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10
109. 육아의 보람 >
치킨이 힘이 되었는지 이후 촬영은 원활하게 끝났다. 그래도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태주는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서 동생들과 따로 살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새벽에 들어갈 때마다 태우와 쿠첼루스를 깨워서 미안했었다. 특히 태우는 고3인데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방해가 됐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벌써 따로 살게 된 게 조금 아쉬웠다.
‘전원주택에서 같이 살자는 것도 거절하고 말이지. 하긴 그 근처에 놀만 한 게 없긴 하지.’
일전에 두 동생을 전원주택 공사 현장에 데려갔었다. 쿠첼루스는 좋아했는데, 둘은 부지 인근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경악했었다. 부지에는 주변에 마트나 병원 같은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도 없었다.
부지를 보자마자 둘은 태주에게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지 물었다. 그는 그 질문에 속이 쓰렸지만,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쿠첼루스는 근처에 산이랑 나무가 있어서 좋다고 했는데.’
사실 한창 즐길 나이의 동생들이 살기엔 너무 허허벌판이었다. 동생들의 마음이 이해됐지만,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같이 사는 걸 상상하던 그는 무척 안타까워했다.
*
정원 입구를 통과한 순간 팔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라졌다. 호랑이 모습으로 안겨서 정원에 들어선 태산이 갑자기 아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게감뿐 아니라 팔에 느껴지는 촉감도 달랐다. 따끈한 체온은 그대로였지만, 팔뚝에서 털이 아닌 보드라운 피부가 느껴졌다.
“헉! 벌거숭이.”
“앙.”
그의 팔뚝에 태산의 통통한 엉덩이가 얹혀져 있었다. 현실의 옷을 정원에 가져오지 못하니, 벌거숭이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반대의 경우엔 DP를 내면 괜찮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태주는 태산이 창피하지 않게 품에 꼭 안고 오두막으로 내달렸다. 희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틈이 없었다.
“꺄하하.”
“큭. 아이고. 산아, 사람들이 네 엉덩이 다 봤다.”
“앙.”
‘사실 이 녀석이 벌거벗고 다녀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떨어뜨리지 않으려 꼭 안았더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태산이 버둥거리기 시작하자 안기 버거웠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오두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가 크게 숨을 내쉬며 태산이를 내려놓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휴우. 양쪽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사야겠네. 아이 상태로 현실로 가면 또 벌거벗었을 거 아니야.”
“앙.”
“말도 가르쳐야 하고. 그런데 이번엔 며칠이나 산이 모습을 할지 모르겠네. 그 치?”
“앙.”
“하하하.”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호랑이일 때도 그렇더니, 대답은 참 잘했다.
그는 땀을 대충 닦고 나서 아이 옷을 넣어둔 옷장을 열었다. 다 같이 고른 귀여운 옷들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티셔츠와 바지, 속옷에 손바닥보다 작은 양말까지 모두 꺼내 하나씩 태산이에게 입혔다.
“캉. 캉.”
“그렘린들 왔나 보네.”
“앙.”
“옷 입고. 옷 입고 놀자.”
“앙.”
벌써 몸을 들썩여대는 터에 남은 것들을 입히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양말에 귀여운 운동화까지 신겨서 침대에서 내려줬다. 하지만 침실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니, 그 앞에 서서 그를 애타는 눈으로 봤다.
“하하하. 알았어. 열어줄게.”
“앙.”
“캉캉. 캉.”
“침실 안팎으로 난리구나.”
그렘린들은 오랜만에 본 산이 모습이 신기한지, 뱅글뱅글 주변을 돌았다. 네 마리가 쉴 새 없이 뛰어다니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산이 분신 세 마리든 그렘린 네 마리든 숫자가 많아지면 통제가 안 되어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앙.”
“캉. 캉캉.”
“어우. 어지러워. 좀 멈춰봐.”
“캉. 캉. 캉캉.”
“안 멈추면 너희 큰일 난다?”
태주는 멈추라는 말을 들은 척도 않는 그렘린에게 최후의 통첩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두통이 일 정도로 크게 짖으며 뛰어다니는 그렘린을 일별하고 창가로 갔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그렘린을 얌전히 만들 한 존재를 소환했다.
“제피르! 도와줘!”
“히이이힝.”
큰 나무 위에서 황금색의 아름다운 유니콘이 나타났다. 태주는 그렘린에게 으스대며 너희 이제 큰일 났다며 놀려댔다. 그렘린들은 제피르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온 순간 이미 조용해졌다. 정신 사납게 뛰던 것도 귀따갑게 짖던 것도 모두 멈췄다.
“…너희 정말. 어떻게 제피르 이름만 들었는데, 순식간에 착한 아이가 되니?”
“앙.”
“산이는 형 한테 오자.”
“앙.”
그렘린들이 태산이를 방패막이로 쓰려 했다. 산이로 변한 작은 몸에 매달리려고 일어선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나섰다. 그는 산이를 가볍게 들어서 목말을 태워줬다. 전에 이렇게 목말을 태워줬을 때 좋아하던 게 생각나서 해줬더니 바로 반응이 왔다.
“꺄하하.”
“녀석. 엄청 좋아하네.”
“히히힝.”
“제피르, 왔어? 푸흐흡.”
제피르가 창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렘린들이 얌전히 엉덩이를 거실 바닥에 붙이고 앉았다. 세상 얌전하고 착한 모습으로 제피르만 보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지 않게 조심했다.
촌극이 벌어지는 오두막 안으로 해나와 희가 들어왔다. 해나는 어제 얘기했던 대로 휴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커다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어깨엔 숄을 걸쳤다. 손에는 여행 가방이 들려 있었다.
“정원사 씨, 혼자서 정말 괜찮겠어?”
“하하하. 해나 괜찮아요. 제피르랑 희도 있는 걸요.”
“히히힝.”
“맞아. 해나, 희가 태주 도와줄 거야.”
“호호호. 그럼 믿고 가볼까. 냉장고에 만들어둔 음식들은 잊지 말고 챙겨 먹고. 그렘린들이 식사량이 많이 늘었으니까, 과일을 좀 더 자주 챙겨주고. 또 뭐가 있지?”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해나의 걱정이 멈추질 않았다. 말썽꾸러기 그렘린 네 마리를 열흘이나 정원사 씨 혼자서 돌봐야 했다. 게다가 태산이가 산이로 바뀐 상태였다. 호랑이일 때보다 더 손이 많이 갈 텐데, 정말로 혼자서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해나의 걱정을 말리고 태주가 그녀에게 미리 사둔 선물을 건넸다. 휴가를 가는 그녀에게 주는 것이었다.
“어머! 예뻐라.”
“숄에 꽂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고마워, 정원사 씨. 호호호. 기대해. 이 브로치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기념품을 사다 줄게.”
“하하하. 아니에요, 해나. 잘 다녀오세요.”
“호호호.”
해나는 오랫동안 이곳저곳 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태주의 정원에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자, 그녀의 가족이 집에 들르라 연락했다. 해나는 그 연락을 받고도 집에 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는데, 이번에는 조카가 태어나서 어쩔수 없었다.
해나가 이동주문서로 집에 가고 나자 어쩐지 집안이 허전했다. 항상 오두막에서 정원 식구가 먹을 음식과 간식을 준비해주던 그녀가 떠나자 온기도 같이 떠난 것 같았다.
“자아. 해나가 없는 동안은 제피르랑 희가 나를 좀 도와줘. 아야. 그래. 산이도 형을 도와주고.”
“앙.”
“응, 태주.”
“히히힝.”
제피르에게 그렘린을 가리키며 도와달라는 말을 하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장난치고 노는 걸 좋아하는 그렘린이었다. 이제 단단을 괴롭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미리 부탁해 두었다.
“태주, 태주. 희는 뭐해?”
“응? 하하. 희는 내 옆에 있어 주면 돼.”
“히히. 알았어.”
태주는 어쩐지 엄마가 여행가고 동생들을 챙기는 장남이 된 기분이었다.
그렘린에게 우유와 과일을 챙겨주고 산이가 된 태산이에게도 해나가 만들어둔 수프와 부드러운 빵을 먹였다. 태산인 호랑이일 때나 아이일 때나 가리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먹었다.
“밥. 태산아. 아니, 산아 밥 해봐.”
“빱.”
“와! 잘하네.”
“빱. 빰.”
“하하. 너 아기 때 생각난다. ‘뺙뺙’ 그랬는데.”
그가 잠시 추억에 빠진 사이 밥을 다 먹은 그렘린이 의자와 식탁으로 올라왔다. 한 마리는 어깨에, 다른 한 마리는 그의 등에 찰싹 붙었다. 수프에 적신 빵을 태산이에게 먹이던 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렘린은 무척 귀여웠지만, 이럴 때는 좀 불편했다.
“제피르.”
“히히힝.”
– 사사삭.
– 쫑쫑쫑.
제피르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그렘린이 얌전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태주는 제피르가 지켜주는 사이 편하게 태산이 밥을 먹였다.
*
오늘 그는 원래 허브 티를 만들 생각이었다. 쿠첼루스도 챙겨주고 사무실에도 선물할 생각이었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다. 그는 선선해서 좋았는데, 사막 왕국 출신인 쿠첼루스는 추워했다. 그래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차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렘린을 태산이한테 부탁하고 차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 아무래도 무리였다.
“좋아, 그렘린들. 오늘 아주 제대로 놀아주마.”
“캉캉.”
태주는 그렘린을 지치게 한 다음에 차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상점에서 전에 봐둔 곡물과 야채로 만든 과자를 사 왔다. 그걸 장난감 공과 여러 가지 포장으로 감싸서 미로에 숨기고 보물찾기를 시킬 계획이었다.
“희 이따 이거 미로에 숨기는 것 좀 도와줘. 제피르도.”
“좋아, 태주. 알았어.”
“히히힝.”
태주가 과자가 든 장난감을 한 바구니 정도 만들어서 희와 제피르에게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렘린들이 과자 위치를 보지 못하게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희에게 전부 숨겼다는 얘기를 들은 그가 그렘린을 데리고 미로로 왔다.
“자, 이거 하나씩 먹자.”
“캉. 캉캉.”
“맛있지? 여기, 이 공 속에 과자가 들어있어.”
“캉캉.”
“킥. 공은 안 줄 거야. 봐봐. 이걸 이제 미로 안에 던질 거야.”
과자가 든 공을 따라 네 개의 작은 머리가 움직였다. 태주는 첫 번째 장난감은 그렘린들이 쉽게 찾을 수 있게 입구 가까운 곳에 떨어뜨렸다. 태주의 손에 집중하던 녀석들은 공이 그의 손을 떠난 순간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갔다.
“앙.”
“산이도 찾을 거야?”
“앙.”
“괜찮겠지. 자, 산이도 출발.”
미로 탐색에 태산이까지 합류했다. 태주는 태산이와 그렘린이 경쟁적으로 공을 찾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몸인 태산이보다 그렘린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평소와 다르게 그렘린에게 자꾸 밀리자 화가 났는지 앙 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앙!”
“큭. 산이 화났네.”
“캉캉. 캉캉.”
태주는 그렘린에게 번번이 밀리는 태산이에게 다가가 안아 들었다. 아이 몸이니 아무래도 몸이 잽싼 그렘린을 앞서기 힘들었다. 억울한지 그렘린을 가리키며 그에게 앙앙거리는 태산이를 안아서 달랬다.
“좋아. 형이 산이는 더 재밌게 해줄게.”
“앙.”
“제피르, 여기서 그렘린 좀 봐줄래?”
“히이잉.”
제피르와 희가 미로 중앙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 후, 태주는 태산이를 안고 오두막으로 왔다. 챙길 것이 있어서였다.
태주는 바구니와 한 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하얀가지 나무 열매를 챙겼다. 태산이를 데리고 회오리 동굴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태산이 호랑이일 때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지금은 아이 모습이니 괜찮았다.
오랜만에 바람의 정령에게 얼음수정을 주고 태산이와 같이 놀게 해줄 생각이었다. 비행 열매를 먹여두면 홀씨를 붙들고 날다 손을 놓쳐도 걱정 없었다.
“가자. 우선 얼음수정 열매를 따자.”
“앙.”
“하하하. 그래. 네가 들어.”
바구니를 달라며 손을 내미는 태산이에게 건넸다. 작은 몸으로 바구니를 들자 바닥에 끌릴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두는 게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얼음수정을 한 바구니 딴 후엔 태산이와 회오리 동굴에 들어갔다. 태산이 벌써 흥분해서 난리였다. 처음 설치했을 때 달려들어서 어쩔 수 없이 데려간 후론 한 번도 데려간 적이 없었다. 사실 태산인 이곳보다는 피라미드에 더 흥미를 보였었다.
“자 이거 먼저 먹자.”
“얌.”
– 주르륵.
“큼. 미안. 좀 시지? 침 닦자.”
레몬만큼 신맛이 나는 열매를 먹은 태산이 반응이 엄청났다. 입가로 침을 주르륵 흘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전 처음 신맛을 본 태산은 그에게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의 다리를 붙든 손에 힘이 꽤 들어갔다.
“하하하. 잠깐. 형도 먹잖아. 봐봐. 읔, 셔.”
“앙. 앙앙.”
“씁. 아, 셔. 읏차.”
회오리 동굴의 정령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태산이를 안아 들고 절벽에 나 있는 동굴 입구에서 점프했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으로 뛰자 무서운지 태산이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공중으로 뛰었지만,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미리 먹어둔 비행 열매 덕분에 둘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그런 둘의 주위로 정령들이 몰려들었다.
“하하하. 산아 눈떠봐.”
“앙.”
“괜찮아. 봐봐.”
등을 토닥여서 달래자 그제야 눈을 떴다. 호랑이일 때보다 움직임이 둔하니 겁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워낙 호기심이 많은 녀석이라 그런지 금세 상황에 적응했다.
“예쁘지?”
“앙.”
“바구니의 얼음수정 나눠주자.”
“앙.”
얼음수정을 나눠 받은 정령들이 맑은 웃음소리를 냈다. 노랫말 같은 말소리로 한참을 얘기하더니 그중 한 정령이 홀씨를 가져다주었다. 열매를 먹고 하늘에 떠 있는 것도 좋지만, 홀씨를 붙들고 나는 게 훨씬 재밌다.
“산이 이거 잡아봐.”
“앙.”
“옳지. 두 손으로 꼭 잡아봐.”
태주는 태산이가 홀씨를 두 손으로 잘 붙든 것을 확인한 후, 안은 팔을 풀었다. 태산인 손안의 홀씨가 신기한지 그가 제 몸을 놓았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앙.”
“하하.”
홀씨를 붙든 몸이 혼자 날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놀란 소리를 냈다. 하지만 바로 곁에 태주가 같이 날고 있는 걸 보더니 이내 웃는 얼굴이 되었다.
“재밌지?”
“앙.”
“대답도 잘하고 착하다, 산이.”
“앙.”
둘이 한참 그렇고 마주 웃으면서 놀고 있을 때 발아래로 풍선 해파리가 지나갔다. 태주가 그걸 발견하고 바로 손을 놓았다. 출렁거리는 해파리 위에 가볍게 내려선 그가 여전히 홀씨에 매달린 태산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
“산아 손 놔 형이 받아줄게.”
“앙.”
“좋아. 잡았다.”
비행 열매 덕에 둥둥 떠서 천천히 내려오는 태산이를 받아 풍선 해파리 위에 내려주었다. 태산인 출렁출렁 밟히는 해파리가 신기한지 기우뚱거리면서도 잘도 그 위를 걸어 다녔다.
태산인 풍선 해파리 위가 아주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어느새 풍선 해파리가 트램펄린인 양 그 위에서 ‘퐁퐁’ 뛰고 있었다.
-퉁!
“헉! 산아!”
“꺄하.”
태산이 너무 세게 발을 구른 바람에 해파리에서 튕겨 나갔다. 태주가 기겁한 얼굴로 산이 이름을 불렀지만,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분홍색으로 상기된 얼굴의 태산이 나타났다.
“아이고 산아. 형 심장마비 걸리겠다.”
“꺄하.”
겁 없는 호랑이가 인간이 되었다고 없던 겁이 생길 리가 만무했다. 태주가 놀란 것을 봤으면서도 이 맹랑한 꼬맹이는 풍선 해파리에서 튕겨 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태주가 홀씨를 붙들고 천천히 날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것과 다르게 태산이는 해파리에서 튕기는 것을 즐겼다.
“그만. 한 시간 다 되어간다. 이제 돌아가자.”
“앙.”
“열매 하나 더 먹자.”
“앙!”
중간에 비행 능력이 사라질까 봐, 열매를 하나 더 먹이려던 그의 손을 태산이 밀어냈다. 신맛은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태산인 그의 품에 매달려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에휴. 그럼 형이 먹을 테니까. 산이는 형 꼭 붙들고 있어. 알았지?”
“앙.”
“큭. 어우, 셔.”
동굴 입구까지 태산일 품에 꼭 끌어안고 비행하는 태주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번번이 그렘린에게 장난감 공을 뺏기고 울상을 짓던 녀석이 회오리 동굴에선 연신 크게 웃어댔다. 열매는 너무 셨지만, 웃는 모습을 보자 그도 좋았다.
“에쭈.”
“응? 산이 지금 뭐라고 했어?”
“에쭈, 앙.”
“아! 형 이름이구나. 하하하. 세상에.”
태산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확하지 않은, 혀짧은 발음이었지만, 그에게는 충분했다. ‘에쭈.’ 한 단어였지만, 태주에겐 큰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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