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8
87. 정리 >
아직 사람들이 출근하기도 전인 이른 아침이었다. 누군가의 숙소를 방문하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었다.
“들어오세요.”
“아침 일찍 미안합니다.”
두 사람을 맞이하는 일행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태주는 이른 방문이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웃으며 그들을 맞아 주었다. 그는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하고 시원한 차를 내주며 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뜻밖에 태주의 환대는 두 사람이 용건을 꺼내기 편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잠시 뜸을 들이다 바로 입을 열었다. 이른 아침 무례를 무릅쓰고 온 목적을 꼭 이뤄야 했다.
“어제 일은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작진 측 실수입니다. 제대로 알아보고 섭외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김지혁 씨는 이대로 드라마에서 하차할 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 배우님 촬영 일정을 추가로….”
“조감독님. 일정은 제가 지금 말씀드릴 수 없어요. 죄송해요. 제가 아직 신인이라, 스케줄은 전부 회사에서 관리해주고 있거든요.”
“이틀 정도면 됩니다.”
“죄송해요. 그보다 호위 역은 정해졌나요?”
태주의 질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마땅한 배우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제작진 측에선 태주의 차기작 스케줄이 이어서 잡힌 사실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 순서도 따져보지 않고 방문한 것 같았다.
“조감독님. 아시다시피 저희 배우가 신인이지 않습니까. 잡힌 스케줄을 저희 쪽에서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원래 여유롭게 촬영 일정을 잡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보다는 아직 어린 배우인데, 이번에 너무 심한 일을 겪어서 안정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아니, 괜찮아 보이는데.”
“조감독님이 계신 자리에서 힘든 내색을 해서야 쓰겠습니까. 많이 놀라서 어제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어디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찾게 해주고 싶은데…. 책임감이 강한 친구라….”
두 사람은 견우의 태도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는지, 태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태주는 전적으로 견우를 믿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번 주말엔 저희 배우가 찍을 씬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마음을 추수를 시간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우린….”
“후우. 어제 일로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견우는 두 사람이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어떻게든 추가 일정을 확보하려던 두 사람은 견우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가드에 소득 없이 돌아가야 했다.
“매니저님, 맞춰주셔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이었습니다.”
“호호호. 태주 넌 확실히 배우더라. ‘스케줄은 회사에서 관리해주거든요.’라니. 어유, 얄미워라.”
미나가 알기로 태주는 스케줄을 스스로 정했다. 추천해주는 것들을 우선으로 보지만, 대개 스스로 작품을 선택했다. 전작인 선율도 그렇고, 차기작인 ‘신조선 사또 전’도 스스로 선택했다고 들었었다.
그는 오늘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 그녀가 아는 태주라면 ‘작품을 위한 것이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을 텐데, 오늘은 매니저님에게 공을 넘긴 채 물러나 있었다.
“호위역할 배우도 정하지 않고, 무조건 스케줄을 빼달라고 하면 좀 곤란하죠. 제작진이 고생하는 건 알지만, 일의 순서가 있으니까요.”
“맞는 얘기입니다.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하지만, 우선 처리할 것부터 처리한 후에 부탁해야 하는 겁니다. 만약 근시일 안에 배우를 못 구하면 그만큼 일정이 늘어질 텐데, 그때까지 이곳에 발이 묶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야 그렇죠.”
“그리고 태주 씨가 지금까지 촬영하면서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태주 씨 연기력이나 촬영 상황을 보고도 일정을 추가하자는 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태주는 견우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미나와 견우가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우. 매니저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 막 건방져질 것 같아요.”
“호호호. 넌 좀 건방져져도 괜찮아.”
일행은 심각한 분위기는 치우고 앞으로 촬영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들 바라는 것은 원래 호위역할을 맡기로 했던 이영신이 돌아와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제작진에서 이영신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단칼에 잘랐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대접을 받은 그가 이 드라마에 미련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승마, 국궁, 검술, 연기. 호위역할에 요구되는 조건인데 말이죠. 이게 전부 가능한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구하기 힘들겠죠?”
“후 순위로 두었던 배우들이 있을 테니, 구할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언제부터 촬영에 합류하느냐가 문제일 것 같습니다.”
견우의 말대로다. 태주의 원래 촬영 일정은 2주 정도였다. 이것도 야외 촬영이 많은 걸 고려해서 여유롭게 잡은 것이었다. 만약 새로운 호위 역이 그 안에 섭외된다면, 조금 무리하더라도 촬영에는 협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일정을 넘긴 뒤에 배우가 구해지면, 태주도 재촬영 일정을 맞춰주기 쉽지 않았다. 차기작의 준비에 들어가야 하고, 그전에 TV 쇼 프로에도 나가야 했다. 잡혀 있는 화보와 인터뷰 등의 일정도 있었다.
“제작진도 고생이겠다. 그놈의 호위 역. 벌써 두 번이나 배우를 갈아치우다니, 참.”
“사실 이게 조건만 맞출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역할이에요.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거의 모든 화에 나오니까요. 대사가 많진 않지만, 주로 이성계 뒤에 서는 역할이라서 화면에도 꾸준히 나오거든요.”
“그래, 네 말대로 좋은 역할이니. 빨리 배우가 구해지면 좋겠다.”
“저도 그러길 바라요.”
믿음이 가지 않는 제작진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되도록 빠르게 호위 역의 배우를 찾아오길 모두 바랐다.
*
김지혁의 집은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 정도의 고급 빌라였다. 위치도 좋은 곳이라, 유지비도 꽤 나가는 곳이었다. 김지혁은 그 안을 값비싼 가구와 장식으로 채웠었다. 하지만 지금 그 안은 예전의 호화로운 모습은 흔적도 찾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고가의 장식이 가득했던 빌라 안에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 벽면을 장식했던 거대한 아쿠아리움은 산산조각이 난 채 거실을 적시고 있었다. 어항 근처 바닥엔 말라죽은 물고기가 널려있었다. 그 외에도 유리병과 그릇, 장식장과 상들리에, 대형 TV와 모니터 등 집 안의 유리란 유리는 모두 깨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하악. 킁. 그 새끼.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야. 아니야, 그놈 말고, 그놈인가? 그놈이 이랬나?”
구석에 숨듯이 앉아있던 김지혁이 그르렁 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누군가를 욕했다. 밤새 소리를 지른 듯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는 거칠고 난폭했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다.
– 띵 똥! 탕탕탕.
“김지혁. 안에 있지? 문 좀 열어봐!”
– 띵 똥!
운석은 출입 허락을 받고 빌라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김지혁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문밖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벌써 이런 상태가 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처음엔 드라마에서 잘려 충격을 받아 집안에 처박힌 것으로 알았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도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상태가 일주일을 넘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본래 괜찮은 외모로 배우와 모델 일도 병행하는 김지혁이었다. 드라마에서 잘렸지만, 계약한 모델 일은 해야 했다. 하지만 계약한 스케줄을 한두 개도 아니고 일주일 치를 전부 펑크냈다.
김지혁을 대신해서 지칠 정도로 사과하고 다닌 운석은 이제 화를 낼 기력도 없었다. 처음엔 화도 났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는 지금은 오히려 걱정되었다. 오만하고 무례하지만, 자신이 맡은 배우였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지혁. 대답 좀 해봐.”
“크흥.”
“…후우.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다. 운석은 자신에게 김지혁을 맡긴 대표를 속으로 원망했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배우를 맡겨서,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 숙이고 사과하게 하는 것인지. 스트레스로 두통이 가라앉지 않을 정도였다.
운석이 가고 나서 김지혁은 잠깐 이성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한 원인을 다른 데서 찾고 있었다. 이것저것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많았다.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 가지고 놀다 버린 여자 등.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거긴가? 아니야. 그놈은 아니야. 킁. 젠장. 아! 아! 그놈이구나. 그놈이 이랬어.”
김지혁은 그 길로 집을 나섰다. 후드를 눌러 쓰고 몇 년 전 자주 찾았던 장소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몰고 가는 그의 눈은 눈동자까지 시뻘겋게 변해있었다. 코 역시 들창코처럼 콧대가 주저앉아 숨 쉴 때 자꾸 킁킁 소리가 났다. 입꼬리는 웃고 있는 것처럼 올라가서 손으로 당겨봐도 내려지지 않았다.
“x 새끼. 그놈이 이렇게 만든 게 분명해.”
건물 앞에 거칠게 차를 세운 김지혁이 사람 사이를 헤치면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건물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밀려났다. 무례한 행동에 그에게 따지려던 사람도 있었지만, 음침한 차림에 흉흉한 기운을 풍기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쾅!
“나와! x 새끼야. 나와! 나오라고.”
“꺄아악!”
“꺄악!”
카운터의 간호사, 대기석의 환자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비명을 질렀다.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홀을 채우자, 진료실에 있던 의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김지혁은 그 의사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그는 의사의 멱살을 잡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이 x 새끼 대체 무슨 약을 쓴 거야. 내 얼굴이 왜 이래?”
“뭐, 뭡니까?”
“내 얼굴. 무슨 약 썼어? 뭘 써서 이렇게 망쳤냐고”
“허억.”
의사는 콧대가 다 무너진 얼굴을 보고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멱살을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무언가 부작용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그 얼굴을 보고 의사는 속으로 찔리는 것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병원을 운영하면서 융통성 있게 처리한 부분, 즉 남이 보면 불법이라 할 만한 부분이 꽤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장소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멱살을 쥔 사람을 향해 거세게 항의했다.
“지금 어디서 사고치고 나한테 와서 따지나 본데. 난 정직한 사람이야. 이봐,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괴물 같은 얼굴이 문제라면 접수 부터 해. 싹 바꿔줄 테니.”
“이 새끼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 퍽! 퍼퍼퍼퍽!
발뺌하는 의사를 향한 발길질이 멈추지 않았다. CCTV, 대기실에 있던 사람의 폰 등에 모습이 찍히고 있었지만, 김지혁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분노를 푸는 데 바빠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폭행은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들어와 제압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배우 김지혁, 청담 모 성형외과 의사 폭행사건 현행범으로 구속] [배우 김지혁, 수술 부작용으로 성형외과서 난동] [김지혁 소속사 T&T 전속 계약해지 발표. 신뢰 관계 유지 어려워.] [성형 수술 부작용. 김지혁 망가진 얼굴로….]끊임없이 올라오는 뉴스 타이틀을 보고 태주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호위역할로 새로 참여한 배우와 합을 맞추느라, 촬영에 집중하는 사이 김지혁이 거한 사고를 쳐버렸다.
해커에게 부탁한 정보는 풀지도 않았는데, 그는 이미 그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상태였다. 태주가 굳이 손을 보태지 않아도, 아마 그가 다시 연예계로 돌아올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녹음 파일은 보내줘야지. 피해자도 사실을 알아야 할 테니. 피해자가 김지혁을 고소하든 말든 우선은 전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
폭행 피해자가 자신이 보낸 통화 녹음을 듣고, 김지혁을 상대로 고소하든 그냥 사건을 묻어두든 사실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태주는 피해자가 진실을 알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으면 싶었다.
김지혁은 자멸하는 중이었고, 김지혁과 일을 벌인 OMNews의 박구진의 처리에는 해커가 나섰다.
태주는 해커에게 받은 녹음을 들은 후 검찰에 제보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나서기도 전에 해커가 먼저 검찰에 박구진의 범죄에 관한 제보를 했다.
녹음 내용에는 박구진이 김지혁과 짜고 저지른 일 외에도, 혼자서 저지른 범죄 내용이 꽤 들어있었다. 그중 한 사건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박구진은 어떻게 영상을 구한 것인지 약점을 쥐고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를 협박하고 있었는데, 대상이 미성년자 멤버였다. 이 사실은 태주와 해커 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미성년자를 협박할 생각을 하지? 협박 자체도 옳지 않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애를 협박으로 어떻게 해보려 하다니, 허 참.”
박구진 사건도, 지난번 연우 사건도 그와 해커는 제법 의견이 잘 맞았다. 특히 그 해커도 태주처럼 미성년자 대상의 범죄를 혐오하는 것 같았다. 그가 의뢰하기도 전에 검찰에 사건을 제보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태주는 이번에도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고, 서비스까지 해준 해커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다른 기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김지혁의 폭력사건 기사가 메인에서 내려가질 않았다. 어뷰징 기사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에는 빠지지 않고 김지혁의 얼굴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사진 속 김지혁은 꿈에 나올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입꼬리가 찢어져 올라가고 코는 주저앉았다. 언젠가 판타지 영화에서 봤던 오크처럼 보였다.
“되게 자연스러웠는데, 성형이었구나. 진짜 무섭다, 성형 부작용.”
연예계 복귀는커녕 일상생활도 힘들 것 같은 부작용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떤 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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