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나는 쓰러져 있는 데릭과 검을 들고 있는 병사를 번갈아 보았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노려보고 있는 데릭과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슬 갑옷의 병사.
그리고 주변에서 구경 중인 짝귀와 다른 정규병들을 보자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신 교육이군.’
대련을 빌미 삼아 구타하는 부조리.
보통 신병들을 상대로 군기를 잡기 위해 쓰였지만······.
‘기사 수련생이 관여하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무뚝뚝한 병사의 사슬 갑옷 위로 붉은색 견장이 눈에 띄었다.
기사 수련생을 의미했다.
기사로부터 검술을 배우고 마력을 깨우쳐 오러를 연공 하는 자들.
무작정 검만 휘두르는 병사와는 급이 달랐다.
갓 들어온 신병인 데릭으로선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장이 골목을 나오자 급히 로빈이 달려왔더니만 기사 수련생까지 껴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기사 수련생 케롭이다. 신병들이 주제넘게 하극상한다길래 와봤더니 참으로 버릇없더군. 그래서 교육해주었다. 문제 있나?”
기사 수련생 케롭은 무덤덤하게 말하면서 슬쩍 짝귀를 바라봤다.
어째선지 놀의 살점과 피가 묻은 녀석.
씨익.
비열해 보이는 짝귀 놈의 웃음을 보자 상황이 빠르게 이해되었다.
‘이 새끼. 일부 유도했구나.’
기사 수련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짝귀가 데릭한테 일부러 시비를 걸고 맞은 게 틀림없었다.
당연히 한통속인 저 케롭이란 녀석은 데릭을 흠씬 두들겨 팼을 테고.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노려보자 짝귀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짝귀는 나중에 손봐주고 일단은 이 녀석이 먼저다.
나는 기사 수련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조원이 하극상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선임을 향해 버릇없이 굴더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극상일 리가 없습니다.”
나는 녀석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견장을 꺼내 보였다.
“저는 정규병에 준하는 대우와 함께 조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데릭 또한 부조장으로 마찬가지죠. 준 정규병 대우입니다. 정규병과 정규병끼리의 사소한 다툼인 셈인데 하극상이라뇨.”
“······제이드.”
그 말에 데릭이 감동한 듯 중얼거렸으나 기사 수련생은 어이없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하, 어디서 임시 견장 하나 달았다고 입이 아주 텄구나.”
하지만 내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논리적인데다가 팩트거든.
“이 견장은 국왕 전하께서 하사한 권한이고 그란디스 백작이 보증합니다. 설마 지금 백작님을─”
“······큼! 알아, 안다고.”
국왕과 백작을 말하자 기사 수련생이 말꼬리를 흐리더니 어깨가 빠르게 움직였다.
붕!
빠르게 휘둘러진 목검이 내 눈앞에서 멈췄다.
“말 대신 검으로 하는 건 어떻겠나? 감정이 담긴 건 아니야. 네 부하와 내 친구가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우리가 책임을 지자는 거지. 정정당당하게.”
녀석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바닥을 뒹구는 목검을 향해 눈짓했다.
다분히 감정이 담긴 표정인데다가 도발까지 곁들였으면서, 그냥 대련이라고?
이 시대 것들에게 합리적인 예의범절을 바라는 건, 사치라는 걸 알고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왜? 무섭나? 무려 ‘조장’이신 제이드 병사께서?”
옆에서 구아르가 실실대며 나를 도발했다.
아마 저 목감을 잡는 순간 대련을 시작으로 간주 될 터.
“좋습니다. 하시죠, 대련.”
“잠깐, 제이······. 크윽!”
내가 목검을 향해 다가가자 데릭이 커진 눈으로 소리치려다가 턱을 부여잡았다.
안 그래도 커다란 주걱턱이 퉁퉁 부어올랐기에 말을 하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질 거라는 듯 걱정하는 눈빛.
‘이 자식아, 지긴 누가 져?’
나는 이미 기사가 되었던 몸이다. 오러도 깨우쳐봤고.
기사 수련생에 머무는 저 애송이랑은 차원이 다르단 거다.
‘차라리 잘 됐어. 시험해 볼 것도 있었는데.’
2회차가 되고 나서 나는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본 적이 없다.
뷔른 마을? 놀?
그저 도망가는 페르딤 병사들을, 수마에 빠진 놀을 죽였을 뿐이다.
어찌 보면 지금이야말로 내 검술을 다시 선보이는 셈.
나는 목검을 세워 묻은 흙을 털어냈다.
그리고 검 끝을 들어 올려서 케롭의 목검 끝을 툭 건드렸다.
기사 간, 대련에 응한다는 의미였다.
그 모습에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서 본 게 있나 보군? 좋다. 이 내가 너희 수준을 다시 깨닫게 해주지.”
‘지랄. 딱 봐도 얼마 안 된 녀석이.’
놈의 어깨에 달린, 기사 수련생을 의미하는 붉은 견장은 때가 타기는커녕 구김살 없이 빳빳했다.
즉 놈은 기사 수련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단 것이고, 그 깊이는 얕을 터.
‘세상이 만만해 보일 때지.’
자기가 재능이 있어서, 선택받았다고 느낄 때가 신입일 때다.
하지만 경지가 올라갈수록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좌절하는 게 부지기수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눈을 떴다.
치기 어린 애송이 기사 수련생이 보였다.
“덤벼.”
그러니 내가.
그 수준을 낱낱이 파헤쳐서, 바닥을 마주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 * *
기사 수련생, 케롭은 속으로 조소했다.
눈앞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병사, 제이드.
녀석이 진지한 모습으로 검을 잡은 모습이 퍽 우스웠다.
‘같잖은 녀석. 기사 수련생을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나?’
일반 병사나 민병은 기사 수련생을 이길 수 없었다.
케롭에게는 당연한 상식이었고 그만큼 능력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뜻이었다.
특히 기사를 지향하는 수련생들의 능력은 차원이 달랐다.
마력을 깨우치고 신체와 감각을 단련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그 괴물들에 비하면 얘네는 갓난아기 수준이지.’
제이드의 예상과 달리 케롭은 자신의 수준을 잘 알았다.
마력 감응에 재능이 있기에 기사 수련생으로 발탁되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케롭은 둔재였다.
자신도 기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선임 수련생들을 만나고 나서 그의 의지는 꺾였다.
그들과 케롭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몇 겹이나 세워져 있었다.
케롭은 적은 마력으로 신체를 조금 강화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들은 신체 밖으로 마력을 뽑아내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위에 있는 기사들은 얼마나 괴물이란 건지.’
안색을 굳힌 케롭이 혀를 찼지만, 한편으론 안심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건 괴물 같은 선임이나 기사가 아닌, 병사가 된 지 세 달도 안 된 애송이 신병이었으니까.
‘난 이때가 참 좋더라.’
케롭은 입술을 할짝댔다.
병사 시절 동기였던 구아르 놈의 부탁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케롭은 이 악취미에 맛 들였다.
아무것도 못 하는 신병들을 무너트릴 때, 마치 자신이 기사가 된 것 같은 우월함!
자신만만하게 목검을 쥐었던 녀석들은 하나 같이 대련하기 시작하면 자신감 넘치던 표정이 깨졌다.
케롭은 녀석들이 좌절하는 순간을 볼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과연 이 녀석은 어떤 표정을 보여줄까?’
심장에 자리 잡은 마나가 천천히 신체로 퍼져나가며 힘이 충만해졌다.
“어디 한번 막아 보라고!”
케롭은 입맛을 다시며 목검을 휘둘렀다.
훙!
제이드가 목검을 맞부딪혔다.
그러자 녀석의 신형이 휘청거리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 이거지. 좀전의 덩치보단 손맛이 없긴 해도 나쁘지 않아.’
우월감.
상대보다 한참 우위에 서 있다는 느낌.
기분이 좋아진 케롭이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녀석이 두 걸음 물러났다.
손목으로 전달되는 충격에 녀석의 팔이 크게 흔들렸다.
그 충격에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마다 케롭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케롭! 저 기고만장한 녀석을 분질러버리라고!”
“크하하하! 신병 녀석 조랑말처럼 휘청이는 것 좀 봐!”
주변을 구경하던 병사들도 자신을 응원하지 않는가?
그에 호응하듯 검을 휘두를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열기를 즐기던 케롭이 이상한 기시감을 느낀 건 바로 그때였다.
‘응? 뭔가 이상한데?’
분명 자신이 승기를 잡고 있다.
그러니 구경하는 병사들도 환호성을 지른 것 아닌가?
마력을 사용해 힘을 강화했을 텐데.
왜 저 녀석은 아직도 서 있는 것인가?
“저 신병 생각보다 잘 버티는데?”
“제이드가 저 정도 실력이었나?”
다른 병사들도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짝귀 또한 케롭처럼 의아한 표정이었다.
‘대련을 시작한 지 몇 분이 되었지? 3분? 5분? 젠장 마나가······.’
슬슬 마나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는지 팔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저릿저릿한 통증이 올라올 정도로 검을 휘둘렀건만 조장이라는 녀석은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잠깐. 내가 저 녀석을 때린 적이 있던가?’
다시 되새겨보니 녀석의 검만 주야장천 때렸을 뿐, 케롭은 한 번도 녀석을 가격한 적이 없었다.
물론 케롭의 일방적인 공세긴 했다면······ 한 대도 맞히지 못했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녀석의 일그러진 표정도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케롭은 그제야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 녀석, 신병 맞아?’
신병이라면, 자신의 검을 받아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때 신병 녀석이 검을 흔들어 보였다.
“안 들어오나?”
“······.”
케롭은 대답할 수 없었다.
신병이 차분하게 내려앉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케롭은 저 눈을 알고 있다.
선임 수련생들이 자신의 어설픈 실력을 낱낱이 분석할 때 보던, 그런 눈이었다.
‘아니 그거랑 달라······ 저건 마치.’
기사.
첫 전장에서 보았던 기사의 분위기와 닮았다.
‘고작 신병인데, 어떻게······?’
케롭은 마른침을 삼키며 목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 *
‘시발, 아파서 쓰러질 뻔했네.’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목검을 바로잡았다.
맨 처음에는 이 몸뚱이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시험했다.
놈은 기사 수련생으로 발탁된 지 얼마 안 된 초짜.
마나가 많을 리도, 마력 운용을 능숙하게 할 리도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놈은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듯했다.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손목과 팔꿈치가 욱신거렸지만, 최대한 충격을 흘리며 버텼다.
‘점차 눈도 익어가기도 했고.’
처음엔 잔상만 보이듯 검격이 안 보였지만 점차 눈이 적응하자 얼추 보이기 시작했다.
‘수련생이라 그런가. 아직 단조롭네.’
나는 녀석이 휘두르는 검을 분석했다.
녀석이 휘두르는 검은 단순하다 못해 정직했다.
이건 마누스 기사들의 특징이자, 기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사들은 기교를 배우지 않아.’
기사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오러다.
마나 블레이드의 상위호환이자 강철조차 두부처럼 자를 수 있게 해주는 오러.
기사들은 오러를 가지고 있기에 누구라도 단번에 죽일 수 있다.
그렇기에 정확한 일격을 수련한다.
특히나 기사단을 구성하여 공동 작전을 펼치는 기사들은,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쓸데없는 동작을 배제한다.
즉, 검로가 단순해진다.
‘물론 노련한 기사는 그것만으로도 빈틈없지만······ 기사 수련생들은 아니지.’
무엇보다 처음보다 공격의 속도가 줄었다.
마나가 다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승기가 보인다.’
차분해진 눈으로 기사 수련생을 쳐다보자 갑자기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너무나 정직한 내려 베기.
케롯? 케롭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녀석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보이는 빈틈은 심할 정도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오러를 깨우치는 데 너무나 오래 걸렸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기교를 배웠다.
주로 용병들이 쓰던 잡기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지.’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지는 목검에 내 목검을 옆으로 때리듯 붙였다.
그리고 원을 그리듯 왼쪽으로 팔을 돌리자 녀석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스르륵.
“어?”
녀석의 팔이 내려가며 어중간한 자세가 되었다.
나는 그대로 놈의 몸 안쪽으로 바짝 파고 들며, 안면에 팔꿈치를 박아 넣었다.
쩍!
“큭!”
코를 맞은 녀석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가까워진 거리는 내 승부수가 되었다.
녀석의 손목을 향해 강하게 내려쳤고 동시에 발로 배를 걷어찼다.
“컥!”
동시에 녀석이 벌러덩 쓰러지며 검을 놓쳤다.
“어?”
“······뭐야?”
한순간의 정적이 일었다.
한호하던 구경꾼들도.
응원하던 양쪽 무리의 고함들도 잦아들었다.
나는 쓰러진 녀석의 목에 목검을 겨눴다.
“내가 이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