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나를 찾았다고?”
회의가 끝날 때를 기다리고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려던 그때.
갑자기 회의장을 나온 이네스가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해왔다.
다름 아닌, 카일이 숲에 있고 그가 엘프들한테 나를 찾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네가 마누스 왕국에 있는 줄 알고, 빨리 소식을 전해서 데려와달라고 했다더라고. 아마도 숲의 마기를 보고 네가 떠올랐겠지.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나는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이 자식, 통하는 구석이 있는데?’
카일까지 여기 있었을 줄이야.
성검을 찾으러 갔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생명의 숲이었단 말인가?
‘그러면 지금 생명의 숲에 모인 게 카일, 이네스, 신궁에 나까지인가?’
한 장소에 영웅이 4명이라······.
언제나 그렇듯이, 영웅들은 서로 엮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역시나 어떤 거대한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이겠지.
“아무튼, 어서 들어와.”
턱.
이네스는 내 손목을 붙잡고 회의장 안으로 이끌었다.
안에는 꼬장꼬장해 보이던 엘프 장로들이 앉아있었는데, 조금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분명 좀 전만 해도 경계심과 의심 등 곱지 못한 시선들이었던 것이, 지금은 흥미와 기대감, 그리고 호기심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의장 끝, 이네스의 옆에 앉자 옆에 앉은 수비대장이 내게 슬쩍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뒤이어 여덟 개의, 아니 가운데 서 있는 엘프까지 열 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한편, 회의장 중심에 서 있던 금발의 엘프 여인이 나를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이 제이드 님이신가요?”
“분명······ 카야라고 했던가?”
분명 광장에 찾아왔을 때 그런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다.
카야는 싱긋 웃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기억해주시는군요? 카야 글룸벨. 푸른 잎의 가지 중 하나입니다.”
그러고는 어딘가 신기하다는 듯 나를 훑어보았다.
“왜 그러지?”
“아, 그게 카일이 설명했던 모습과 거의 비슷해서요.”
“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의아한 눈빛에 카야를 바라보자, 그녀가 실수했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사실 카일이 제이드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의지할 수 있는 동료라고······. 이야기 속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서······.”
“······.”
의지할 수 있는 동료라······
‘카일이 나를 그렇게 생각했나?’
뭔가 묘한 감격에 입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이네스가 눈을 찌푸리면서 내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아, 이럴 때가 아니었지.
나는 분위기를 환기할 겸 헛기침하고는 카야에게 정확한 정황을 물었다.
카일은 어디 있는 건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등등.
“카일은 전설 속 검을 찾으러 이곳에 왔어요.”
전설 속 검이라······ 역시 성검을 찾으러 여기에 온 듯했다.
“생명의 숲 깊은 곳, 어머니를 모시는 신당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신관을 찾기 위해서 말이죠.”
신당? 신관?
내가 갸웃하자, 옆에 있던 이네스가 곧장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주신교단처럼 엘프들 역시 세계수를 자신들의 신으로 모셔. 그리고 세계수가 있는 땅을 성역, 세계수를 보필하는 자를 신관, 그리고 신관들이 기거하는 곳을 신당이라 말하지.”
“잘 아네?”
“신을 믿으려면 다른 신부터 이해해야 하니까.”
이네스가 엘프들의 눈치를 보며 작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서로 믿는 대상이 다른 만큼,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 듯했다.
그 사이 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설명했다.
“이네스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이상함을 느끼고 성역으로 들어가자, 신당과 일대를 마기가 에워싸고 있었거든요. 두 분께선 신당으로 가셨고, 저는 경고를 위해서 마을로 돌아온 겁니다.”
그렇게 말한 카야가 살짝 얼굴을 구기며 수심을 드러냈다.
“카일은 저희만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태에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했죠.”
이에 굳게 입을 닫고 있던 장로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카일이 인정하는 자라면······.”
“우리도 믿을 수는 있겠지.”
뭐야. 카일 이 녀석, 벌써 이 동네 호감작을 해둔 건가?
나한테는 그렇게 깐깐했던 엘프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라? 용사는 용사라는 건가.
“우리는 카일을 믿어요. 카일의 판단과 카일의 능력을. 그는 오래전에도 우리의 문제를 여러 번 해결해주었거든요. 그래서······ 부디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카야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으로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띠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선행 퀘스트 ‘그림자의 음모 –1’을 보유 중입니다.] [퀘스트가 연계됩니다.] [퀘스트 정보]– 제목 : 그림자의 음모 – 2
– 설명 : 제국의 토벌대가 함정임을 깨달은 당신은 생명의 숲에 드리운 악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엘프들을 도와 세계수를 구하십시오.
– 보상 : 칭호 ‘상급 악마 사냥꾼’, 별의 조각, 망령왕의 유산,
– 추가보상 : 엘프 종족에 대한 호감도 상승, 세계수의 선물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이 맞았다는 듯이, 이정표를 제공하는 퀘스트.
퀘스트도 뜬 마당이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엘프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중 내게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들은, 슬쩍 고개를 숙였다.
나는 미소름 머금고 말했다.
“당연하지. 마기? 그거 우리 전문 분야거든.”
의뢰. 아니, 퀘스트 수락이었다.
* * *
내 수락이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숲 안으로 들어갈 탐사, 지원대가 꾸려졌다.
사실 인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세이비어 결사단, 이네스가 이끄는 와이트 아울 기사단과 사제들.
거기에 엘프 카야를 비롯한 정령술사 몇 명이 길잡이로 붙은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백에 육박하는 인원이었다.
카야는 웬 잘 말린 이파리를 하나씩 단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세계수의 이파리를 말려 만든 부적이라는데, 마기를 비롯한 삿된 기운들을 대신 흡수하고 정화해준다고 했다.
사제들의 신성력도 마기를 저항할 수 있지만, 아마 성역에는 봉인된 악마가 있을 것이고, 어쩌면 흑마법사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감옥섬 때처럼 마기를 신성력으로 밀어낸다면 놈들이 눈치챌 가능성이 높기에 우린 은밀하게 숲을 주파하기로 했다.
우리는 숲길을 따라 이동했고, 이내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밀림이 펼쳤다.
대원들이 빽빽한 수풀을 베어서 길을 만들려고 했으나, 엘프들은 우리를 제지했다.
“우리는 숲과 공생해요.”
카야가 그렇게 말했고, 선두와 후미에 선 엘프 정령술사들이 허공에 손을 뻗자,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희미한 빛.
그와 동시에 길을 막고 있던 수풀들이 알아서 비켜서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연과 교감하는 엘프다운 능력에 편히 숲을 주파할 수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생명의 숲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가 다시금 이어졌고, 나를 포함한 지원대는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던 중, 이 숲 어딘가에 있을 중요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신궁은 어디 간 거지?’
신궁 로빌리오.
카일의 동료 중 한 명이자, 용사 파티의 궁수.
하프 엘프이자, 엘프 중에서도 최고의 활 솜씨를 가진 궁수였고, 동시에 강력한 드루이드로서 많은 영물을 길들였었다.
다만 내게는, 용사 파티원 중 가장 정보가 없는 이였다.
마왕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진 그 행적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원체 신비주의인데다가, 인간도 아니었던지라 사회에서 난 소문도 없었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내가 아는 정보라면······.
‘신궁이 가지고 다니던 알······ 정도인가?’
그랑힐 시의 언데드 사태를 막아내던 당시, 밀수품 중에 압수했었던 새하얀 알.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알로, 새겨진 무늬가 특이하다는 점일까.
이 알은 항상 신궁이 들고 다니던 신비한 물체였다.
이걸로 영물들을 길들이는 데 썼다느니, 드래곤의 알이라느니.
사실은 그저 특별한 마법석이라느니.
온갖 소문이 무성했으나, 그 실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여간, 나는 카야에게 신궁의 행방을 물어보기로 했다.
같은 마을 사람일 테니, 나보다는 더 잘 알고 있겠지.
“카야.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얼마든지요.”
“혹시 로빌리오라는 엘프 알아?”
그러자 카야는 화들짝 놀라며 행렬에서 벗어났다.
뭐야, 이 반응?
“네? 로빌리오요? 당신이 그 아이를 어떻게······?”
그 반응에 뒤에서 이동하던 이네스와 단원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잠시 눈치를 보며 행렬에 들어온 카야가 나를 향해 물었다.
아니 묻는다기보단 심문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대체 로빌리오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디서 들은 거죠?”
“그냥 뭐, 건너 건너 소문을 들었는데······.”
나는 말을 흐리며 카야를 바라보았다.
카일의 친우라며 호의를 비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의심의 눈초리와 잔뜩 경계한 눈빛이었다.
“설마 로빌리오가 인간 사회에 있던 시절에 아는 사이였나요? 뭘 찾으러 오신 거죠? 그러고 보니 당신은, 카일의 부름을 받기도 전에 이미 마을에······.”
따져 묻는 듯한 상황에 나는 뭔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산 것 같은데······.
‘잠깐. 그러고 보니까 신궁은 인간들을 싫어했었지?’
인간을 싫어하면서 유일하게 인정한 인간이 카일이었다.
하프 엘프 출신인 신궁이다.
로빌리오가 인간 사회에 있었다는 카야의 말을 보아하니 신궁은 숲 안에서 태어난 건 아닌 듯하고.
‘인간 사회에서 안 좋은 일을 당했나? 아니, 그럴 확률이 높군. 사회에서 하프들의 시선은 보통 곱지 않았으니까.’
인간들 간에도 신분의 구분이 철저하다. 노예부터 왕까지, 다층 계급이니까.
그리고 힘이 없는 인간들은 핍박받거나 노예로 부려진다.
하물며 외모가 수려한 엘프들의 피를 이은 하프 엘프들은?
노예상들이 눈을 번뜩이는 상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주연급 캐릭터인 신궁이다.
그런 이가 인간 사회에 악감정을 품었다는 설정이라면?
복잡하고 안타까운 사연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카야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빠른 판단을 마치고 곧장 손사래 쳤다.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마. 나는 당신들이 믿는 카일의 친구라고.”
“아······.”
“카일을 신뢰하는 줄 알았는데, 별로 아닌가 보네? 나는 카일의 이름만 듣고 도와주려고 나선 건데······. 이러면 상호 간의 신뢰에 금이 갈 텐데.”
“그, 그건······.”
카일의 언급에 카야의 눈이 흔들리며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카야는 의심을 접고 사과했다.
“하아. 의심해서 미안해요. 카일에겐 저희 종족 전체가 목숨을 빚진 적이 있는데······. 인간이지만 저희에게는 스스럼없는 친구 같은 관계거든요. 알게 모르게 당신에게는 아직 경계심을 떨치지 못했나 봐요. 우리를 돕기 위해서 나서주신 건데······.”
그렇게 말한 카야는 씁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로빌리오는 제 친구예요. 로빌리오가 숲에 흘러들어오고 나서부턴 둘도 없는 친구였죠. 그 애가 숲 밖에서 당했던······ 끔찍한 이야기 때문에, 로빌리오를 찾아왔다고 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경계한 모양이에요.”
역시, 신궁에게는 어떤 배경 스토리가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