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90
90 우리는 결국
* * *
설화 예중 교무실.
양우주 선생님이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렇게 되면 피아노가 급한 다른 기악과 애들은 조금 실망하겠다. 그것도 1, 2등이 한 번에 빠져버리니까.”
“팀 구성하는데 제한이 없다고 알고 있어서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자신이 나갈 독일 콩쿠르에 대해 설명하는 한서진. 그래서 욕심을 부려봤다고 말한다.
양우주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귀엽네. 당당하고. 그래. 세상에 욕심 없는 음악가는 없으니까.’
이왕 같은 수업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는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게 맞다.
“단, 이번 합주 실기 평가는, 연주 실력보다 앙상블(ensemble, 합주자 간의 연주 조화)을 위주로 보는 거 알지? 1, 2등이 팀을 한다고 득 될 거는 없다? 오히려 더 냉정하게 평가할 거니까.”
이러한 이유로 학생들이 알아서 팀을 만들 수 있게 내버려 둔 거였다.
하물며 꼴찌와 팀이 됐다고 하더라도 앙상블만 잘 맞는다면 만점을 받을 수도 있다.
이번 실기 시험은 학생들에게 ‘합주’를 경험해 보게 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지, 상위권 학생들이 독식하라고 만든 시험은 아니었다.
거기에 상대 평가도 아닌 절대 평가.
일정 기준만 넘기면 된다.
그래도 상위권끼리 뭉치려는 아이들이 많기는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한편, 한서진과 이하은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네.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해보고 싶어서요.”
양우주는 이번엔 이하은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면 하은이는? 서진이랑 팀이 되려는 이유가 있을까? 서진이는 방금 콩쿠르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이하은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서진이하고는 오래된 친구 사이라서요. 한 번쯤 같이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마침 그 모차르트 곡도 좋아하고요.”
“아~ 서진이랑 소꿉친구였어? 어쩐지 둘이 잘 붙어 다닌다 싶었는데. 지금 둘이서 1, 2등 하고 있는 거 보면 서로 좋은 영향을 받았나 보다.”
이하은은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 네.”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양우주는 미소를 지었다.
‘요즘 애들 같지 않게 다들 귀엽네.’
양우주는 합주 팀 신청서에 사인을 해줬다.
그리고 둘이 교무실을 나가기 전에 한서진만 따로 불렀다.
⌜마법의 안개⌟ 때문에 팀장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공익광고협회에서 반응이 너무 좋다고 연락이 왔었어. 이사장님께 직접. 그래서 지난 교무 회의 때 잠깐 이야기가 나왔었거든.”
지금의 1분짜리 곡으로는 다른 곳에서 연주하기가 많이 아쉽다.
아차 하는 사이에 연주가 끝나버리는 곡.
그래서 학교에서 지원을 해줄 테니, 그 곡의 길이를 늘려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한서진의 답변은 금방 나왔다.
“지금 그대로도 사용처가 있는 곡이잖아요. 그리고 만약 그 곡이 연주되어야 할 순간이 생긴다면, 작곡을 따로 하지 않고 곡의 길이를 늘리는 방법을 선택해볼까 해요.”
“작곡을 하지 않고서?”
“네. 친구들하고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어요.”
이어지는 설명을 듣던 양우주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방법이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해봐야죠.”
* * *
노래 두 개를 동시에 작곡하게 됐다.
하나는 친구에게 줄 A 곡.
하나는 딱히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생각하고 쓰고 있는 B 곡.
전자는 내가 원해서, 후자는 약간의 의무감으로 만들고 있는 노래였다.
그런데.
B 곡의 시작은 ‘의무감’이었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들려버렸다.
평소에 잘 써보지 않았던 EDM 트랙을 넣어봤고, 조금 신나는 톤으로 탑 라인을 만들었다.
편곡도 아예 처음부터 다양한 악기를 써보는 데에 중점을 뒀다. 예상되는 최종 트랙 수만 해도 100개 정도. 그만큼 화려하고 강렬한 노래였다.
두 개의 곡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각각 의도가 다른 곡이었기에, 분명히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두 곡의 공통점도 있었다.
그건, 둘 다 내 이야기가 아닌 노래들이라는 것.
바로 이전에 작곡했던 ⌜마법의 안개⌟나 ⌜왠지 모르게, 봄⌟까지만 해도 나의 이야기였다.
노래의 화자는 나였고, 내 생각이 담겨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 이야기에는 내 감정을 싣기가 쉽다.
‘지금까지는 그게 잘 먹혀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 노래들은 어떻게 될까.
조금은 건방지게, 친구의 감정을 유추해서 만든 A 곡.
아무런 감정 없이, 흥미 위주로 만든 B 곡.
두 노래가 어떻게 될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이것도 직접 부딪혀 봐야 알게 되겠지.’
합주 연습도 무난했다.
평일에 시간을 내서 설화 연습실에서 하은이랑 연주를 맞춰보기도 했는데, 처음엔 완전 엉망이었던 곡이 슬슬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다.
다만, 피아노 두 대가 있는 연습실은 예약 경쟁이 매우 매우 매우 치열해서 외부에서 따로 연습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며칠에 걸쳐 A 곡을 완성했다.
그리고 B 곡 초안을 박훈 과장님께 보냈다.
과장님께 전화가 온 건, 톡을 보낸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 야! 너 콩쿠르 준비만 열심히 해도 된다니까. 왜 곡을 만들어? 학교생활도 바쁠 애가.
“제 취미가 작곡이라 그래요.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살겠어요.”
잠깐의 정적.
그 끝에 과장님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하여간 대단한 놈이라니까. 나중에 네 정체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됐을 때, 아마 난리가 날 거다.
“그래서 곡은 어떤 것 같아요?”
– 일단 나는 좋았어. 아직 다른 팀원들에게 물어볼 시간은 없었잖냐. 여름에 맞는 신나는 곡이던데? 너 이런 곡도 쓸 줄 알았네.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이 곡 말고도 다른 곡도 하나 만든 게 있는데, 그거랑 반대되는 분위기로 작곡을 해보고 싶었어요.”
– 다른 곡? 곡을 하나 더 만들었어?
“과장님께 보여드릴 만한 곡은 아니라서요. 어디에 공개할 곡은 아니거든요.”
– 그러면 순전히 개인 만족용 곡이야?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이야. 완전 예술가가 다 됐네.
꼭 발표하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톡으로 음원을 한번 보내달라는 박훈 과장님.
하지만 이번엔 분명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 큭큭. 그래. 너도 생각이 있겠지. 다만, 곡 퀄리티가 낮은 것 같아서 못 보여주는 거면 안 된다? 네 기준이 높은 거일 수도 있으니까. 가끔 그런 아티스트들이 있거든.
“그런 건 아니에요.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보내드릴게요.”
– 그러면 다행이네. 기대하고 있으마.
B 곡은 아직 편곡이 끝나지 않아 대략적인 작곡 일정을 알려드리는 걸로 전화를 마쳤다.
전화상에서 은근히 좋아하시는 티를 내시던 박훈 과장님. 아마 곡 자체는 무난한 것 같았다.
주말, 이른 오전에 홍대에 들렀다.
Star 라이브 하우스를 갈 건 아니었고, 일성이 형에게 소개받은 녹음실을 가게 됐다.
혼자서 녹음할 수 있는 설비가 되어 있는 곳.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홍대라 그런지 녹음실 빌리는 가격도 무척 저렴했다.
시간당 만 오천 원.
지인 찬스로 나는 두 시간을 이만 원에 빌렸다.
안 깎아 주셔도 되는데, 어차피 알바라 상관이 없으시단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일성이 형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어차피 나 여기 주인 누나랑 친하거든. 그래서 가끔 도와주러 오는 데고. 그런데 ‘너 정도’ 되는 애가 홍대 녹음실을 찾냐. 여긴 아마추어들이 찾는 곳인데 말이야.”
“그럴만한 곡이 있어가지고요.”
“그럴만한 곡?”
“학교 녹음실 쓰는 것도 조금 그렇고, ⌜월광⌟에 부탁하기도 조금 그랬거든요. 제 돈 내고 녹음실 쓰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아서요.”
“그래?”
“네.”
일성이 형은 나를 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너 같은 애가 이제 겨우 중1이라는 거지. 매번 신기하다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카운터로 나 찾아오고.”
나는 곧바로 3호실이라고 적혀있는 녹음실에 들어갔다. 한 1.5평 정도 되려나. 엄청 아늑하다.
다행히 녹음 장비 사용법을 눈동냥으로 봐둔 게 있어서인지, 조작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벽면에 사용 설명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먼저 기타를 녹음했다.
어차피 악기가 하나뿐인 노래라 굳이 미디로 찍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꽤 괜찮은 기타 라인이 만들어졌고, 이내 보컬 녹음도 시작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봄⌟ 때보다는 목소리가 더 나아졌다.
아주 조금 더 목소리가 굵어졌고, 톤도 더 깔끔해졌다.
‘설하 누나 보컬 레슨 덕분인가?’
3, 4번 정도 가볍게 레슨받은 게 전부이긴 한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다음에 연습실 갈 때는 작은 선물이라도 사 가야겠다.
내 주변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참 많다.
2시간을 가득 채우고 녹음실을 나왔다.
일성이 형은 카운터에서 턱을 괸 채 허공을 바라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이별의··· 노래네.”
“들으셨어요?”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듣게 됐네. 오전의 홍대 녹음실은 한가하니까. 지금 네가 여기 전세 내고 있잖냐.”
고개를 돌려 녹음실을 둘러보자 진짜로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렇네요.”
“노래 좋더라. 뭉클하고. 살짝 울뻔했어.”
짤막한 평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나는 녹음실을 빠져나왔다.
조금은 따뜻한 햇볕이 나를 비췄다.
홍대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이··· 금방 다가올 것만 같았다.
* * *
그날 오후.
이하은하고 만났다.
우리는 합주 연습을 하기 위해 한국 뮤직스튜디오를 찾아갔다.
“그런데 진짜 나도 여기 연습실 써도 되는 거야?”
“교수님께 허락을 받았거든. 합주 연습 때도 사용해도 된다고 하셨어.”
“그래······?”
걱정하는 이하은과 달리, 알바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릴 반겨줬다.
벌써 1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라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꺄앜! 얘는 또 누구야? 수연이만큼은 아니지만, 엄청 귀엽네! 친구야?”
“네. 저번에, 친구랑 합주 연습 때문에 피아노가 두 대 있는 연습실을 빌리겠다고 말씀을······”
“아이고. 맞다! 맞다. 들었는데 잠깐 깜빡했었네. 친구는 이름이?”
“아! 이하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하은이 고개를 꾸뻑 숙이자 알바 누나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완전 인형 같은 애네. 둘이 같은 반이야?”
“네.”
“그렇죠.”
“좋겠다~ 나도 중학생 시절이 좋았는데. 하다못해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최고였거든.”
갑자기 추억을 꺼내놓기 시작하시는 알바 누나.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한 말이 조금 길어지기 시작하려고 할 때.
“저기 누나. 저희 연습할 시간이 생각보다는 빠듯해서요.”
“응? 아. 아. 미안. 너희들 보니까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이거, 다 너희들이 귀엽게 생겨서 그래. 알아?”
“······ 저희 탓이었네요?”
“크흠! 그렇지. 서진이, 열쇠 어딨는지 알지? 연습 열심히 하고. 친구랑 사이좋게 잘 지내고.”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제야 그랜드 피아노가 두 대 놓여있는 연습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하은은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키득키득거렸다.
“너 이젠 다른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네. 예전하고 다르게.”
“누가 들으면, 예전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는 줄 알겠다?”
“너무 무뚝뚝했었다는 이야기야.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했었고.”
“그런데 그때 나한테 열심히도 말을 걸었었네. 심지어 작년 때까지.”
“내가 그랬었지.”
“혹시 그랬던 이유가 있던 거야?”
“으음.”
이하은은 잠깐을 고민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 그리고 뚱하니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고 있다 보면, 조금 챙겨줘야 할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었고. 말을 안 걸 수가 없었어.”
“조금 챙겨줘야 할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건······ 대체 무슨 느낌이야?”
“글쎄. 잘은 모르겠네. 그냥 그렇게 생각이 됐었거든.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뀌었지? 설마, 친구를 잘 둔 덕분인가?”
이하은의 농담.
나 역시 농담으로 받아줬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우리는 각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고개를 세 번 까딱이며 이하은에게 신호를 줬다.
그리고 도입부를 연주했다.
그와 동시에 이하은이 나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조금 화려하고 기교적인 모차르트의 음악.
이하은이 변주를 이어 나가고, 내가 다시금 새로운 주제를 연주한다.
대화를 주고받듯 이어지는 연주는 서로의 멜로디를 보완하고 있었다.
주어진 마디에서 각자 음악적인 표현을 뽐낸다.
누가 누구 한 명에게 맞춘 연주가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의 음색을 최대한 살렸고,
그걸 조금씩 앙상블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시간은 꽤 즐거웠다.
* * *
“마지막에 우리 엄청 잘 맞지 않았어? 그거 녹음했어야 했는데!”
“녹음해서 뭐 하려고?”
“가끔씩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원래 모차르트 음악을 자주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잖아.”
“우리가 연주한 걸로?”
“그래야 의미가 있지!”
실제로 마지막 합주는 꽤 그럴듯했기에 이하은이 신나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벌써 저녁 시간이 됐다.
배가 막 고파지려던 참이라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계산은 결국 더치페이.
이하은은 언제나 내가 전부 계산하려는 걸 막아섰다.
“어허. 친구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넌 용돈 받아 쓰는 거잖아. 내가 얼마 버는지 말을 해줘야 해?”
“참고로 용돈으로도 충분하거든~ 그리고 네가 얼마 버는지 무슨 상관인데. 안 그래?”
그러면서 혀를 쏙 내밀고 저 앞으로 걸어간다.
다만, 후식으로 산 오렌지 맛 슬러시값은 내가 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한수연님께서 사시는 거야. 받아두래.”
“수연이가?”
“응. 강아지 피규어 고맙다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게 도리라네.”
“큭큭. 내가 못 살아! 수연이 걔는 대체 왜 그렇게 귀여운 거야?”
“나도 미스테리이긴 해.”
“다음에 제대로 된 선물이라도 사줘야겠다. 언니 된 도리로서.”
“그러면 수연이도 또 좋아하겠다.”
“그러면 너무 좋지.”
조금 더워진 날씨 덕분에 슬러시는 금방 녹았다. 빨대 스푼으로 느긋하게 떠먹을 시간이 약간은 부족했다.
길을 걷다가 이하은에게 뽑기 캡슐을 건넸다. 전부터 주려고 했었는데, 뭐 때문인지 깜박했었다.
“이게 뭐야?”
“흰색 고양이. 설마 이미 뽑은 건 아니지?”
이하은이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뽑기는 네가 도박 같다고 하지 말래서 그 뒤로 안 하긴 했는데······.”라며 말을 끈다.
“네 바로 다음 차례에 그게 나오더라고. 내 생각엔 네가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될 것 같아. 그런 뜻이 아닐까 싶더라.”
이하은은 뽑기 캡슐을 열고 안에 있는 흰색 고양이를 꺼냈다.
“······ 진짜로 그런 뜻일까?”
“아마도.”
“그랬으면 좋겠네. 고마워. 서진아.”
그러면서 옅은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하은에게 톡도 하나를 보냈다. 오늘 오전에 녹음했던 곡. 믹싱과 마스터링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 완성된 곡이었다.
이하은이 핸드폰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본다.
“음원 파일? 신곡을 쓴 거야?”
“나중에 들어보라고 보내준 거야.”
“그런데 보통은 바로 듣고 평가해달라고 했었잖아?”
“그 정도 곡은 아닌 것 같아서.”
이하은이 웃으며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른다.
“치. 1등 작곡가면서. 자신감을 더 가져도 될 것 같은데. 너만큼 노래 잘 만드는 사람도 없단 말이야.”
“설마.”
“진짜거든? 그러면··· 이 곡은 나중에 들어봐야 해? 지금은 안 되고?”
이하은의 물음에 나는 알아서 하라고 대답해줬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결국 비슷할 것 같았다.
우리는 한 카페 앞에 서서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귀에 끼었다. 가게의 통유리를 통과한 조명이 우리를 비췄다.
이하은의 손이 음원 앱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게 보였다.
내 옆에 서 있는 이하은은 묵묵히 노래를 듣다가 고개를 획하고 내 쪽으로 돌렸다.
나를 빤히 바라본다.
살짝 커진 눈.
덕분에 속눈썹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하은은 그런데도 침묵을 지켰다.
노래는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길지 않은 노래다.
3분 30초.
이하은이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내가 무인도에서 나와··· 사실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을 그때,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준 친구가 이하은이다.
‘다행이네. 손가락은?’
‘어?’
‘피아니스트한테 가장 중요한 게 손가락이잖아. 부러지거나 금이 간 곳이 있는지 물어본 거야. 잘 움직여?’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그걸 물어봐 준 친구도 이하은이었다.
나를 먼저 알아봐 준 친구.
막상 나는 예전에 이하은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했었다.
그게 미안했다.
그 순간.
이하은이 스마트폰 위로 눈물을 뚝 하고 흘린다.
그 눈물방울이 너무 큰 것 같아서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노래가 끝났다.
이 노래가 해야 할 일도 전부 끝났다.
이하은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건······ 나에 대한 노래잖아······.”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너는······ 왜······ 항상······.”
이하은은 눈물을 닦지도 않았다.
“나를 도와주는 거야······.”
“친구잖아. 네가 나를 도와줬듯이. 똑같이 했을 뿐이야.”
“······.”
내가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이하은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내 팔에 이마를 콕 댄 채로 서글피 운다.
나도 사실은··· 아빠가 보고 싶었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무도 없었다고.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말을 못 했었다고.
노래를 끝까지 들은 이하은은 내게 그런 말을 해줬다.
키는 작지만,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던 내 친구가.
아이처럼 내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어쩌질 못하다가 이하은의 어깨를 어색하게 토닥여줬다.
나는 노래나 만들 줄 알지, 사람을 달래는 방법은 잘 몰랐다.
목놓아 엉엉 우는 이하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줄 모르겠는 나.
우리는 결국,
모두 어린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