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굴라드 산맥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협곡.
내가 산세를 관통하여 그곳에 도착했을 때, 미하일과 마누스의 병사들은 달려드는 마수들과 뒤엉킨 채 싸우고 있었다.
검을 휘둘렀고, 방패로 막았다.
화살을 쏘았고, 마법을 날렸다.
소복이 쌓였던 눈은 주인 모를 피와 살점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병사들은 그 눈을 밟아 달렸고, 마수의 등을 오르며 싸웠다.
그 모습은 처절했으며, 치열했고, 격렬했다.
미하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달려드는 마수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베는 모습은 전사의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분노했다.
“너희 따위에게 죽을 목숨이 아니란 말이다.”
그간 숱한 악의 전선을 넘어온 전사들.
그들을 짓밟은 마수들에게 분노했고, 이 함정을 유도한 마이어스 공작을 향해 분노했다.
그 분노에 모노리스가 응답하며 날카로운 칼날들로 화했다.
칼날 하나하나에 피어오른 흑암성의 오러.
그것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주변의 마수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
캬아아악!
취이이익!
아군을 향해 달려드는 마수들의 목을 베었고, 심장을 꿰뚫기 시작했다.
내 뒤에서 미하일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이드, 이건 대체······?”
“새로 얻은 무기입니다.”
“······무기라고? 저 말도 안 되는 것이?”
생명의 숲에서 얻은 별의 조각 무기.
모노리스.
하긴, 이걸 처음 보는 이는 누가 됐든지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형태가 변화하는 금속이자 무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무기가 내 손에 들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모노리스는 빠른 속도로 주위의 마수들을 쓰러트려 나갔다.
“제이드. 그 무기는 신묘하지만, 마수들의 수가 너무 많아. 자네 혼자서 싸우기엔 마력이 부족할 거야. 진영을 세워서 천천히 버티는 방식으로 하는 게 어떤가.”
그때 뒤에서 미하일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모노리스를 조종하는데 마력이 필요하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금속.
그를 재현하려면 염동 마법 따위가 필요할 테고, 적잖은 마력이 필요할 테니.
‘하지만 아니거든.’
모노리스는 형태 변화를 제외하곤 마력을 잡아먹지 않는다.
마수들을 아무리 베고 찔러도 내 마력과 체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마시죠.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미하일의 말을 정정했다.
먼저 모노리스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 혼자 온 것이 아님을 말이다.
“병력은 충분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협곡 위로 펼쳐진 하늘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갯짓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모습이 익숙한 신수.
스톨라스였다.
삐이이익!
녀석이 날갯짓하자, 주위의 눈이 휘몰아친다.
돌풍.
휘오오오─!
녀석이 날린 맹렬한 돌풍이 협곡을 가득 채웠다.
키이이익!
캬아아악!
그 돌풍에 달려들던 마수 일부가 튕겨 나갔고, 바닥을 굴렀다.
그 앞으로 은색 날다람쥐 신수, 라타토스크가 착지했다.
찌익! 찍!
이윽고 거대화를 시작하는 라타토스크.
녀석이 마수들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집어 던지며 마수들을 제압해나갔다.
두 신수가 전장을 헤집는다.
그러자 거칠게 달려들던 마수들이 주첨거리기 시작한다.
‘당황했나?’
글쎄, 그러기엔 아직 이르다.
‘진짜는 이제부터란 말이지.’
드드드드.
나는 조금씩 울리는 협곡을 바라보았다.
마치 군마들이 일시에 달리는 것만 같은 소리.
그리고 이내.
협곡 위로 엘프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악마의 피조물들이다!”
“마수들을 섬멸하라!”
“와아아아!”
활과 창을 쥐고, 정령을 소환하는 엘프들.
나와 함께 온, 지원군의 일부.
그들이 탄 늑대와 곰, 사슴들이 협곡 아래로, 마수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땅이 뒤집히며 마수들을 집어삼켰고, 거대한 식물 줄기가 마수들의 몸을 졸랐다.
붙잡힌 마수들의 머리와 심장에 날카로운 화살과 창날이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협곡 내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공포와 위압감을 흩뿌리며 날뛰던 마수들이 뒤로 주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위축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세가 바뀌었다.’
사냥.
놈들이 사냥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에, 엘프들이잖아?”
“엘프가 우리편에 선 거야?”
“말도 안 돼. 엘프는 숲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자 미하일을 비롯한 마누스 왕국군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나와 눈을 마주친 미하일이 물었다.
“제이드, 대체 이들은······?”
“생명의 숲의 엘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희의 우군이죠.”
“우군······ 이란 말인가? 이들이?”
“예. 이들을 데리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말라고니스에게 당한 한과 분노를 표출하듯, 엘프들은 마수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엘프들을 잠시 바라보곤 미하일을 향해 말했다.
“뒷길이 막혀 있을 것 같아서, 산맥을 타고 왔는데 유일한 활로였더군요.”
나를 비롯한 지원군이 하루 만에 협곡을 올 수 있던 이유.
‘말 그대로 산을 타고 넘었으니까.’
구불구불 펼쳐진 산맥을 따라 군대를 이끌고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지휘관이라면 지양해야 할 미친 짓이다.
산을 넘는 기동으로 적의 허를 찌른 경우가 전설로 남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성공했다.
자연의 총애를 받는 엘프들.
엘프들을 따르는 정령과 세계수의 힘을 받은 신수들.
거기에 숲의 전문가인 키텔로 레인저까지.
산맥의 비탈길이 완만하게 변하고, 수풀과 나무가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주던 광경.
‘특수한 인재들이 만든 기적이었지.’
그 광경을 떠올린 나는 미소 지으며 미하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미하일 사령관. 이제 반격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등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적에게.
한 방 먹일 시간이었다.
* * *
제이드가 미하일을 향해 손을 내밀던 그 시각.
붉은 결계의 바깥에서 연합군은 협곡 한 가운데에 멈춰 서있었다.
갑자기 생겨난 붉은 결계에 진군이 막혀버린 탓이었다.
아니, 그것은 결계라기보다는 장벽에 가까웠다.
협곡 안뿐만이 아니라, 절벽 위로도 솟아나서 일대를 완전히 뒤덮은 붉은 결계.
쥐새끼 한 마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두 구역을 격리시켰다.
그 모습을 보며 연합군의 마법사들은 판단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거나, 아예 빙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도 아니라면 저 결계를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제발 무사하기를.’
그런 결계를 향해 엔힐 공작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피가 뭉친 것 같은 저 결계 너머로, 마누스 왕국군이 고립된 상황이었으니까.
──!
때때로 들려오는 희미한 마수의 울음소리.
그럴 때마다 엔힐 공작의 고운 아미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함정에 빠진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자신의 시종은 괜찮을지.
수정구를 쥔 엔힐 공작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들을 도와야 해. 하지만······.’
엔힐 공작은 고개를 돌려 회의 중인 지휘관들을 바라보았다.
“어서 결계를 부숴야 하오!”
“저 붉은 결계가 무엇인 줄 알고, 말이오?”
“분명 마수나 악마가 만든 결계 아니겠나!”
“허, 그러면 더더욱 열면 안 되지. 함정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럼 마누스 왕국은 버리자는 뜻인가? 그게 카르스 왕국의 뜻이라 생각하면 되겠지?”
붉은 결계에 대한 지휘관들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는 상황.
하지만 그건 엔힐 공작이 보기엔 입씨름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결정권자는 가만히 앉아, 지휘관들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으니.
‘······마이어스 공작. 이게 당신의 노림수인가요?’
가운데 앉아 커피를 음미하는 마이어스 공작.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어딘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마치 관망하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불쾌감을 느끼는 그때.
우우우웅─.
그녀가 쥔 수정구가 빛을 내며 진동했다.
마누스 측의 연락이었다.
– 주인님. 저 포메트입니다.
다급히 받자 익숙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포메트! 무사했군요? 어떻게 된 거죠? 상황은? 함정입니까?”
자신의 시종이 살아있었다는 안도와 함께, 그녀의 궁금증이 물꼬처럼 터져 나왔다.
시종 포메트는 그런 그녀의 연이은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짧게 축약해 대답했다.
– 마수들이 습격해왔습니다만······ ‘그’ 역시 도착했습니다.
“그? 그라면······ 설마?”
– 예. 제이드입니다.
수정구가 울리며 들려온 시종의 대답.
동시에 엔힐 공작은 안도했다.
‘제이드. 그가 왔단 말이죠.’
그 말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전반적으로 그려졌다.
고립되고 위기에 빠진 마누스 군대.
그를 향해 달려드는 마수들.
위기의 순간, 갑자기 나타난 제이드에 의해 위기를 모면한 마누스 군대.
기적이었다.
상황을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는 단언할 수 있었다.
‘마이어스. 당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겁니······ 음?’
안도하던 엔힐 공작은 마이어스 공작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무표정.
그 상태 그대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엔힐 공작은 묘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뭐, 뭐지? 방금 그건 대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형언할 수 없는 난해함, 불쾌함, 이유 모를 공포가 느껴졌다.
기이한 감각에 다시 마이어스 공작을 바라보려는 그때.
쩌저저저적!
무언가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알이 깨지며 무언가 빠져나오는 듯한······ 그런 소리 말이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알?”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하늘 위로 생겨난 동그란 구멍을.
그리고 그곳에서 쏟아지는 피 같은 무언가를.
콰아아아─!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하늘의 자궁에서 괴물이 태어나는 모습이었다.
새빨간 피 사이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괴, 괴물이다!”
“마수야! 마수들이 나타났다.”
연합군의 머리 위로 수많은 마수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새와 인간이 뒤섞인 듯한 모습의 날개를 단 마수들부터, 짐승 형태의 괴물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콰아아앙!
4미터는 될법한 거대한 원숭이 모습의 악마가 뛰어내렸다.
커다랗고 붉은 눈동자가 십수여 개.
칼날 같은 길쭉한 손가락이 여섯 개.
그런 팔이 또 여섯 개.
세 갈래고 갈라진 거대한 주둥이까지.
처음 보는 존재이지만, 연합군은 저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으아아악!”
순식간에 전염되듯 연합군 전반에 공포가 피어올랐다.
혼란의 꽃이 개화하는 그때, 엔힐 공작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째서 마이어스 공작이 무표정했는지.
“애초에 선봉대는······ 목표가 아니었어.”
마이어스는 미하일. 그리고 마누스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연합군을 노렸다고?”
그들을 연합군에게서 떼어낸 것이다.
어째서······?
그 의문의 시종의 대답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 그가 도착했습니다.
‘······제이드. 제이드가 올 줄 알고 있던 거야.’
마누스 군대와 미하일을 선봉대로 보낸 이유?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제이드를 묶어놓을 미끼.
‘······진짜는, 연합군의 본대였어.’
엔힐 공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혼란에 휩싸이는 연합군의 사이에서, 다시금 마이어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혹한 눈을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