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전선의 아침이 밝았다.
요란스러운 뿔피리 소리와 전쟁북소리를 자명종으로.
“페르딤 놈들이 몰려온다!”
“빨리 움직여!”
“궁수들 도열하라!”
해가 뜨기 무섭게 어김없이 전투가 벌어졌다.
페르딤 군은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싸움을 걸어왔다.
다양한 용병단으로 구성된 페르딤 군.
놈들은 매번 다른 용병단을 선발로 내보내서, 아군을 지치게 만들었다.
“발사!”
적장의 신호와 함께, 요새 앞에 도열한 페르딤 궁수대가 활시위를 튕겼다.
두두두두.
성벽과 방패에 박힌 화살들에 병사들이 잠시 휘청거렸다.
개중에는 방패의 틈으로 들어온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지르는 녀석도 있었다.
심지어 녀석들은 성채를 통째로 박살 낼 작정으로 발리스타를 들고 왔다.
발사체의 두께만 하더라도 사람 팔뚝만 하다. 그런 게 무려 3대.
마누스 병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그때.
“전원 쓰러지지 마라! 내가 왔다!”
갑옷을 입은 바르손이 성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르손의 손에 들린 방패에 푸른 오러의 방벽이 피어올랐고, 그대로 거칠게 휘둘렀다.
퉁!
발리스타에서 쏘아진 커다란 화살이 바르손의 방벽에 부딪히더니 옆으로 튕겨 나갔다.
“미친.”
인간의 힘으로 발리스타를 막아내는 그의 모습은 역전의 용사나 다름이 없었다.
뒤이어서 페르딤의 화살 세례가 쏟아졌으나, 단 한 발도 방패를 넘지 못했다.
바르손 삼형제가 자아낸 오러 방벽의 크기는 그만큼 장대했다.
반대로 마누스 군이 화살을 쏠 때는 방벽이 잠시 옅어졌고, 페르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가했다.
“놈들을 쫓아내라! 진격하라!”
포효나 다름없는 바르손의 외침과 함께 마누스 군이 달려 나가며 페르딤 측의 병사들이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
·
·
그 모습을 철로 이루어진 제비가 관찰하고 있었다.
스틸 스왈로우에게 시야를 공유받은 내가 상황을 분석했다.
‘영악한 녀석들이군.’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잦았는지 바르손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도망가는 녀석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무엇이든 막아내는 저 성벽의 기사, 바르손이 있는 이상 녀석들은 쉽사리 뚫지 못한다.
그렇기에 일부러 소모전으로 바르손의 체력 소모를 유도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의 힘을 미리 빼기 위해 움직이듯 말이다.
‘시기를 보고 있나 보군.’
강력한 사냥감을 사냥할 준비를 말이다.
‘그렇다면 이쪽은 그걸 막는 준비를 해야지.’
나는 스틸 스왈로우의 시야 공유를 해제하는 한편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목책 안의 공터에서 훈련 중이었다.
아직 말과 완전히 친숙해지지 않은 듯 어색하게 말을 타고 달리는 데릭이 보였다.
“데릭! 말의 몸으로 중심을 맡겨! 로빈, 너는 데릭과 함께 움직여야 해! 속도를 늦춰!”
“큭!”
내 소리에 허리를 뻣뻣하게 펴던 데릭이 몸을 슬쩍 숙였다.
그 옆으로 로빈이 탄 말이 바싹 붙었다.
둘의 말에는 기다란 밧줄 하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녀석들은 두꺼운 슈거리 나무 하나를 향해 질주했다.
“지금!”
내 신호와 함께 녀석들이 탄 말이 산개했다.
동시에 말 사이에 걸린 밧줄이 확 펼쳐지며 나무를 에둘렀다.
그 상태로 빠르게 주위를 돌자 밧줄이 나무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빠르게 주위를 돈 말들이 나무 하나를 밧줄이 꽁꽁 싸맸다.
다만 속도가 내가 원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다음. 데이브, 드렌트 너희도 해보자.”
“제이드. 우리가 정확히 뭘 하는 거야? 뭐, 곰이라도 포박하려는 거야?”
데이브가 물었다.
“비슷해.”
“비슷하다고? 대체 뭘 상대하길래······.”
나의 대답에 대원들이 얼굴을 구겼다.
‘정확히는 더 한 것이지만.’
나는 의아해하는 대원들에게 계속해서 훈련을 시켰다.
“저게 지금 뭐 하는 거야? 놀러 온 것도 아니고.”
“남들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전투를 겪고 돌아온 병사들이 우리를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첫날에 제이드 별동대라는 이름에 기대하던 병사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전장의 새로운 바람일 줄 알았던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조롱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위쪽에도 들어간 듯했다.
아침부터 내내 말을 타고 밧줄로 나무를 묶는 연습만 하고 있자, 사령관이 의뭉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훈련이지?”
어제의 일로 나에게 약간의 불신이 생겼는지 그의 입은 미세하게 구겨져 있었다.
“혹시 모를, 최전방의 방어 대열이 흔들리는 순간을 대비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대체 ‘뭘’ 대비하려는 거지? 페르딤의 사령관이라도 제압할 때 하려는 건가?”
그는 의아함 반, 비아냥 반을 섞어 물었다.
음 이건 답해주기는 곤란한데.
미래의 일을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놈들은 바르손 경이 지치는 때를 노리고 있습니다. 바르손 경과 그의 형제들이 쓰러지는 순간, 적들의 기마대가 달려들어서 그들을 포위하려고 할 겁니다.”
나는 나무를 휘감은 밧줄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군의 기마대 전력은 턱없이 부족한 만큼, 적은 숫자로 적의 기마대를 저지할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이렇게 적당히 꾸며서 말했다.
다만 사령관의 반응은 탐탁지 않아 했다.
“자네의 추측은 합리적이야. 다만······ 우리가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겠나?”
사령관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갔다.
“놈들의 기마대가 바르손 경을 우회해서 우리 본대를 치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우리는 족족 막아냈네. 심지어 쇠뇌병들을 다수 배치한 이유도 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네. 자네의 훈련은······ 방향성이 틀렸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비하지 않으면 전선은 붕괴할 수밖에 없어.’
지금의 무시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건은 반드시 일어날 테고,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와이트 아울 기사단인 이네스 쪽 또한 숲을 돌아다니며 흑마법사들을 수색했다.
“그쪽은 좀 어때?”
“옅은 마기를 잡았는데, 아직 진원지를 특정하진 못했어.”
얼굴을 찡그린 이네스가 푸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손사래를 쳤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전문가라니까.”
“잘 알지.”
“그쪽 일이나 잘해. 밧줄로 실뜨기나 하고 있다고 민심이 나빠지고 있는 것 같던데.”
이네스가 풉 웃어 보였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흑마법사 상대에 능통한 그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전 대륙에서도 손꼽히겠지.
‘하지만······ 좀 신경 쓰이는데.’
흑마법사들이 수많은 습격이나 공격을 해왔지만 지금 내 기억과 딱히 맞는 것은 없었다.
놈들이 어떤 수를 꺼내올지 나도 짐작이 안 간다.
그리고 미래에는 흑마법사들이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게 사실이고.
여러모로 상황이 긍정적이진 않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나날이 반복되며 며칠이 지났다.
페르딤 군의 공격은 그사이에도 계속해서 일어났고, 대원들 또한 점차 말을 타는 것에 거의 익숙해져 기병의 모습이 조금씩 엿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기울고 훈련이 끝났을 때쯤 바르손이 찾아왔다.
“제이드.”
“바르손 경? 여기는 무슨 일이십니까?”
“훈련은 잘되어가나? 이 몸이 쓰러질 때를 대비한 훈련 말이야. 소문이 자자하더군.”
바르손이 농담조를 띄고 말했지만, 나는 몸을 굽히며 예를 갖췄다.
“죄송합니다. 바르손 경의 명예를 무시하려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아니. 나도 알고 있다. 아마 자네가 보기엔······ 위태로워 보이겠지.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이건 의외였다.
그가 스스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까지는 터놓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겠지.’
바르손이란 인물은, 결코 약한 기색을 내비칠 수 없다.
그가 뒤를 돌아보기만 해도, 다른 이들은 도망칠 생각부터 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에게 무조건 의지하지 않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래서 내게는 좀 더 터놓고 이야기할 마음이 생긴 걸까?
바르손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끝이 구겨진 걸 보면 쓴웃음인 듯했다.
“하지만 나 기사 바르손은 뚫리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그러실 겁니다.”
“그리고. 절대로 뚫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며칠간 보여주었던 늘 자신감에 차 있는 호쾌한 모습이 아니었다.
꾹꾹 눌러서 숨겨놓았을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제이드. 자네도 실패하지 마라. 방심하지도 말고.”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뒤돌아 걸어갔다.
나는 미묘하게 그의 보폭이 뒤틀렸다는 걸 눈치챘다.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
걸음의 균형이 아주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도 지쳐가고 있었다.
* * *
다음날은 내가 기다리던 것들이 도착했다.
“제이드 백인대장 계시오?”
보급대장 로한.
그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나를 찾았다.
“당신이 요청했다는 보급품이 들어왔소.”
그가 건넨 커다란 상자의 겉 부분에 표시된 마리온의 이름이 보였다.
‘생각보다 더 빨리 왔군.’
보급대장 로한을 돌려보내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커다란 쇠사슬과 특이한 모양의 창 두 자루였다.
두껍고 길게 늘어진 쇠사슬은, 웬만한 도개교를 지탱하는 것들보다 품질이 좋아 보였다.
“제일 중요한 건 이거지.”
내 눈이 창으로 향했다.
창보다는 송곳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외형의 무기의 봉은 한 손으로는 쥐기 힘들 정도로 두꺼웠다.
마치 커다란 발리스타에 놓을 커다란 화살처럼 말이다.
[아이템 정보]– 이름 : 마리온의 실험작 1호
– 설명 : 재능을 개화해가는 젊은 대장장이 마리온이 한 병사에게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낸 창입니다. 외관은 두꺼운 쇠로 마감하였으며 그 속은 ‘수용철’과 ‘독각충의 등껍질’을 채워 넣었습니다. 수용철 특유의 무른 경도로 인해 내구도가 매우 낮습니다.
– 효과 : 1) 특정한 기운을 부여 시 무기가 파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떠오른 아이템의 정보.
읽기만 한다면 쓰레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찬찬히 읽은 내게는 달랐다.
“완벽하군.”
이걸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때가 오기를 기다릴 뿐.
* * *
그날 오후 결전이 시작되었다.
“비상! 비사앙!”
뿌우우─
커다란 나팔 소리가 귀를 강타하자, 목책 안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원 집합하라! 다시 말한다! 전원 집합이다! 전부 빠짐없이 튀어나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벌어지는 일.
거대한 기계가 굴러가듯이, 병사들이 병장기를 챙기고는 각자의 자리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딘가 달랐다.
목책 너머에서 들려오는 적들의 나팔과 북소리가 한층 더 두껍게 느껴졌다.
행군이 만들어내는 땅울림 역시, 평소보다 육중하다.
“맙소사······.”
페르딤 본대.
일부 병력만 진격시키고, 항상 주시하기만 하던 놈들이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다.
“제이드!”
“별동대! 전원 준비를 마치는 대로 성문으로 집합해라!”
다급히 달려온 데릭이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곤 대원들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그사이, 나는 목책 위로 뛰어 올라갔다.
쿵─쿵─쿵─쿵─
성채 밖 저 멀리, 까맣게 도열한 군세가 보였다.
“······바퀴벌레 같군.”
못해도 3천은 되는 숫자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동남풍이 얼굴을 때렸고, 적진의 온갖 깃발들이 우리 쪽을 향해서 요란하게 흩날렸다. 바람이 거칠어서 그 모양새가 마치 우리를 향해서 맹렬하게 짖어대는 짐승들의 머리 같았다.
가지각색의 깃발들을 통해서 적들이 십여 개의 용병단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는 맨몸에 털가죽을 둘러쓴 병사들도 보였다.
약탈 부족인 라피르 부족이었다.
‘페르딤이 벌써 야만 부족까지 받아들였다더니 사실이었나.’
약탈 부족까지 데리고 참전한 걸 보면 병력 일부만 왔던 지난 전투들과 달리 총력전을 펼치려는 듯했다.
“제이드. 별동대 전원 집합했다.”
다가온 로빈이 보고했다.
아래를 내려보자 대원들이 각자 무장을 마친 녀석들이 말을 끌고 대기하고 있었다.
“가자.”
마누스 전군은 성문 밖으로 나가서, 성채를 등지고 도열했다.
이번 전투는 총력전이다. 그러나 목재 성채는 공성전을 벌일 만한 내구성이 없었다.
페르딤에게 대패하며 본성을 잃고 후퇴한 마누스 군이 급하게 지은 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페르딤의 돌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목재 성채를 믿기보다는 성채 밖으로 나가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최선이었다.
전선은 좁고 길었다.
본디 작은 숲길이었지만, 숱한 전투로 갈리고 찢어진 탓에 흡사 너른 벌판처럼 보였다.
하지만 군데군데 나무 밑동이 박혀 있는 데다가 땅이 울퉁불퉁한, 최악의 전장이었다.
쿵! 쿵! 쿵! 쿵!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적의 대군은, 흡사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파도 같았다.
우리는 그 앞에 선 작은 나룻배 같았고.
땅을 울리며 다가오던 페르딤 측의 군세가, 약 삼백여 미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적장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와서 무어라고 고함을 내질렀고.
우와아아아!
적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쏘아진 수백 발의 화살이 아군을 덮쳤다.
투두두두두!
땅과 방패에 박히며 울리는 그 살벌한 소리와 진동.
흡사 폭우가 쏟아지는 것만 같은 광경.
뒤에서 바라보던 대원들조차 침음을 흘렸다.
그 순간 아군이 방진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방패가 나타났다.
세 기사가 든 방패는 곧 방벽이 되었고.
놈들의 공세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놈들의 공격은 내가 막겠다!”
바르손.
그와 그의 형제가 나타나자 놈들의 공격이 쉽사리 막혔다.
“지금이다! 쇠뇌병들!”
“1조 2조! 발사!”
바르손이 만들어낸 기회.
후방에서 대기하던 쇠뇌병들이 앞으로 나서며 장전된 볼트를 쏟아냈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한껏 크게 포효한 바르손의 방벽에서 커다란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쩌어엉──!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오러의 강한 기세를 쏘아내다니.’
오러의 고위 운용법 중 하나인, 발산(發散)이었다.
이는 보통 칼날 형태로 예리하게 벼려내어 거리가 있는 적을 타격할 때 쓴다.
바르손이 발산한 오러의 면적은 원체 넓은 만큼, 살상력이 담기진 않았다.
그러나 페르딤 선봉대를 한바탕 후려쳐서 나동그라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크아아!”
“윽!”
방패를 들고 접근하던 수십 명이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나동그라졌다.
그 위로 화살 세례가 쏟아지며 놈들이 고슴도치로 변했다.
“이대로 밀어낸다!”
“바르멩, 이번엔 네 차례다!”
“예, 형님!”
쩌어엉──!
삼 형제는 차례대로 오러를 발산하고 오러 방벽을 복구하는, 유려한 팀워크를 선보였다.
그럴 때마다 페르딤 선봉대의 진격이 크게 휘청거렸고, 때마침 아군의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그렇게 선봉대가 전멸 가까운 피해를 입자, 놈들의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 이기는 건가?”
“이거 잘 만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이대로 우리가 승기를 잡아가는 듯했다.
‘아니. 아직이다.’
하지만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들의 선봉에 선 하얀색의 화려한 깃발.
그것이 녹스 용병단의 것인 걸 알고 있었으니까.
뿌우우우─!
그 순간, 페르딤 진형 쪽에서 웬 뿔피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다시금 울리는 뿔피리. 이번에는 조금 더 길고 무거운 음계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하게 느껴졌다.
놈들의 전략이 바뀌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페르딤의 선봉대가 전열을 해제하더니, 양측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마누스 군은 적들이 후퇴하는 줄 알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 환호성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놈들이 물러선 그 길 사이로, 커다란 수레가 나타났기에.
쿠구구구······.
녹색사막 태생의 갑각뿔소 네 마리가 커다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말 4마리에 버금간다는 용력을 자랑하는 갑각뿔소가 4마리라니······.
저것이 말 16마리가 끌만큼 무겁다는 걸 의미했다.
으저저저─
나무뿌리로 단단하게 얽혀 있을 숲의 땅 위로, 바퀴 자국이 깊게 팰 정도로.
“저게 대체 뭐야?”
“······뭔지 몰라도, 되게 큰 게 들어 있나 본데.”
“공성 병기인가?”
수레의 위에는 커다란 무언가를 검은 천이 덮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 비죽 튀어나온 두꺼운 철창이 그것이 거대한 우리라는 것을······.
즉, 무언가를 가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 것이 왔군.’
곧 검은 로브 둘이, 거대한 우리 앞으로 다가가더니 웬 마법을 발현했다.
붉은 마법진이 검은 우리의 옆구리에서 빠르게 회전했다.
나는 알았다.
그것이······ 일종의 시동 주문이라는 것을.
쿠워어어어어!
우리 안에서 터져 나온 흉포한 괴성.
동시에 쇠창살이 터져나갔다.
퍼엉!
그 충격에 수레를 덮고 있떤 검은 천이 벗겨지며, 녹스 용병단의 비밀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괴, 괴물!”
“저게 뭐야······!”
[아군의 사기가 줄어듭니다.]단지 그 모습을 목격한 것만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대폭 줄어들었다.
족히 4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
바위처럼 생긴 회백색의 피부.
누런 이빨과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호박색 눈동자.
질긴 생명력으로도 잘 알려진 괴물이자 북동의 마굴.
그곳의 문지기라고 불리는 마수.
“······케이브 트롤.”
녹스 용병단을 상징하는 심볼이 녀석이 입은 두꺼운 외갑에 새겨져 있었다.
‘저것이 바로······ 바르손 삼형제의 방벽을 부수고, 마누스의 전선을 으깨버린 괴물.’
전투 트롤이다.
쿵! 쿵!
그 거대한 괴수가.
우리를 향해서 무쇠 전차처럼 진격해오기 시작했다.