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모든 이동 준비가 끝난 뒤.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어머니의 정원 안으로 깊숙이 진입했다.
세이비어 결사단과 와이트 아울 기사단, 사빌나르 주교를 포함한 사제들.
거기에 신궁과 카야 등 엘프들과 새로 구출한 키텔로 레인저들까지.
오히려 처음부터 숫자가 불어나서, 백 오십에 가까운 무리가 숲 안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고결한 어둠의 성수를 먹고 새로이 환골탈태한 칼라마르가 마기 추적을 사용하며 일대를 감시했고.
컹컹! 크르르- 컹!
칼라마르의 격이 상승하며 생긴 스킬, 짐승의 왕으로 거느리게 된 숲늑대들 역시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주위를 경계하며 뛰어다녔다.
“어차피 은밀하게 기동할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주변을 경계한다. 급습을 막을 정도로만.”
우리가 앞선 전투로 알게 된 것은, 숲 전체가 우리를 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기에 잠식된 나무, 벌레, 동물 등 숲의 모든 존재가 말라고니스의 눈과 귀, 그리고 이빨과 발톱이었다.
즉, 세계수로 향하는 것은 괴물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신중에 신중이 필요한 지금.
우리의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져서, 복잡하게 뒤엉킨 숲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게 나아가길 한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지. 전방에 뭔가 있다.”
“저건 뭐지?”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나무들이 사라졌다.
즉, 지형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지점을 맞이한 것이다.
숲 대신 우리를 막아선 것은······ 웬 뿌리들이었다.
“이, 이게 뭐야?”
“이거 나무뿌리들이지? 엄청 큰데?”
“뿌리라고? 뿌리가 이렇게 거대한 게 말이 돼?”
나무 한 그루와 맞먹을 정도로 두꺼운 뿌리들이 뒤엉켜 양옆으로 높게 솟아 있었다.
마치 바닥에서 크라켄의 촉수들이 솟아나 있는 것만 같은, 기이한 풍경.
나는 로빌리오를 향해 돌아보았다.
“로빌리오. 여기는?”
“여기부턴 숲의 어머니의 권역이야.”
“세계수의 권역?”
“그래. 가장 성스러운 곳이지.”
거의 다 와 간다는 로빌리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심부라고 이해해도 되는 건가?”
내 말에 로빌리오가 말을 이었다.
“비슷해. 이 뿌리들은 숲의 어머니 주변에서 자라난 신목들의 뿌리야. 길게 자라난 뿌리들이 엉키고 엉켜서 만든, 신비하고 신성한 지형이지.”
“워, 원래 이런 장소가 있던가요? 저는 처음 보는데······.”
안내자였던 엘프 카야조차 잘 모르는 눈치였다.
로빌리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여긴 장로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거든. 여길 통하면 어머니의 뿌리 지대로 곧장 나아갈 수 있어. 단-”
로빌리오가 검지를 피며 말을 이었다.
“안쪽의 길은 미로처럼 구불거려서 나도 길을 찾기 힘들어. 아니, 신수중에서도 단 한 마리만 여기 길을 찾을 수 있어.”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구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머니의 정원에 있던 우리다.
그마저도 내가 정령의 은총 특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뭔 놈의 길 찾기가 이렇게 힘들어?’
분명 이 부분, 게임이었으면 미로 퍼즐 구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나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로빌리오에게 물었다.
“그럼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녀석이 얘야?”
로빌리오의 옆에 있는 푸른 사슴.
신수 솔리무어.
말라고니스에게 잠식되었던 녀석은 세계수의 열매로 되살리며 다시 숲의 신수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이 녀석이 길을 안내할 수 있다면 세계수의 열매로 살리게 된 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런데 로빌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녀석은 여기 길을 몰라.”
“뭐? 그럼 길을 아는 게 누군데?”
“무카이. 녀석이 길을 알고 있어.”
무카이라면 그 재수 없는 녹색 원숭이 신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열매를 훔치는 데 실패하고 소울 플라이 무리와 도망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길을 찾기 힘들다는 뜻이 아니던가?
로빌리오에게 그 부분을 지적하려는 그때.
툭.
“제이드, 이걸 봐라.”
옆에서 로빈이 흙바닥을 짚으며 말했다.
“발자국?”
“그래. 그것도 원숭이의 것이지.”
흙 위로 찍혀 있는 족적.
그 흔적은 전방의 뿌리 곳곳에도 묻어나 있었다.
이런 흔적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이족 보행이 가능한 동물이자, 나무를 자유자재로 타는 동물이다.
“무카이, 놈이군.”
녀석이 이곳을 지나간 것이다.
나는 로빌리오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녀석이 여길 지나칠 걸 알고 있었어?”
“응. 녀석은 나를 데리고 이따금 여기로 왔거든. 그리고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지. 그러니 즉─”
빙그레 웃는 로빌리오.
나 역시 그런 녀석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걸 따라가면 된다는 거지?”
무카이, 놈은 말라고니스에게, 잠식당한 세계수로 향했을 테니 말이다.
키텔로 레인저들이 가슴을 두드리며 앞으로 나왔다.
“흔적을 찾는 건 우리에게 맡겨 주시죠.”
“드디어 은혜를 갚을 때가 되었군요.”
그들은 괜히 푸른 잎 마을에서 고용한 이들이 아니라는 듯, 능숙하게 흔적을 찾으며 전진해나갔다.
“이쪽입니다.”
“이 흔적은······ 다른 동물의 것이군. 왼쪽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쭉쭉 나아가는 도중.
“음? 흔적이 갑자기······?”
자신만만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흔적을 찾던 키텔로 레인저들이 머뭇거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지?”
나는 그중 익숙한 단원, 갬비스를 향해 물었다.
갬비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 제이드 님. 흔적이 끊어졌습니다.”
“끊어졌다고?”
“예. 주변의 흙도, 뿌리를 타고 이동한 흔적도 없습니다.”
흔적이 없다.
마치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에 녀석의 흔적을 추론하기 쉬웠다.
“아마 그림자로 들어갔겠군.”
“예? 그림자요?”
“아마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중간중간 능력을 쓴 건가 본데······ 반경을 넓혀서 살펴보지.”
나는 설명하는 김에 몇 가지를 더 첨언했다.
“그림자 속에서 이동하려면 그림자끼리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 숲속에 그림자가 많지만, 중간중간 끊어지는 구간들이 있더군.”
나는 고개를 들었다.
두꺼운 뿌리가 엉켜 있는 이 장소.
하지만 뿌리 틈 사이로 적잖은 햇볕이 투과되고 있다.
“그때는 놈도 그림자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 부분을 살펴봐라.”
직접 그림자로 들어가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정보들.
나 역시 직접 키스고드의 그림자 망토로 사용해가며 알게 된 경험적 근거였다.
“아, 그런데 놈이 지나갔을 때와는 시간이 다를 텐데 그림자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이드 님. 그 부분은 직접 계산하면 되니까요.”
키텔로 레인저 단장인 루셴이 직접 가슴을 두드리며 호언장담했다.
“계산한다고?”
“예. 다만 놈이 몇 시간 전에 도망쳤는지만 알려주시겠습니까?”
나는 루셴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곤, 흥미로운 시선을 던졌다.
키텔로 레인저들이 매우 뛰어난 수색 능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특수한 조건에서도 수색을 이어갈 수 있다고?
“시간이라······ 3시간 정도 지난 것 같군.”
“3시간 전이라······ 지금 하늘에 저녁놀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서쪽으로 기운 지 1시간 정도 되었을 때군요.”
“그러면······.”
루셴은 키텔로 레인저들과 무어라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남쪽이다. 남쪽으로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을 거다.”
그때 로빈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루셴이 살짝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추론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흔적이 끝난 지점. 여기서 그림자가 시작됐을 테니······.”
“아마 저쪽으로 향했을 테지.”
나는 두 사내가 흔적을 찾아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태양의 위치. 바닥에 깔린 나무와 수풀의 그림자. 자라난 모양을 살피며 계산하고 방향을 잡더니······.
“여기다!”
······곧장 흔적을 발견해냈다.
“제이드. 찾았다!”
“제이드 님, 찾았습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빨라 오히려 로빌리오가 당황할 정도.
“이, 이렇게 빨리? ······왜 푸른 잎 마을에서 이들을 고용했는지 알 것 같네.”
나는 그런 로빌리오를 잠시 바라보곤 피식 웃으며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좋아. 가보자고.”
* * *
루셴은 슬쩍 앞서 걸어가는 자신의 친우를 바라보았다.
로빈.
녀석을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키텔로 레인저를 떠나고 꽤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루셴은 그가 떠돌이 용병. 혹은 아무도 모르는 산 깊은 곳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로빈이 그 제이드 휘하에 있다니. 세이비어 결사단이라고 했지.’
심지어 그냥 단원이 아니다. 부단장이다.
그만큼 더욱 뛰어난 레인저가 되었단 뜻이고, 그만큼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갔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막사에서 처음 로빈을 보았을 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전과는 다르면 어떡하지?
과연 다시 친우로서 지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니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다.
그저, 이번 사태를 도우며 빚이라도 갚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루셴은 로빈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왔을 때, 속으로 기뻤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꺼냈다.
“······로빈. 고맙다. 네게 다시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여긴 적진이다. 집중해라.”
돌아오는 건 쌀쌀맞고 시큰둥한 대답.
그에 루셴이 머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아직 마음을 그리 열지 않은 건가.
‘하긴, 오히려 편하게 다가온다면 더 로빈답지 않겠군.’
로빈이 떠난 건 좋지 않은 일 때문이었으니······.
오랜 추억이자, 과거를 떠올린 루셴은 쓰라린 속을 삼키며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해 나갔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무카이, 녹색 원숭이 신수의 흔적을 따라간 끝에 발견한 것은 웬 장벽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뿌리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서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웬 굴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는 두꺼운 나무뿌리들이 둥글게 얽히며 터널처럼 만들어진 것이었다.
로빌리오는 그 터널을 발견하자마자 화색하며 설명했다.
“잘 찾았어. 이제 여길 통과하기만 하면 숲의 어머니에게도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모두가 인지하며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
터널은 꽤 길고 어두웠다.
서로 얽힌 뿌리들의 밀도는 높아서 하늘의 빛은 투과되지 않았고, 시야는 칠흑처럼 깜깜했다.
우우웅─
그런 상황에서 빛을 밝혀준 건 푸른 사슴 신수, 솔리무어였다.
“솔리무어. 부탁할게.”
로빌리오가 솔리무어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숲의 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둠을 밝혔다.
신수의 뿔이 바다에 홀로 선 등대처럼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오십에 다다르는 인원 전원이 시야를 밝히기에는 부족했기에, 세이비어 결사단원들은 푸른 마탑에서 지원해준 발광석을 꺼내 들었다.
키텔로 레인저들은 각자 품속에서 길쭉한 나무 막대를 꺼내 흔들었다.
촤르르륵!
그러자 나무막대 안에서 녹색 형광빛이 피어오르며 주위를 밝히기 시작했다.
마탑의 발광석보다 두어 배는 밝게 빛나는 빛.
결사단 단원 몇 명이 흥미로운 시선을 던졌다.
“오, 발광석보다 더 밝다고? 이보쇼, 그거 아티팩트인가?”
“흐흐. 아티팩트라뇨. 다 천연으로 만든 겁니다.”
“발광 진딧물이라고 자극을 주면 빛을 내뿜는 놈들이죠.”
“벌레란 말인가? 혹시 하나 줄 수 있나?”
“흐흐, 그건 좀 곤란합니다요. 저희 키텔로의 비전 중 하나라서요.”
키텔로 레인저들과 시시덕거리는 데릭.
그 모습을 로빈이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익숙한 나무통이 시야로 들어왔다.
루셴.
키텔로 레인저이자 단장인 그가 내민 것이었다.
“어둠은 레인저들의 친구지. 안 그런가 로빈?”
“······그렇지.”
로빈은 무심코 그를 받았다.
막대 속에서 피어오르는 발광 진딧물의 녹색 형광.
일렁이는 그 빛에 불현듯 옛 상념에 잠기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키텔로 레인저가 되기도 전의 일들이 로빈의 눈동자에 일렁였다.
* * *
세 꼬마 아이가 어두운 동굴을 가로질렀다.
남자아이 둘과 여자아이 하나.
말썽 좀깨나 피울듯한 여자아이가 두 남자아이를 이끄는 모양새였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로사. 두 남자아이의 이름은 각 루셴과 로빈이었다.
로사에게 이끌리던 루셴은 찜찜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사, 정말 여기 맞는 거야? 이러다가 길을 잃는 건······”
“아이 진짜! 루셴! 넌 너무 겁이 많다니까? 이 안으로 쭉 들어가면 있다고 케니 아저씨가 말하는 걸 들었어. 그보다 앞이 잘 안 보이는데? 로빈! 발광 진딧물 좀 더 풀어봐.”
“으응. 알았어. 로사.”
세 아이는 야밤에 잡아두었던 발광 진딧물들이 담긴 통을 꺼내며, 어두운 길을 밝혀나갔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어떤 거대한 공동이었다.
밧줄과 상자, 통나무와 여러 금속 장치가 어지럽게 엉킨 시설들이 늘어선 장소였다.
그 모습에 세 아이가 감탄했다.
“거봐! 내가 여기일 거라고 했지?”
로사가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뿌듯하게 말했고, 루셴과 로빈은 서로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 진짜 있었네. 난 또 로사가 거짓말한 건 줄 알았는데······.”
“솔직히 나도 그랬어. 루셴.”
“뭐어? 니들 죽을래?!”
바로 이들이 찾은 곳은 키텔로 레인저들의 비밀 은신처 중 하나였다.
이들은 산 중턱에 있는 레인저 마을의 고아들이었는데, 마을의 레인저들이 아이들을 종종 돌봐주었었다.
로사가 말한 ‘케니’ 역시 키텔로 레인저 중 한 명이었고, 아이들을 자주 돌봐주는 푸근한 아저씨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들은 함께 어울리며 뛰어난 레인저가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았다.
그들은 키텔로 레인저의 은신처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근데 로사. 먼지가 너무 많지 않아? 위엔 박쥐도 있어. 안 쓴 지 오래된 것 같은데······.”
“로빈, 바보야? 비밀 은신처면 비상시에만 쓸 게 뻔하잖아?”
“어? 그러면 웬만해서는 아무도 안 온다는 거잖아?”
“그렇지. 레인저들은 전부 나가서 안 올 테니까.”
루셴이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리자, 로사가 후후 웃음을 흘렸다.
그날부터 동굴의 은신처는 그들만의 비밀기지가 되었다.
발광 진딧물이 비추는 빛에 의지하며 술래잡기도, 활쏘기 연습도, 수련도 하고 놀았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그날은 키텔로 레인저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동시에 몇몇 레인저들이 죽음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로사와 로빈을 돌봐주던 케니 아저씨 역시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루셴도, 로빈도, 심지어 로사 역시 그 슬픔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슬픔과 비통으로 차 있던 비밀기지.
“나는 다를 거야!”
그 안에서 로사가 결심한 듯 일어나 소리쳤다.
“내가 레인저가 되면 반드시 남들을 지켜줄 거야. 루셴, 로빈! 너희도 약속해!”
“나, 나도! 레인저가 되고, 너희가 위기에 처하면 꼭 구할게!”
“나도 마찬가지야. 맹세할게.”
세 아이는 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그때 루셴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다른 레인저들의 희생 덕에 살아남았대. 그들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위험했을 거야. 만약 우리도 그런 상황이면 어떡해?”
“당연히! 당연히······ 음.”
로사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로빈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강해져야지. 안 그래?”
* * *
로빈의 상념은 그것으로 끝났다.
아니, 정확히는 통로 끝에서 들어오는 노을빛에 상념이 끊긴 것이지마는.
후우우웅─
출구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하지만 그 사이사이로 묘한 악취와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졌다.
마기였다.
그걸 느낀 제이드는 일행들에게 정비하도록 지시했다.
“저 바깥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모두 여기서 최대한 만발의 준비를 한다.”
성역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신수들이 습격해왔다.
과연 세계수의 근처라면 문제가 없을까?
그럴 리가.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다가올지도 몰랐다.
최악의 경우, 말라고니스의 함정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마기에 저항할 수 있는 축복을 걸었고, 제이드 일행은 각자 무기와 방패를 정비했다.
키텔로 레인저들은 각자 화살과 보조 무기들을 정비했다.
로빈 역시 허벅지 뒤쪽에 화살통을 단단히 고정하고, 헐거워진 활의 시위를 교체했다.
“내가 선두를 맡겠다.”
모든 준비가 끝난 지금.
로빈은 조심스럽게 통로의 출구에 몸을 기대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해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라앉아,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악마가 있다는 걸 알기에 붉은 하늘은 어딘가 음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에 깔린 풀과 나무도 붉게 물들어서 그런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반면 신수나 마수화된 동물은 터럭 하나조차 비추지 않았고,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긴 텅 빈 건가······?’
로빈은 경계심을 낮추지 않고, 뒤로 수신호를 보냈다.
뒤이어 키텔로 레인저들이 조심스럽게 따라붙었다.
전원, 적이 없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쿠웅─
저 멀리서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저 앞의 나무들이 차례차례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음머어어─!
나무를 쓰러트리며 나타난 것은 검은 소였다.
그것도 족히 3~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소.
녀석이 발광하듯 움직이며 난동을 피우고 있던 것이다.
“소? 아니, 저 정도면 마수라고 불러도 손상이 없군!”
“전원, 전투 준비!”
만일 놈이 이곳과 부딪히는 순간.
큰 소란이나 문제가 일어날 것이 뻔했기에, 레인저들은 일제히 엄폐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문득.
날뛰는 소의 등에 박혀 있는 무언가가 반짝였다.
그것이 의아해 로빈이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했다.
그건 여러 자루의 검이었다.
‘······검? 그게 왜 저기에 박혀 있지?’
하지만 의문이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발광하던 검은 소는 눈을 뒤집어 까며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그때 로빈과 키텔로 레인저들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소의 등에 올라타 있는 한 사내를.
‘적인가?’
‘악마 추종자? 어쩌면 이 사태의 주범일 수도 있다······!’
키텔로 레인저들이 화살을 겨누며 경계했다.
“움직이지 마!”
“정체를 드러내라! 저항하면 쏘겠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인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스릉─
그 모습에 한 레인저가 적이라 판단하고 화살을 쏘았다.
피융─!
팅!
그런데 그 사내는 검을 휘둘러 화살을 가볍게 튕겨냈다.
‘예사 놈이 아니다!’
판단한 루셴이 일제 사격을 외치려는 그때.
사내가 휘두른 검의 궤도를 따라 광풍이 불어쳤다.
후우우웅─!
순간적으로 흙먼지가 치솟으며 키텔로 레인저들의 시야가 가려졌다.
“놓쳤다!”
“다들 주위를 살펴라!”
루셴과 갬비스를 비롯한 레인저들이 당황하는 그때.
로빈은 곧장 옆의 나무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아래에 자욱이 깔린 흙먼지들.
그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나는 인기척을 눈으로 좇으며 화살을 재었다.
‘일부러 일으킨 건가? 경험이 많은 놈이다. 누구지?’
키텔로 레인저들의 움직임과는 결이 다르다.
비범한 실력자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딘가 그 모습이 익숙한 것 같다.
가슴 한구석의 의문을 뒤로하고, 로빈은 즉시 뒤돌며 활시위를 놓았다.
팅─
1초도 지나지 않아 금속음이 들리며 튕겨 나간 화살이 나무에 박히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그자가 검을 내지르려 한 채 멈칫했다.
문득 보이는 사내의 얼굴.
동시에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응?”
“너는?”
사내와 로빈이 동시에 무기를 내렸다.
“제이드의 동료잖아?”
“······카일, 이었던가?”
자신들을 습격했던 것은. 아니, 정확히는 저 거대한 소를 사냥하고 있던 자.
카일이었다.
“제이드의 동료가 왜 여길······ 그러면 설마?”
카일은 검을 거두며 중얼거리더니 나무뿌리가 엉킨 터널을 휙 바라보았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친근한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제이드?”
“카일. 오랜만이야.”
“너······ 어떻게 여기에······?”
“네가 카야를 통해 나를 찾았잖아?”
카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하면서도 반갑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긴 한데······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그것도 시의적절하게 등장하지?”
분명 엘프 카야에게 제이드를 찾아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왔을 줄이야.
“너는······ 무슨 영웅 전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거야?”
1회차의 용사가 자신에게 주인공이냐 묻는다.
그 상황이 묘하게 웃기고도 벅차오르기에.
제이드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세계수를 구하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