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2
21. 정원 꾸미기
태주의 오두막 한구석에 낯선 화분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벤트용 화분이었다. 이름에 맞게 햇빛이 아닌 달빛을 받고 자라는 나무라 낮에는 오두막 안에 들여놓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달빛을 받을 수 있게 정원으로 옮겨줘야 했다.
“오! 싹이 텄네. 꽤 빨리 자란다.”
화분 안에는 손톱만 한 떡잎이 자라 있었다. 은색이 감도는 여린 떡잎이 귀여웠다. 태산이 호기심이 이는지 태주의 옆구리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큭, 간지러워 태산아. 그리고 이건 건드리면 안 된다.”
호기심이 왕성할 때라 그런지, 요새 태산이는 먹지도 못하는 과일들을 깨물어보고 다녔다. 나무도 잘 타서 과실수 위로도 자주 올라갔다. 과실수의 덜 익은 열매를 앞발로 쳐서 떨어뜨리는 데 재미 들린 것 같았다.
“희 영양제를 만들까?”
“좋아, 태주. 달 사탕 나무가 무럭무럭 클 거야.”
태주는 약초학책에서 식물 영양제를 검색했다. 굉장히 종류가 많았다. 개중에는 대체 이런 재료를 어떻게 구하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것도 있었다.
‘용의 피라니,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하라는 거야?’
“별 나무 열매 가루가 여기에도 쓰이는구나. 별 나무 열매 가루에 꿀과 식초를 조금 넣고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 화분에 뿌려 주면 되네.”
오두막에는 식초가 없었다.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태주가 이런 기본 조미료를 갖춰둘 리가 없었다. 다행히 꿀은 가끔 달콤한 차를 마실 때 사용해서 가지고 있었다.
“식초! 태주, 식초를 만들자.”
“응? 상점에서 사면 되지.”
“태주, 정원에는 아주아주 많은 과일이 있는 걸.”
“그렇긴 하지.”
태주는 요리책에서 식초 만들기를 찾아봤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통에 과일을 넣고 으깬 후에 설탕을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 액체만 걸러내면 식초가 완성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설탕 대신 솜사탕 무지개를 넣어도 되겠지?”
“으응? 달콤할 거야.”
“그렇지?”
초보자의 자신감이 물씬 풍기는 대사였다. 태주는 식초로 만들 과일을 고르기 위해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사과, 오렌지, 레몬, 라임 등 식초로 만들기 나쁘지 않은 과일들이 보였다.
한가지 과일보다 여러 가지 과일이 나을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과일을 식초 재료로 선택한 태주는 커다란 통에 과일을 따서 가득 채웠다. 우물가에서 과일을 깨끗이 씻은 태주는 으깨기 전에 솜사탕 무지개를 한가득 잘라왔다.
과일을 커다란 방망이로 쿵쿵 찧어서 으깬 후 솜사탕 무지개를 넣었다. 여러 색의 솜사탕 무지개가 녹아들자 통 안의 내용물이 이상한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푸르죽죽한 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희, 이거 색이 좀 이상한데.”
희는 태주의 얼굴과 통 안의 내용물을 번갈아 쳐다봤다. 분명히 방법은 틀리지 않았는데, 태주가 만든 것은 푸르스름한 죽 같은 것이었다.
통의 뚜껑을 닫자, ‘11h 57m’이라는 알람이 통 위에 생겼다. 통 위에 알람이 생긴 것을 보니, 색은 좀 이상했지만, 제대로 식초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
태주는 정원을 얻은 후로 정원 조경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봤다. 가드닝 잡지도 읽었고, 인터넷으로 잘 꾸며진 정원 사진도 많이 봤다. 온갖 꽃과 조경수로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에 티테이블이 놓여있는 사진을 본 후로 조금 그런 정원이 부러워졌다.
현재 꿈의 정원은 정원이라기보다 과수원에 가까웠다. 과실수만 한가득 심겨있었다. 게다가 공터는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잔디가 사라지고 잡초가 종아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정원의 돌담은 갈대와 이름 모를 풀이 자라서 반 이상 가려져 있었다.
‘이건 좀 심한가?’
태산이와 단단이 수풀을 헤치고 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풀씨를 가득 묻히고 돌아다니다, 땅을 파고 그 위에 누워서 뒹굴었다. 연기와 연주 연습에 매진하는 동안 정원은 야생화가 진행된 것 같았다. 농작물도 입장 시간에 한 번 키울 수 있는 호박을 주로 키우니 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에서 봤던 정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잡초만이라도 제거한다면 봐 줄 만해질 것 같았다.
“희 오늘은 정원을 좀 정리하자.”
“태주, 이제 정원을 제대로 꾸밀 거야?”
“응?”
희는 태주가 정원을 정리하겠다고 하자, 드디어 예쁘게 꾸밀 마음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정원은 사실 호칭만 정원이었을 뿐 과수원에 가까웠다. 한쪽 구역에 과실수를 몰아 심어두고 오두막 근처로 건물들을 모아서 지어 두었다.
‘희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내가 너무 심했나 보네.’
“어, 그렇지.”
“좋아. 희가 도와줄게.”
희가 의욕적으로 정원관리에 나섰다. 희는 태주에게 ‘일곱 난쟁이 소환권’을 구매하자고 했다.
일곱 난쟁이는 각자 잘하는 분야가 나뉘어 있었다. 그중 주황색과 초록색 난쟁이를 소환하길 바랐다. 흙의 정령과 나무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두 난쟁이는 정원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태주는 우선 그들을 부르기 전에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희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정원에는 건축물로 오두막과 창고, 소형 공연장이 있었다. 특수 기능성 시설로 슬라임 동굴과 달빛 연못이, 장식으로 홍차 와인 분수와 솜사탕 무지개가 있었다. 이 모든 시설을 조화롭게 배치하려면 제대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지금까지 구획을 나누지 않았던 정원을 낮은 돌담과 경계석, 울타리 등을 이용해서 구획을 나누기로 했다.
우선 공터 한가운데 덜렁 놓인 분수를 한쪽으로 옮기고 그 주위에 화단과 온실을 조성하기로 했다. 텃밭과 우물 창고는 한 묶음으로 다시 한쪽 구역을 정해서 옮기고, 그 옆으로 울타리를 치고 과실수를 옮기기로 했다.
구획과 구획을 이어주는 길을 만들기로 하고 한쪽 빈 공터엔 나중에 미로를 만들자고 정해두었다.
희와 태주는 태산이 단단과 정원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머리를 맞대고 정원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처음 태주가 태블릿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지만,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곁에서 태주가 태블릿을 쓰는 요령을 지켜보던 희가 나서서 설계도를 그리고 나서야 겨우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태주는 그림에도 소질이 없는 것 같았다.
희의 도움을 받아 대략적인 설계도를 마련한 태주는 난쟁이를 소환하기로 했다. 흙의 정령과 나무의 정령을 다루는 두 정령 외에도 건축에 재주가 있는 남색 난쟁이도 같이 소환하기로 했다.
[남색 난쟁이 큐릴이 소환되었습니다.열 시간 동안 난쟁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큐릴이에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 큐릴. 나는 희야.”
“안녕. 큐릴, 이 정원을 이렇게 꾸미려고 해. 도와줄 수 있어?”
큐릴은 태주와 희가 그린 설계도를 손에 들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작지 않은 정원을 짧은 다리로 빠르게 가르며, 이따금 멈춰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태주와 희는 큐릴이 무얼 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따라갔다.
“중앙의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네 개 구역으로 나누기로 해요. 첫 번째 구역은 과실수와 트리하우스를 중심으로 두고, 두 번째 구역은 텃밭, 창고, 온실 예정지로 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소형 공연장과 분수, 슬라임 동굴, 미로를 합치고요. 마지막은 오두막과 화단으로 꾸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큐릴은 설명을 하면서 커다란 종이에 설계도를 그려서 보여주었다.
커다란 종이에 하얀 깃털 펜이 큐릴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면서 설계도를 그려나갔다. 태주와 희는 그 광경을 ‘와’ 하는 감탄한 얼굴로 멍하니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그려진 설계도는 태주와 희가 그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깔끔하고 보기 쉬웠다.
“희는 마음에 들어.”
“나도. 이렇게 만들면 정말 멋지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꾸며도 빈 곳이 아주 많아요. 예를 들어 미로는 입구에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겨우 몇 군데뿐인 걸요. 조금 아쉽지만, 천천히 채워 나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죠.”
“응, 희랑 태주가 열심히 채울게.”
희와 태주는 큐릴이 말하는 재료들을 모두 상점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주황색 난쟁이와 초록색 난쟁이 소환권도 구매해 바로 소환을 했다.
“안녕하신가. 도릴이라한다네.”
“저는 에릴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도릴 형, 에릴 누나.”
“우리 큰 막내.”
큰 막내라는 이상한 호칭이 들려왔다. 이들은 모두 형제자매인 것 같았다. 반가워하길 잠시 도릴과 에릴은 큐릴이 보여준 설계도를 보더니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희와 태주는 처음에는 그들 곁에서 얘기를 들었지만, 얼음수정 나무는 걸음이 느리다느니, 요즘 땅의 정령들이 휴가를 가서 숫자가 부족하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자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희 우린 간식을 준비하자.’
‘응, 태주. 많이, 많이 준비하자. 난쟁이는 모두 대식가야.’
두 사람은 방해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며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
태주와 희가 난쟁이들에게 줄 차와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난쟁이들은 우선 정원의 구역을 나누었다. 작은 막대를 가져와 네 개의 구역을 표시했다.
태산과 단단은 낯선 이들을 살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았다. 태주와 희의 냄새가 남은 걸 보면 해를 끼칠 이들은 아니었지만, 작은 경계를 내려놓지 않았다.
“정원사 양반. 나무 열매를 좀 써도 되겠는가?”
주황색 난쟁이 도릴이 태주에게 열매를 사용해도 되는지 물었다. 태주는 물론 허락했다. 어디에 쓸 건지는 잘 몰랐지만.
“땅의 정령들은 말일세, 땅에서 난 과일들을 무척 좋아한다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땅콩이지만, 호두나 밤도 좋아하고 과일도 아주 좋아하지.”
“아아. 땅의 정령에게 줄 건가?”
“그렇지, 모름지기 정령이라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 더 힘이 나지 않겠는가.”
“하하하. 마음대로 해. 원하는 과일은 모두 먹어도 돼.”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도릴은 나무의 정령을 다루는 에릴에게 부탁해서 나무 열매를 많이 얻었다. 도릴은 그 열매들을 무릎 크기밖에 되지 않는 땅의 정령들에게 나눠주었다.
“♩♪~♬.”
“♬~♬♪~♩.”
정령들의 얘기 소리는 마치 노래하는 것 같이 들렸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갈색 정령들 표정이 밝은 걸 보면 나쁜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와. 정령도 엄청 귀엽구나.’
희도 태주와 마찬가지로 입을 헤 벌리고 정령들을 보고 있었다. 제 얼굴만 한 과일을 앙! 베어 물은 정령들은 상당히 귀여웠다.
“정원사 양반 우리도 간식을 들기로 하지. 오븐을 써도 되겠는가. 맛있는 파이를 만들고 싶은데.”
“물론. 사용해도 되지. 마음껏 써.”
태주의 허락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릴이 콧노래를 부르며 재료를 가지고 오두막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달콤한 향기가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아, 나무들아 나랑 같이 걸어가자. 왼발, 오른발. 같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자.”
나무의 정령을 다루는 에릴이 과실수들과 정원을 이동하고 있었다. 나무의 정령은 반투명한 초록색의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저마다 한 그루의 나무에 올라가 무언가 나무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무는 정령의 얘기를 듣고 땅속에 묻혀있던 뿌리를 부드럽게 꺼내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에릴이 나무들의 주변을 돌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태주에게 다가와 혹시 비료가 있냐고 물었다.
“응. 비료라면 아주 많아. 전에 슬라임킹을 잡고 만들어 둔 상급비료도 많이 있어.”
“다행이에요. 나무들이 이동하고 나면 비료와 물을 줘야 해요. 나무들이 걷는 건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난 나무들이 걷는 건 처음 봐.”
“호호.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그래도 이 정원의 나무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서 다행이에요.”
나무들의 이동은 굉장히 천천히 이루어졌다. 나무를 앞질러 갔던 태산이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재촉했지만, 매우 느릿느릿 걸어갔다. 중간중간 에릴이 커다란 분무기로 나무뿌리에 물을 뿌려 주었다. 아마 뿌리가 마르는 것을 막는 것 같았다.
얼마나 곁에서 나무의 이동을 보고 있었을까, 도릴이 태주와 에릴, 큐릴을 불렀다. 간식이 완성된 것 같았다. 태주는 이곳까지 풍기는 맛있는 냄새에 살짝 기대하면서 도릴이 흙으로 만든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은 난쟁이들 키에 맞춘 듯 높이가 낮았다. 그래도 맨바닥에 앉자 얼추 높이가 맞았다.
“이런 정원사 양반에게 테이블이 좀 낮았구만. 미안하이.”
“괜찮아, 도릴.”
“도릴, 이건 뭐야?”
“요정 아가씨. 그건 고기 파이라네. 백호 아이가 보이던데, 그 아이 몫이지.”
호박파이, 견과 쿠키, 과일 케이크 등이 가득한 테이블에 어울리지 않게 붉은 고기만 들어간 파이가 있더니, 태산이를 위해 준비해 준 것 같았다. 태주는 반려동물용 간식이라고는 육포 정도밖에 몰랐는데 오늘 좋은 정보를 얻었다.
난쟁이들은 희의 말대로 대식가였다. 커다란 케이크를 각자 한판씩 먹어치우고 수십 개의 쿠키와 과일을 먹었다. 태주는 도중에 배가 불러 그들이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간에 희가 기타연주를 부탁해서 몇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난쟁이들은 커다란 쿠키 조각과 주스 잔을 든 채로 태주의 연주에 맞춰서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거나, 쉬운 노래는 따라부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흥겨운 간식 시간이 끝나자, 난쟁이들은 전문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직 나무들의 이동은 끝나지 않았지만, 정해두었던 구역을 정리하고 있었다.
땅의 정령들이 잔디 사이로 삐죽이 올라온 잡초들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러 차례 그런 행동을 반복하자 무릎까지 자랐던 잡초들이 사라져 잔디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갈색의 작은 정령들은 자신들이 해낸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래 같은 말소리로 무언갈 얘기하고 있었다.
‘동화의 한 장면 같아.’
꿈의 정원 자체가 환상과 현실이 반쯤 겹친 느낌이었는데, 정원에 정령이 돌아다니자, 환상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동화책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판타지 영화에 출연해야겠다.’
태주는 사람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자신에게 창작의 재능이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리고 지금 보는 것들을 잊지 않도록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