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27)
회귀자 사용설명서 1727화
중원무림빙의(132)
뭔지 모를 박력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드디어 마음을 먹은 건가.’
그냥 박력이 아니라 진짜배기 박력이었다.
왠지 모르게 이쪽이 눈치를 보게 되는, 이쪽이 주춤거리게 되는 종류의 박력. 그 하남자 같은 진 군사에게도 이렇게 밀어붙이는 종류의 힘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이상 쓸데없는 말을 꺼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물론 이전 회차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어떤 단서가 숨겨져 있는지, 어떤 이스터에그가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심지어 어떻게 실패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전 회차라고 마냥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인간은 실수에서부터 배우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
“…….”
“설사 내가 꿈을 꾸었다고 한들, 그리 중요치 않은 이야기겠지.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확인할 수 없으니 오히려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근데… 그것도 맞기는 해. 딱히 반박하기도 어렵고….
“그, 그것도 맞기는 해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왜 이 새끼가 자꾸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혹시 꿈이나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 그리 건강하지 않은 기억인 걸까.
‘뭔 이상한 꿈 같은 거 꾼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 리 없다.
‘아니면 진짜로 충격적인 장면을 본 건가?’
도대체 뭘 봤던 걸까.
오히려 말을 해주지 않으니 상상력이 가중된다. 혹시나 모용화연과 진청영이 정분나는 꿈이라도 꾼 것이 아닐까.
물론 말도 안 되는 가설이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방금과 같은 반응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봐온 것일지도….
본격적으로 녀석의 꿈을 뒤져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리무르아라도 데려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혹시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진 군사의 정신방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심지어는….
‘그럴 시간도 없지.’
진 군사의 말대로, 이 궁금증을 해결해서 얻는 이점이 지금의 회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래, 아무리 그간의 26번의 회차가 중요하다 한들 지금의 27회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26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여기에 있고, 결국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당도했다. 아마 그 수많은 회차 동안 사마영의 몸으로 와 꼬물이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 닿지 못한 회차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지금 회차는 무척이나 상황이 좋은 편이라는 거다. 모든 게 딱딱 들어맞고 있는 듯한 느낌. 어쩌면 지금과 같은 타이밍에 진 군사가 내게 찾아온 것 역시 어떤 안배일지도 모른다. 더욱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돼.’
방금 전에 미친 짓을 한 것치고는 설득력이 없었지만 조금은 진지해질 필요가 있는 시점이었다.
마찬가지로 진 군사 역시 진지하다. 이쪽과 마찬가지로 방금 전까지 미친 짓을 한 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중한 얼굴이었다.
“역시 그렇군….”
괜스레 중얼거리며 턱을 쓰다듬는 것만 봐도 이전과 스탠스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당연히 궁금증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뭐가… 역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 뭐예요? 시바. 왜 중간에 말을 하다 끊어요? 혼자 역시 그렇군… 이러면서 폼 잡으면… 당연히 궁금하잖아요.”
“어쩌면 네놈이 회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이전에 하기도 했었다는….”
“아니, 군사님이 방금 자기 입으로 이전 회차는 이야기 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어요?”
“제길! 이래서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아니, 아니, 알았어요. 한번 말해보세요.”
“말하지 않겠다.”
“한번 말해보라니까요.”
“…….”
“…….”
“네 기억이 지워진 것이 어쩌면 과부하된 영혼을 식혀주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 저도 그렇게 추측했어요.”
“빙의 역시 같은 개념의 페널티가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맞아요! 저도 똑같은 생각했어요!”
‘아니, 그냥 말하라니까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이 양반이….’
“그리고… 네… 그 쪽지도… 그간 경험이 바탕이 된 힌트였던 것이로군.”
“그것도 맞아요! 지난 회차의 경험으로 생각해 보면 군사님과 제 목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겠죠. 그래서 제가 이 회귀를 군사님과 함께 진행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고요. 아마 거의 확실할 거라고 생각해요. 회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아무래도 저 홀로 27번이나 되는 회귀를 전부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거든요. 뭔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같이 머리를 굴렸기 때문에 무슨 방법이든 생기지 않았겠어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럴듯하다고 봐야죠. 추가로… 군사님도 모용진천을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에 호의적이라고 봐야 되는 거겠죠…? 뭐… 속으로는 꼬물이를 꽤 아꼈던 거 아니에요? 군사님도 꼬물이를 대륙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거죠?”
“멍청한 소리.”
“멍청한 소리가 아닌데요? 지금 군사님 하는 걸 보면….”
“네가 기대하는 말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기는 하지만 나는 모용진천이 대륙으로 환생하든, 말든 딱히 아무 상관도 없다. 내가 네게 협력하는 이유는….”
“이유는?”
“네놈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의 멍청한 짓들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
“…….”
‘그것도 그렇기는 해.’
“…….”
‘날카로운데?’
어떻게 보면 녀석이 핵심을 짚은 셈이었다.
‘날카로워.’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진 군사는, 일이 어찌 됐든 간에,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영을 납득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기영이라는 인간이 한 번 결정한 일은 절대로 무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쓸데없이 이기영과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협력하겠다는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를 도와주려고 한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가.’
그 과정 속에서 이기영의 몸이나 영혼이 과부하되거나 상처 입는 것은 그다지 고려했다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얘는 딱히 뭐 내가 어떻게 되는 상관없는 거자너.’
김현성이나 정하얀 같은 이들과는 다르다. 역설적이게도 목적이 이기영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에 이쪽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딱히 섭섭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진청에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목적이 우선이다.
굳이, 구태여 죽기 직전에 모용화연에게 옥비녀를 쥐여주고 꼬물이를 지키려고 한 것도 그게 단기적인 목표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진 군사는 그런 인간이었다.
‘오히려 좋아. 오히려 확실해.’
“…….”
‘훌륭한 조력자를 옆에 두고 있는 거야.’
가끔 미친 짓을 하러 가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래서… 이제 한번 말해봐요.”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
“네놈은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지?”
“…….”
“천마신교를 떠난 이후의 기억이 아예 없어요. 그 외에는 전부 다 기억하고 있고요. 말인즉슨 꼬마 신랑이랑 뭐 둘째 남편이랑… 그리고 도올신녀 쪽이랑… 여기서 안에 있었던 건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군사님 목욕시켜준 것도… 뭐… 기억하고 있고요….”
“…….”
“근데 그 이후의 기억이 없네요?”
“…….”
“근데 제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신기하죠. 저도 왜 그런지 몰라요… 아, 그리고 상단전 열었던 것도 봤어요. 꼬마 신랑 질질 짜는 거… 모련이 죽기 전에요.”
“구태여 변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건 나와는 무관하다. 기억을 잃었을 때의 나는 내가 아니라….”
“알아요. 다른 사람이라는 거겠죠. 저도 딱히 그걸로 뭐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냥 상황설명만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요? 오히려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더 의심스러운 거 몰라서 그래요?”
“…….”
“…….”
“아무튼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
“뭔데요? 뭔데 그렇게 뜸 들이는 건데요?”
“네가 기억하기 싫은 기억일 확률을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 구태여 내가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도움이 되지 않을지….”
“상관없으니까 이야기해요. 기억을 지우기 전의 이기영이랑 지운 후의 이기영과는 엄연히 다른 개체라고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제3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
“…….”
“미친놈.”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지도 꼬마 신랑이랑 지랑 분리하고 있으면서….”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니, 뭐가 달라요? 제가 보기에는 하나도 안 다른데….”
“…….”
“…….”
“차희라가 죽었다.”
“불리하니까 대뜸 본론부터 들어가네요…? 근데… 희라 누나요…?”
“쓰로누스가 목을 날리기는 했다만 정황상 자결이었다. 아마 네 회귀에 대해 얽힌 이야기들도 그녀에게 들었을 확률이 높겠지. 무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밖에도 다른 이야기들이 많이 나 왔을 것 같다만… 네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마 유실되었다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
‘그… 그건 글쎄. 2주 동안 딱히 대화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사건 역시 네가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 쓰로누스의 빙의체, 성지훈의 빙의체, 진청운… 심지어… 팽가희와 심양대협까지. 차희라의 빙의체를 잡기 위해 이 많은 인원들을 결집시켰으니… 어쩌면 이 사건이 이후의 챕터로 들어가기 위한 분기점이었을 거다.”
“분기점… 네. 분기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정말로 그 정도나 준비했다면… 그런 거겠죠. 근데… 지훈이도 왔었네요… 걔는….”
“죽었다. 즉사였지.”
“트라우마 생기겠네.”
“또 기억나는 것이 무엇이 있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거요.”
“…….”
“…….”
“더 이상의 회귀는 없다는 거요.”
“차희라와 나눈 대화 때문인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뭐… 확률은 높겠죠. 근데 누나 얼굴이랑 목소리는 안 떠올라요. 그냥 제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네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무래도… 누나가 제 머릿속에 독을 푼 모양인 것 같아요. 자결하면서… 독을 풀었다고 봐야죠.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는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은 저한테 한 번 져줬나 봐요. 저도 그걸 대가로 희라 누나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타당한 거래였다고 봐요.”
“…….”
“아! 자결이라고 했죠?”
“그래.”
“아니, 잠깐… 희라 누나가 자결했다고요?”
“그래. 문제 있나?”
“모련을 죽이고 자결한 건 아니죠?”
녀석이 고개를 젓는다.
“그럼 저는 희라 누나한테 죽은 게 아니네요?”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시바 도대체 누구한테 죽은 거예요?”
“…….”
진 군사가 조용히 말을 이어왔다.
“김현성.”
“…….”
“김현성이다.”
“…….”
“…….”
당연히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아니, 진짜 설마 설마 했는데….
‘시바 진짜 김현성이었어?’
“…….”
‘너가 진짜… 모련 살인마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