는 사람들.
그들은 이메일 내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었는데.”
“그러니까. 거기에 영상도 보내줬어.”
“영상?”
그와 비슷한 일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일어났다.
구조대원 중 하나가 영상을 재생한다.
말레이어 자막이 달려있는 영상.
그 영상을 보던 구조대원은 괜히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 우리가 이것 때문에 일하는 거지.”
“이 광고 음악도 그 아이가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한국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다던데?”
“장하네. 장해.”
한편, 싱가포르의 국립병원.
조금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간호사들은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병동의 수 간호사인 린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옅은 미소를 띤 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서.
한 사무실 앞에서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룽 선생님! 그 이메일 보셨어요?”
예전에 한 아이를 담당했던 의사 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보고 있었어요. 병원 메신저에서 난리가 났는데 모를 수가 없죠.”
룽은 보고 있던 모니터를 슬쩍 돌려 린에게 보여줬다.
장문의 이메일.
그 서두에는 사진이 하나 있었다.
“서진이 친구들인가 봐요. 잘 지내고 있나 보네요.”
“6명. 용케도 셀카를 찍었네요.”
“큭큭. 그러니까요. 사진 보니까 많이 큰 것 같죠?”
“아이들은 금방금방 자라니까요.”
그들은 이메일에 첨부된 영상도 확인했다. 다행히 영어 자막이 있어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광고 음악을 그 아이가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룽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죠. 그 아이가 연주한 트로이메라이가 다시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아요. 인상적이었었죠.”
“그런데 지금은 더 대단해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예술중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아이.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내용을 읽었을 때, 린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치고 말았다.
“아주 이뻐 죽겠어요!”
룽은 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이 아이가 다시 싱가포르에 올지도 모르겠네요.”
“연주자로 말이죠?”
“물론이죠.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이메일의 끝부분에는 아이가 직접 손으로 쓴, 영어 편지 이미지도 있었다.
린은 그 편지의 마지막 글귀를 천천히 읽었다.
“마법의 안개 속에 있던 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주신 모든 영웅분들께 이 곡을 바칩니다······.”
힘든 일상을 보내는 영웅들을 위한 노래.
이 곡은 오직 그들만을 위한 헌정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